2016년 11월 6일 문지수목장 목장보고서
11월 6일 주일설교 김형민목사님
레위기 16:1-10 / 속제함을 받으려면
레위기는 그냥 글자로 읽으면 이것보다 지루한 것은 없다.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룩한 삶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
전반부 규례와 후반부 규례의 정점 16장
1. 속죄함을 받으려면 부모가 먼저 내 죄를 봐야 합니다.
1절, 2절- 우리가 아론처럼, 아론의 두 아들처럼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것이다. 성령충만하지 못한 것은 내 죄를 보지 못하고 내가 늘 앞서고 하나님보다 내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 말씀이 들리지 않는 상태이다.
말씀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말씀도 들리지 않는다.
1절- 나답과 아비후의 사망사건은 말씀을 철저히 무시하고 말씀을 듣지 않는 인간이 받는 보응을 보게되는 사건이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에 다른 불을 가져다가 예배한 사망사건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조심하지도 않고 마음대로 다른 불을 드렸다가 죄의 댓가인 사망을 일찍 당하게 되었다.
아론이 내려놓아야 할 자신의 생각 2가지 / 방향감각(가야할곳, 가지말아야 할 곳)과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때가 있는데 그것을 분별하라는 때이다.
속제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가만히 보면 세상이 자유로운 것 같아도 세상은 사실 엄격한 질서 가운데 운행되고 있다. 우주의 질서. 자연의 질서. 질서가 없다면 세상은 온통 사고로 가득했을 것이다.
아론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아론은 모세에 비해 말을 참 잘했다. 모세의 대변인 출신.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는 모세의 손을 받치고 있는 역할이었고, 그러나 결국 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백성의 요구대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가 3000명이나 죽게 되는 초대형 참사의 주인공이다. 때와 시점을 분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론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
모세는 자신이 살인자 출신에 도망자였다. 평생 죄책감으로 광야를 헤매다가 근본적인 죄인이라는 낮아짐가운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고, 이에 비해 아론은 말도 잘하고 잘하는 것이 너무 많았고 인정중독이 있을 것이다. 여론에 떠밀려서 백성에게 인정받는 것을 버리지 못하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 수많은 백성을 죽음으로 내 몰았다.
문제아는 없고 문제부모만 있다고 했다. 성경은 아론의 자식인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은 아론에게 분명 연결되어 있다고 하신다. 부모였던 아론 자신이 깨어있지 않고 방향감각과 시간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셨고 나는 그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한다는 종된 의식만이 나를 살린다. 사도바울이 가졌던 둘로스의 의식이 없이는 자녀들을 살릴 수 없다. 죄인인 아론에게 말씀하시지 않고 왜 동생인 모세에게 이야기하셨나? 아론도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느새 인정을 받고 명예를 얻으니 자신이 한 것이라 생각하여 영적 방향성과 시간개념을 잃었을 것이다. 보고자란 자녀들인 나답과 아비후는 그런 아버지의 약점을 그대로 보고 닮아가며 자랐을 것이다. 아무 때나 아무렇게나 들어가도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나는 아론을 정죄하는가? 판단하는가? 아론은 누구나 될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이다. 이것이 인간의 단면이다. 돕는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단면, 우리나라의 문제이다.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최선의 방법은 이제라도 자신의 죄를 보고 동생이자 영적지도자인 모세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야 내가 속죄함을 받고 나의 자녀가 속죄 받을 수 있다. 아론은 바로 나 이다. 내가 아론이 될 수 있구나.
**지난 한주간 아론의 모습과도 같았던 나의 모습은?
레위기 11장, 15장을 통해서 사람들은 온갖 음식, 질병, 가족의 부부생활 등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부정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죄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지중에 성소가 더렵혀질 수 있다고 말씀에 기록되어 있다. 때로는 나의 죄를 모르기에 공동체를 더럽힐 수도 있다. 흡연, 주차장 혈기, 설교가 길다, 춥다, 덥다,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고 상처받았다고 혈기를 부리는 성도들. 공동체를 더럽히는 나를 포함한 성도들. 모두 내 생각을 버리고 속죄해야 한다. 내 죄를 보고 속죄제사를 드려야 한다. 지금은 속죄의 시즌이다. 아니 바로 오늘이다. 오늘 주일을 맞아 나와 우리 가정이 속죄함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내 자녀가 죽어가는 것은 바로 내 죄때문이고, 방향감각과 타이밍을 잡지못하는 나 때문이다.
출애굽기 19장 5절, 6절-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 레위기를 말씀으로 받고 적용해야 함 /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다. (표어의 신학적 근거)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 먼저 내 죄를 보고 내 죄로 말미암아 망가져버린 내 가족과 내 자아와 틀릴 수 있는 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말씀의 인도를 받고 공동체와 영적 지도자에게 물어가며 죽지않고 살아가는 훈련을 이곳에서 받아나가야 한다. 나답과 아비후 자녀의 죽음속에서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명령하시는 이 말씀을 마음속에 새기자.
**부모로서 봐야 할 내 죄는? 버려야할 생각은? 가지 말아야 할 장소와? 분별해야 할 타이밍은 언제인가?
2. 속죄함을 받으려면 구체적인 적용이 있어야 합니다.
3절, 4절, 5절, 6절 #8211; 레위기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고 글자만 읽으면 아주 어려울 것이다.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책이 레위기라고 한다. 학자는 레위기 주석을 쓰면서 공감하기 위해 한 일화를 설명한다. 시골에서 자라면서 맘 약하신 어머니가 닭을 잡으시는데 닭의 목을 탁 쳤는데, 무서워서 반밖에 못치시니 닭을 놓쳤는데 목이 덜렁거리는 닭이 온 부엌에 피를 뿌리며 뛰어다닌다. 그 끔찍했던 경험이 이 레위기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서늘하고도 끔찍한 기억을 잊을 수 없는데, 구약은 닭보다 훨씬큰 소와 염소를 드렸으니 그 분위기가 어땠겠는가.
속죄함을 받으려면 구체적인 희생의 적용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끔찍한 것이다. 광야생활에 중요한 송아지와 숫양 등의 번제물이 있어야 한다. 또한 사람은 중요한 자리에 갈수록 그 복식에 신경을 쓰게 된다.
레위기의 아론은 옷을 챙겨 입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구체적인 명령속에는 하나님의 엄한 공의가 들어있고, 옷을 바꿔입고 죽어가는 제물의 모습을 보며 피를 뿌리는 적용을 할 때마다 아론은 섬뜩했을 것이다. 내가 저 제물처럼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백성들이 그렇구나. 신중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이 많은 자신 역시 먼저 죽은 자식들처럼 교만의 문둥병이 퍼진 초라한 인간 제사장으로서의 한계를 죽어가는 동물을 보며 절절히 느꼈을 것이다. 제사를 드리며 많이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레위기의 제사방식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 완전한 희생 덕분이다. 우리는 끊임없는 철저한 죄의 오픈과 내 죄를 보며 구체적인 적용을 해야한다. 우리들교회의 수많은 간증과 인생의 위기를 보며 동질감을 느끼는가?
세마포 옷은 소박하고 수수한 상복과 같다. 거룩함을 드러내는 옷이었다.
어떤마음으로 옷을 입었는가? 죄인의 옷을 입었는가 왕복을 입었는가? 우리는 죄인의 옷, 속죄의 옷을 입어야 한다.
어떤 사건이 와도 내 죄를 잘 보면 잘 감당할 수 있겠구나. 내 죄를 본다고 한다면 어떤 죄도 속죄함을 얻을 수 있겠구나.
사람은 참으로 악하고 음란해서 이 세상의 문화와 풍속에 그대로 노출된다. 큐티를 하고 목장을 하고 양육을 받는 성도라고 하지만 재미있게 건강하게 즐기며 오래오래 사는 것이 최고이고 명예와 돈이 최고이고 자식이 잘 되는 최고의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
세마포가 아닌 왕의 왕복을 입는 것이 이런 생각과 같다.
이 옷을 바꿔입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자녀를 왕복을 입힐 요량으로 살고 키운다. 옷을 바꿔 입는 다는 것은 그 복식에 내 가치관과 취향이 들어 있기 때문에 아무 옷이나 입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옷을 바꿔 입으라고 하셨을까? 그만큼 아론이 화려한 제사장의 옷입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아닐까?
**우리가 드려야할 구체적인 제물은 무엇인가? 시간과 물질, 몸
내 죄를 보기 위한 시간으로 큐티를 목장예배를 기초양육. 1:1양융 양육에 나의 귀한 시간을 드려야 한다. 섬기기 위해 귀한 식재료의 예물을 드려야 한다. 모든 것들이 옷을 바꿔 입는 적용인 것이다. 이 시대에 요구하시는 예물은 시간, 물질, 우리의 몸이다. 숙제의 주된 내용은 내 죄를 보아야 하는 것이다. 내 죄를 보고 옷을 바꿔 입어야 한다. 오늘 어떤 옷을 입고 왔는가? 왕의 복장 입고 우리들 교회 오면 안된다. 우리가 다 죄인임을 인정하고 옷 바꿔입고 오자. 양육을 받을 때 왕의 옷을 입고 받으면 안된다.
**공동체가 처방한 내가 해야 할 구체적인 적용은 무엇인가?
귀한 시간과 물질을 내 죄를 보기 위해 쓰고 있는가?
*평생 주일오후를 드려야 한다.
3. 속죄함을 받으려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7절, 8절, 9절, 10절 #8211; 아사셀은 바위 투성이 낭떠러지이다. 가면 절대 못돌아오는 곳이다. 이 곳의 제사장이 한마리는 속죄제물로 드린다. 모든 죄를 아사셀 염소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너희가 행한 모든 죄를 잊어주시겠다는 개념이다. 아사셀 염소가 신약에서 예수그리스도 라는 것을 히브리서 9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마가복음 10장 49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하심이라.
내 죄는 쉽게 잃어 버리고 자녀와 배우자의 죄는 잊지 않고 있지는 않는가? 상대의 죄를 계속 묵상하고 있지 않는가? 묵상해야 할 것은 아사셀로 떠나보내야 할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속죄를 묵상해야 한다.
온 교인이 목사님의 암 사건을 보며 나 때문이라고 회개하는 우리들 교회. 우리 모두의 거룩을 위해 수고하고 계신다.
큐티 열심히 하자!
때에 맞게 순종하고 옷을 입고 구체적인 적용을 하면서 가자.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이 전부이다.
내 인생의 사건과 고난을 구원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바로 구속사이다.
가해자 피해자의 구도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그만해야 한다. 이제 나를 위해 수고하는 가족들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구원하시고자하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깨달을 때 이 세상이 바꿀 수 없는 사람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우리는 완전히 바뀔 수 있다. 잊어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제 어린양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아사셀염소가 되셔서 죄를 감당하시고 구원해 주셨다. 아사셀로 떠나보내라.
말씀이 들어간다면 내가, 내 가정이 변화될 수 있다.
**내가 지금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받은 용서를 누군가에게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도제목>
지수)
- 가정을 지켜주심에 감사 --> 적용: 가정을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기.
- 직장의 파트너에 대한 미움이 쌓이면 용서할 수 있도록 --> 적용: 마음을 세마포로 갈아입고 협조를 구할 수 있도록
- 목장의 예배회복을 위해 기도
- 금주하지 못한 것을 회개함으로써 적용할 수 있도록
새로미)
- 매일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온유하고 긍정적으로 말씀에 근거해서 지혜롭게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 적용: 요가가기전에 큐티하고 목장카톡방에 올리기(월요일), 밀린 양육과제 최선을 다하기.
지혜)
- 아빠와 남자친구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나는 기도로 섬기고 잘 기다릴 수 있도록
- 반복된 나의 죄를 돌아보고 이번주도 큐티로 끊임없이 적용할 수 있도록
- 적용: 일주일 온전히 큐티하고 토요일 큐티 목장카톡방에 올리기, 양육받듯이 말씀녹취.
윤지)
- 더 초심을 가지고 매사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적용: 큐티와 주일, 수요, 목장 예배사수하기
유라야, 은지야, 연숙아, 우현아 보고싶어^^ 다음주에 함께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