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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2016.10.23 [18] 박수동 목장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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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명
[표승범]
조회
110
댓글
0
날짜
2016.10.23
20161023_일3_이태근목사님_신앙의위기_레101-20
[주일예배 설교]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 어떤 마음으로 지내셨습니까? 저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설교 한 마디, 말 한 마디에 조심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담임 목사님은 안식과 휴식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목세 기간 중에는 3박 4일 동안 10번의 집회를 인도하는 강행군이 남아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제사장 그룹과 모세 한 사람이 말씀 속에서 늘 깨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는 우리 부교역자들이 담임 목사님을 위로해야 될 것 같은데. 신앙과 삶의 위기를 맞이한 지체들의 아픈 소식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영아부 카톡방에 올라온 기도제목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들어주십시요. 어제 정기검진. 태아의 혹 2.8센치. 아이의 머리가 3센치인데 목도리처럼 혹이 두르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임신 초기에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진행상황을 지켜보고 아이가 태어나봐야 그것이 혹, 종양, 유전자 기형인지 알 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듣자마자 낙태를 생각하였습니다. 겨우 마음을 추스리고 오늘 말씀을 보니 나답과 아비후의 말씀이 보였습니다. 물론 혹이 없어졌으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저희 식구가 이런 한계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청년부 출신 부부에게 생명의 위기, 신앙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에겐 어떤 위기가 찾아왔습니까? 직장 연애 물질 관계의 위기 등을 겪고 있습니까? 또는 첫 신앙의 위기. 신앙과 삶의 위기를 통과하려면,
1. 사건 앞에서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1절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첫째와 둘째 아들입니다. 그들이 각기 향로를 가져왔다는 것은 각기 자신의 향로를 가져왔다는 의미입니다. 출애굽기에서는 이 향로를 가리켜 불똥기구라고 합니다. 식양대로 그 모양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각기. 더 큰 문제는 다른 불을 담아. 본문 안에서는 부연설명이 따로 없습니다. 그것이 어떤 불인지. 어디에서 가져온 불인지. 원문의 문자적인 의미로는 이상한 불, 생소한 불을 가리킵니다. 제사장은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불은 끊어짐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 지니라. 하나님의 불은 번제 위의 제단에서 꺼지지 않는 불을 취하여.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합니다.
2절
불이 누구를 삼켰습니까? 나답과 아비후를 삼켰죠. 무섭고 두려운 불 심판이 임했습니다. 1~7장. 다섯 가지 제사. 8장. 아론과 다섯 아들이 제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9장에서는 드디어 아론이 첫 번째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게 됩니다. 레위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클라이맥스가 9장 마지막에서 이렇게. 원문에 보면 여호와의 얼굴로부터 나와. 어떤 면에서 9장까지의 지루하고 지루했던 모든 내용들이 9장 24절. 임팩트 있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가시적으로. 직접 눈으로 본 거에요, 그걸? 그런데 10장이 시작되자마자. 그 자리에서 불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상황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 될까요? 향로의 그릇이 좀 바뀌어야 했다고 해서. 제단을 불을 취하지 않았다고 해서, 예배를 좀 부주의하게 드렸다고 해서. 뭐 사실. 여기 어디엔가 한 두 명은 졸지 않겠어요? 딴 생각. 카톡을 하고 문자를 하고. 과연 적절하다고 생각을 하세요? 구약에 나답과 아비후의 사건이 있다고 하면, 신약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나옵니다. (사도행전 51-11) 남편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잠시 후에 들어온 아내도 같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이 함께 터진 것입니다. 땅을 팔았으니까 그 액수가 족히 수천 만원은 되지 않았을까요? 수천 만원을 헌금하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내 사건 앞에서 나를 살펴봐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는 사하심을 받을 수가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복음서에서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제단의 불은 성령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사건.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원문에 보면 접속사 와우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즉, 그리고.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일련의 사건입니다. 온 백성에게 축복의 메세지를 전할 때 불이 여호와의 얼굴로부터 나와 삼킬 때. 나답과 아비후는 뜬금없이 자기의 향로를 가져와서. 왜 그랬을까요? 단순한 실수이거나 부주의가 아닙니다. 성경의 문맥 속에서 살펴보면 그것은 일종의 공명심이 그들의 행동을 부채질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초대 교회의 바나바라 하는 요셉처럼. 별명을 붙여줬어요. 위로의 아들, 권위자라는 인정을 그들도 받고 싶어서. 막상 그 모든 것을 드리려 하니 아까워서. 바나바처럼 인정도 높임도 칭찬도 받고 싶어서 성령과 교회를 속였습니다. 왜 아니니아와 삽비라가 죽었을까? 꼭 그런 식으로 죽었어야만 했을까? 죽을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었습니다. 만약 자기 죄가 죽을 죄라고 생각했다면 분명 살 기회가 너무 많았을텐데. 여러분들도 이런 경우가 있었지 않겠습니까? 아내 몰래 바람을 피웠지만. 죽을 죄는 아니라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가정이 풍비박산 되었지만 죽을 죄는 아니라고. 구약의 나답과 아비후는 영광스러운 순간에 가까이 나아감으로 백성들로부터 칭송과 높임을 받고자 했습니다. 서로 경쟁하듯 자기의 향로를 가지고 나왔다는 의미입니다. 출307 대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아론의 역할이었습니다. 자기의 영광을 취하기 위하여 앞다투어 나아갔다가 불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3절
첫 번째 대지의 제목을. 신앙의 위기를 통과하려면. 첫째, 사건 속에서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다보니 제 생각이 틀렸, 다~ 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가까이 하는 자가 아니고. 가까이 하는 자, 중에서. 라고 합니다. 그래서 첫 번째 대지의 제목을 바꿨습니다. 첫째, 사건 앞에서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자기를 살피지 않으면서 자기의 향로를 가지고 성막 앞으로 깊이 들어가다보면 저처럼 치리를 받는 경우가 생깁니다. 지난 주 월요일에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바로 전화를 했더니 전화를 사정없이 끊더라구요? 바로 전화를 했더니 짧은 문자가 왔더라구요. 집회 중 이럴 때. 늙은 형님들이 버텨주셔야죠. ㅎㅎㅎ 목사님께서 그래도 첫 번째로 형님을 시킨 거니까 든든하다는 것을 보여주세요~ 지난 주 주일예배 후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셨나요? 엄마는 안 아플 줄 알았다. 이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먹먹해서. 잠깐 동안.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아. 내가 너무 속을 썩여 드렸구나. 나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자기의 향로를 가지고 초원 모임에 들어갔다가 첫 번째 치리를 받고. 첫 번째 사역자 전임 모임에 갔다가 두 번째 치리를 받았습니다. 즉시 회개를 하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을 했습니다. 내가 아파야 하는데 목사님이 대신 아픈 것 같습니다.
적용
신앙과 삶에 어떤 위기를 지금 겪고 있습니까? 주님께 가까이 나간다고 하면서 자기의 향로를 취하고 다른 불을 살피고 있진 않습니까?
2. 사건 앞에서 잠잠해야 합니다.
3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아론이 잠잠하니. 두 아들이 죽는 사건 앞에서 아론이 잠잠합니다. 사건 앞에서 잠잠할 수 있는 것이 영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여리고성을.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아무 말도 하지 말며. 잠잠할 때는 잠잠하고 외칠 때는 외치는 것이 그 사람의 영성입니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전달하며 들레는 사람도 간혹 있을 것입니다. 신앙과 삶의 위기를 만났을 때 우리도. 들레지 않고 한 주간 잠잠히 잘 살다가 목장과 기도 시간에 부르짖으며 외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4-7절
나답과 아비후의 시체를 처리하는 방법에 대해서 모세가 설명 합니다. 7절 말씀. 여호와의 관유가 너희에게 있다, 하는 것은 셋째와 넷째가 제사장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다, 하는 의미입니다. 회막 문 밖으로 나가지도 말라고 하십니다. 가까운 친척에게 모든 장례의 절차를 위임하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온 백성과 함께 슬퍼하라고 하십니다. 백성은 마음 놓고 슬퍼할 수 있지만. 그 직분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남편은 남편의 자리. 아내는 아내의 자리로 기름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여전히 주어진 사명이 있고 마지막까지 감당해야 할 기름부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적용
잠잠해야 할 때와 외쳐야 할 때를 잘 분별하고 있습니까? 오늘 내 사건 앞에서 잠잠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3. 사건 앞에서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해야 합니다.
8-9절
뜬금없이 포도주와 독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금 사람이 죽었고. 장례절차를 밟는 와중에. 아마도 나답과 아비후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고 항명심에 그 향로를 가지고 성막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충분히 타당한. 묵상을 하면서 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했을까? 아버지가 술 취한 모습 너무 싫죠? 저도 너무 싫었어요. 보기에 민망하고 흉하니까. 또 뭐가 있을까요? 지난 주일 말씀이 하나로 겹쳐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제단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제물과 십자가를 상징한다면 제단의 불은 성령님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주 주일 말씀에. 성령충만은 조롱받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왜 조롱받을까요? 성령의 역사가 말씀이 없는 자들에게는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횡설수설하는 거 같기도 하고 미친소리 하는 거 같기도. 들리기 때문입니다. 알아듣지 못할 방언을 하는 것과 술취해서 횡설수설 하는 것이 너무 비슷한 거에요.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에! 취하라는 의미입니다. 레위기 6장에 불에 관한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제단 위의 불은 항상 꺼트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한 번 불 피운 것은 꺼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1년이고 2년이고 10년이고. 성령의 불을 소멸시키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나올 때 큐티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오늘 큐티책을 폈습니다. 한 주일 동안 들춰보지 않았다가 다음 주에 가지고 나옵니다. 성령의 불이 소멸될 수 밖에 없습니다. 아침에 큐티하고 저녁에 묵상을 해야 성령의 불이 소멸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불이 꺼지면 사건이 올 때 불 심판을 당합니다. 다시요. 성령의 불이 꺼지면 사건이 올 때 불 심판을 당합니다.
10-11절
술에 취하면 분별력을 잃어버립니다. 횡설수설. 했던 얘기 또 하고. 자꾸 어렸을 적이 생각나네요. 그런데 성령에 취하면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생깁니다. 세상 사람은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담배와 쏘주를 찾습니다.
적용
사건 앞에서 내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무엇입니까? 술 사건 돈 감정 내 생각에 취해 있습니까, 아니면 성령에 취해있습니까? 분별할 수 있는 성령충만함이 나에게 있습니까?
4. 사건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12절
지금부터 먹으라는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옵니다.
13절을 봅니다?
먹으라는 이야기가 또 나왔죠?
14절 말씀에,
함께 정결한 곳에서 먹으라는 이야기가 또 나왔습니다.
그리고 15절에,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모세가 화가 났습니다. 원문의 뜻은 격노했다는 의미입니다. 모세가 화가 난 것은 먹으란 것을 먹지 않고 그 전부를 불에 태웠다는 겁니다. 아론과 그 남은 두 아들도. 정해지지 않은 율법. 어떤 불인지는 모르나 그 불로 남은 고기를 다 태웠다고 합니다.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겠습니다.
이제. 5가지 제사가 있었어요. 그런데. 속죄제로 드려진 짐승은 첫째. 먹을 수 있는 속죄제와 둘째. 온전히 태워 드릴 수 있는 속죄제로 나눕니다. 제사장을 위한 속죄제의 소는 온전히 다 태워지는 겁니다. 남은 거 없이. 재만 남아요. 그런데 백성을 위해 드려지는 속죄제의 염소는 번제단에서 일부가 태워지고 나머지 숫염소의 고기는 제사장들이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왜? 형식과 껍데기에 집착하다보면 그 의미를 잃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17-18절
먹을 수 있는 속죄제물은 제사장들에게는~ 소독소독소독. 뭘 소독하는 게 아니라. 소독으로 주셨다구요. 남겨두신 그 고기는 소독이라는 거에요. 정말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이유는 회중의 죄를 담당케 하기 위함이라고 했어요.
17절 말씀을 다시 봅시다.
그들이 누구에요? 회중. 백성. 어려운 이야기 같지만 매우 단순하고 명확하고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번제단의 제물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어지는 속죄하는 제물입니다. 나의 악과 음란을 위해. 제가 이 시간 여기서 설교를 한다고 해서 제가 절대로 여러분보다 더 거룩한 게 아니라니까요.
반면에 백성을 위한 제사는 온전히 태우지 말고. 제사장과 거룩한 곳에서 먹으라고 했습니다. 왜? 기름부음 받은 자의 사명이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처리되지 않고 남은 그 부분들을 목사님이 먹고 마시며 소화를 다 시켜서 눈물로 기도해주시고 말씀으로 해석해주셔서. 몸에 병이 나신 것 같아서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필요한 직분입니다. 남편은 남편의 역할. 아내는 아내의 역할. 자녀도 마찬가지에요. 학생은 학생의 역할. 청년은 청년의 역할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불태웠다는 것입니다. 아론과 그 남은 두 아들이 정면으로 그 율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9절과 20절에 반전이 있습니다.
모세가 그 말을 듣고 좋게~ 여겼더라. 무슨 얘기 입니까? 쉬운 얘기에요. 나답과 아비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기의 죄를 살피지 못함으로 욕심과 탐심에 잡히고 공명심에 사로잡혔는데. 아론과 두 아들은 자기의 죄와 연약함을 보았다는 얘기에요. 율법을 가지고 규율과 규칙만 따지는 것은 율법주의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율법을 어김으로 죽임을 당했지만 아론과 그 남은 두 아들은 율법을 어김으로 좋게 여김을 당했습니다.
적용
죄인지도 모르면서 내 죄를 먹고 마시진 않습니까? 가족들과 지체들의 나약함을 내가 먹고 마셔서 소화를 잘 시켜서 눈물과 말씀으로 잘 소화를 시키고 있습니까?
공동체 고백입니다.
천우제를 드리는데 뭐 700~1000만원이 든대요. 덤으로 아들의 결혼 비용도 보태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소식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였고. 아픈 아내를 많이 이해해줬던 저희 본가 식구들이 이러한 상황으로 많이 화가 났습니다. 초원방에 조언을 구하고자 합니다. 주일목장의 목자이시고. 아내 집사님은 주일목장의 권찰이며 부부목장의 목자인데 이런 사건이 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기가 막히지만. 나답과 아비후처럼 우리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먼저 아내에게 객관적인 사건을 다 얘기하세요. 이 문제는 남편과 아내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다뤄야 할 일임을 명확하게 말씀을 하세요. 저와 통화한 목자님이 너무 무서워 떠시는 거에요. 아 이걸 다 얘기하면 난리가 날 거라고. 목사님의 처방을 따라 이 문제를 공동체에 묻고 갈 거라고. 믿지 않는 본가 식구들이 난리가 났대요. 그냥 모른 척 하고 넘어가자고. 이 문제는 꼭 목장과 공동체에서 함께 풀어가자고 말씀드렸습니다. 다음 날 21일. 목자님께서 카톡방에 다시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알게 된 사실을 그대로 오픈하라고 하셨습니다.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렸기에. 저도 자신이 없어서 기도만 할 뿐. 결국 어제 저녁에 아무 말도 못하고. 새벽에 눈이 이렇게 떠져서 큐티와 기도를 했는데. 본가 식구들 중에서 유일하게 믿는 우리 가정이. 악한 불로 분향하고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미신을 조장하는 것은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담대히 말을 하니 무서운 아내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딸의 카톡. 엄마가 계속해서 울고 있다.
말씀을 맺습니다.
신앙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이라고 제목을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신앙과 삶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극복하려면. 그 말이 자꾸 거슬리는 거에요. 왠지 우리들 언어가 아닌 거 같고. 핸드폰 성경에서 검색을 해봤어요. 깜짝 놀랐어요. 성경에 극복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안 나오는 거에요. 깜짝 놀랬어요. 홍해를 가로질러 요단강을 통과하는 것이지, 극복. 뛰어넘는 게 아니에요. 먼저 사건 앞에서 자기를 살펴야 합니다. 자기를 살피지 않는 사람이 나답과 아비후, 아나니아와 삽비라라고 했습니다. 사건 앞에서 잠잠하라고 했습니다. 사건 앞에서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해야 합니다. 비둘기처럼 온유한 성령님의 인도를 받읍시다. 내가 점을 보러 다니고 이상한 생소한 불을 찾아다니는 이유는 세상적인 욕망 속에서 나의 사건의 본질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함께 기도하고 찬양하겠습니다.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
[기도 제목]
표승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 4장 2절 말씀
1. 담임 목사님께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셔서 암세포가 사멸되도록
2. 매일 새벽큐티설교를 들으며 신앙과 삶의 위기를 통과할 수 있도록
3. 사건 앞에서 잠잠할 수 있는 영성으로 감정, 자기 생각을 멀리하도록
4. 규율과 규칙만 따지지 말고 나의 죄와 연약함을 인정하고 볼 수 있도록
5. 목요일 오후 3:30~5:00 음성녹음 일할 때 집중력, 대사 전달력 주시도록
추신.
- 지지난주 개인 기도 제목은 잘 응답되었습니다. 이번 주 기도 제목도 잘 응답받고 있습니다. 기도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양재 담임 목사님께서 주일3부예배 때마다 프로젝트에 기름을 부어주시도록 기도해주셨는데, 실제로 이번 음성녹음 브라보 프로젝트에 기름이 부어져서 시간, 급여, 난이도가 추가되어 진짜(!) 좋고 싫음이 없는 한 주간을 보냈습니다. 또 다른 음성녹음 일자리가 갑자기 들어와서 거길 먼저 다녀왔더니 예상치 못한 전철의 냉방 덕분에 재채기와 콧물 감기에 걸렸습니다. 이 또한 큐티를 응하게 하는, 말씀을 해석하도록 돕는 툴(tool) 같은 사건입니다.
- '이번 주는 덧글 달지 않을거다.' 라고, 성령님이 제 마음에 살짝 귀띔을 해주셨습니다. 매주 연속 덧글이 달려서 또 이번엔 누가 목보를 방문해주었을까? 하고 기대감을 가졌었는데 신기하게도 이번 주는 또렷하게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달지 않으니 나도 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 꼭 덧글을 달지 않는다고 해도 기도까지 안 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덧글의 반응에 대해 매달리는 마음이 제 안에 느껴졌기에, 오히려 덧글이 없는 편이 더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불심판의 사건 직후 곡소리 나게 회개했어도 죄패의 영향은 남아있는 걸까, 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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