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6일주일설교
김양재 목사님
사도행전 2:13-21
제목: 성령충만
성령충만이라는 것은 환상적인 체험, 방언을 경험했나를 뛰어넘는 것이라고했습니다. 내가 성령충만을 받았나 아닌가는 내가 미운사람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가 없는가 라고했습니다.
있다면 아직 성령충만을 아직 받지 못한 것 입니다. 기도원을 많이다니고 방언으로 매일 부르짖어도 큐티를 많이 하고 앉은 자리에서 10시간을 기도해도 아직도 싫고 좋은것이 너무 분명하고 죽어라고 용납이 안되는 사람이 있다면 성령충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유다가 자살해서 멋있어 보이고 좋고 싫은게 분별이 정확해 보이니까 그런 사람이 멋져 보입니다.
그런데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들이 모여 사역하는 곳이 교회고 그런 교회가 진정한 건강한 교회인데 이런 사람들중에는 상처 많고 이상한 사람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었어도 교회라는 곳은 열등감 훈련의 장소고 죽을 때까지 해결이 안 되는데 종으로 살았기 때문에누가 뭐라고 말하기만 하면 종노릇 하던 것이 생각나서 “나를 무시하네”가 나온다.
우리가 다 그런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치료해가고 진단과 처방 나오는 곳이 건강한 교회 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온 인류가 예수 안에서 회복됨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입니다.인간의 힘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성령충만은 더 나아가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뛰어넘는 것 입니다.
어떤분이 자라를 선물로 받아서 사기 그릇에 자라를 넣어놓고 봤는데 자라가 그 미끄러운 그릇을 올라갔다 뚝 떨어지고끝없이 계속 떨어지는데 끝없이 올라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충만이라는 것은 성령이 고였다가 그것을 넘어가야 되는데 넘어서지 못하고 올라갔다가 뚝떨어지고 올라갔다뚝떨어지고를 반복하면서 그러면서 자기 열씸가지고 이걸 넘어가 볼려고 끝없이 노력하지만 자기 열씸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는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실패했으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데 자기 열씸이 하늘을 찌르는데 보는 사람은 웃기고 본인은 심각하고죽어라고 열씸히 살다가 딱 한계상황에서 잘 넘어가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나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는 방언 신의은사 다 할수 있지만 세상에서 보여주는 것은 막힌 것이 뚫리는 것입니다. 굉장한 고난을 당하는데 하나도 원망과 낙심을 하지 않는 모습 이런걸 보여줘야 하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안 된다는것입니다. 누가 넘겨줘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열씸인 사람은누가 넘겨줘야 한다는걸 못견뎌하고 받아 들이질 못합니다. 그런데 인정하는 사람에게는 성령강림이 임했는데세상은 성령충만한 사람을 조롱한다고 했습니다.
1, 성령충만은 조롱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은 성령의 역사에 무지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역사를 설명하려면 인내가 필요하고 거룩한 행실의 이유가 필요합니다.
불신자에게 왜 용서받아야 할 사람이 거꾸로 용서를 구하는지 말씀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대한 백성들의 의문을 구약성경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제든지 복음에 대한 의문을 품는자에게 언제라도 대답할말을 예비하기 위해 성경을 신령과 진정으로 읽어서 연구해야합니다.
14-15 베드로는 설교를 혼자 한 것이 아니라 11사도와 같이 서서 했다고 합니다.
함께 서서 소리는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들 성도들의 간증과목장이 같이 서서 설교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람같이 임한 불의 혀처럼 주관적으로 임한 체험을 객관적인 성경으로 증거하는 설교를 지금 베드로가 하고 있습니다.
성령충만의 뜻을 성경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이 교회사의 첫 설교 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지 베드로도 자라 같아서 절대로 넘어 갈수가 없는 것 입니다.
베드로와 유다가 똑같이 죄를 지었는데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세상사람은 유다를 더 멋있게 생각한다. 베드로는 똑같이 죄를 짓고 설교를 하니 너도 유다처럼 자살을해 뻔뻔하게 어디 나와서 설교를 해?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지만 베드로는 3년간 예수님과 성경공부를 열씸히해 유다사건을 처리하고 그렇게 말씀사역이 시작되는 것이 사도행전2장입니다.
“예수믿는 것이 최고이고 행함으로는 구원 받을수 없고 예수 믿는게 최고의 경건이고 선이다” 라고 얘기를 한 것이다. 모두다 니가 행위를 잘하면 내가 예수 믿겠다 다 그러지만 제대로 그렇게 그 사람 마음에 맞게 살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이말이 쉬운말 같지만 성령받지 못하면 평생 못 알아 듣는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옳고 그름으로 생각을 하니까 옳고 그름으로 생각하는 것이 성령충만 받는데 가장 적이 되는 것이다.
조롱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조롱받지않는게 인생의 목적이지만 성령충만 받은 사람은 조롱받는 얘기부터 나오는 것이다.
적용- 내 믿음의 간증을 통해 얼마나 조롱을 받았는가?
그때 하나님을 알리기 위해 같이 서서 소리 높여 외칠 지체가 있는가?
같이 전해야 하는데 부부가 한마음이 되지 아니하고 한쪽에서 조롱을 하면 도저히 못 전한다.
같이 예수믿고 같이 큐티해도 한쪽에서 조롱한다
같이 서서 외칠 지체인가?
하나님 보다는 내 부족함 때문에 조롱받는 것이 두려워서 찾아온 전도의 기회를 지금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2. 성령충만은 말씀충만 입니다.
복음전할 때 너희의 생각과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부드럽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온유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신앙 인격입니다.
세상은 과거를 다 문제 삼습니다.
10번이면 9번을 온유하게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관계가 안되니까 인간 관계도 안되고 적용이 안되니까 적용이 이해도 안 된다.
보편적인 언어로 온유하게 대답하는 것이 세상을 끌고 가는 능력입니다.
적용- 내가 대단한 간증을 하고 전도를 했는데 막 조롱을 하고 미쳤냐는 소리를 들을 때 얼마나부드럽게 대응을 할 수가 있습니까?
막 심장을후벼파는 소리로 조롱을 할 때 이것은 내 성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펀안하고 쉽게반복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까?
16절 어떤 사건이 있어도 성경으로 설명을 시작 하는게 최고의 설명 입니다.
성령충만과 방언 받은 것을 성경으로 끌고 갔습니다.
베드로의 성령충만의 결과는 말씀충만입니다.
말씀이 재미 없어지면 사건이 해결이 안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이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 입니다.
누구 때문에 예수 믿은 것이 아닙니다. 누구 때문에 그 일이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내가 믿게 된 것 입니다.
적용- 모든 사건을 성경으로 설명하기 위해 늘 말씀으로 예비되어 있습니까?
나의 말씀 묵상이 다른 사람을 돕고 전도하는데 쓰이고 있습니까?
3. 성령충만은 내 인생의 말세에 임합니다.
17-18절 주님 오심부터 오실 때 까지 모두 말세입니다.
성령을 모시면 거룩한 삶의 권능을 얻습니다. 말세에 라는 말이 나온것은 성령강림이 말세에 속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내 개인의 말세는 나의 한계를 인식할 때 말세가 오는 것 입니다. 그리고재림사건이 같이 나옵니다. 주의 성령강림은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볼 때 초림과 재림은 멀리서 볼 때 겹쳐 보인다. 우리 인생은항상 말세를 살고 있는 것 입니다. 그 말은 항상 주님의 재림을 준비 해야 함을 의미하고 그것은 오늘이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종말이라는 것은 내 인생이 끝나는 그때가 종말입니다.
내인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죽을때까지 말세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그냥 갑니다.
내인생의 말세를 인정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지금까지 가고 오는 모든 세대의 문제는 자녀문제 젊은이 문제 노인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내가 설명하려고 하지 말고 성경을 열씸히 읽으면 모든 것을 성경 안에서 설명 할수 있습니다.
자녀들은 앞날을 모르는 것이 특징이고 젊은이들은 쾌락속에서 사는 것이 특징입니다.
늙은이 들은 꿈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어떠한 사회보장도 어떠한 사립학교도 자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어떠한 최고의 기관도 자녀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육체에 부어주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이것이예수님의 설명입니다.
영으로 부어주리니라는 말은 성령과 진노 양쪽에 다 쓰인다.
똑 같은 일이와도 한쪽에서는 성령이고 한쪽에서는 진노입니다.
내게 강 같은 은혜가 부어지든지 강 같은 심판이 쏟아지든지 둘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부어주시는 것은 인간쪽에서 보면 샘솓는 것을 의미하기에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의 샘이 터지는것을 의미 합니다.
이일을 성령충만이라고 하는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나태하고 넘어지고 큐티도 하기 싫고 교회도 다니기 싫은 것은 전적으로 나의 책임입니다. 똑 같은 사건에서 구원인가 진노인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가장중요한 우선순의 한사람 12제자중에 유다를 대신할 마띠아를 채워넣지않고는 사도행전이 시작되지 않습니다.
막힌 한사람의 관계를 풀어야 사도행전이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받아서 각자행전을 어떻게 써 내려 갈까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꾸는 것 입니다.
한사람을 해결하지 않으면 평생의 모든 열매기 헛것이 될수 있습니다.
사역이 헛것이 됩니다.
한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 때문에 날마다 날마다 사도행전을 써가는 것 입니다.
성령을 받고 언어생활이 부드러워지고 열정적이어야 하고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적용- 세상것에 쉽게 물들어 가는 어린자녀 뚜렸한 삶의 목표없이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자녀과거에 대한 원망과 후회로 사는 부모 때문에 너무 힘드십니까?
그모든 내인생의말세에 오직 성령충만한 것 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나에게는 그말세에 어떤 예언과 환상과 꿈으로 성령이 임하셨습니까?
4. 성령충만은 구원의 역사입니다.
19절-20절 성령을 모시면예언과 환상과 꿈으로 거룩삶의 권능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함이 올때는 항상 환란의 때 가옵니다. 초림이나 재림 다 마찬가지 입니다. 피와 불과 연기가있다는 말입니다. 나의 해와 달이 어두워 져야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위에 속한 자가 되서 하늘의 기사를 보며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사람은 피와 불과 연기속에서 심판을 받습니다.
21절 구원은 어떤경우에도 이루어 집니다
피를 철철 흘리며 도저히 해결할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아도 어떤 피와 불과 연기속에서도 주의 이름이 부를 때 구원을얻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복음은 기쁜소식입니다. 세상의 죄를 비판하고 지옥의 심판도 전해야하지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의 기쁜소식과 함께 전해야 합니다.
대안 없이 협박만 해서는 누구도 변화시킬수 없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영화롭게 해주려고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게하시는 것인데 이렇게 해결이 안되는 것같아도 피가 되고 불과 연기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불러서 구원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 입니다
누구든지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면 구원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기 위해서는 전파하는 자가 받드시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조롱을 당한다 해도 전파하고 설교 했기에 지금까지 복음이 세계로 전파된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모르는 자들에게 힘들 때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피가 변하고 불과 연기의 사건이 없기 때문에 날마다 오는 작은 사건도 심판의 사건으로 보고 하늘의 기사가 되지못하고 피와 불 연기 그 자체로만 있기 때문에 너무 두렵고 떨리고 피를 철철 흘리면서 힘들다고 욕하고 원망하고 막아줄 사람이 없습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성령충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내 생각에 막힌 것이 뚫리고 대인관계의 변화가 오는 것 입니다.
성령충만은 막힌 관계가 뚫리는 것이고 이해되지 못할 사람이 이해 되는 것 내가 그런 확신으로 전할 때 난 곳방언으로 다 듣게 됩니다.
적용- 피와 불과 연기의 사건에서 하나님의 크고 영화로운 이 구원을체험하고 있습니까?
심판의 사건으로 피를 철철 흘리면서 그속에 뒹굴고 있습니까?
[기도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