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5일 주일설교
사도행전 1:15~26
사도행전
1.120명으로 시작했습니다.
15절- 120명이 기도회에 모였습니다. 온전히 헌신하는 한 사람 한사람을 쓰십니다. 그 한 사람이 120명이나 모였으니 120명이 나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숫자에 연연해하지 마세요. 베드로는 대표적인 실폐 사례였습니다. 예수님이 계시지 않는 상황에서 사도들의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처절하게 회개하고 통곡했습니다. 눈이 밝아지고 마음이 열려 알려준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헌신하는 사도들의 대표로 세우셨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을 바라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약속한 것을 기다릴 때 성령이 강림하십니다.
적용- 떠나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는 120명의 사람입니까?
2.성경이 응하는 행전입니다.
베드로가 다 지나간 유다이야기를 꺼냅니다. 성령이 오시는 때가 이 땅에서 교회가 처음으로 부흥하는 때였습니다. 성령께서는 120명이 모여 기도하는 동안 베드로에게는 부족한 것을 깨닫게 합니다. 공동체가 가장먼저 회개해야 할 일은 공동체에 대한 회개입니다. 한사람의 회개로 끝날 수 없었습니다. 유다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였습니다. 동료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안겨준 일이겠습니까? 유다의 배반은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침묵으로 일관하며 덮고 있었을 뿐입니다. 베드로 자신뿐만 아니라 드러내서 치유를 받아야 사명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실패한 사역처럼 보이는 일이 정면 돌파해야 진도가 나갈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든 사람이 이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수치를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보여주십니다. 성령이 임하기 위해서 믿기만 해서 되는게 아니라 인격적인 성령을 맏기 위해서 어두운 부분을 회개하고 점검해야 했습니다. 유다는 입 맞추며 예수님께 잘한 반면 베드로는 3번을 부인하였습니다. 이미 회개한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후에 자살한 유다와는 다르게 성장했습니다. 자기 힘으론 할 수 없고 성령님이 객관적으로 평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고 안 받고는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예수님은 유다 이야기를 하기 원했습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베드로도 까막눈이여서 깨닫지 못했습니다. 유다를 향해서 문자적으로 돌아오길 원했습니다. 셩령의 음성으로 들리지 않는것입니다. 유다는 말씀이 안 들리니까 끝까지 거역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성령을 거역하다가 결국 자살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들리던 안들리던 예수님께 양육을받고나니 죄를 지으니 성경에 그대로 나와 있었습니다. 긍정이던 부정이던 말씀대로 이어집니다. 믿음은 들리지 않아도 떠나지 않고 듣다보니까 성경이 내 사건이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적으로 유다사건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성경이 나에게 응해야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진솔함이 가장큰 지혜입니다 .
적용-우리의 회개가 공동체의 회개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나의 유다와 같은 문제는 무엇입니까?
가룟 유다는 목을 맺는데 그 줄이 끊어져 내장이 터져서 잔인하게 죽었습니다. 사도행전의 작은 밭은 유다의 핏 값인데 예수님의 피로 덮으면 되는데 유다는 그 기회를 모두 놓쳤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는데 넘겨줬기 때문에 그 돈이 너무 싫어졌습니다. 돈이 싫으니 자신도 싫고 그 책임을 자신한테 돌리니까 자살을 한 것입니다.
적용- 지금 은 30냥의 자살한 유다처럼 무슨 부당한 일을 저질러서 모든 것이 다 싫고 나 자신을 미워하고 계십니까? 유다와 같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죄 사함과 성령 받은 당당함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계속 성경으로 유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공동체에 떨어지고 직분도 뺐기고 욕심 때문에 성령을 거역했습니다.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는 건데 그 다음 회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책임을 예수 없이 지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그들 또한 성령을 거역한 죄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리 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유다에게 뿐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대적할 사람을 알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라고 파송한 제자였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죄를 택했습니다. 골로새서에서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유다도 제자였지만 탐심으로 예수님을 배반했고 사회를 개혁해서 명예까지 원했습니다. 유다의 자유 의지를 무시하고 몰아넣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선택은 자유 의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판 것은 자신의 선택 이였습니다. 유다를 같은 제자라고 동정하지 않고 사도의 직분을 버리고 객관적으로 단호하게 발표한 것입니다. 유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의 섭리로 베드로가 혼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다의 사건은 동정하면 안되고 철저히 끊어야 합니다.주님의 시각으로 보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유다를 불쌍하다고 하고 같이 가야한다고 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이것이 분별이 안되서 잘못 세워서 교회에 싸움이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적용-여러분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과 인간의 자유 의지가 합쳐져서 믿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습니까?
4.사도의 행전입니다.
21-22절: 사도의 자격에 대한 성경의 정의입니다. 예수님 승천하실 때까지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이여야 사도의 자격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이 강요한 것은 다른 사도들과 일을 할수 있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진정한 증인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헌신하면 사도가 될 수 있습니다.
23-24절: 사도를 뽑는 문제에 있어서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를 받고자 합니다. 성경을 멀리하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기 힘듭니다. 완벽하게 기도했다고 성령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기도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기 때문에 영적조건을 받지 않습니다.
믿음의 선배가 있는데 내 생각에 갇혀서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게 죄입니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하고는 대화가 잘 안됩니다. 죽을려고 다 내 길로 갑니다. 유다가 예수님께 3년을 양육 받았어도 무서운 곳으로 갔습니다.
26절: 제비뽑기라는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에는 여호와께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제비뽑기라는 말이 안나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를 아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성령의 권능이 임하면 육적으로 적용을 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람을 채우는 것에는 성령의 은혜받고 문제가 해결됐다면서 내 일도 하고 평생 묶여있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처음부터 성령을 그리도 부르짖는데 사도행전이라고 했겠습니까? 성령을 받으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생겨야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채워 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해서 베드로가 달라지듯이 사도들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에 대한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성령이 임해서 어떻게 변화 되었는지 각자의 행전을 써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요한건 우리각자 입니다. 사람이 안 보이는 것은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9명의 사도역시 13절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됩니다. 누구라도 사도적 신앙이 있으면 나도 사도의 자리에 갈수 있습니다. 바울과 같은 세워졌습니다.
적용-성령의 행전을 쓰고 있습니까? 사도행전의 주인공임을 믿습니까?
호영: 공부하는데 있어서 집중력과 지혜의 효율이 높아질 수 있도록
진희: 회사문제 잘 견뎌낼 수 있도록, 양육교사 10주동안 잘 할 수 있도록, 신교제
건희: 어머니 기운 차릴 수 있도록, 회사 결정 지혜롭게 잘 할 수 있도록, 신교제
현빈: 차근차근 적용하는 삶 살 수 있도록
기현: 힘들어하는거 숨기지 말고 하나하나씩 가족한테 이야기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