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주일예배 2016.9.25
사도행전 1:15~26
지난시간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전과 달리 이 약속을 붙들고 힘써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나의 육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나를 위해 해산을 고통으로 탄식하시는 성령님을 기다리는 기도였고 나의 고난과 남의 고난을 비교하지 않게 해달라는 사명의 기도였으며 그 사명을 나의 예루살렘에서 잘 감당하겠다는 기도였고 편견을 버리고 믿음의 형제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는 기도였습니다. 기도에 임하기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할일은 무엇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가르쳐 주십니다. 성령이 그냥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성령 얘기로 도배를 하고 있는데 왜 성령행전이라고 하지 않고 사도행전이라고 했을까요?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이 성령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을 사도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속 양육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120명으로 시작했습니다.
120명은 작으면 작고 크면 큰수 입니다. 주님이 승천을 하는 것을 보고도 기도하는 것은 120명 뿐입니다. 그런식으로 보면 적은 수인데 사도행전을 보면 120명이 다~ 모였다고 얘기합니다. 한명이라도 누가 오는 것이 중요하고 누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온전히 헌신하는 한사람, 한사람을 쓰십니다. 그 한사람 때문에 지금까지 전 세계를 변화시킨 구원의 역사가 시작된 것 처럼, 그 한 사람이 120명이나 모였으니 오늘 그 120명이 ‘나’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숫자에 연연해하지 마십시오. 그 모인120명 가운데 베드로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수제자였지만 동시에 주님을 3번을 배신한 실패 사례였습니다. 욕을 먹어도 시원치 않고 감히 얼굴을 내밀수조차 없는 그가 예수님이 안계신 상황에서 리더십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무엇때문에 가능했을까요? 배드로는 자신의 배신과 실패에 대해 처절하게 회개하고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찾아와 양육하실때 마음이 열리고 눈이 열려 그동안 말씀해주신 말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떠나지 말라는 예루살렘을 안 떠나는 순종을 했습니다. 우리도 순종한다면 베드로처럼 변할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약속한 것을 기다리며 간절히 기도할 때 성령이 일어납니다. 나의 죄성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건에서 무너지는지를 애통해하며 육이 무너지는 것이 영이 세워지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될때 사도행전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은 떠나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는 120명 가운데 한 사람입니까?
2. 성경이 응하는 행전입니다.
급하고 혈기 많았던 베드로는 이제 “형제들아~” 부르며 설교를 시작합니다. 근데 베드로가 다 지난 유다 얘기를 꺼냅니다. 성령을 받으리라와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는 오순절 사건 사이에 유다 얘기가 나오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성령님께서는 120명을 모여서 기도에 힘쓰는 동안 베드로에게 이 공동체에서 부족한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것은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위해 공동체가 가장 먼저 회개해야 할 것은 이 공동체의 회개입니다. 베드로의 회개는 자신을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하나님 나를 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회개로 끝날 수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같은 제자였던 유다의 문제를 집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유다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문제였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의 재정을 맡을 정도로 유능하고 실력 있는 제자였지만 그런 그가 예수님을 팔고 자살까지 했습니다. 그것이 동료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안겨준 일이였겠습니까. 시간이 지났어도 유다의 배반은 알고싶지도 않은 끔찍한 일이고 아픈인지라 모두가 알면서도 침묵하고 일관하며 덮고 있었을 뿐입니다.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뿐만 아니라 이 공동체가 유다 문제를 공론화 해서 치유해야만 사명이 시작될 수 있다고 하십니다. 공동체의 고백처럼 유다의 죄가 곧 나의. 죄라고 회개하고 죄를 밝혀야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실패한 사역처럼 보이는 이 일을 정면돌파해서 해결해야 진도가 나갈 수 있는 것 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 싶은 일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미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되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 당시에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제자들도 서로를 저주하고 도망가고 팔아머고 한 것이 얼마나 창피했겠습니까. 하지만 이런 가운데서 교회를 시작하게 하십니다. 나의 수치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데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를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을 드러냈을 때 성령이 임한 분들이 많습니다. 성령이 임하기 위해서 무조건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을 맞아들이기 위해서 공동체적으로 어두운 유다의 문제를 밝게 밝히기 위하여 드러내고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했습니다. 근데 말이죠. 왜 다른 사람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예수님 부인하고 배신한 베드로에게 이 유다 얘기를 하게 하시냐 이거예요. 사실 베드로가 인간적으로 보면 어떻게 유다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유다는 입맞추며 예수님께 지극정성으로 잘 했어요.근데 베드로는 고통 당하는 예수님 앞에서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을 팔아먹은 유다와 막상막하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더 심한 죄를 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회개한 베드로에게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후회해서 자살한 유다와는 완전히 다르게 변화되 있었어요. 그럼에도 베드로에게는 유다 얘기를 하는 것이 정말 힘들지 않았겠어요? 그래서 자기 힘으로는 할 수 없고, 성령이 베드로의 입을 통하여~ 가 나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유다에 대해 구속사 적으로 객관적으로 평가를 내리게 하신거예요.미얀해서 하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하기 싫은 얘기도 할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들교회와서도 이렇게 베드로가 하기 싫은 얘기를 한 것처럼 저도 여러분에게 정말 여러분들이 듣고 싶은 말보다는 듣기 싫은 말을 할때가 있죠. 무조건 잘 했다고 해야하는데, 그저 남편에게 순종해라. 자기 죄를 봐라. 살아온 날의 결론이다. 이러면 다들 듣기 싫어하잖아요. 그죠? 근데 제가 여러분보다 행위가 훌륭해서 그렇게 말씀을 전하겠습니까? 행위로 복음을 전한다면 누가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서 내가 감옥갔다 왔는데, 부도가 났는데, 바람을 폈는데, 살인을 했는데 등등의 죄목으로 내가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았는데, 그 다음엔 정죄함이 없어야되는데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어요? 못 합니다. 베드로와 유다가 다르다는 걸 성령받은 사람은 딱 압니다. 성령을 받고 안 받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입니다. 베드로에게 용기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공동체에 성령을 부어주시기 전에 유다 이야기를 하길 원하셨어요.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이미 구약에 이 이야기가 있어요. 성경이 내 이야기로 들리지 않으면 남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떠나지 않고 듣다보니까 사건이 왔을 때 내 사건이 성경에 있는 것이예요. 여러분이 사건이 있으면 어~이제 말씀이 들려요 하잖아요. 이게 그 얘기예요. 베드로가 예수님 부인하고 나서, 예수님 돌아가시고 나니까 아~ 그 말씀이 이 말씀이였구나. 그죠? 나를 팔리라. 유다한테 한 말이 이 말이였구나. 가장 가까운 자가 판다고 하니, 바로 이 말이였구나. 근데 왜 그 얘기가 잘 안 들릴까요? 그래서 성경적으로 유다 사건을 이야기하게 된거예요. 이렇게 성경이 나에게 응해야 은혜가 되는거예요. 말씀에 순종하려면 머리와 가슴이 일치해야 하기 때문에 그 감정적이었던 베드로가 감정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끌려가는 자가 아니고, 세상을 끌고 가는 자가 되어서 통찰력 있고 이렇게 말씀으로 하니까,한마디가 재미가 있습니다. 처음 가는 자리에도 어색할 것 없이 자신의 부족을 다 들어냅니다. 성경을 읽는 우리는 이 시대의 지성입니다.
1.성경이 응하는 인생은 개인의 회개가 공동체로 나타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회개가 공동체의 회개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2.베드로처럼 처리하고 가야 할 나의 유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함께 했어도 우리는 그가 배반할 자라는 걸 몰라요. 사단의 정체는 알아볼 수 있게 오는 게 아니 예요.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사랑하고 가야 되요. 너 배반할 거지?? 하면서 가면 안 되요. 우리는 끝까지 같이 가야 해요. 아무리 죄를 지어도 예수님의 핏값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데 유다는 그 기회를 모두 놓쳤다는 거예요. 끝까지 자기가 핏값을 아무리 찼어도 예수님의 핏값으로 다 덮을 수가 있는데 유다는 왜 자살했을까요? 죄를 짓기 전과 후과 얼마나 다른지 몰랐기 때문이예요. 죄의 결과는 참담해요. 죄를 짓기 전에는 은 삼십이 커보였는데 그 여자가 멋있어 보였는데, 돈을 취하고 여자를 취하고 보니까 도박을 취하고 보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시니까 죄의 결과로 정죄감이 들고 자기가 배신한 분이 일류의 구세주이기 때문에 그 죄책감이 더 커지는 거예요. 그건 성령이 그렇게 예수님을 죽이는데 넘겨줬기 때문에 갑자기 그 돈이 싫어졌어요. 그래서 그 돈을 성전에 내동댕이 쳤어요. 돈도 싫으니까 자신도 싫어져요. 그 모든 책임을 유다가 자기 자신한테 돌리는 거예요. 살아야할 이유가 없는거예요.그러니까 죽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배역한 사람이 정말 내가 최선을 다했어 하고, 자신이 책임 진다고 하면서 남을 죽이는 자예요.
1.지금 은 30에 예수님을 팔아먹고 자살한 유다처럼 우리는 무슨 부당한 일을 저질러서 무엇이 그렇게 다 싫고, 여러분 자신을 그렇게도 미워하고 있습니까?
2.유다와 같은 죄를 지었더라도, 어떤 기가막힌 죄를 지었더라도 죄 사함과 성령받은 당당함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3.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우리의 자유의지
베드로는 계속 시편110말씀과 시폄 109편 말씀으로 성경으로 이 얘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욕심때문에 그 몫으로 밭을 샀어요. 직분도 뺏겼어요.결국 자기 욕심 때문에 끝까지 성령을 거역한것이예요.죄책감은 뭐냐면 자꾸 자기 자신을 책임을 지겠데요.그런데 회개가 안되는 거예요.회개가 안되는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거예요. 책임을 예수없이 지면 자기를 죽이는거예요. 남을 죽이는 자는 살인자가 되는거고, 예수님을 모르는 자는 자기를 죽이는 거예요. 혹자는 이렇게 얘기해요. 하나님이 모든 일을 해 놓으셨고 왜 유다에게 책임을 따지시냐는 겁니다.유다만 불쌍하지 않냐고 유다가 없었으면 구원이 사건이 어떻게 있었겠냐고 그는 공로자 아니냐고 물론 하나님은 가롯유다가 팔것을 알고 계셨어요. 비단 유다에게 뿐 아니라 예수를 배신할 많은 사람들을 예언한 말씀이신거예요. 본래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의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라고 파송한 제자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제자를 기회를 주시고 사랑했지만 유다는 결국 죄를 범했습니다. 십계명 마지막 말은 탐심이라고 했고,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 부자청년도 예수님의 자리에 돈을 놓고 갔기에 근심하며 갔다고 했어요. 유다도 은30때문에 예수님을 버리고 사회를 개혁해서 세상을 바꿔놓을 탐심까지 계획했어요. 하나님이 가롯 유다를 알고 계셨지만 그 행동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획하고 실행한 것은 유다 자신입니다. 예수님을 팔아먹은 것은 자신의 소견대로 행한 자신의 선택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댜를 같은 제자라고 동정하지 않고 자기 길로 간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고 사도의 직분을 버렸기에 객관적으로 단호하게 발표를 한것입니다.유다 자신이 선택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로 절대로 베드로가 혼동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물론 이것은 성령받지 못 한 우리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사랑이란 언제나 끼고 도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 받지 못 하면 끝이기에 매몰찰 수 밖에 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사건은 동정해야하는 부분이 아닙니다. 유다를 철저하게 끊어야합니다. 이건 사랑이 없는것과 다릅니다. 주님의 시각으로 보는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그러나 구속의 시간을 못 보기에 인간적으로 유다를 불쌍히 봅니다. 분별이 없어서 안 세워야할 사람을 세우고 그래서 교회의 분쟁이 끊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상한 사람에게 직분을 주면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합쳐져서 믿음이라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믿습니까?
4. 사도의 행전입니다.
사도 첫번째는 예수의 부활은 증거하는 자이고 두번째는 요한이 예수께 세례를 배플때 부터 예수님 승천하실때까지 그것을 모두 목격한 사도여야 사도의 자격이 있다고 합니다. 언뜻 생각하면 율법적으로 예수님을 모두 목격한 사람이어야 할 것만 같지만 사도행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다른 사도들가 잘 어울려 행동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도가 하는 일에 목적은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성경을 멀리하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전적인 선물입니다.베드로는 말씀과 기도 속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무엇을 할지를 알았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기도를 했다고 했잖아요.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사람을 주님을 눈으로 보지 않아도 본것처럼 신뢰하기에 눈에 보이는 외적 조건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목자를 해도 성령의 인도함이 없고 아예 목자를 하지도 않은 분들이 거의 S대 출신이예요. 부인들이 얼마나 애통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정말 다 차별없이 성령받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믿음의 선배가 있는데 내 생각에 갇혀서 하고 싶은대로 하는게 죄인거예요. 자기 생각에 갇혀있지 않아야합니다. 간혹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 중에서 자기 생각에 갇혀있는 분들하고는 대화가 안되요. 내 길로가야 돈이 많이 벌리고,내 길로 가야 자식이 공부를 잘하고 오직 내 길로 승진이 되고 내 길로 가는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죽으러 갑니다. 우리들 교회 성도들의 이름을 걸고 자기 곳으로 가지 말고 하나님의 곳으로 가서 목장에서 잘 처방받고 잘 해결하셔서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들교회의 명성을 드높이시기를 축원합니다~! 제비뽑기 보다 중요한것은 하나님께 맡기는 마음입니다. 자신의 결론 보다는 하나님의 결론이 중요합니다. 제비뽑기는 구약시대의 방법이예요. 신약시대에는 제비뽑기라는 말이 없었어요.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자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어렵지 않겠느냐 것이예요. 그래서 오늘 제일 중요한 말은 11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이게 제일 큰 구절이예요. 예수강림 전에 가장 중요한 것이 숫자 채워넣는 일이라는 거죠. 사역전에 사람이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임하면 육이 편안해질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아니라 제일 중요한 것이 지금 사람을 채워 넣는 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처음부터 성령을 그렇게 부르짓는데 왜 성령행전라고 하지 않고 사도행전이라고 했겠습니까?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받기를 원하지만 성령을 받기 전에 사람에게 관심이 있어야된다는 거예요. 사람이 중요해요. 이 한사람이 없으면 일을 못하기 때문에 이 한사람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예요. 날마다 외칩니다. 그것도 일어날 힘조차 없는 그 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사도들이 어떻게 달라져 가는가가 사도행전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이 임해서 어떻게 변했는데 각자의 행전을 써가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거예요. 진짜 중요한건 우리 각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 믿으면서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일중심이 되서 사람이 안 보이는 사람 안된다는 거예요. 12사도도 중요하지만 누구든 성령이 임하면 그 반열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왜냐면 사도들이 사라진 자리에 금새 채워지고 있어요.
1.성령행전을 쓰고 있습니까? 사도행전을 쓰고 있습니까?
2.여러분은 사도행전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믿습니까?
-기도제목-
서재경
1. 매일 영적예배 드릴 수 있도록, 상황에 둔감해지고 감정에 요동치지 않도록, 옳고그름 판단 하지 않도록
2. 아빠구원, 가족건강, 동생영적회복
3. 직장내 순종, 감사하며 다니게, 내 포지션이 명확해지도록
4. 회사이전으로 인해 집 문제해결, (솔직히, 제 집과 차가 가지고 싶어요)
5. 신교제, 신결혼
이수민
1. 회사에서 나의 의를 자랑하지 않고, 주님의 종으로써 낮은 자세로 회사생활할 수 있기를
2. 이번주 로마서 말씀을 통해서,내가 아직까지도 성령입은 자가 아님을 봅니다..아직도 잘려나가지않은 나의 인정중독과 의를 회개케 하소서.
3. 청년부 목장 지체들의 기도제목 중보기도
4. 우리가족 일주일이 한번은 꼭 가정예배 할 수 있도록
5. 양육교사 과제 꼭 다 하기
윤혜정
1. 성경이 내 이야기로 들리도록
2. 베드로처럼 내가 처리해야 할 유다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도록
3. 공동체 위해 시간내서 기도 할 수 있도록
4. 신교제 신결혼
김윤경
1. 유다처럼 내 생각에 갇히지 않고 베드로처럼 내 죄를 회개하고 회복하도록
2.직장생활에 체력, 마음 지치지 않고 즐겁게 일하도록
3. 생활예배 드리도록
4. 신교제하도록
최지숙
1. 가족에게 복음전하게
2. 제게 맞는 목장 인도받게
3. 직장에서 성과에 연연하지않느 마음주세요
4. 탈모와 피부트러블때문에 곤고한 마음 만져주세요 (낫게 해주셔도 좋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