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령님을 기다리는 기도(9)사실 오늘 제일 중요한 것은 승천교리입니다. 승천교리는 참 교회에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실제 어떻게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삶에 동참하는가를 이해하는 관문입니다. 삼위하나님 중에 감춰진 성부하나님의 경륜이 성자하나님이 여인의 태속으로 말구유 속에 낮아 지심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곤고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소망을 주시고 불쌍히 여겨 주시고 억눌린자 갇힌자를 풀어 주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어 주시고 부활하셨습니다.부활하신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 가르치셔야 할 것이 성령이기에 40일 동안 여기저기 나타나시고 마지막으로 가르치신 말씀이
8절입니다.그렇다면 왜 성령이 임하셔야 하나요?구원받기 위해서도 성령님이 역사하셔야 하지만 죄에 대해 죽은 성도라고 해도 계속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죄와 싸워야 합니다.시체 위에 1000kg 물건이 올라가면 그 무게를 느끼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중생하지 못한 심령은 절대로 죄를 모릅니다.'희생하고 최선을 다하면 돼.'이런게 죄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불신자도 있고 이단도 있고 만남이 중요한데 결혼은 그렇게 아무나 하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그런데 죄를 모르니까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거듭나고 나서 예수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고 나면 그때부터 죄의 무게를 느낍니다.전에는 영으로 죽어서 문둥병처럼 무감각하더니 성령이 임하면 아픔을 느끼게 됩니다.그래서 죄때문에 애통하게 됩니다. 이것이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고 입니다.거듭나기 전에 죽었다는 말은 영이 죽은 것이고 거듭난 후에 죽었다는 말은 육이 죽었기에 육을 내려 놓을 수 있는 것입니다.영과 육의 아픔은 종류가 다른 아픔입니다.
그러나 길을 가다가 폭풍을 만나도 원치 않는 죄를 짓고 있다고 할지라도 택자는 목적지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그런데 내 힘으로는 못 갑니다. 다시 원래로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
애굽에서 출발해서 가나안 땅으로 가는데 바로가 강팍하게 굴고 지진이 있고 홍수가 있어서 다시 돌아 간다면
그것은 택자가 아닙니다.불평하고 욕하고 질투해도 택한 사람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이때 성령이 우리를 효과적으로 도우십니다. 단번에 성화된 인격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역사는 지금 26절에 ‘우리’가 세번 나올 만큼 공동체 가운데서 역사하십니다.(로마서8:26)성령이라고 하는 프뉴마는 로마서에 34번이 나오는데 8장에 21번이 나올만큼 로마서 8장은 성령장이라고 합니다.피조물이 탄식하고 사람이 탄식하는데 그것을 보고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육신에 있지 않도록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신다는 것입니다.왜입니까?
성령의 권능으로 증인되라고 탄식하십니다.
탄식은 해산의 고통이라는 뜻이고 결국 희망의 고통이라는 뜻입니다.우리가 죄에 대해 탄식을 하면 희망의 고통이고 또 우리를 위하여 해산의 고통을 해 주시는 성령님이 계셔서
우리가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그렇게 성령님이 임하시면 성령의 역사는 어디에서 부터 시작하고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요?성령의 역사는 오늘 오순절 다락방에서 시작이 되고 주님이 오실때 까지 계속될 것입니다.개인적으로는 내가 성령을 체험하는 그 시간부터 내 생명을 마치는 날까지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시대와 역사와
나라와 민족을 뛰어 넘어서 효과적으로 도우실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의 역사는 계속 진행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몇 날이 못 되어 우리들교회에 임하신 것처럼 성령 세례를 받으리라 성령을 기다리라 하시고 이 말씀을 마치신 후에
이 세상에서 떠나셨습니다.그들이 보는 데서 올려져 가셨습니다. 성경에서 구름은 하늘의 권세를 나타내는데 자주 사용됩니다.예수님의 변화, 승천, 재림이라는 중요한 시간마다 구름과 함께 등장하시면서 그 영광으로 임재하셨던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승천은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부활의 부속물 정도가 아닙니다.게리스카토스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승천은 탄생으로 믿음이 확신된다면 부활로 확신을 가지게 되지만 그것을 넘어서 희망을 얻고 변화로 나가게한다는 것입니다. 승천하시는 하나님, 통치하시는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승천의 모든 의미중 가장 으뜸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기에 예수님이 모든 이름과 권세 위에 높아 지셨다는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예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에서 ‘예수님은 현재 어떻게 하고 계신가?’ 로 나가게 하는 것이
승천이 갖는 의미라고 합니다.그러니까 승천은 최악의 실패와 고생 가운데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입니다.내가 믿는 부활하신 주님이 직접 하늘로 올라가심으로 내가 누릴 영광을 더 확고하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예수님은 그냥 나를 지켜보시면서 나를 닮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처럼 보고 말할 수 있도록 나를 도우시고자
성령을 보내셨고 지금도 보내고 계시며 앞으로도 보내실 것입니다.그 분이 나를 통해 사신다는 것이 성령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줄리의 몸 한조각이 카슨의 몸에 살듯이 하나님의 한 조각이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파머처럼 우리의 목표도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분을 대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리스도께서 여전히 나를 통해 다스리고 계시기에 그 분이 현재도 통치하고 계심을 선포하는 것이 나의 목표여야 함을
예수님의 승천이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은 그리스도께서 현재 이 땅에서 하고 계신 일에 대한 메신저일 뿐입니다. 표지판일 뿐입니다.육신은 구름이 가리워 보이지 않을 때가 옵니다.
그런데 가리워 보이지 않게 했을 뿐이지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실존의 세계로 옮겨 가신 것입니다.지점에서 살다가 본점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간에서 하나님의 시간으로 바뀐 것입니다.죽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으나 거듭난 믿음의 눈으로는 얼마든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적용) 여러분들은 증인이 되기 위해서 승천의 영광을 보여주신 주님이 가신 그대로 재림하실 것을 믿습니까?지금은 안 믿어도 식구들에게 성령님을 기다리면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고 이 땅을 떠날 수 있습니까?2 사명을 위한 기도(10-11)이 본문에 ‘자세히 보다’는 정신없이 열중하여 몰입한 상태로 계속 보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제자들은 주님께서 자기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보고 한 편으로는 신기하고 놀랍지만 한 편으로 자신들만 남은 것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 보았을 것입니다.그래서 모두가 주님 가신 하늘을 자세히 쳐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여전히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예배하고 경배하지만 다들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우리는 예수님의 존재를 경험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니까 일상에서 활력을 상실해 버리는
무기력감, 영적인 외로움과 상실감 속에서 너무나 슬퍼합니다.
제자들은 계속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기에 천사들을 통한 주님의 책망을 듣게 됩니다.주님이 명하신 대로 성령의 권능을 받기 위한 준비는 하지 않고 또 주님의 증인으로써 사역할 생각은 하지 않고
지금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기에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7절에서 이스라엘의 회복만 바라보고 정치적 권력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그런 그들이 예수님께서 양육해 주셨는데도 이제는 하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땅의 부흥만 꿈꾸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만 오직 하늘만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안하는 것도 경건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세속적인 것 경건적인 것 다 똑같이 잘못된 것입니다.우리는 이 땅의 회복을 위해 경건을 사용하고 싶습니다.심지어 큐티도 그럴 수 있습니다.
아무리 기도부탁을 하고 다녀도 기도받기에 합당한 삶을 살지 않으면 기도 부탁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자세히하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지 않아서 앉으나 서나 땅의 소원이 많기 때문에 기도부탁을 하는 것입니다.자유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제자하고 똑같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말씀을 자세히 봐야지 사건에만 메달려서 날마다 놀라고 분석하고 그래서 쳐다 보는게 많고 메달리는 게 많습니다.승천은 열한명의 제자만 보았지만 재림 때는 허다한 증인들의 찬양을 받게 되기 때문에
승천의 영광과 나중에 오실 재림의 영광과는 비교가 안됩니다.로마서 8장 18절에 ‘생각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생각건데는 신중히 생각하다 논리적인 결정을 내리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러분들 고난은 현재의 것이라는 것입니다.주님도 극심한 십자가의 고통은 6시간만 당하셨습니다.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었지만 2000년 동안 영광을 보이시고 앞으로도 영광 가운데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고난을 당해도 현재의 고난입니다. 그렇게 현재의 고난을 생각하고 장차의 영광과 비교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과 비교를 거꾸로 하기에 지옥을 사는 것입니다.적용) 사명감당의 기도를 위해 현재 나의 고난에서 남의 성공과 비교합니까? 장차의 영광과 비교합니까?아직도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며 자세히 쳐다보고 있는 하늘은 무엇입니까?다행인 것은 이 제자들 옆에 천사가 있었습니다. 이 두 천사는 주님이 부활하신 무덤에 있었던 천사들이었을 것입니다.이 천사들은 막달라마리아 등 주님의 무덤을 찾아 갔을 때 나타나서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고 책망했던 천사들이었습니다.이제 하늘로 떠나신 주님을 대신해서 주님의 뜻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택한 자의 곁에는 동역자가 있어서 때마다 책망해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녀, 식구들에게 내가 책망을 해줄 수 있는 천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고
나에게 책망해 줄 천사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천사들은 제자들을 ‘갈릴리 사람들아’ 하고 불렀습니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제자들의 지역적 기반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는 곳은 없습니다.여기서 우리는 천사들이 ‘사도들아' 부르지 않고 '갈릴리 사람들아' 라고 부른 것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이 말은 너희는 아직 사도의 자격이 없다. 어부와 세리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갈릴리 출신 제자들은 내 자신에 얽매여 있지 말고 성령이 임하시면 하늘 보좌에서 온 세계를 다스리실
예수그리스도를 바라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갈릴리 사람들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갈릴리는 1500년 구약 역사에서 예언자는 커녕 한 사람의 인재도 배출하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계를 구원할 사명자가 나오겠습니까?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있습니다.
유대는 영적교만으로 넘을 수 없고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과 앗수르와의 혼혈족으로유대인들이 대표적으로 무시하는 족속이 되었기에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갈릴리 출신 너희 제자들에게 교만한 곳과 열등감있는 곳 모두 성령의 권능으로 모든 난관을 넘으라고 분부하신 것입니다.
이런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하나님나라는 시공을 초월하여 특정한 감정, 사람, 지역, 민족, 국가를 넘어서 나가야 하는 것이
사명받기 위한 기도라는 것입니다.적용) 여러분은 어떤 갈릴리의 열등감 때문에 아직도 사명의 기도를 못하고 있습니까? 천한 갈릴리 제자들이 증인이 되어서 열심히 전도를 한 결과 주166년에 로마제국 내에 있는
기독교인의 숫자가 너무 빨리 성장해서 당시에 유대교의수를 넘어 섰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퍼져가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교리서도 없고 예배당도 없고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 가장 위대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3 현실을 인식하는 기도(12)감람산은 벳바게와 가까운 곳이었고 벳바게는 베다니로 가는 길이 갈라진 곳이었습니다.감람산과 예루살렘과의 거리는 안식일에 가기에 알맞은 거리인데 그 거리가 한 이천규빗정도 됩니다.유대인들이 출애굽한 후에 광야를 여행할 때 안식이 시작되는 금요일 해질녘이 되면 언약궤가 딱 멈춰 섰습니다.그래서 그곳에서 궤로부터 이천규빗 정도 떨어진 곳에서 자신들이 거할 장막을 세우는 것입니다.왜냐하면 이 거리가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기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아무리 여행을 가도 반드시 안식일을 지키라 이 얘기를하는 것입니다.
승천의 장소는 그래서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감란산이었습니다.이 곳은 바로 정확하게 예수님이 겸손한 왕으로써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서 승리의 입성을 시작했던 곳이었습니다.고난과 죽음후에 그곳은 또한 왕이신 예수가 천상의 예루살렘을 향한 입성을 시작하는 곳이 되었습니다.이제 주님의 놀라운 승천을 체험을 하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제자들은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모두 예루살렘으로 돌아 왔습니다.
우리의 모든 체험과 기쁨의 말씀은 성령받기 전에는 내 예루살렘에서 떠나서는 안 됩니다.고난도 영광도 다 내 환경에서 이루어집니다.
지체의 교제와 간증을 통해 양육받으면서 내 사건에서 성령받기를 기다려야 합니다.안식일을 지키며 거룩하게 살기위해 내 모든 감람산의 승천의 체험을 나의 즐거움과 쾌락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위한 것이 되야 합니다. 적용) 승천의 체험을 했다면 기도는 나의 힘든 현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는 예루살렘을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까 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까? 그래서 갈릴리사람들인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은 성령이 오기를 기도하는 일입니다.두려워 하던 제자들은 드디어 구체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 체포되실 때 우왕좌왕하던 제자들의 모습과 비교했을때 너무나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4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는 기도(13-15)주님은 원래 열두명의 제자들을 다 사도들로 택하셨습니다.그런데 사도 중에는 유다라는 이름이 두개가 있습니다.
한 유다는 완전히 예수님을 배반해서 저주받았고 한 유다는 제자로 남았습니다.이렇게 제자훈련을 받은 제자들에게도 마음을 같이하지 못하는 비극이 있었습니다.우리는 마지막까지 꼭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생명책에 우리 식구들의 이름이 다 올라가야 됩니다.그러나 유다 외에 나머지 제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예수의 아우들은 더불어 마음을 같이 했습니다.기도는 서로 아픔을 나눠야 하는데 이것이 삶을 나누는 비결이고 짝에도 마음을 같이 하는 이런 공감의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관심사가 같을 수 있죠.
변화산, 겟세마네 야이로딸등의 사건을 같이 겪었기 때문입니다.이러면서도 이 사람들은 다 수제자들입니다. 같이 따로 할 수있는 사람들입니다.사도끼리 평신도끼리 또 육적인 지방세 학벌, 이렇게 끼리끼리 모일 수 있지만 다 떠나서
영적인 파워풀한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끼리끼리는 안되지만 영적인 짝꿍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홀로 골방기도도 해야되지만 짝꿍기도, 또 15절에 150명의 합심기도로 각자 증인의 길에 갈 수 있도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본문에서 마음을 같이 한다는 것은 쉬운 얘기가 아닙니다.
당시 상황에서 남녀가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그런데 동등한 위치에서 남성들과 함께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도에 힘썼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이 여인들은 남자들 못지 않게 초대교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했고 어떤 모임에도 빠지지 않았습니다.지금 시대를 생각해 봐도 2000년 전에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락방에서 같이 먹고 교제하고 같이 기도하고
같은 마음을 나누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남성 위주의 사회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여인들을 가르치고 고치시면서 제자들을 삼으신 정신을
초대교회가 이어 받았기 때문입니다. 또 누가는 예수님의 모친인 마리아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나타냅니다.그렇지만 그녀는 예배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냥 구원이 필요한 한 여인이었습니다.그래서 동일한 위치에서 기도하는 자로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아우들도 직역하면 형제들입니다.과거 예수님의 형제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지 않고 다 미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족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누구보다 비참했을 것이고 또 예수님의 부활은
누구 보다도 자랑스러운 이 양 극단의 감정을 겪으면서 큰 형인 야고보에게 나타나 주신 것은
가족 전체의 회심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육신적으로 주님의 가족이다가 영적으로 영원한 주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성경에는 주님이 가족을 전도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님이 남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기 전에 가족들에게 늘상 가르치고 전도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주님의 양육대로 맏형인 야고보가 야고보서를 썼는데 완전히 팔복의 산상수훈을 썼습니다.그래서 가장 가까운 가족들 부터 변화시켰습니다.성경의 인물들 중에 자녀가 속을 썩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예수님의 가족들은
사도들과 나란히 견줄수 있는 교회사에서 위대한 신앙의 위인들이 되었습니다.
야고보는 기둥같은 초대교회의 존재가 됐고 유다는 신약성경의 유다서를 기록했습니다.다른 형제들도 귀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와같이 기도는 여자들, 제자들, 예수님의 형제, 모친 다 한마음으로 차별없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더불어 사는 공동체에서 하나의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공동체 의미와 방향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그러면 어떻게 오로지 기도에 힘쓸 수 있을까요?앞 절에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그러니까 제자들은 이 약속을 붙들었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약속을 모르면 개인의 육적인 필요만 생각하며 기도하게 됩니다.기도하기 위해서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말씀없이 기도하면 자꾸 육적인 기도로 빠지게 됩니다. 응답받는 기도는 절대적으로 약속의 말씀을 자기 소원과 일치시켜야 합니다.그래야 오로지 기도에 힘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어떻게 약속하셨는지 분명히 찾아야 합니다.그래서 구체적인 약속을 붙들기 위해 열심히 큐티를 해야 합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쓰기 위해서는 큐티로 또 결론이 납니다. 적용)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는 형제, 친척, 지체들이 있습니까? 기도하기 위해 편견으로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오로지 기도하기 위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최윤혜
김화용
1. 말씀(QT)보고 내 죄보는 일주일 될 수 있도록2. 10월달에 집문제, 재정문제 3. 몸 건강할 수 있도록4. 신교재, 신결혼
박지선
1. 당장 내일 면접보는곳 좋은 결과를 얻을수 있도록!2. 컨디션 업3. 재정문제 해결4. 말씀 듣기 매일매일 습관화하기5. 두려움 떨칠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