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약
기도에 힘쓰더라
교회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증인이 되는것이 하나님나라의 사명입니다. 여러분 보는데서 저 목사는 천국 갔어 확신이 되어져야 여러분이 십자가를 잘 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육신은 한계가 있어 남은 사람들이 증인이 잘 될 수 있도록 기도를 해야합니다. 어떤 기도여야 할까요.
1. 성령님을 기다리는 기도를 해야합니다.
오늘은 승천교리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곤고하고 가난한 이를 위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 후에 가르치셔야 할 것이 성령이기에 가르치셨습니다. 성령을 왜 가르쳐야 하나요. 죄에 대에 죽은 성도라도 하나님께 의지하며 죄와 싸워야 합니다. 시체 위에 천킬로가 위에 있어도 그 무게를 느끼겠습니까? 희생하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만남이 중요한데 결혼은 아무나하고 하는게 아닙니다. 거듭나고 세례를 받고나면 죄의 무게를 느낍니다. 성령이 임하면 아픔을 느낍니다. 그래서 죄 때문에 애통함을 느끼게 됩니다. 거듭난 후에 죽었다는건 육이 죽었기에 육을 내려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길을 가다 원치 않는 죄를 짓는다 해도 택자는 목적지로 가게 되어있습니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는 길은 없습니다. 지진이 있고 홍수가 있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간다면 택자가 아닙니다. 이때 성령이 효과적으로 도와줍니다.
로마서 8장은 성령장이라고 합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탄식하는데, 성령이 육신에 있지 않도록 우리에게 탄식합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증인되라고 탄식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의 역사는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까지 가게 되는 것일까요. 오순절 다락방에서 부터 주님이 오실 때 까지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효과적으로 우리를 도우실 것 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여러분이 저를 만나게 될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몇년 뒤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세례를 받으리라고 하고 이세상에서 승천하셨습니다. 성경에서 구름은 하늘의 권세를 나타내는데 자주 사용됩니다.
승천은 믿음과 확신을 넘어 희망을 얻고 변화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은 믿음에 대한 확신을 주고 승천은 희망을 얻고 변화로 나아가게 합니다. 승천하신 하나님은 통치하시는 하나님.
게리스갓입니다. 승천의 의미 중 가장 으뜸은 모든 보좌위에 높이 오르셨다는 것. 모든 이름과 권세 위에 높아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현재 어떻게 하고 계시는가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승천입니다. 최악의 실패, 고생 가운데에서도 평안을 누릴수 있게 하는 근거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지켜보시며 그를 닮으라고 하시는게 아니라 그를 보고 말할 수 있도록 나를 도우시고자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가 나를 통해 사시고, 성령이 나에게 오는 것입니다.
적용 : 승천하신 주님이 재림하실 것을 믿습니까?
2. 사명을 위한 기도
제자들은 주님이 자기를 떠나 하늘에 올라가심이 한편으로 놀랍지만 한편으로 남겨진 우리가 두려웠을 것 입니다. 예수님의 존재를 경험하지만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니까 일상에서 사라지는 무력감, 상실감 속에서 너무나 슬퍼 하는 겁니다. 제자들은 하늘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기에 천사를 통한 책망을 받은 것 입니다. 증인으로 사역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하늘만 보고 있기에 책망을 받은 것 입니다.
세속적이거나 경건주의도 다 잘못된 것 입니다. 이 땅에 회복을 위해서 경건을 사용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기도부탁으로 합당한 삶을 살지 않는다면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자유함이 없습니다. 하늘만 자세히 쳐다보는 사람입니다. 기도제목도 좀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도 극심한 십자가의 고통은 6시간만 당하셨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영원한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적용 : 사명 감당을 위해 사람들과 비교합니까? 장차의 영광과 비교합니까? 일이 잘되기를 바라며 자세히 바라보는 하늘은 무엇입니까?
택한자의 곁에는 동역자가 있어서 때마다 책망해줄 사람이 있습니다. 책망해 줄 수 있는 악마가 아닌 천사가 있기를.. 책망해줄 천사가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천사들이 사도들아 부르지 않고 갈릴리 사람들아라고 부르는 것은 너희들은 아직 사도의 자격이 없다. 갈릴리 사람들은 내 자신에 얽매여 있지 말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46776;어넘는 것은 힘듭니다. 갈릴리에서는 예언자 한명도 나온적이 없었어요. 이런 갈릴리와 예루살렘과 온 유대엔를 넘어 교만하고 열등감 있는 곳 모든 곳에서 그 난관을 넘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아무리 그 지역을 섬긴다고 해도 지역감정이 있습니다. 지역감정이 있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시공을 초월하여 지역 국가를 넘어서 나아가는 것이 사명받기 위한 기도입니다.
적용 : 어떤 갈릴리의 열등감 때문에 사명의 시도를 못하고 있습니까?
3. 현실을 인식하는 기도입니다.
승천의 장소는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감람선이었습니다. 고난과 죽음 후에 또한 왕이신 예수님이 천상을 향해 시작한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 받기 전에 내 예루살렘을 떠나면 안됩니다. 즐거움과 쾌락보다는 힘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은 악한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한 것입니다.
적용 :승천의 체험을 했다면 기도는 나의 힘든 현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 나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4.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는 기도
주님은 열두명의 제자를 두셨는데 유다가 두명인데, 한 유다는 배신하고 저주 받았습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자리를 꼭 지켜야합니다. 기도는 서로 아픔을 나눠야 하는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관심사가 같을 수 있습니다. 수제자입니다. 우리는 끼리끼리 모일 수 있지만 그것을 떠나서 영적인 짝궁기도은 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마음을 같이한다는 것은 참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천년 전에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락방에서 같이 기도하고 나누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와 같이 기도는 제자, 형제, 모친이 한마음으로 차별 없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오로지 기도에 힘쓸 수 있을까요. 기도하기 위해서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말씀이 없이 기도라면 육적인 기도가 됩니다. 응답받는 기도는 약속의 말씀을 나의 소원과 일치시켜야 합니다. 약속의 말씀대로 기도했기에 오늘 우리들교회에 부흥이 이루어졌습니다.
적용 : 기오로지 기도하기 위해 믿음이 있는데도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기도제목은 댓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