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말씀
“교회의 사명” (행1:1~2)
1. 전도하고 양육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명을 따라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보여주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그 사역을 계속해 나가고 있으며 우리가 어떤 사명을 갖고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명령을 위해 역사하시고 함께하시는 주님이시기에 오늘도 그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누가가 데오빌로를 양육하기 위해 기록했듯이 우리도 내 옆의 데오빌로를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전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2.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내가 양육을 받고 양육을 하면서 재생산이 됩니다. 항상 한 사람에게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설교는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라 삶의 적용을 하게 하는 것으로 한 영혼을 귀하여 여겨 큐티 간증을 일대일로 잘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3. 택하신 사도들의 명령을 듣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 자신에 의해서 직접 개인적으로 택함받고 임명받은 일꾼이기에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주님의 명령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는 이 세상에 주님의 보냄을 받은 일꾼이며 사도입니다. 각각 역할은 다르나 직분으로, 택하신 사도로 세우셨기에 각자 자리에서 보내신 분의 명령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내가 섬기는 것이 봉사인지 사명을 감당하는 건지 제대로 알아야 하고 아파도 기분 나빠도 반드시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며 날마다 말씀으로 삶을 나누며 갈 때 교회 사명을 이루게 됩니다.
4. 성경을 차례대로 구속사적으로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차례대로 읽는 것 자체가 큰 능력입니다. 성경 한 권을 제대로 읽으면 성경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 큐티는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차례대로 읽는 것입니다.
5. 행하며 가르치게 해야 합니다.
행한다는 것은 세상보다 주님이 좋은 것을 온 몸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좁은 길을 가는 것이며 그 길을 기다리며 인내하며 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프니깐 사명인 것입니다. 아프지 않으면 사명을 알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 목장나눔
이번 주 목장은 희정 목자언니와 윤정이, 은실이, 미정이, 저 이렇게 함께 했습니다.
Q. 예수님을 직접 보지 않아도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있는가?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믿는가? 공동체에서 내 역할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색내고 있지는 않나?
A: 감사하게도 목사님의 말씀을 통해 그대로 믿어지는 은혜가 있다. 교회 공동체에서는 안그런 것 같은데 집에서는 생색이 난다.
B: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믿어져서 특별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봉사도 안하고 있으니 사명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C: 믿어진다. 나도 봉사를 안하니 생색 날 건 없다.
D: 믿어진다. 의심해 본 적 없다. 그동안 공동체에 헌신 한 적은 있었는데, 우리들교회에서는 생색이 날까봐 안하는 부분도 있다.
E: 믿어진다. 나도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서 계속 교회 안에 있었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이전과 이후에 있어 믿어지는 게 다르다. 섬기는 것에 대해선 그냥 붙어만 있어서 특별히 생색은 안나는데, 간혹 누가 시키면 생색이 올라온다.
Q. 내 옆의 데오빌로는 누구이고 어떻게 대하고 있나?
A: 나에겐 손님이다. 최근에 건강상 어려움을 겪으신 손님이 오셔서 말로 복음제시를 한 적이 있었다.
B: 가족들, 직장동료들, 친구들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큐티책도 주고 그랬는데, 요즘은 상대방들이 싫어해서 그렇게 하고 있진 못하다.
C: 친구들, 특히 예전에 함께 교회 다녔던 친구들이고, 직장동료들이 나의 데오빌로이다.
D: 같은 일을 하는 동생이 생각났다. 하나님을 만났었는데 이젠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은 동생이다.
E: 친척동생. 전에는 목사님 책도 선물하고, 교회에 나오자고 했는데 이젠 말을 잘 하지도 않고 사는 환경이 너무 다르다. 그런데 최근 그 동생이 불신교제를 했다고 하니 한번 더 다시 말해야 할 것 같다.
Q. 섬기는 것이 봉사입니까, 사명입니까? 받은 명령을 위해 어떻게 충성하고 있습니까?
A: 정말 특별히 하는 것도 없고 그냥 그 자리에 항상 있는 것 밖에 없어서 봉사를 한다고도 사명대로 산다고도 말할 수가 없는 것 같다.
B: 나도 가만히 있고 자리 지키고 가는 것 밖에 없어서 딱히 할 말이 없다.
C: 봉사를 안하고 있어서 할 말이 없다.
D: 봉사는 안하고 있지만,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그냥 내 자리 지키는 것은 잘 하는 것 같다.
E: 예전에는 교회에서 주어진 일은 열심으로 다했었는데, 그 땐 봉사라고 생각이 든다. 사람 상대하는 업무를 하다 보니, 때마다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일이 되길, 사람이 섬기는 일이 되길 기도하게 되는데 그런 기도 자체가 사명이라고 생각이 든다.
Q. 큐티를 열심히 하고 있나?
모두, 하고 있으나 열심히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Q. 이 사명에 어떻게 행하나? 아픈 것에서 무슨 사명을 깨닫고 무엇을 가르치는가?
A: 내 아픈 부분으로 다른 사람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러다보니 판단 대신 이해하게 되고 한 사람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 진심으로 대하는 마음이 보여지는 것 같다. 배우자에 관해서도 이제는 같은 사명을 가진 사람이길 기도한다. 그리고 학창시절 생각해보면 나에겐 사명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이 많았고 사랑도 많이 받았었다. 그렇게 내가 양육되어지고, 이제 현실에서 열심히 사명을 찾고 가야 하는 것 같다.
B: 확실히 내가 아픈 부분에 대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 그렇다. 지금 섬기는 부서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쓰일 때가 있는 것 같다.
C: 아프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여전히 내 문제가 아니니 이해 못하는 부분도 많다.
D: 일하면서 나를 좋아하던 학생을 한편으로 귀찮아 한 마음도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만두자, 상황적으로 그만두었던 것인데도, 나한테 사랑이 없어 아이가 그만 둔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E: 일을 하면서 가르치는 학생들을 대할 때 그런 부분들이 쓰이는 것 같다.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부분에 있어 그 시절 나의 경험적인 이야기들을 해주면 나에대한 아이들의 신뢰가 쌓이는 것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