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모임: 커피빈참석: 윤혜정 목자, 김윤경 부목자, 이수민 부목자, 최지숙, 서재경, 최승희오랫만에 전원 출석 짝짝짝!!!^^
하나님의 웃음
시편2:1-12
웃지못한다는 것처럼 끔직한 일이 어디있겠나. 그런데 예수님이 우셨다는 표현은 성경에 있지만 소리내어 웃었다는 표현은 없다. 그런데 유일하게 시편 2:4에 웃었다고 하는 표현이 나온다. 그래서 하나님은 왜 웃으시는가? 시편 1,2편은 시편 전체의 서론에 해당한다. 이 중 시편의 핵심은 2편이라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악인들의 길을 막으시는 여호와께서 새로운 의로운 왕에 대한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왕이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내용의 핵심이라고 본다. 시편 2편은 사무엘하 7:8-16을 배경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즉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결단한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가 전한 말씀인데 몇 가지로 축복을 했다. 다윗은 큰 왕이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다윗은 영원히 쇠잔하지 않을 왕조의 수립자가 될 것이다. 하나님과 다윗의 왕위를 계승할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처럼 친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서 당신의 은총을 거두워 가셨지만 다윗에게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내용이다. 그래서 시편 2편은 제2왕의 시다라고 불린다. 왕의 참가로 이스라엘의 왕의 대관식 때 낭송이 되었다. 그러나 영원히 쇠잔하지 않을 왕조의 열망은 이스라엘 전 역사를 통해 단 한번도 물리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실현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신약 시대 와서는 시편 2편의 이야기는 다윗의 시 곧 예수 그리스도 메시아의 도래를 드러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시편 2편이 나의 아들로 인용이 되었고 히브리서 7:28을 제외하고도 12번이나 신약에서 인용이 되었는데 계시록에서 8번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 이런 점에서 시편 2편에 나온 왕이자 기름 부은 자 메시야는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메시야 시가 7편인데 첫번째 시다. 이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악인의 길을 어떻게 막으시기에 웃으시는지 하나님의 웃음에 대해 생각해 보겠다.
1. 세상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기 때문에 웃으신다.
1절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2절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절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우리가 시편 1편에서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했다. 반면 시편 2편에 이방 나라들 민족들 세상의 군왕, 관원들은 대조적으로 헛된 일을 꾸민다. 1편에서 악인과 죄인과 오만한 자가 복 있는 사람과 대조되었듯이 2편에서도 이방 나라와 민족 세상의 군왕과 관원들이 복 있는 사람과 대조가 된다. 세상의 군왕들은 무슨 헛된 일을 꾸미고 꾀하고 무엇을 대적하는 것일까? 여기서 분노하다에 해당하는 원어는 라게슈로서 소란하다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다. 이 단어는 본래 파도나 불길이 막 들끓는 모습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조용하지 않는 세상, 소란하기 그지 없는 세상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모습이다. 왜 이렇게 소란한가?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꾸민다고 경영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소란하게 꾸미는 것이 헛된 일 이라고 한다. 하나님 없이 충만하게 경영하는 것이 허무한 것 이다. 왜 그런가? 이 세상은 썩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육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세상의 경영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에 맞춰져 있다. 왜 이렇게 대적하나? 죄인의 본성은 하나님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죄인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죄인들이 모이면 더더욱 하나님께 덤비고 대적할 일 밖에 없다. 어제의 적들도 하나님의 그 기름부은 자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동지가 되는 세상에서 성도들의 고난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눈만 뜨면 헛된 일을 꾀할 수 밖에 없는 현실들이 기다리고 있다. 목장에서 목자님이 집 문제에 대해서 나는 인본적인 나의 기준에서는 처방이 쉽지가 않다. 기도해보자고 한다. 어떻게 처방해야 하는지 쉽지가 않다. 세상적인 나눔에 세상적인 기준을 어떻게 제시해야 하는지 힘이 든다. 그랬더니 초원님이 처방은 지혜롭게 해야 한다. 돈의 훈련을 피하면 안된다. 내 삶의 가치관이 바뀌지 않으면 처방이 약해진다. 구원의 가치관에서 잔가지가 군번을 흔들게 한다. 낮은 수준에서 사는 것에 대한 적용이 필요하다. 제일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빚을 청산하는 것이다. 빚을 흘리면서 살면 안되니 빚을 줄여 자기 집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했더니 목자님이 권면을 했다. 그런데 권면 이상은 없는 거 같다. 어느 정도 삶의 기준이 있기에 상황에 적용이 안 된다. 세상적인 사람도 불의한 돈으로 미래를 준비하는데 하물며 믿음의 가정이 적용을 해야 한다. 어떤 분은 집을 찾다가 기준을 낮추니 맞는 집이 있어서 이사를 갔다는 것이 적용이다. 이 분은 말씀적용의 맛을 느낀 케이스다. 저도 12평 연립주택에서부터 시작됐다. 목자님이 낮추는 것이 참 쉽지 않는 거 같다. 초원님이 욕심은 50을 걸면서 100처럼 살고 싶은 것이다. 목자님이 비상금이 500만원 있었고 빚을 줄이고 500만원이라도 상환하라 했다. 근데 융자끼고 집을 구하는 적용을 하는 목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초원님이 나도 판자촌에 산 시절이 있었다. 근데 못 산다는 생각을 못했다. 우리동네가 빈민촌이라는 사진이 보여지고 그 때부터 사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드니까 사는 것이 창피해서 어디 사는 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닌 거 같지만 과거에 가난하게 산 것이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은 감사하다. 목자님이 한 번 적용 할려면 이렇게 많은 얘기가 필요하다. 시편 저자는 어찌하여 세상의 군왕들과 이방 나라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할 수 있는가 부르짖지만 누구도 예외없이 이기적인 인간이 이타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은 어렵다. 더구나 이기고 이기려는 전쟁 가운데서 권력을 갖게 된 자들에게는 이타적인 그 목적이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막 증오의 대상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에도 세상의 군왕들과 관리들이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 서로 꾀하고 원수였던 빌라도와 바리새인들이 한편이 되어 친구가 되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서 감히 그리스도와 비교하며 대적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죽였다. 분노가 많은 곳에는 서로가 꾀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악을 주장한다. 하나님 나라에 반해 세상 나라가 너무 강해보이고 교묘해서 이제 말씀을 묵상하는 우리는 세상에서도 짠하고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할 때 얼마나 세상이 조롱하는지 스스로도 조롱하고 조롱을 받는다. 자녀를 특목고에 보내면서 이제 탁월한 점수를 받고 들어가도 사실 내신에 불합리성 때문에 이제 3년 뒤에 갈 대학교가 없으면 얼마나 분노하며 소란스럽겠나? 그래서 허사를 경영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거창한데서 헛된 일을 꾸미는 것이 아니다. 믿는 엄마일지라도 내신을 올리기 위해 새롭게 하고 맨 것을 끊고 믿음의 결박을 벗어버리느라 너무나 분주할 것이다. 저도 아들에 이어 특목고에 간 딸까지 입시에 실패했을 때 얼마나 나를 보며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울까 생각했을까 생각했다. 어느 성도님은 자녀 둘을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공부를 시켰는데 10년 동안 15억을 지출했다. 자신의 학벌 열등감을 대리만족 했다한다. 그런데 그 중 한 아이가 혼전 임신으로 급히 결혼하게 되었는데 6개월 만에 부모들이 끼어들어서 이혼을 시켰다. 그래서 양육비 보내주면서 이 어머니는 병원 다니며 우울 불안의 약을 복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주님을 떠나면 자유롭게 될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주님을 떠나서는 자유가 없다. 주님의 통치를 받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벗어버리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은 자를 대적하며 그들에게 매인 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버리고자 하는 것 뿐이다. 그것은 자기를 도와줄 자를 거절하고 자기를 구원해 줄 자를 반역하며 날마다 불평하며 시시각각 방해하는 것과 같다. 사무엘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르시는 악령이 번뇌하게 한지라. 여호와의 영이 이 군왕인 사울에게서 떠나기도 하고 또 여호와의 악령이 임해서 괴롭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이 부르신 악령이라 한다. 다윗을 훈련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사울에게 악령을 부리기도 하셨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집집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부리신 악령이 임한 가족들이 하나씩 있다. 아무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다면 도리어 부끄럽게 생각하셔야 할 거 같다. 어항에 괴롭히는 물고기가 있으면 열심히 피해다니면서 그 고기가 훨씬 더 맛있다고 한다. 사울이 어찌하면 끈길기게 다윗을 괴롭히는 군왕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조상 다윗에게 사울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기름 부은 자를 끝없이 대적했다. 자기도 기름 부음 받았다고. 내 남편 자녀 부인에게 여호와의 부르신 악령이 들어갔다면 얼마나 불쌍하나? 사울이 죽을 때까지 안 돌아왔다. 사울이 싸이코패스 아닌가? 용모가 준수하고 베냐민 집안에서 모든 사람 중에 뛰어나서 기름 부음을 받았는데 그 역할은 다윗을 괴롭히는 역할로 쓰임받아 갔다는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사울 같은 내 식구를 인정하기가 싫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울 같은 내 식구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끝까지 사울을 사랑한 것처럼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구속사적으로 사울이 다윗 때문에 수고했다는 것을 알고 나면 정말 불쌍한 사람은 사울이라고 해석된다. 막 불쌍해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어떻게 사울같은 인간이 있을 수 있냐고 미워하는 사람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사울하고 똑같은 사울이다. 나를 끝까지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사울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미워도 배반했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울 같은 사람을 내게 주신 질서로 여기고 매어 있는 것이 예수님께 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권력과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자들일 수록 자기의 힘으로 이 결박을 끊고자 하고 그것을 멍에라고 생각하여 벗어버리고자 한다. 그럴 때 멍에를 지고 참고 인내하라고 하면 견딜 수 없어 하면서 예수님을 죽인 것처럼 주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한다. 주님의 기름 부은 자는 아내로 남편으로 자녀로 부모로 그렇게 역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멍에는 구원 받은 이 죄인에게는 가볍고 싶다. 우리는 이것으로 우리 자신을 판단할 수 있다. 그것이 세상이 보기에는 멍에이지만 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맘이 쉼을 얻으리라 주님은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하신다. 믿어도 근데 이 세상이 내게 들어와 있기 때문에 예수가 없으면 편할 거 같고 그래서 결혼의 결박을 끊고 이혼하면 좋을 거 같고 믿음을 떠나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돈 벌기 위해서 예수님을 끊고자 하는 것이 내 환경에서 피하고자 하는 것이고 벗어버리고자 하는 것이다. 쉰다고 하면 벗어나고 노는 것으로 생각하고 멍에를 다 벗고 싶겠지만 예수님의 안식은 멍에를 매는 것이라고 한다. 예수를 믿으면 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예수님의 새 멍에로 바뀌고 그래서 기쁘게 지게 된다. 이제 여러분 각자의 사정을 들어보면 다 너무 딱해요. 멍에가 너무 큰거 같다. 그래서 어떻게 도와야 할거 같다. 그래서 결국 돕다보면 믿음의 진노가 못 나가는 거다. 또 목자 나눔이다. 딸의 이름을 알지자에 원하다원으로 지원이라고 지었는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 생각대로 예상을 하면 도저히 자식 셋을 양육할 수 없을 거 같아서 한숨만 나와서 이제 투잡을 해야 하나 그래서 어떻게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생각이 저절로 떠오른다는 거다. 그래도 들은 말씀이 있어서 내 방법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이 길로 주시는 쪽으로 맡기고 지금의 하는 일 그대로 열심히 하는 것이 답인 거 같다. 미리 앞날의 어려움이 보이는데 가만히 앉아있기도 어려운 생각이 드는것은 당연한 거 같다. 뭔가를 대비하고 계획을 세워서 해야할 거 같지만 걱정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지켜봐가면서 모자라도 살고 부족해도 살고 바닥인줄 알아도 살고 그랬더니 지하실도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이 인도해가심을 믿고 중심잡고 현재 충실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라고 믿는다. 걱정이 되고 책임감을 가지는 것은 좋은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시 그 때 그 때 나누도록 하십시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여기도 애를 셋을 낳으면 임대아파트도 될 수 있다. 셋 낳으니까 이렇게 되잖아요. 셋 낳으세요. 하나님이 축복해주실 줄 믿습니다. 환경이 바뀌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변하지 않는 환경이 있어야 내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가 되어서 예수님께 갈 수 있는 것이다. 그 짐이 예수님의 멍에로 바뀌기 위한 큰 도구가 되는거다. 내 멍에로 지고 있기에 환경이 안 바뀌면 이 세상이 무거운 짐인거다. 그래서 예수님의 멍에로 바꾸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해결되는 길이다. 그래서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 그랬다. 왜냐면 내 멍에는 예수님의 멍에가 되면 내게 꼭 맞는 멍에이기 때문에 쉽고 가볍다. 그리고 예수님이 알고 같이 가주시기에 쉬운 것이다.
Q: 지금 무슨 헛된 일을 꾸미고 있나?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라고 인식 하나? 끊임없이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는 걸 생각하면 불쌍하지 않나?
나를 대적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생각하면..그래서 그 결박을 벗어버리고 싶나? 예수님의 멍에로 바꾸겠나?
2. 하나님의 웃음은 비웃음이다.
4절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5절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6절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허사를 경영하고자 하는 이들에게서 하나님의 반응은 웃으신 정도가 아니라 비웃으셨다고 했다. 성경에서 웃었다고 하는 건 여기가 유일하다. 누가복음 6:25 너희 웃는 자들이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왜 그런가? 우리 백석대 교수님의 책에서 읽은 내용이다. 우리는 키가 작은 사람 보고는 안 웃는다. 큰 사람을 보고도 안 웃는다. 뚱뚱해도 안 웃는다. 그런데 뚱뚱이와 홀쭉이가 같이 가면 웃는다. 설교 잘 못한다고 안 웃는다. 목에 힘주고 설교하다가 마이크에 걸려 넘어지면 그 때 웃는다. 우리와 상관이 없지만 불합리해보이고 어색하고 부조리해 보일 때 우리는 웃는다. 심각한 상황이 오면 우리는 웃음을 멈춘다. 다른 사람 다 웃어도 우리는 웃을 수가 없을 때가 있다. 우리는 먼지고 티끌인 흙인데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이다. 가장 열등한 재료로 지어졌는데 가장 찬란한 형상이다. 그런데 이런거 가지고는 웃음이 안 나온다. 흙에 관한 문제고 죽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죽음 보고 웃는다면 병든 웃음이다. 우리는 모순적인 일들에 대해서만 웃을 수가 있다. 쓰디쓴 웃음이던지 냉소적인 웃음일 수 있다. 이 비웃음은 믿음에 의해서만 바로잡을 수 있다. 그래서 성경에는 웃음이 거의 없는 것이다. 삶의 표면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웃을 수 있지만 삶을 파괴하는 거에는 웃을 수가 없다. 인간적인 오만함의 극치로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은 자를 대적할 때 그 통치자들에 대해서 웃을 수가 없다. 이런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님의 웃음만이 답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위정자들을 보고 왜 웃을까요? 그들이 아무리 정치를 하고 경제를 생각하고 분주해도 세상을 만들어가는 일에 하나님 없이 만들어가기에 하나님은 그걸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비웃으신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우주적 왕권과 통치에 대해서 완전히 눈이 먼 국가들로 채워져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에서 천황이란 존재는 다른 나라의 왕과는 차이가 난다.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종교도 아니고 멘탈 그 자체다. 초기 일본인들이 아시아 사람들을 굉장히 무시하고 유럽 4대주의가 있다. 서구 유럽을 보고 내린 결론은 각기 다른 유럽 국가들을 연합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게 여호와더라. 그러니까 우리도 그거에 버금가는 신을 만들어야겠다. 그래가지고 자기들의 신을 만든것이 천황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천황숭배로부터 겉모습은 따라간다. 그런데 1945년에 천황은 자기는 신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일본인들에게는 이것이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천황은 여전히 신이어야만 하는 거다. 천황이 약간 신실한 사람이어서 아니다 아니다 하는데 일본 사람들은 기다 기다 하는 거다. 거기에 기다 기다 하는 대표적 사람이 아베 수상이다. 그것을 이제 천황이 정치도 하고 실제적인 권력을 가질 수 있도록 그런 일을 행한다는 거다. 천황이 정치를 했을 때 일본인이 잘 살았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이 시절에 잘 살았다 이래가지고 거기를 이제 회개하려는 그 마음으로. 근데 로마 카톨릭이 일본으로 유입될 때 일본에 대해서 뭐라고 보고가 들어갔냐면 이 사람들은 윤리와 도덕적으로 흠이 없다고 이렇게 보고 되었다는거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일본에서 순교자가 많이 나왔는데 이 개신교가 들어오면서는 너무 타협을 많이 해가지고 순교자가 줄어들었다고. 일본이 지금 굉장히 약화된듯 보여도 서구에서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곳이 여전히 일본이라한다. 왜냐하면 일본 사람들은 신뢰할 만 하고 돈을 맡겨도 안전하고 그 사람들은 되는 일만 하고. 지금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윤리와 도덕이 분명히 복음은 아니다. 일본 천황의 우상숭배는 도덕이 있어도 헛된 것을 경험한 것이다. 정치나 권력은 궁극적인 힘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이 천년을 잘 살아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천년이 하루 같은 것이다. 하나님 없이 잘 사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은 놀라지 말라는 거다. 하나님은 비웃으신다는 거다. 이 세상의 권력에 대해서 하나님 없는 권력은 하나님이 비웃으신다는 거다. 권력은 무상한 것이다. 이것을 보고 주눅들지 말고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하나님의 웃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회복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의 권력이 나를 조롱하고 최고의 세력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세 친구를 조롱하며 풀무불에 넣고자 해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건져주실거라고 그리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상을 섬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웃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C.S.루이스는 마귀가 견딜 수 없어 하는 것 중 한 가지는 그 마귀를 향해 누군가가 웃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이 사소한 일에 순종하면 이 세상에 거대해 보이는 일이 사소하고 시시해 보이기에 웃을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이 하나님의 웃음에 동참을 하는 것이 묵상이다. 내 자신에게도 주시는 말씀인 것은 내가 싫은 것을 끊고자 하고 분노하고 허사를 경영할 때 하늘에 계신 자가 나를 보고 비웃는다는 거다. 그러니까 허사를 경영하면 안된다. 사울이 처음에는 다윗을 아주 사랑했다. 그런데 다윗이 전쟁마다 승리하고 영육간에 리더십을 발휘하니까 애매한 이유로 미워하기 시작했다. 다윗 입장에서 최고 왕인 사울이 자신을 불러서 직분을 주고 그 딸을 아내로 주고 또 그 아들이 자기 친구가 되었다. 여러분은 재벌 아들이 내 친구가 되면 재벌이 되나? 그 친구가 되서 얼마나 허사를 경영하는지 모른다. 대단한 로열 패밀리하고만 어울렸지만 마지막 다윗 왕국의 족보에 올라가는 사람은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 400명 이었다. 내가 남편 때문에 애통하면서 왔지만 구원을 위한 마음을 주셔서 환란당하고 원통하고 빚진 자들을 애통하게 하셨다. 그것 때문에 남편을 향한 애통함을 주신 것이지 남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 애통한 게 아니다. 나에게 주신 고난으로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데 사울이 진짜 불쌍한 삶을 살고 있는 거다. 사울이 미워하는 그 미움을 안 받아본 사람은 다윗의 고난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사울 같은 사람을 붙여주신 것이 다윗에게는 축복이다. 미움을 안 받아 본 사람은 여기 와서 자꾸 설교가 어렵다고 하는 거다. 그리스도 메시야가 나한테 다가오지 않는 거다. 가족구원을 위해 사명을 주셨지만 말씀 묵상을 하다보니 내 식구 뿐만 아니라 우주를 뛰어넘는 사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거다. 여기 왜 군왕와 민족이 다 나오겠나? 그런데 내 식구만 쳐다보다가 지옥을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내 식구 때문에 슬프고 애통한 사람은 자기 구원의 확신을 점검해 봐야 한다. 어떤 조롱에도 하나님의 웃음을 웃어야 한다. 그러므로 다윗이 자기를 미워하는 사울을 끊어버리면 안된다.
5절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6절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세우신 영원한 왕이다. 하나님이 웃으시고 분노하시고 진노하시고 놀라게 하시는 것은 내 삶에 예수님을 세우기 위해서다. 내가 성전이기에 내 속에 예수님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이 웃으시고 분노하시고 진노하시는 사건이 오는 거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는 말씀은 세상이 스스로 왕 노릇 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한 일을 계획할 지라도 하나님은 이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거룩한 곳 시온에 당신의 뜻대로 왕을 세울 것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이 계획하신대로 메시야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말한다. 내가 거룩한 곳에 있어야 나의 왕 예수의 통치를 받을 수 있다.
Q: 여러분은 세상의 악을 보며 하나님의 웃음으로 비웃나? 아니면 하나님의 웃음으로 비웃음을 당하고 있나? 그러니까 하나님의 웃음으로 남을 비웃어야 되겠는데 그 하나님의 웃음으로 내가 비웃음을 당하고 있지 않나?하나님은 믿는 나에게는 웃어주시지만 정말 악에게는 비웃는다.
하나님은 왜 비웃나?
3.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파멸만 있기 때문이다.
7절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8절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9절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7절부터 그리스도가 갑자기 화자가 되었다. 주어가 되었다. 여호와의 명령을 전한다고 한다. 즉 과거 하나님이 다윗에게 언약을 주실 때 뒤를 이어 그 몸에서 태어날 자를 아들로 삼겠다고 하셨는데 이 예언은 1차적으로 구약 역사에서 솔로몬에게서 성취가 되었다. 그런데 이 예언은 솔로몬을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예언이 아니고 이러한 사실은 신약의 사도바울이 예수그리스도의 말로 그 구약에 예언된 그 메시야이심을 시편 2편으로 인용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오늘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 인생은 복된 인생이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도다. 이 음성을 듣기 위해서 헛된 일을 꾸몄다면 그것 까지도 축복이다. 그러기에 구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다. 그러면 땅 끝가지 이르리라 약속하셨다. 구하려면 옳게 구해야 한다. 이 세상은 질그릇같이 부서질 세상이지만 그러나 또 철창으로 깨뜨려야할 세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철창으로 준비되는게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신 능력은 철장과 같으며 이 능력에 비하여 대적들의 힘은 질그릇과 같다는 거다. 아무리 밀물에 대비해서 그렇게 어린아이가 아니라 아무리 모래성을 쌓는다고 해도 한 번 오면 다 무너진다. 이 세상이 견고하면 이렇게 질그릇과 같이 무너지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이 철창을 사용할 때 마다 대적은 질그릇처럼 깨어질 수 밖에 없다. 사무엘상 19:23,4 사울이 라하마 라욧으로 가니라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도 임하시니 라하마 라욧에 이르기까지 걸어가며 예언을 하였으며 그가 또 그것을 보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벚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니라. 하나님이 다윗을 보호하시려고 하면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왔다가도 갑자기 성령을 받고 변화되어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이 철창으로 부수는 거다. 부인이 교회 가는게 싫어가지고 이 부인이 가는게 어딘가 하고 쫓아오는 남편이 한 둘인가. 그런데 왔다가 은혜 받고 지금 교회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나. 그래도 무서워도 남편이 따라와서 변화됐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섭다고 교회를 안 와야 겠나. 하나님이 철창으로 가지고 부술 줄 믿는다.
Q: 주님을 거부하면 질그릇처럼 부숴진다는 것을 믿나? 이 세상 무서워하지 마세요. 남자들이 나보다 조금만 권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가서는 간, 쓸개 다 빼주는데
나에게 쬐금만 권력이 주어지면 나보다 조금만 못하다 생각이 들면 어마한 권세를 가지고 군림하려 한다는 거다.
남자들은 쬐금만 권세가 주어져도 이게 교계에도 다 들어왔다는 거다.
낮은 자리에서는 못 웃고 높은 자리에서만 팔짱을 끼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웃음과 비웃음을 꺼꾸로 하고 있다.
우리는 꺼꾸로. 예수님의 멍에를 지고서 웃어야 되는데 세상적으로 못 웃죠.
4. 그러므로 교훈을 받아야 한다.
10절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그런즉 군왕들은 세상에 지혜를 얻고 교훈을 받기 전에는 허사를 경영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성경만이 답이다. 이번주 큐티 디모데후서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디모데후서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성경이 유익하려면 감동으로 되었어도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에 4가지 책망을 먼저 받아야 선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위로를 주는 책이 아니다. 먼저 책망을 받게 하는 것이 유익한 것이다. 책망을 받으려면 읽고 듣고 묵상하고 교훈받고 적용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요즘 북한의 핵 실험을 보며 열방이 분노하고 서로 꾀하는 것 처럼 보여도 각자 예수님을 대적하는 음모가 숨어 있다. 북한이 감싸도 그들이 스스로 서도록 해줘야 하는데 이것을 누가 가르치겠나. 수요일 말씀 드린 것 처럼 북한의 핍박받는 지하 교회 성도들이 이 일을 가르칠 것이다. 때가 찼다고 본다. 세상의 재판관들은 메시아의 교훈을 받아야 한다.
11절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태도는 두려움과 즐거움을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가 지혜와 교훈은 여호와의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라 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고 잠언 9장 10절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했다.
12절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에게 입을 맞출 수 없다. 몸을 팔아도 절대로 마음을 주지 않고는 입을 맞출 수 없다 한다. 하나님이 온 세상의 왕으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입을 맞춘 것은 그를 자신의 왕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입맞춤은 사랑의 표시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왕으로 영접하고 사랑하고 그에게 전적으로 충성하고 복종하라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그렇게 피상적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 온 세상의 진정한 왕,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잘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오늘 예수 그리스도 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섬기기를 바란다. 시편1:1 복 있는 사람의 복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이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하면서 따르고 서고 않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양상이 말씀에 근거한다는 것이 2절에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자라고 했다. 꿀송이보다 더 달게 말씀을 듣는 사람이 주야로 #51015;조리는 사람이라 했는데 밤낮은 밝은 날이던지 어두운 날이던지 건강할 때나 병들 때 하나님의 말씀을 #51015;조리는 사람은 복 있다는 거다. 유대인의 풍습에는 묵상이라는 관념적 행위는 없다고 한다. 히브리어 하가로 표현되는 단어는 동물의 울음소리를 뜻한다. 이사야 38:14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기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운다. 나의 눈이 쇠하도록 하늘을 쳐다본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나를 돕는자가 되어 주소서 이게 하가에요. 이렇게 묵상하는 거다. 사자가 짐승을 잡아놓고 먹기 전에 으르렁 하는 것이 간절한 마음으로 먹이를..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51015;조리는 것이 묵상이다. 씹고 뜯고 맛보는 것이 하가다. 또한 어려움에 처하나 연약한 새들처럼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모습이다. 근데 오만한 자가 아니고 오로지 한 길로 걷는 사람을 의미한다. 천국에서 신앙생활 하는 게 아니라 산당을 경배하는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을 하려니까 이렇게 슬프게 압제당하면서 주야로 묵상하면서 #51015;조리는 자가 아쉐르의 복있는 사람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와 이런 세상에서 하가 하는 것이 연결 고리가 되는 것이다. 결론은 그러므로 메시아로 인해 1편의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한 시편의 서론은 2편의 맨 마지막 여호와께 피하는 복이 있도다의 똑같은 아쉐르의 복으로 끝난다. 이 땅에 하가하고 묵상하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Q: 너는 내 아들이라 하시는대도 사단이나 이 세상을 더 두려워 하지 않나?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주님께 교훈받기 위해서 처절하게 말씀을 묵상하시는 복인인가?
내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열심히 피아노를 쳤는가 하지만 그 때는 저에게 주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고 주의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환경이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마다 일어나는 사건마다 하나님 임하시는 걸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자마자 모든 것이 잘 되고 풀렸다면 제가 그동안 하나님을 느낄 수 있었겠나. 하가 했겠나. 근데 예수님을 믿자마자 다 가족이 전도되고 잘 됐다는 분도 계신다. 그러나 저는 안 됐기 때문에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느끼고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묵상 하게 되었다. 말씀이 잘 깨달아지려니까 사건이 오지 않을 수 없고 제가 집순이로 충성을 다하고 있는 것이 감사했다. 제가 집순이가 아니라 피아노로 잘 나가고 있으면 또 말씀이 깨달아졌겠나. 그래서 집에서 걸레질 하고 남편에게 순종하면서 말씀이 깨달아지니까 집에만 있어도 어느 날 부터 하나님의 웃음을 웃게 하셨다. 사울이 다윗에게 집착해서 미워하는 것이 지옥인데 미운 사람이 없어지게 하셨다. 제가 엄마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엄마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 땅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나 생각하게 됐다. 내가 집순이와 아내 역할에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렇게 날마다 날마다 사건이 오면서 60여년의 약재료를 가지고 목회를 한다. 하나님을 느끼고 달라지니까 병원에서 전도를 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도 전도하고 그게 창피하지 않았다. 여러분 툭하면 자존심이 상한다고 하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어떻게 목자를 하고 전도를 하겠나. 그 때부터 1:1 전도와 상담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 교회가 이만큼 됐다 생각한다. 제가 전도한 경험으로 설교를 하고 전도한 경험으로 양육을 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제 설교를 가지고 다른 사람을 전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환경을 불평하면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로 안 쓰신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지금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쓰신다. 제가 내 생명 거둬가시고 남편을 구원해달라고 기도드렸는데 아직도 저를 살려두셨으니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설교를 한다. 마지막 오늘 한 사람 구원하고 가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도 여기 구원 받을 한 사람이 있다. 감격이 되고 눈물이 앞선다. 그런데 별 인생이 있다고 불평하나. 누가 조롱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웃음을 웃어야 한다.
하나님이 웃으셨다. 그런데 비웃으셨다. 세상의 기름부은 자를 대적하기 때문에 웃으셨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웃음은 비웃음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파멸만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웃음을 웃으려면 여호와께 교훈을 받아야 한다. 말씀을 묵상하는 하가. 처절하게 쳐다보고 간절하게 쳐다보며 비둘기 같이 학 같이 지저기며 슬피 우는 것이 묵상이라 했다. 남 가르칠려고 하는 게 성경 묵상이 아니다. 이런 하가 하는 복이 여러분께 있기 바란다.
기도제목
윤혜정1. 내 생각, 경험 내려놓고 부르신 자리에서 잘 순종 하도록2. 이직 인도해 주시도록3. 부모님과 시간 잘 보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 인도해 주시도록4. 건전하고 건강하게 스트레스 잘 해소 할 수 있는 방법 인도해 주시도록5. 출퇴근 시간 잘 활용 할 수 있도록
김윤경1. 허세부리지 않고 하나님처럼 웃을 수 있도록2. 겉모습, 배경에 속지 않고 중심을 바라볼 수 있도록3. 주위 사람들(목장, 아웃리치, 양육, 지인..) 말씀들리고 해석받고 힘내도록4. 말씀에 깨어있고 순종 적용하도록5. 신교제 하도록
이수민1. 내 생각이 주님이 선하게 일하심을 막는걸을 알고 잘 기다리고 인내할 수 있도록 힘을 주세요. 2. 회사에서 주님의 자녀로 향기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써주세요..3. 이번주 회사대표가 우리들교회 등록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4. 우리 목장 영육간의 건강 책임져 주시고 이번 한주도 잘 부탁드립니다.. 주님..
최지숙1. 가족에게 복음 전해지길2. 말로만 가족 애통해하지말고 손과 발이 가는 섬김, 그리고 혈기 조절할 수있게3. 지금 일하는 직장이 하나님뜻대로 되길4. 신교제도 하고싶긴하지만.. 때 되면 주시고 아니면 혼자서도 잘 지낼수있게 해주세요5. 고등부 친구들 체휼하는 마음주시고 영적리더 역할을 감당할수있길 (뭔가 사먹이는게 부담되지않는마음 주세요)
서재경1. 직장이동 주님의 뜻대로 인도해주시고 원만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2. 체력이 딸려서 의욕도 사라지고 귀차니즘에 빠짐-> 영육간의 강건함 허락 3. 아빠구원, 가족건강 4. 신교제신결혼
5. 말씀들릴수 있게, 초등부, 목장위해 기도
최승희
1. 방황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영적끈 잘 붙들고 있길
2. 내 의 버리고 잘 순종하고 인도함 받길
3. 부서섬김 깊이 묵상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