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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문] 20160731 장현성 목장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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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명
[한진덕]
조회
145
댓글
0
날짜
2016.08.03
[주일설교]
제목:돌탕집탕
본문:눅15:11~32
오늘 본문은 한 영혼이 돌아오는 것이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지만 조금만 먹을 것이 있으면 한결같이 사양하기 때문에 환경을 통해서 어쩔 수 없이 매달리게 하시고 부르십니다. 한결같이 사양하는 사람들에게서 지금은 떠나야 될 시간입니다. 이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주제는 회개도 중요하지만 누가 초청을 받아들이는 진정한 의인인가라는 시각으로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한 영혼을 찾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를 원합니다.
1.돌아온 탕자
<11절>
둘째 아들은 다른 곳에 가면 큰 만족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틈만 나면 계획을 세우고, 아버지를 떠나 내 뜻을 펼치며 마음대로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버지를 보면 짜증이 나고 숨이 막혀서 아버지의 걱정 어린 말들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죽어야 될 존재였을 것입니다. 당시 상속 절차에 의하면 둘째 아들은 1/3을 받고 큰 아들은 2/3를 받는데,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받으면 다시 그것의 1/3만 받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생전에 아버지가 유산을 물려주었다고 해도 아버지가 살아있는 동안 자식은 유산에 대한 소유권만 가질 뿐 처분권은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유산의 총 1/9밖에 못받는데도 죽지도 않은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땡깡을 부린 것입니다. 자신의 주제도 모르고 제대로 된 유산이 아니어도 내어 놓으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합니다.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그 당시 관습으로 볼 때 도덕적으로 용납되기 어려운 지극히 무례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죽은 것이나 다름없이 취급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권위를 철저히 짓밟고 집안의 명예를 더럽힌 놈은 단지 한 집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을 어른들이 함께 치리해야 할 공동체 문제로 여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유산을 물려줍니다. 수치를 안겨준 아들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본인이 그 수치를 안고 아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합니다. 재물을 다 모아서 갔다는 것은 돌아올 생각이 없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부동산을 현금으로 바꿔 갔으니까 땅도 다 팔아서 간 것입니다. 고향 땅이 싫은 것입니다. 찾지 못할 먼 나라로 갔다는 것은 가족의 연을 다 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둘째 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자기 부르심으로 떠났기에 자기 소견의 옳은대로 행한 그에게 선한 것은 없었습니다. 허랑방탕으로 줄다름 칠수 밖에 없었습니다. 재물의 성경적인 가치관이 없었기에 며칠이 못되어 다 없어졌습니다. 열등감 많은 사람은 돈밖에 자기를 치장할 거리가 없기에 오직 돈만 요구하고 돈으로 해결하고 돈을 가지고 자랑을 합니다. 그렇게 무리하게 재물을 요구했던 탕자의 마음 속에는 근본적으로 열등감의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여기에서 허랑방탕하여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돈 때문에 좀 풀리는 듯 했지만 잠시 후에 재물과 사람 모두에게 배반을 당합니다. 아들의 잘못된 동기를 잘 알면서도 허락한 아버지의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로마서 1장 28절처럼 상실한 마음대로 버려 두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할 때 그들이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의 과정을 겪어야 됨을 알았습니다. 그러니 사랑은 재물을 낭비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용
-어떤 부분에서 신앙도 가족도 다 끊고 내 뜻대로 하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습니까?
-그 욕심때문에 허랑방탕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습니까?
-그 사연이 누구의 탓도 아닌 무분별한 내 삶의 결론임을 깨닫고 있습니까?
<14절>
그래서 아들도 아버지의 입장에서도 다 없앤 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든 것은 징벌입니다. 그가 이상향으로 생각하고 온갖 즐거움과 자유를 누리고자 갔던 그 나라에 흉년이 든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허랑방탕도 한 몫 했지만 결정적인 것은 나라님도 막을 수 없는 흉년인 것입니다. 우리 집에 징벌이 온 것, 흉년이 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비로소 궁핍하기를 하나님께서 기다리시기 때문입니다. 궁핍이 인생에 약이기 때문입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할 수가 없습니다. 나의 잘못된 결정때문에 그 나라까지 흉년이 들 수 있습니다.
<15절>
하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비로소 궁핍한 것 가지고는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돼지 치는 것까지 갔습니다. 그것도 안됐습니다. 돼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했습니다. 그것도 아직 안 낮아졌습니다. 쥐엄열매도 없어서 못 먹게 되는데까지 가게 돼야 합니다. 여기까지 내려가야 됩니다. 사실 우리는 자식 도와주는 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돈으로 도와주는게 도와주는 건지 잘 모릅니다. 부도났을 때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면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연민으로 자꾸 도와주면 한 사람 망할 것 열 사람 스물 사람 백 사람 망합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어야 올라올 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 재산이 허비되서 구원이 된다면 그 편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가난한 자를 청하는 것 외에는 모두 가난을 수치로 여깁니다. 가난을 수치로 여기니까 QT하면서도 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예수 믿기 때문에 없이 살면서도 기쁘다고 자랑으로 여겨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수치로 여기는 것이 우리 믿음의 한계입니다. 가난한 것이 수치스럽고 그것 때문에 주눅이 든다면 징벌입니다. 징벌에서 아직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책임을 물으십니다. 이런 사람은 고향에 있으면 금세 손을 벌렸을테니까 먼 나라에 가서 허비한 것이 잘 된 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스스로 돌이킬 때까지 기다리시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적용
-돼지 치는 단계, 돼지 쥐엄열매 먹는 단계, 쥐엄열매도 없어 못 먹는 단계 중에 나는 어떤 단계에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렇게 낮아지셨습니까?
<17절>
너무도 치사하지만 배고 고픕니다. 이제 내가 밥 먹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여도 한다는 것까지 가야 됩니다. 이제 원망도 욕심도 허풍도 다 없어지고 자기 아버지 집에 품꾼이 굶지 않는게 너무 부러운 겁니다. 여기까지 가야 됩니다. 큰 아들하고는 감히 이제 비교도 안합니다. 이렇게 내려가서야 자기 주제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저 굶지 않는 것을 부러워할 정도의 치사함과 배고픔을 겪어 보셨습니까? 요즘 누가 부럽습니까? 잘사는 친척, 동창이 부럽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할 때 감히 지금 누구를 부러워하겠습니까? 내가 내 주제를 아는 것부터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18절>
떡을 갖다줘서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있으니까, 그것도 먹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제서야 그 유명한 100% 죄인임을 저절로 깨달아졌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가 그래서 나옵니다. 심령이 가난한게 아닙니다. 마가복음에는 그냥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가난하니까 자기 죄를 보게 됐습니다. 자기 죄를 깨닫지 못하면 원망만 합니다. 그 사람이 나를 꼬여서 망했어! 투자라고 했더니 망했어! 갔더니 망했어! 돼지 주인이 쥐엄 열매를 준다고 사기쳤어! 이러면서 원망을 합니다. 죄의 특징이 원망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망하고 쫓겨나는 힘든 사건에서 하늘 아버지께 지은 나의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탓하고, 사회를 탓하면서 또는 스스로를 책망하면서 회개가 아닌 후회와 원망만 품고 있지는 않습니까?
<19절>
자기 죄를 보게 된 둘째 아들은 자기 주제를 알게 되니 아들로 불릴 자격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통감합니다. 이전에는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줄 알고 아버지께 당당하게 가서 내 몫을 내어 놓으라고! 하였지만 품꾼의 하나라도 일컫음을 감당치 못하겠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참 회개이 모습이 바로 이런 겸손함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깨달음이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가장 좋은 감정이 회개의 감정입니다. 가장 멋있는 감정도 회개의 감정입니다. 우리가 립서비스로 사랑한다는 말보다도 내가 죄인이다 라는 고백처럼 감동을 주는 언어는 없습니다. 그 언어가 상대방을 변화시킵니다. 내가 살고 나때문에 힘들었던 사람들까지 사는 길은 내가 회개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20절>
죄를 미워하면서 청산하지 않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마음을 먹었으면 행해야 합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주님은 벌써 아시고 아직도 거리가 먼데 십리길을 달려와 안아 주십니다. 측은히 여겨라는 말은 우리 말에 애간장이 녹는다는 표현입니다. 창자가 상할 정도로 애틋한 마음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누가 가장 아팠을까요?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보다 더 아픈 사람은 없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사는 동안 아버지는 늘 동구 밖에 나가서 아들을 하염없이 기다렸을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집안에 들이지 아니하고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너가 과연 변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창피를 줄 수도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그런 수모를 당해도 마땅하지 않습니까? 아직 거리가 먼데도 저 멀리서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면 분명 그 시간은 밤이 아닌 낮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라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아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에 의해서 어떤 수치를 당할지 모를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럴까봐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마자 아버지는 쏜살같이 달려나갔습니다. 달려나가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경기장에서 육상 선수가 전력질주하는 모습을 묘사하는데 사용된 단어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 나이도 많은 사람이 체통을 버리고 달려간 것입니다. 명예와 체통을 중요시한 당시 문화에서 아버지의 이런 행동은 파격적이고 수치스럽기까지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명예와 체면, 자존심을 모두 버리고 아버지로서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마저 포기했습니다. 자식이 그 어떤 유해와 멸시를 당하지 않게 하려고 아들의 수치를 자발적으로 떠 안았습니다. 아버지의 자발적 수치가 아들을 살린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이 회개했기 때문에 받아준 것이 아닙니다. 탕자가 회개했기 때문에 받아준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분이 아버지입니다. 아들이 변해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이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동일한 마음으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고통이며 기다림인 것입니다. 집을 떠나기전에 아들에게 아버지는 하나의 방해물이었을뿐 아들은 마치 고아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낮아진 마음으로 회개하고 돌아왔을때 그때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잃어버린 아버지를 돌려주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아버지는 아들을 떠나보냈고 재물을 허비했습니다.
<21절>
둘째 아들은 마음속으로 회개한 것을 아버지에게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회개는 이렇게 언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다들 말로 해야 하냐? 그렇습니다. 말로 해야 합니다. 사랑이 차 있으면 말을 안할수가 없습니다. 말을 절대로 안하는 사람은 아직 회개가 안된 것입니다. 회개는 옆사람들에게 감동과 은혜를 끼칩니다. 나혼자 회개는 없습니다. 집에 돌아온 아들은 이제 아버지 집에서 일하는 품꾼들 중 하나가 되는 줄로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알게 된 것은 아무것도 자기를 아버지의 사랑에서 분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한없는 사랑에서 비롯한 아버지의 용서로 그가 온갖 비행을 저지르고 돌아온 탕자였어도 고용된 품꾼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죄를 짓거나 안짓거나 영원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아낌없이 재물을 씁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고귀한 신분인 사람임을 공개적으로 알리기 위해서 먼저 제일 좋은 옷으로 입혀서 신분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정말 의외의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주인으로서 갖는 권위를 상징하는 인장 반지 가락지를 손에 끼우고 종이 아닌 집주인으로서 자유로운 신분을 상징하는 신을 신겨 줍니다. 특별한 날 잔치를 베풀때 내어 놓았던 살진 송아지를 잡은 것은 아버지에게 그만큼 특별한 날이었다는 것입니다. 너는 그만큼 특별한 아이란다. 너는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는 아이란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은 낭비처럼 보입니다. 내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을 때 나를 안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 가족과 지체의 사랑은 바로 이와 같습니다. 내가 미처 고백하지 못하고 회개하는 마음만 먹어도 나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고 진정한 그 회개에 이르기를 간구하기를 바랍니다.
적용
-하나님께서 나를 돌아온 탕자처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여러분은 돌아갈 곳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십니까?
-현재 아버지의 품속에 안겨 있습니까?
2.집에 있는 탕자
<25절>
둘째 아들 아버지의 집에는 품꾼이 많은데 동생보다 많이 받은 맏아들이 품꾼들같이 밖에 나가서 일했다니 너무 성실하고 근면한 사람인것 같습니다. 자기 일을 스스로 열심히 하니 열심히 살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운 성격이었을 것입니다. 또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도 많으니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들을 것도 없고 또 할 것도 없고 손가락질 받을 일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맏아들이 그 사람들하고 같이 나가서 일까지 하고, 이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일터의 현장인 밭에서부터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귀를 울리는 풍악과 춤추는 소리에 맏아들은 의아해 합니다.
<26절>
아버지하고 같이 살아도 아버지에게 직접 묻지 않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에게 종이기 때문에 그만큼 아버지에게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종을 불러서 무슨 일인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물은 것은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성실한 사람이 우리 교회에 계속적으로 지속적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27절>
도리어 종이 작은 아들을 염려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더 알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맏아들은 종보다도 아버지의 마음을 더 모르고 있습니다. 집안의 종보다 남보다 못한 가족입니다.
-여러분은 부모님 배우자 자녀가 어떤 일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걸 꼭 말을 해야 아느냐고 하면서 외면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러면서 나를 몰라준다고 원망하며 고독케 하지는 않습니까?
<28절>
함께 즐거워 할 것을 당연히 기대했는데 맏아들은 오히려 분노로 반응합니다. 아버지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해 동생을 벌하지 않은 것에 분개합니다. 게다가 그가 환대를 받고 그의 행동이 너그럽게 용서함 받았기에 더 화를 냅니다. 요즘 분노 장애를 겪고 계신 분이 목장마다 계시던데 노가 쌓여 있으면 혈기가 충동적으로 나와서 가족관계를 삐뚤어지게 합니다. 한 사람의 분노가 그렇게 심각합니다. 맏아들 둘째아들 즉 탕자와 모범생이 예수가 없으면 다 똑같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없이 권해야 합니다.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매사에 오해하고 분노하는 자녀와 배우자가 있습니까?
-거기에 혈기로 대응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권하며 인내하는 사랑이 있습니까?
<29절>
여기서 아버지를 섬겼다고 할 때 섬기다는 원어로 보면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종으로 섬겼다는 표현입니다. 자신과 아버지의 관계가 부자관계가 아니고 주인과 종의 관계로 인식하고 그렇게 살아왔음을 들어내야 합니다. 그렇게 여러 해를 섬기고 바라는게 염소 새끼 하나를 바랐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사랑했는데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사랑한다고 하는데 거기에는 충성한다고 반응하는 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저는 충성하겠습니다는 사랑에 대한 모독입니다.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어도 호칭부터 바꿔야 합니다. 둘째 아들이 1/9을 가지고 나갔으니까 나머지 8/9이 자기 것이 될거라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더욱 봉사를 하면서 충성에 열을 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기쁨이 충만했는데 이제 자기 몫이 없어지게 됐습니다. 아버지를 존경한 것이 아니라 돈을 존경하고 눈치를 본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잘 보여야 되어서 풍악과 춤추는 소리에 함께 즐길 줄도 모르는 정말 절벽같은 매력이 없는 사람입니다. 정리하자면 맏아들은 열심으로 종과 같이 아버지를 섬김으로 아버지의 호의를 살 수 있고 자식의 신분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고 오해한 것입니다. 형제 누구 때문에 내가 손해를 봤다고 내가 우리 부모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못했다고 분해 하는 것이 바로 이 맏아들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내가 정말 사랑해서 했다는 그것 자체가 복입니다. 사랑없이 수고하고 칭찬과 물질에 보답을 바라는 것은 최하위 개념입니다. 생색 내는 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것보다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30절>
아버지에게 대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맏아들이 자기 동생을 내 동생이라고 안합니다. 오히려 당신의 이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하는 욕보다 훨씬 더 나쁜 욕입니다. 맏아들은 방탕했던 동생을 정죄하고 무시하고, 감싸주기 보다는 관계를 끊고 싶은 것입니다. 맏아들이라고 창녀들하고 방탕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에게는 둘째 아들에게는 없는 근면함과 성실함이 있었습니다. 따라가지 못할 자기 수양과 영성이 있는것 같지만 실상은 의로운 교만으로 서운함과 분노가운데 아버지는 없고 오직 자신을 몰라주는 불공평한 늙은이만 거기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회개 전에 둘째 아들도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죽었으면 좋겠다. 이 아버지는 너무나 믿음이 있지만 둘째 아들 첫째 아들이 전부 다 불효자입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외로운 인생길을 걸어갔겠습니까? 이 맏아들은 피해의식으로 스스로를 상처주며 나홀로 외로워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마음속에 감춰진 모습이 완전히 다릅니다. 맏아들은 자신과 동생을 비교합니다. 자존감이 낮은 착한 아이 증후군에 속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말 잘 듣고 순종적이고 자기 주장이라고는 전혀 없어 다루기가 편하니까 착한 아이라고 한 것 뿐입니다. 선교사 자녀와 목회자 자녀가 싸우면 목회자들은 무조건 자기 자녀에게 사과하라고 말합니다. 이때 아무런 저항이나 아무말 없이 사과하는 아이들을 착한 아이라고 합니다. 그 아이가 왜 사과해야 하는지 그런 것 생각 안합니다. 문제가 생깁니다. 자기는 잘못하지 않았는데 '무조건 우리 아버지가 목사니까 나는 사과해야 돼' 이런 게 쌓이다 보니까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서 목사 자녀들이 정말 많은 시행 착오를 겪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마음 속에 감춰진 모습이 완전히 다릅니다. 진짜가 아니라 가짜, 원본이 아니라 복사본으로 삽니다. 자기가 없는 삶입니다. 그 구체적인 증상들이 다음과 같습니다. 남의 눈치만 살피고, 싫어 못하고, 겉과 속이 다른 가면을 쓰고, 참고 또 참고, 하고 싶은 일이 없고, 스스로 결정을 못 내리고,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피해의식에 젖어 있습니다. 이렇게 섬김을 받았기 때문에 유약하고 무기력합니다. 늘 우울합니다.
적용
-여러분은 착한 아이 컴플렉스입니까? 진짜 착한 사람입니까?
분노했다는 이야기는 앞에 돌아온 탕자에게는 얘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집안에 있는 탕자, 똑똑한 맏아들에게는 분노가 있습니다. 더 나쁩니다. 어쩌면 이 큰 아들 때문에 작은 아들을 떠나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안타깝께도 맏아들은 너무나 회개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보기에 별 잘못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방탕하고 무책임한 동생이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용서를 받아 본 일이 없으니 용서를 줄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습니다.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 자기 동생을 위한 풍악과 춤추는 소리로 가득찬 아버지의 집 안에 들어가 있지만 자기는 아직도 집 밖에 서 있습니다. 이 큰 아들이 모르는 비밀은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처음부터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을 보니까 차라리 큰 아들도 허랑방탕과 돼지우리를 거쳤다면 이 회개의 길과 회개의 눈물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생기게 됩니다.
<31~32절>
방탕한 둘째 아들을 만나주는 아버지는 지금 상한 감정과 불만으로 뒤틀린 맏아들에게도 찾아갑니다. 분이 나서 거칠어지는 맏아들을 아버지는 부드럽게 불렀습니다. 이 아들이 아니고 너 동생이다. 그리고 너는 나와 항상 함께 있으니 내것이 너의 것 아니니? 아버지의 소유가 다 자식을 위한 것이로되 아버지는 그것보다는 함께 있는 아들인 너를 원한다. 아버지의 마음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가장 원한 것은 품꾼도 많은데 네가 가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동생을 찾아 오는 거였습니다. 배신한 동생이기 때문에 차마 찾아 오라고 말은 못하지만 날마다 아버지가 나가서 기다리는데 그 일을 안했습니다. 제가 교회를 하면서 가장 기쁜 것도 여러분들끼리 사이 좋게 지내는 것입니다. 산으로 들로 다니는 것이 기쁨이 아니라 아버지도 동생 찾아 오는 것을 바랬는데, 왜 너는 밖에 나가서 일만 하느냐! 이 얘기가 맏아들은 안들리는 것입니다. 밥을 누가 먹여줘요? 가만히 하늘만 쳐다 보고 있으면 돈이 나와요? 이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잃어 버린 아들때문에 지금도 고통 받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사랑때문에 아파하십니다.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불교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차이점은 은혜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행위로 인한 대표적인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펴본 돌아온 탕자 비유의 궁극적인 주제는 탕자가 아니라 우리를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며 인간의 불성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이 궁극적인 비밀은 아버지의 집이 있기에 우리가 모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죄인들의 관계에 대한 가장 중요한 원리를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제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일때, 회개하기 전에 이미 죄인을 사랑하시며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들의 회개를 가능케 하신 것입니다. 그가 회개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무조건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오해로 인한 결과로 자신의 오해, 또 그 결과로 인한 동생에 대한 오해가 이제 맏아들의 머리와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상관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맏아들의 판단은 아버지의 판단에 동의 할 수 없고 맏아들의 감정은 아버지의 감정을 공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오해의 뿌리에는 은혜의 개념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은혜를 이해하지 못했던 맏아들은 지금 문밖에 서성거리는 탕자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맏아들도 아버지의 넓고 큰 품속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맏아들에 대한 것은 우리에게 공이 넘어갔습니다. 성경에서는 맏아들은 구원받았다는 소리가 없습니다. 저는 오늘 이 본문에서 맏아들에 대한 애통함이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한 영혼, 한 드라크마, 탕자가 아니라 99무리의 영혼, 9드라크마, 집에 있는 탕자가 진짜 중요하고, 이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 바리새인, 서기관들입니다. 잘나서 말씀이 안들립니다. 저는 오늘 집에 있는 탕자가 훨씬 힘든 죄인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아버지를 잊고 지내는 분입니까? 아버지를 떠올리고 생각하는 중입니까?
-아버지께 돌아오는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돌아오는 탕자입니까? 집에 있는 탕자입니까? 둘 중에 누구를 고르시겠습니까?
[목장모임]
많이 더워서 전체적으로 지치는 가운데 목자님의 긴급 제안으로 매콤한 떡볶이를 먹으며 떨어진 체력을 보충했습니다. 여전한 열기가 남아 있는 가운데 시원한 빙수를 먹으며 목장 모임을 가졌습니다.
<나눔내용>
-돌탕의 낮아진 열등감, 자존감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또한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려보며, 돌탕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공감하였습니다.
-집탕의 모습이 우리 안에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를 나눴고, 돌탕과 집탕의 모습이 우리 모두에게 있음을 나눴습니다.
-근원적인 내 삶의 목적과 우선 순위에 대해 나눴습니다.
-성령체험을 해 보았는지를 나누워 보았고,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이번 주 기도제목을 가지고 구체적인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자고 다짐했습니다.
[기도제목]
공동 기도제목:
신교제와 신결혼을 할 수 있도록
<현성>
1.껍데기 신앙으로부터 돌이키도록
2.하나님과 공동체를 내 삶의 우선순위에 두도록
3.신교제, 신결혼
<호진>
1.하루에 한번이라도 꼭 큐티 말씀 읽으며 집탕, 돌탕인 나를 통찰할 수 있도록
2.방학과 졸업 후의 계획을 잘 세우고 잘 감당하도록
3.아버지의 구원과 형의 구원과 형의 신교제를 위해 기도하며 애통해 할 수 있도록
4.사촌동생 2명의 진로를 인도해 주시도록
5.신교제
<경곤>
1.교회 다니는데 재정이 떨어지지 않도록
2.분노가 일어날 때 주의 사랑으로 참으며 다스릴 수 있도록
3.신결혼
<승준>
1.긍정적인 사고방식이 뿌리내리도록
2.실패에 지치지 않도록
3.신결혼
<기영>
1.사로잡힌 모든 불안한 생각과 걱정을 하지 말고 항상 성령안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원간>
1.공동체에 잘 붙을 수 있는 마음을 갖도록
2.개강준비를 잘 할 수 있도록
3.목사님 책 정독하고 내 삶에 연결해보기
<영재>
1.삶을 살아가는데 우선순위를 정해주시고 그에 맞게 겸손히 행할 수 있도록
<진덕>
1.2학기 커피영업 준비 잘~ 할 수 있도록(알바, 필요물품 구비, 체력 등)
2.중요한 일과 긴급한 일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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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진
2016-08-04 00: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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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자세하고 구체적인 목보 고마워요. 형~^^ 수고많으셨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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