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24_일3_김양재목사님_복이있도다_시1281-6
[주일예배 설교]
지난 주에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을까요? 복을 좀 드리고자 합니다.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라고 되어 있어요. 120~134편까지 계속되는 노래 . 거기 9번째 노래입니다. 126편은 우리에게 이 시의 배경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전이 불타고 바벨론 포로로 돌아올 때입니다.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온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아 식사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겠습니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감격되어 이렇게 찬송을 한 것입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의 복과 나라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개인의 복
1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함께 걷는 복이라고 했습니다. 예전 한글 성경은 여호와의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편 1편은 이렇게 말씀해요. 시편1편 복과 말씀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시편 1편의 첫 글자가 앗슈레이. 복 있는 사람으로 변형됩니다. 구약성경에 46번, 시편에는 26번 등장합니다. 오늘 1-3절까지는 복하고 4-6절까지 나오는 복이요. 다르더라구요. 전자는 명사형 앗슈레이, 후자는 동사형 바라크의 복입니다. 앗슈레이의 복은 사람과 관련된 복인 반면에 바라크는 언제나 하나님의 복입니다.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너무나 행복해서 주위 사람들이 부러워 할만한 복이라는 거에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여호와의 길을 걷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사랑이 담긴 두려움을 가지고 그의 길을 걷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담기지 않고 두려워만 하는 것은 올바른 동행이 아닙니다. 믿음이 안 될 때 목자의 처방을 듣거나, 담임 목사인 저의 처방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어요. 왜 망하는게 축복인가? 여기에서 전체를 모르니까 망하는 거에 꽂혀서 두렵습니다. 듣는 자나 말하는 자나 사랑으로 듣고 신뢰를 해야만 경외를 하게 됩니다.사랑이 담긴 순종은 강력한 순종의 동기가 됩니다.우리는 처음부터 그 길을 다 알지 못합니다. 묵상하는 길에 들어섰다면, 이제 그 길에 붙어 있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길입니다. 그러면 어느 날 힘든 내 불행이 해석됩니다. 여호와를 경험한 이스라엘 사람들도 불행을 경험하는 거에요. 도대체 이스라엘 백성이 불행해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포로로 잡혀가서 가정이 산산조각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열왕기하 25장 7절. 그들이 시드기야 아들들을 죽이고 두 눈을 빼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에 끌고 갔어요. 비천한 국민만 남겨 놓았습니다. 그 사람들 일부는 애굽으로 도망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텔레비전을 통해서도 각종 가정을 보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 이산가족을 보십시요. 그러면 이들이 왜 이렇게 불행을 당했나요? 그 이유를, 열왕기하 24장 3절. 므낫세의 모든 지은 죄 때문에. 그러면 구체적으로 또 므낫세. 열왕기하 21장 2-6절.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따라서.
3절
그의 아버지가 헐어버린 산당들을 쌓으며.
5절
일월성신.
6절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 그랬어요. 모태신앙 중 최고의 로얄 패밀리인 이 히스기야의 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거에요. 이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물질입니다. 물질이 자기에게 풍요를 가져다 준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은 이들을 철저히 징계한 거에요.오늘날도 돈에 울고 돈에 웃습니다. 가정에는 경제 기능도 있고, 여러 가지 기능이 있는데 그것을 모두 돈이면 다 된다고 합니다. 근데 므낫세가 유다 왕으로. 기복의 산당들을 다시 세운 거에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히스기야는 만고의 성군인데. 그 자녀가 믿는 유다의 최고의 통치권자가 아버지의 진가를 전혀 모릅니다. 그럴 수가 있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돈을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돈이면 아버지도 냉장고에 넣습니다. 어머니도 욕실에 넣고 불사릅니다. 아들에게 너무 집착한 나머지 들들 볶고 불타게 합니다.
적용
내 불행도 내 삶의 결론이라는 것이 인정이 되십니까?
역대하 33장 12-13절. 다시 왕위에 앉게 했어요. 그제서야. 그제서야는 뭡니까? 환난을 당해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왕이신 줄 알았대. 환난을 당한다 당한다.. 그러니 육이 무너져야 영이 세워진다는 말씀이 어찌 진리가 아니겠습니까. 다시 큐티하면서 잘 읽어보니까 우리에게도 다 있는 평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에요. 기복신앙으로 신접한 얘기만 듣고 싶은 것은 내가 좋은 얘기만 듣고 싶은 거에요. 망하는 얘기는 듣기 싫은 거에요. 언니는 왔는데 동생은. 저는 안 들리네요~ 그러고 갔어요. 한 번만 더 와보시라고. 여러분 가운데도 무슨 얘기를 해도 안 들리기에. 일월성신을 섬기려 해도 얼마나 바쁜데요. 눈이 뽑히는 환난을 당하니 회개하고 돌아와서. 그리고는 예수님의 계보에 찬란하게 올라갔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 아달랴는 불신결혼의 결론이 너무 무섭습니다. 왜 무서운가요? 여기는 회개가 안 돼요. 그런데 므낫세는 회개가 되었어요. 고난이 오더라도 회개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복이라는 거에요. 회개를 하면 꿈꾸는 것 같았도다, 가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인간 최고의 감정은 회개에요. 꿈꾸는 것 같은 거에요.
적용
여러분은 므낫세의 회개 전이 좋습니까, 회개 후가 좋습니까?
이 세상은 잠깐이라니까요. 온 민족을 망하게 했잖아요. 므낫세가. 이게 이게 참 이게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을 읽다보면 므낫세의 서론 본론 결론이 다 나와 있잖아요.사람을 경외하면 안 됩니다. 인간의 도를 행하면 안 됩니다. 말씀대로 믿고 살고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길입니다. 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도를 알아야 행할 수 있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주의 길을 걷고 있습니까. 세상 길을 걷고 있습니까? 세상적으로 잘돼보이는 복입니까. 안 돼 보이는 복입니까? 정말 나는 더럽게 복이 없어! 이렇게 얘기하고 싶은 분 있으세요?
나눔
우리들교회 부목자님 나눔이에요. 제가 술집에서 여자와 있고 싶다고. 여전히 달라졌나 생각해보면 가슴 칠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열매가 있나 생각해보면 더 불안하다.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해서 내 자녀들이 나처럼 살까 두렵다.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군대 간 아들에게 큐티책을 보내주었는데 연락이 없다. 룸싸롱 가서 여자와 놀고 싶어하는 마음이 맞으니까. 쟤는 왜 홍대 나이트를 못 갈까. 놀아야 되는데. 어머니가 암에 걸렸는데 평생 예수 믿었는데 왜 그러냐. 이 집사님은 아직 주님과 동행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여러분.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다고 그랬습니다.개인의 복이. 므낫세처럼. 그 사람이 회개하니까 하나님이 또 나라를 구해주셨어요.
2. 가정의 복 - 3가지를 보겠습니다. 남편과 아내와 자녀.
1) 남편 : 수고의 복
2절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는 첫 번째 복입니다. 시134편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이라 그랬어요. 손의 수고를 귀하게 여기는 자에요. 모든 좋은 것이 손으로 만들어지고 이루어지며 모든 아름다운 예술이 손으로 이루어집니다. 머리 좋은 것보다 손이 좋은 것이 더 낫습니다. 먹을 것이다, 라는 말은 누릴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여호와와 함께 걷지 않는 자는 손이 수고해도 먹지 못한다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수고가 먼저 있어야 하지만. 그런 수고의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달려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바람에 날리는 헛된 소망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산 소망. 참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제 부목자님 모임이에요. 편의점에라도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내가 동네에는 가지 말라고 했습니다. 손으로 수고하는. 정말 중요합니다. 그런데 또 어떤 분. 도박과 마약을 하면서 40년 동안. 본인은 가정을 책임지는 줄도 모르고 세금을 낼 줄도 몰랐대요. 어떻게 공과금을 내는지 알게 된 지가 딱 1.5년 밖에 되지 않았대요. 우리들교회 오고 나니까 자기에게 도박을 하지 말래요. 이제야 아들의 분노가 폭발했대요. 왜 나 혼자만 참아야 되냐고. 모든 것이 무너졌답니다. 이렇게 이상한 집 아들들은 다 효자에요. 아빠가 여기 돌아오면 다 헐크로 바뀌어요. 목자가 되기 전까지는 살살살살 기다가 목자가 되고 나면 너도 당해봐라~ 부목자가 되셔서 이런 나눔을 하시는 것이 얼마나 소망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칠성파. 일류대학 나오신 분의 나눔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그래요. 저는 피곤하다가도 이야기를 들으면 생기가 납니다. 한결같이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랬다고 제가 튼튼한 게 아니에요. 아~ 배 아퍼. 머리 아퍼~ 안 아픈 데가 없어요. 오직 말씀 전할 때만 쌩쌩하고 나머지는 죽어 있으라고. 제가 건강해서 놀러다닐까봐 하나님이 걱정이 되셔가지고. 알맞게 아프게 하셔서. 저도 아프답니다^^매일같이 말씀 속에서 산 소망을 가져야 가능한데. 어떤 날은 12시간도 하고 10시간도 하고. 큐티하고 나누고 인도하고. 똑같은 삶을 30년 동안 살고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이 내 사명이고. 그렇게. 근데. 제가 진짜 돈을 하나도 안 받으니까. 사명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돈을 받으면 일로 하면 노동으로 하면 다 방학만 기다리죠? 좀 놀면 안 돼? 우리는 방학 없어요~ 교회나 직장이나 다 똑같은 거 같습니다. 전 지금 효도나 받아야 할 입장인데.
적용
여러분은 헛된 소망을 가지고 헛된 수고를 하고 있습니까? 참된 소망을 가지고 참된 수고를 하고 있습니까? 손으로 참된 수고를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자녀가 성령 받는 게 좋습니까, 서울대 가는 게 좋습니까?
기도
여러분들 성령 안 받으면 영살이에요. 빵살이에요. 정말 정말 정말 성령 받길 바래요. 여러분들이 성령체험을 해야.
성령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진짜 이번 주일에는 온 식구가 성령 받기를 기도합시다.
2) 아내 : 희생의 복
4절
가장이 잘 서 있게 되면. 잃어버린 가정이 회복됩니다. 진정한 성도가 세워지면 가정이 회복되고. 성령 받은 가정은 아내가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포도나무는 약하고 망가지기 쉬운 식물이라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잘 서 있지 못하는 식물이에요.생각해보세요. 그 하늘하늘한 가지가 언제 쓰이겠어요? 단지 언제 쓰이느냐? 단지 열매로만 쓰입니다. 그 열매도 밟혀져야 성찬에 쓰이는 포도즙까지 될 수가 있습니다. 결국은 내가 잘 밟혀지고 있으면 갖은 영화로운데 쓰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복입니다.그래서 포도나무는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상징하는데 여기서는 아내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한편 아내는 집 담장으로써 남편의 발 아래서 있어서. 짓밟혀서도 안 되지만 지붕에서 남편을 좌지우지해서도 안 됩니다. 외실이 아니라 내실. 안방에 있다고 합니다. 내실은 모퉁이 구석구석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드러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야말로 희생하는 모습입니다.예수님은 결실한 잘 익은 포도나무처럼 성숙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아내 자신이 잘 성숙하지 않고 어떻게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하겠습니까? 나 같은 죄인이 깨달아지지 않으면 한 순간도 혼자 서 있을 수 없습니다.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써 누구든지 성도라면 이런 포도나무와 같은 삶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하늘 위의 하늘이래도. 바다 밑의 바다에 숨어 있더라도 하나님이 반드시 드러내십니다.
적용
나는 내실의 아내입니까? 외실의 아내입니까? 안방의 아내입니까? 바깥의 아내입니까? 구석구석 있으면서 밟혀지고 계십니까?
3) 자녀 : 영광의 복
6절
감람나무의 축복은 더디 자라지만 천년 가까이 자랍니다. 열매를 기다리려면 적어도 7년, 장성하려면 10년. 특별히 어린 감람나무라고 했는데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은 것을 봐야 합니다. 내가 포도나무 같은 희생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감람나무 같은 성도가 나올 수 없습니다. 과정마다 주님은 나와 함께 걸으십니다. 내 영육의 자녀가 감람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포도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밟히시기를 바랍니다.또한 상에 둘린 공동체는 밥상문화. 밥상에서 밥풀이 튈 정도로 잔소리를 하는. 우리 가정은 밥상문화가 어떻습니까? 자녀들은 다이어트 한다고, 밥 안 먹어!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안방과 식탁은 대화가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식탁의 대화가 줄어드는 것은 바빠서일 수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대화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가 되지 않고 주와 함께 걷지 않고 늘 나홀로 걷기 때문입니다.
적용
사랑하는 수고를 하는데 이기적이어서 자녀로써 부모를 도울줄을 모르지는 않습니까? 한편 자녀로써 가능성이 무한하게 열려있는 것을 믿습니까? 여러분 가정의 밥상 공동체의 실상은 어떻습니까? 나눠보세요. 리얼한 나눔이 나올 것 같은데요?
3. 교회와 나라의 복
4,5,6절
복이 있도다, 에서 얻으리로다, 로 바뀌었어요. 이 같은 복은 앗쉐레이의 구체적인 복에서 바라크의 복으로. 가능성이 열린다는 상태로 바뀌었어요. 얻게 해주시는 분이 있어요. 이렇게 복의 종류가 달라졌습니다. 시온에서 복을 주시고 예루살렘의 번영을 주신다고 했어요. 그것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사명으로써의 복입니다.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3절. 포도나무 같은. 감람나무같은. 십자가도 복이고 부활도 복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우리 인생에 뙤약볕, 늦은 비, 이른 비가 찾아옵니다. 감람나무로 내가 가야 할 곳은 예루살렘인 우리의 사회. 교회의 번영과 사회의 안정 없이 어떻게 축복이 있겠습니까? 개인과 가정은 내가 최종적으로 가야 할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맨 마지막 목적이 가정이 되면 안 됩니다. 가정이 회복되었다고 가정우상주의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그 약 재료를 가지고 공동체의 다른 가정을 살려야 합니다. 영적 자손이 주렁주렁 맺힐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의 여호와 경외가 공동체를 살립니다. 나의 모든 은사가 교회로 오면 종합예술로 쓰임받습니다. 열매도 없이 죽으시면 안 됩니다. 우리 시어머니가 그랬어요. '죽으믄 썩어질라믄 몸뚱이만 아낀다고!' 너무 애끼지 마세요. 나 한 사람의 화려한 이력서를 쓰기 위해서 노력을 했던 저였어요. 한 사람도 전도 못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말만 하면. 이혼 안 한다고 해요. 이것이 시온의 복, 예루살렘의 복입니다. 교회만 오면 눈물 흘리지 않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나 혼자 기뻐하는 것과 공동체에 모여서 함께 기뻐하는 것은 비교가 안 됩니다. 이름 없는 작자 미상의 복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무명의 성도들의 복이에요. 저의 어머니만 해도 얼마나 작자미상의 복입니다. 개인 가정의 복으로 지경이 확장되는 것인데. 맨 마지막의 복은 6절. 개인적 샬롬이 각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복이라면, 공동체적 복은... 좋은 공동체를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난다.
공동체 나눔
여러분. 아무리 싸워도 목장에 나가는 것은 장땡입니다. 큰 병원을 하는 의사부부인데. 또 한 부부는 9년 간 유부녀랑 바람을 피우다가 돌아왔는데. 그분의 셋째 딸이 경찰에 잡혀 갔다는 거에요. 부재중인 아빠와 억척스럽게 살았는데. 남자친구와 혼전임신을 하고. 아버지는 2년 가까이 목장에 나왔는데. 말씀이 안 들려서 그 아이를 지우라고. 남자 친구 태우고 무면허로 운전하다가 벤츠를 들이 받았대요. 수리비가 1천만원 나왔는데. 알고 보니까 딸의 직장도 거짓이고. 어머니도 속였고. 딸은 이 바람피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모든 얘기를 하지 않고. 모든 분들의 입이 딱 올킬 됐어요. 모든 입이 닫아졌어요. 중보기도를 했다는 겁니다.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아니. 목자님. 내가 어땠는지. 내 얘기가 아니면 다 넘겨듣는다는 거에요. 저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어! 화 그만 내고 집에 들어와서 정착하고 생활비도 한 푼 안 냈는데 분담하시라고. 30분도 안 되어 이런 전화가 왔다는 거에요. 부목자 부부는 몇 달 째 실직중이라 먹고 사는 게 힘든데. 자녀의 문제는 우리가 살아온 삶의 결론이라고. 내가 더 악하다고. 저도 그 집사님보다 더 화를 내었는데. 사로잡힘은 저주나 형벌이 아니라 이 사건을 통해 내 자신의 죄를 보라고. 애통하는 눈물. 그럼에도 이 부부목장에 오시는 것이 큰 위로라고 하시고. 그분들이 목장에 나오니까 너무나 위로가 되신다고. 이 아모스 말씀을 깨달으라고 목원들과 제 딸이 너무나 수고를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동행하니 결국 이들을 통해 감람나무 같은 약 재료가 생깁니다.목장에서 나누는게 그냥 우리끼리, 가 아니라 정말 어마어마한. 참으로 앗슈레이의 사명과 바라크의 행복을 발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목자님의목장 스케치]
연일 더운 날씨의 휴가철 피서를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더위를 잊어버리는 시원한 판교채플에서 3부 예배를 드리고 여전한 방식으로 3층 테라스에서 목장모임을 하였습니다. 목장모임시간처럼 이번주에 있을 청년부 지리산 아웃리치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해주셔서 즐겁고 시원한 한주가 될 것 같습니다. 피서로 아웃리치를 떠날 것 생각하니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아쉽지만 목장모임을 마쳤습니다.
[기도 제목]
박수동
아웃리치지체들의 약재료를 통하여 학생들이 살아나고 복된 아웃리치가 되도록
가족들이(형, 누나) 성령받도록 기도하기
표승범
지리산 단기선교에서 불편 감수하고 섬기며 예수 증거하도록
이익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것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