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4:1-42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적용은 본문에 충실해야 한다. 나눔이라는 게 몇 번 돌아가다 보면 사람들 나눔이 똑같다. 말씀을 붙잡기 위해 사건도 있는 것이다. 사건이 우상화 되어서 말씀이 뒤로 가면 삼천포로 빠지게 된다. 사건에서 말씀을 접목할 때 영성이 쌓이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삶을 살게 된다. 내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는 마음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다. 오늘은 고라자손과는 다른 예배를 너무 사모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유명한 구절에 대해서 생각해보겠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와보라 한 사마리아 여인의 얘기는 영과 진리의 예배였다.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1. 참된 말씀에 반응한다.
(1~2절) 세례요한에게 열광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을 쫓아다닌다. 세례요한의 설교가 카리스마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설교가 강한 것이다. 예수님은 진리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인간적으로 볼 때 요한은 출신도 좋고 청렴결백하고 멋있다. 세례요한의 비교적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메시지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는 메시지이다. 거기에 비해 예수님은 혼인잔치 다니고 포도주 마시고 겉모습도 초라하고 목수의 아들이고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한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가겠나? 요한의 메시지가 예비하는 소리라면 예수님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한 메시지이다. 세례요한의 메시지가 듣기 좋아서 열광하는 사람은 많아도 속사람의 죄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예수님의 설교를 들으면 지금 내 더러운 속을 찔러주는 임박한 설교이기에 도전이 되고 요동이 되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푸는데도 요한에게보다 더 사람들이 오는 것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싫어한다. 세례요한은 헤롯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바리새인들이 싫어했다는 얘기가 없다. 근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 유대인들이 죽였다. 항상 기득권층에서 종교논쟁이 열렬하게 일어나는 것도 먹고 살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 같다.
적용 > 여러분은 어떤 메시지에 열광하는가? 편안하고 가진 것 많은 삶이 요동할까봐 내 죄는 덮어두고 행위로하는 의로운 설교만 옳다고 하지 않는가? 아니면 내 죄를 찔러주는 메시지를 좋아하는가?
예수님에게 세례 받은 사람들이 많은 줄을 바리새인들이 아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신다고 하였다.
2. 편한 곳에서 안주하지 않는다.
(3~4절)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서 갈릴리로 가시는 것이 예수님의 적용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건이 왔을 때 편한 곳만 찾으면 안 된다. 예수님처럼 더 힘든 곳으로 가면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웬만큼 믿음이 좋지 않으면 나를 편하게 해주는 곳에서는 안주하고 싶어서 주의 일을 할 수 없다. 영성이란 고난도 영광의 무게도 지탱해주는 골조이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지만 쌓아온 영성이란 사건을 접하면서 말씀묵상으로 하루하루 선택과 결단을 하며 쌓아온 내공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가 똑같은 인생을 반복적으로 사는 것 같아도 어마어마한 영성을 쌓아가는 것이다. 고난이 와도 영광이 와도 요동치 않고 이타적으로 살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이 땅의 고난은 잠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선 그 힘든 갈릴리로 가시는데 길도 가장 힘든 사마리아 길을 택해서 가셨다. 그냥 통과하시는 것이 아니라 통과해야 하겠느니라 하며 의지를 표명하셨다. 최고의 선택은 이타적인 선택이다. 최고의 기도응답은 이타적인 기도가 응답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를 제대로 해야 한다.
적용 > 힘든 사건을 두고 내가 선택하는 곳은 어딘가? 당장의 편함을 찾아간 곳이 주님과 멀어지는 곳은 아닌가?
영성이 쌓이는 선택을 해야한다.
3. 주님께서 그의 영적 자녀를 위한 기도를 반드시 기억하신다.
(5절) 수가는 히브리어로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마지막이라는 뜻을 가진 동네에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다고 한다. 사마리아의 조상이 야곱이라는 것이다. 에브라임의 후손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분열시킨 인물이다. 10지파가 북이스라엘로 합쳐져서 예수님의 계보를 이어오는 남유다와 대립해서 괴롭혔다. 그러다 bc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그때 앗수르와 남아있던 북이스라엘 민족과의 혼혈민족이 사마리아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무시한다. 이방인들을 개보다도 못하게 여기는데 북이스라엘과 앗수르의 혼혈민족이기 때문이다.
(6절) 야곱의 우물이 사마리아를 회복하는 시작이 된다. 몇 천 년 전 약속한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들에 대한 축복을 잊지 않으시고 이 우물 때문에, 야곱의 기도 때문에, 그동안 멸시받으며 형벌 받은 사마리아를 고라자손처럼 회복시키신다. 이 땅에서 형벌 받고 고난 받으면 결국 회복된다는 것이 영적인 원리이다. 그래서 고난이 축복이다. 우리가 자식을 드린 기도가 이렇게 응답이 되는 것을 보라고 성경이 앞뒤전후로 퍼즐이 짜여있다. 이 땅에서 고난 받아도 몇 천 년 후라도 응답된다는 것을 믿으라고 오늘 요한복음 4장을 택했다. 고라자손이 회복되고 이 사마리아 인들이 회복이 된다는 것이다.
적용 >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내가 도전받아야 할 것은 무엇이 있나? 내 자녀, 영적 후손을 위해 기도하면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반드시 방문하신다는 것을 믿나?
야곱으로 인한 요셉의 기도를 출애굽으로 하나님이 방문하셨다. 그리고 2천년이 지난 후에 예수님이 오늘 직접 이곳을 방문하셨다. 하나님이 이렇게 신실하게 응답하신다. 잠시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기 바란다.
기도 > 내 죄를 찔러주는 메시지를 좋아하게 되기를. 힘든 사건이 왔을 때 영성이 쌓이는 선택을 하도록. 내 자녀 영적후손을 위해 기도할 때 반드시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방문해주실 것을 믿고 방문해달라고 기도.
4. 예수님만이 생수인 것을 알게된다.
(7~8절) 사람들을 피해 정오에 물길러 온 여인에게 예수님은 물을 달라고 하셨다. 아무것도 줄 것이 없는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신다.
(9절) 전도할 때 안 믿는 사람들의 문을 열기위해 그 사람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적용을 가지고 다가가면 그것이 전도의 능력이 된다.
(10~11절)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해라 라고 하는 것인데 ‘돈이 어딨어요 애들은 어떡해요 난 남편이 없는데요 난 배우지 못 했어요 난 이것도 저것도 못해요’ 변명이 너무 많다. 바로 내 앞에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이 딱 서있는데 변명이 너무 많다. 내가 밤낮 구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물과 육적인 물이다. 그러다 보니 정말 근원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물을 만들 수도 있고 없앨 수도 있는 분이 눈앞에 계셔도 깨닫지를 못한다. 늘 내문제 내 사건에만 사로잡혀서 이미 다 이뤄놓으신 주님을 볼 수 없다.
적용 > 내가 지금 구하고 있는 것은 어떤 물인가? 주님의 부르심에 오늘은 또 어떤 변명을 늘어놓고 싶은가?
아무것도 없을 때는 예수님말씀이고 예배고 나발이고- 이렇게 된다. 돈을 줘 돈을 줘 그게 우리들의, 여인의 구함과 똑같다.
(12절) 사마리아의 조상 야곱을 알고 있는 여인이다. 이미 준비된 자 임을 알 수 있다.
우리 조상 야곱이 부잔데 당신이 더 부자에요? 라고 묻고 있는 것과 같다.
(13~14절) 13절에 나오는 마시다는 계속적인 의미를 가진다. 이 세상 물은 아무리 마셔도 계속 목마르다 이 뜻 이다. 14절에 나오는 마시다는 단번에 갈증이 가시는 일회적인 시제로 쓰였다. 주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히 솟아나는 생명의 물이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주님이 주시는 물을 먹기만 하면 모든 것에 부요함이 넘친다는 말이다.
적용 > 매일 영생하도록 솟아는 샘물을 마시고 있나? 아니면 엉뚱한 곳 에서 그 물을 구하고 있지는 않은가?
(15절) 여자는 아직 영적인 갈증을 모른다. 그래서 육적으로 목마르지 않다는 것이 중요하고 물 길러 오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물 길러 오지 않게 해주면 예수 믿을게요. 우리 애만 붙게 해준다면 큐티 할게요. 돈만 벌게 해준다면 교회 올게요.’ 아직 이 수준인 것이다. 우리가 어떤 바람과 기도로 큐티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육적인 갈증만 절박할 뿐 영적인 갈증에는 둔감해졌다. 정말 영적인 샘물을 마시게 해달라고 정말 주님이 생수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5. 상처에 직면한다.
(16절) 계속 육적인 수준에 머물러 구하니까 약점을 찌르신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이다.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는 것은 여자의 쓴 뿌리를 드러내라고 하시는 것이다. 너를 오픈하지 않고 부끄러움의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면 절대로 내가 주는 물 영적인 생수를 마실 수 없다며 여자 안에 숨어있는 제일 중요한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다.
(17절) 여자의 고백에 두 번이나 옳다고 인정해주셨다. 니고데모(요한복음 3장 바리새인)와는 너무 다르게 계속 보듬어 가시는 게 보인다. 지금 계속 영생하듯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려면 나의 쓴 뿌리를 드러내야 하는건 어디서나 원칙이다.
적용 > 나의 쓴 뿌리를 드러냄으로 주님께 인정받고 있나? 아직도 꼭꼭 끌어안은 채 더 깊은 상처로 곪아가는 건 아닌가?
모든 것을 인정하고 보듬어주시는 주님의 따듯함을 체험해야 되는데 나를 인정하지 못한다.
(19절) 남편이 다섯이라는 말에는 상처받지 않고 네 말이 옳도다 참 되도다 하는 말에 은혜를 받았다. 이 여인이 드러낸 것이 중요하다. 다섯 남편이 있었지만 만족이 없었는데 정말 고난의 인생인 것을 예수님께서 알아주신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해한다. 결국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진정으로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면 어떤 것도 만족이 없는 게 정상이다. 택하신 자이기에 곤고함이 있는 것이다.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으면 어디에도 만족이 없는 것이다. 예수님 남편을 만나고 나면 육신의 배우자는 그림자일 뿐 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적용 > 육신의 배우자가 너무 좋고 의지가 돼서 감히 남편이 없다 아내가 없다는 고백을 하기가 두려운가? 진짜 남편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그림자 배우자만 의지하다가 평생 곤고함만 맛보고 있지 않나? 한마디로 여러분은 육적과부인가? 영적과부인가?
기도 > 이런 목마름 가운데서 주님만이 생수이다. 내가 수치를 드러내기가 죽기보다 힘들지만 한 가지 수치를 좀 드러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내가 영적 과부인 것, 내가 예수님을 남편으로 삼고 있지 않은 게 정말 수치란 걸 알고 육적과부가 불쌍한 게 아니라 영적 과부인 나를 불쌍하게 여겨달라고 기도하자. 내가 생수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6. 아는 것을 예배한다.
(20절~24절) 주님을 선지자로 인정하며 감히 니고데모도 하지 못했던 예배에 대한 말씀을 예수님께 물었다. 유대인들은 참된 예배란 오직 예루살렘에서만 가능하다고 믿었고 사마리아 여인은 그리심산에서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참된 예배는 특정 예배시간과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참된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주로서 바로 지금 우리와 더불어 역사하고 계신다는 믿음 가운데 하나님의 영과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우리의 삶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모든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귀한 피조물이라는 차원에서 성과 속을 더 이상 구분하지 아니하고 하늘나라 땅 나라 구분하지 아니하고 모든 것과 모든 날을 성스럽게 여기셨다. 따라서 예수님은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로부터 속되다고 천대받던 창녀 세리 어린아이들과도 사랑의 교제를 나누셨다. 예수님은 주일과 평일을 더 이상 구분하지 않으셨다. 주님과 함께하는 날은 성스러운 주일과 다름없다는 말과 같다. 이런 의미에서 평일에 살아가는 우리의 일상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돼야한다. 그렇게 모든 성도들의 일상생활에서 경험된 하나님과의 관계가 이 주일 공 예배를 통하여서 확인되는 것이다. 이 주일날의 공 예배는 결코 두 시간의 예배만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사역의 핵을 이루는 것이며 모든 성도들의 일주일간의 힘의 원천이 된다. 주일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가에 따라서 일주일동안 우리의 영적 생활에 지대한 영향력을 주게 된다. 우리가 일주일동안 잘 살지 않으면 지금 이 예배가 하나도 은혜가 안 된다. 졸기나 하고 몸을 뒤틀고 있는 것이다.
(25~26절) 비록 죄악의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편을 다섯이나 둔 여자였지만 이 여자는 메시아가 오실 줄을 아는 준비된 자였다. 예수님께서 스스로 메시아라고 딱 두 번 밝히셨는데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밝히셨고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밝히셨다. 이 예배의 말씀을 사마리아 여인에게 밝히셨는데 누가 예배드릴 수 없다고 누가 핑계 댈 수 있겠는가?
적용 > 남들에게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던 나도 예수님을 알게 되면 높여주신다. 예수님과의 만남으로 육신의 남편과 아내와 가족에게도 받지 못했던 귀한 대접을 받고 있나? 여러분들이 집에서 대접 못 받아도 밖에서 지체에게서도 대접 받지 못한다면 문제 있다. 여러분들은 영과 진리로 아는 것을 예배하는가? 기복적 형식적으로 모르는 것을 주문처럼 예배하는가?
7. 물동이를 버리고 주님을 따른다.
(28~30절) 그렇게 높여진 자답게 여인은 물동이를 버리고 달려간다. 육신의 갈증을 해결해주던 물동이 직업 돈 다 내려놓고 주님을 전하러 갔다. 이렇게 폐쇄적인 삶을 살던 여자가 자기 공동체를 향해가서 부끄러움 없이 자기 삶을 오픈하기 시작했다. 이제 나와 세상은 간곳이 없고 오직 그리스도가 나를 변화시켰다고 증거하는 것이다.
적용 > 여러분은 주님을 위해 시간과 물질과 명예와 건강과 자녀와 가족의 물동이를 버릴 수 있는가?
(41~42절) 세례요한처럼 이 여인도 사람들을 자기에게 인도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로 인도한 진정한 전도자였다. 멸시받던 이 불쌍한 여인을 통해 그 마을 전체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부흥이 일어났고 드디어 완전한 사마리아의 회복이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수가(야곱의 우물이 있는 사마리아의 성읍) 마지막의 의미이다. 회복과 부흥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도 아니고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도 아니고 유대인들이 징그럽게 이방인 취급하는 사마리아의 수가라는 이 작은 동네에서 시작되었다. 멸시받는 땅으로 그 오랜 세월동안 계속되어오던 사마리아의 형벌이 이제 마지막이 되고 영적이 삶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적용 > 나의 수가성에서 주님을 만났나? 아니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그 사마리아의 형벌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나? 내가 이미 준비된 사마리아의 여인이라면 오늘 있는 이곳이 나의 수가성이 될 줄 믿는다. 여러분의 형벌이 오늘 끝나고 이제 사마리아인의 예배,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그 인생이 시작될 줄 믿는다. 이 사마리아 여인처럼 물동이를 버리고 주님을 따라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출석 : 주금만82 양요한83 이정준87
결석 : 이건상82 이양식83 정기성85 주경원86
장소 : 치즈케#51084;이 맛있는 커피빈
시간 : 4시 ~ 6시
어떤 메시지에 반응하는가? 나를 찔러주는 메시지에 반응하는가?
금만 : 예전 골프 쪽에서 일했을 때 사장과 말이 잘 안 통했다. 너의 잘못이라고 얘기하는 게 너무 싫었다. 속으로 너나 잘하라고 생각했었다. 사람들의 ‘역시 주과장이야’ 라는 말이 좋았다. 인정받는 게 좋았다. 거래처에서 모두 자신의 득과 실을 따져서 얘기하는 건데 그걸 몰랐다. 나를 깎아내리는 말이 나오면 방어기제가 발동해서 내가 정당하고 네가 틀렸다고 변호를 하였다. 요즘은 찔러주는 메시지가 있어야 확실하게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상대가 나에게 찔러주는 메시지를 얘기해줄 때 이 사람이 나의 본질 된 뜻을 잘 이해하고 얘기해주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의 태도를 분석하게 된다.
요한 : 요즘 일을 너무 하기 싫다. 저번 달에 야간까지 계속 잔업하고 나서 몸이 많이 지친 뒤로 그렇다. 나는 잔업을 해야 월급이 두 배로 늘어나는데 야간을 매일 할 체력이 안 되는 사람이란 걸 깨달았다. 나는 잔업을 할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만큼 벌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하는 원동력이었는데 그게 없어졌다. 나는 이만큼 못 버는 사람이야. 되는대로 버는 대로 살자. 이렇게 생각하니까 일을 많이 해야겠다는 욕심이 사라지고 점점 아웃리치도 다가오고 여행계획도 짜고 있고 하니 놀고만 싶고 일하기가 싫었다. 이번 월요일 오전도 자고 오후 출근했고 수요일도 아침에 그냥 잤는데 오후출근 할까 하다가 갑자기 수요예배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장님께 욕먹으며 하루 쉬고 수요예배 갔다. 저번 달에 아침7시부터 밤10시까지 일하느라 몸이 지쳐서 일끝나면 거의 기절하듯이 자기 시작하면서부터 큐티도 잘 안하게 됐었는데 수요설교에서 매일 큐티로 결단과 적용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인격과 영성이 만들어지는 것이란 말씀에 내가 큐티를 하면서 작은 적용이라도 매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요일 큐티 적용은 하루 반나절이라도 열심히 일하자 였다.
그저께 금요일에 일 진행이 잘 안됐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팀장님도 소장님도 나를 안 챙겨줬다. 나는 열 받아서 일하다말고 조용한데로 가서 세시간정도 핸드폰 보며 놀았다. 나중에 소장님이 안보이던데 어디 갔었냐고 물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하면 일이 안된다고, 딱 보면 알지 않나? 왜 일할 수 있게 안 챙겨 주냐고 대답했다. 이걸 일 진행하려고 해도 진행도 안 되고 열내봤자 나만 스트레스 받아서 나는 마음을 내려놨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사님이 돈을 받고 일을 열심히 안하는 놈이 제일 나쁜 놈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살짝 열이 받았다.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토요일에 큐티 하는데 내가 너무 두로 같았다.
토요일은 퇴근시간보다 두시간정도 일찍 도망 나왔다. 밑에 애 일 시켜놓고 나왔는데 아무도 몰랐다. 일 하기 싫은데 아웃리치 모임이나 일찍 가자하고 나왔다. 그리고 큐티 말씀 보는데 내가 편하기 위해 두로와 같이 사람을 팔아넘긴 것 같고 금요일도 돌이켜보니 내가 솔직히 마음만 먹으면 사람 찾아가서 끌고 와서 이거 잡아라하며 시켜서 일 진행 할 역량이 되었다. 토요일도 마음만 먹으면 일을 4배는 많이 했을 것이다. 근데 그렇게 안하고 누가 날 안 챙겨주면 나도 일 안하려 하였고 야간에 계속 일하는 것은 힘들어도 잔업을 조금은 하고 싶은데 이번 달은 전혀 안 시켜줘서 화가 나있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지내다 보면 자기들이 급해서 잔업 시키겠지 라는 생각이 있었다. 결국에 다 내가 편하고 싶고 돈을 많이 못 버는 것에 대해 화가 나있었던 모습이 깨달아졌다. 그리고 오늘 설교 듣던 중 이사님이 나에게 말씀하셨던 것들이 찌르는 말씀으로 다가왔다. 내가 남의 재물을 공으로 탐하고 일을 열심히 안하고 돈만 벌어가려고 했던 모습이 보였다.
정준 : 무난한 것은 귀담아 듣지 않는다. 누가 직접적으로 말을 해야 느껴진다. 상대의 지적에 대해 거부반응이 있다고 해도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받아들인다. 최근에도 그랬다. 누가 봐도 내가 아닌 것 이라면 나보다 떨어지는 사람이 말을 한다고 해도 받아들인다. 객관적으로 명백한 사실을 계속 아니라고 우기면 못 받아들인다. 그러나 생각의 차이나 관점의 차이 같은 다양성은 받아들인다. 자기 파 라고 옹호해주는 것은 못 참는다.
영성이 쌓이는 선택을 해야 하는데 편한 곳에 안주하려 하는 것이 무엇이 있나?
금만 : 요즘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모르겠다. 사건 후 상실감이 커서 목적이 더 불투명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요즘 잘하고 있는 건지 못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사업적인 부분도 오늘 생각해봤는데 제휴가 됐다면 편한 곳에 안주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에 생각한 게 내가 주님께 의지하는 게 뭘까 란 생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큐티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사람에게 계속 의지하는 것 같다. 9월이면 사업한지 1년되는데 이대로라면 답이 없다. 점점 나태해지고 게을러진다. 이번 주는 부가세 때문에 큐티가 안됐다. 지금 통장잔고의 두 배를 내야한다.
사업하면서 추가적인 매출이 있어야 하는데 미치겠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분야가 예전처럼 술 마시고 영업하는 건 아니라서 실력 대 실력으로 승부를 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공부를 해서 개발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지금이 어쨌든 내 삶의 결론이다. 주어진 시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오늘 말씀처럼 현재에 안주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술 먹고 열심히 놀았으면 이제는 열심히 해야 되지 않나? 란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지금 현실과의 괴리감이 좁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짜증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첫 번째 적용이 매일 8시에 일어나는 것인데 그것도 잘 안돼서 짜증이 난다. 가족들과의 관계도 생각보다 안 된다. 이번 주에 상담 받으며 가정 회복에 대해서 초점을 맞췄다. 근데 잘 안 된다. 평일을 예배처럼 지내고 싶은데 어렵다. 당장 세금 내야 되는 것에 쩔쩔매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께 좀 주시고 말씀하시지 란 생각이 든다.
요한이는 무엇이 있나?
요한 : 두 번째 적용이,
금만 : 너는 네가 직접 사다리 찾고 사람을 찾아라.
요한 : 알겠다. 두 번째 적용질문이 편한 곳에 안주하는 것이 주님과 멀어지는 곳임을 아는가? 인데,
금만 : 그런 얘기 하지마라. 계속 형식적인 걸 얘기하려 하지마라. 그런 것 말고 땅의 언어를 써라. 너의 편한 곳에 안주하려 하지 말고 직접 사다리를 잡아줄 사람을 찾아라. 주님을 찾는 것은 당연한 거다.
요한 : 토요일은 오전에 일하다가 내가 굳이 일 안해도 돼서 조공 일 시켜놓고 옆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잤다. 그러다 잠에서 깼는데 왠지 이러면 안 될 것 같았다. 가장 하기 싫은걸 하는 게 적용인데.. 이러며 벌떡 일어났다. 점심먹기 전에 한 삼십분 정도라도 같이 막 일했다. 그래도 오후에 금방 도망가긴 했다.
금만 : 근데 너의 이 고백이 너다. 너. 그걸 인정해야한다. 거기서 시작하는 거다. 주님을 찾고 그런 것은 우리가 죄인이라서 죽을때까지 찾아가는건데 결국에 적용이란 것은 하늘의 것을 적용하는게 아니라 땅의 것을 적용하는 것이다. 네 말대로 빨리 일어나고 30분이라도 일하는 것, 그게 적용하는 것이다. 네가 늦잠을 자는 게 주님과 멀어지는 건 아니다.
요한 : 편한데 안주하려 하고 계속 적용을 이타적으로 해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적용이 없는지 삶이 이타적이지가 않다. 일하는 모습을 누가 봐도 이타적이지 않고 내 잇속만 챙기려 한다.
금만 : 내가 얘기 했잖나? 그게 너의 진정한 모습이다.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다 그렇다. 나는 애시 당초 그런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이타적인 사람이었는데 왜 내가 그렇게 했을까?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이기적인 놈이라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병신 삽질을 하고 야동을 보고 음란한 생각을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고라자손이 왜 회복이 되는가? 내가 병신 같아야 회복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내가 그런 존재가 아니라면 회복이란 단어가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회복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상처가 많고 조상들처럼 시기와 질투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을 했기 때문에 회복을 받은 것이다. 베드로가 멀쩡한데 갑자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한 것도 자기가 의인이었다고 생각하면 고백이 안 나온다. 뼛속깊이 태어날 때부터 나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의인이 된다 해도 의인에 다가가지 못한다. 천국 가서 하나님 만나야 겨우 누릴 수 있는 좁쌀 같은 존재이다. 모래알보다 못한 비둘기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존재가 우리다. 그것을 뼛속 깊숙이 알아가서 말씀을 보는 거랑 그렇지 않은 것은 완전 다르다.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완전 달라진다. 그것을 알아야 내가 진짜 죄인이라는 고백이 입에서 나올 수 있다.
우리는 엄청나게 악하다. 변태 같다. 여자랑 어떻게 잘까 이런 생각만 갖고 있다. 우리가 의인인가? 아니잖나. 그렇기 때문에 음란한 생각도 할 수 있고 예전 여자 친구와 어떻게 잠자리를 가졌는지 이런 것도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원래 그런 놈이다. 근데 내가 말씀을 받아서 은혜를 받아서 거기에서 벗어났다? 죽을 때 까지 가야한다. 그걸 알아야 한다.
지금 정준이는 가장 편한게 뭔가? 내가 지금까지 정준이를 본 결과 요즘이 그때보다 편해졌다. 예전엔 대학원을 갈지 어디 취직할지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너만의 고민이 진짜 얼굴로 나와서 마음으로부터 체휼이 됐는데 지금은 네 얼굴에 괜찮아요 라고 나온다.
정준 : 이제 고민이 본격적으로 닥쳐올 것 같다. 9월 달에 교수님이 보직을 결정해 주실 텐데 준비를 해놔야 한다. 그것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 머리 아파질 것이다.
금만 : 오늘 말씀에 나와 있다. 힘든 곳으로 가야한다고. 영성이라는 것도 실력이다. 네가 쌓을 수 있는 것이다. 그걸 통해서 한층 더 성숙해 지는 게 어쩌면 주님이 원하시는 것일 수 있다.
정준 : 돈을 버는 것을 이제 생각해야 하는데 머리가 아프다.
금만 : 그것을 생각할 만큼 네가 준비되어있다고 생각하는가?
정준 : 내가 나중에 취업할 때 현재 대학원과 무관한 것들이 꽤 있다. 그걸 하려면 지금 해왔던 것을 포기해야하고 졸업한 후에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최근 다녀온 프로그램회사의 위치가 성수역이라 아주 좋다. 나머진 다 판교 밑으로 멀다. 물론 아직까지 그런 것을 결정할 시기는 아니다. 나는 근로시간 외에 일을 시키는 사회적 관습을 바꾸고 싶다.
금만 : 사회적 관습이라는 게 바꿔지지 않는 것이다. 근데 그것을 바꾸고 싶다면 당해보기도 하고 경험해야한다. 근데 그것을 그거대로 따르지 않고 바꾸고 싶다는 것은 너무 현실을 벗어난 이상주의 같다. 내가 겪어봐야 이게 안 좋구나 하면서 네가 어떤 일을 할 때에도 변화시킬 수가 있는 건데 너는 제약을 두는 것이다. 내가 이정도만 경험하고 내가 생각한 무언가의 이상주의를 실천하고 싶다는 건데 그러지 말고 그런 것 들을 경험해보는 게 나쁘지 않다. 네가 경험하면 너에게 믿음이 있을 수 있고 네가 생각하는 가정환경이라든지 정치적 사회적 성향에 그것을 대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라.
기도제목
주금만82
1. 예배가 회복되도록
2. 나의 수치와 상처를 드러내어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체험할 수 있도록
3. 하루하루 주신 시간에 충실히 살 수 있도록
양요한83
1. 아웃리치와 해외여행 부족함 없이 잘 준비하도록
2. 직장 마무리 잘 짓도록
3. 체력 회복
4. 음란함이 선택의 기준이 되지 않도록
이정준87
1. 요즘 건강이 좀 나빠져서 회복할 수 있도록
2. 더운데 지치지 않도록
3. 대학원 공부 잘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