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내 하나님의 성전(시편8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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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84편 10절에서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서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것이 좋사오니'의 이 유명한 구절은요 유다자손이 아니고 고라자손의 시입니다. 기다리며 그루터기의 남은자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정말 주의 궁정을 사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고라자손이 어떻게 이렇게 주의 집을 사모하는 삶이 되었을까요?
1. 권위에 도전을 해서 망한 경험이 있습니다.
출애굽하는 광야의 여정에서 모세는 추위와 더위, 배고픔 등 자연환경으로 인한 고통도 컸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고통은 아마 고라자손의 조직적인반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받은 자 중 유명한 지휘관 250명과 함께 모세와 아론의 리더십에 도전했습니다.모세에 대해서는 교만하다, 분수에 지나치다, 왕이 되려한다고 모함하고 비난했습니다. 모세는 이들의 폭동을 하나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하나님께 호소하자 하나님께서 그 반역자들을 산 채로 땅에 매장시키고 불에 타 죽게하는 최종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이 반역사건은 이스라엘 역사에 길이 남을 아픔과 두려움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16장 4절부터 16장을 보면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보지 못하고 이 고라자손의 책임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렸어요.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서 온 백성에게 전염병이 퍼지게 되었고, 모세와 아론은 자신에게 대적하던 사람들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속죄의향로를 가지고 나갔습니다. 고라가 욕심을 냈던 제사장의 자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임은 틀림이 없지만 고라의 생각처럼 많은 사람들 위해서 왕으로 군림하는 자리가 결코아니었습니다. 제사장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죽은자와 산자 사이에 서야하는 자리입니다. 사망의 권세가 가득한 곳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자기몸을 던져 생명을 구하는 자리가 바로 제사장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인이었을 때에 예수꼐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던져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제사장의 완전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우리는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이제 죽은자와 산자 사이에 서서 죄인을 위해 중보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오늘 이제 목장 개편이 있는데목자들과 목원들은 이렇게 산자와 죽은자 사이에서 생명을 내놓고 중보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적) 직분에 대한 욕심으로 반역을 한 적이 있습니까? 반역을 당할 때 엎드려서 기도합니까, 분해합니까? 구원받은 성도라면 향을 피워 속죄했던 모세와 아론처럼 죽은자와 산자 사이에서 죄인들을 위해 중보하는 제사장적인 사명을 감당하기로 결단 하십니까?
2. 주의 장막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내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는 사람들은 주의 장막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고라자손은요, 시편을 한 11편쯤 썼는데 그중에서 84편은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깃딧이란 오늘날 기타와 유사합니다. 포도주를 짜서 틀에 넣을 때에 부르는 노래인데, 그것을 기쁨으로 부른다는 것은 이제 포도주를 밟아서 짜잖아요. 우리 인생도 밟혀서 십자가를 거친 이런 찬양의 의미를 고라자손이 경험했다고 보여집니다. 완전히 망하고 황폐해졌기에, 그것도 자기 죄로 그렇게 되었기에 고라자손이 1절서부터 그냥 주의 장막, 여호와의 궁정, 주의 재단, 주의 집 등 고라자손이 교회하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감격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회막에서 수중드는 일, 회막에서 찬송하는 일, 그리고 성막 문지기를 맡는 일등을 오히려 귀하게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고라적인 태도에서부터 벗어나 고라자손의 신앙으로 성숙되어야 합니다. 직분이 높고 낮아서가 아니라 이제 그 기가막힌 사모하는 교회가 있고 얘기가 통하는 보고싶은 사람이 있고 예배 볼 시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한 것입니다. 정말 복중의 복입니다. 하지만 내가 직분타령을 하며 부글부글 끓고 이제 교회오면 보기싫은 사람이 문앞에서 있고, 이렇게 되면 고라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평신도 중에서도 사역자를 세우는 교회라서 아주 성숙하지 않으면 이것을 인정하기가 진짜진짜 어렵습니다. 직분을 높이 받을려면 고난이 없는 사람도 감당을 해야하고, 고난이 있는 사람도 살려내는 사람이어야 점점 높은
직분을 받는 것이 맞습니다. 근데 힘든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어쨌든 정착시키고 살려내는 사람들이 직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것이어그리가 되는 교회가 너무나 건강하고 성숙한 교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그리가 안되는 사람도 꼭 있죠.
(적) 교회 오는 것이 너무나 기쁨입니까,일입니까? 목장에 가는 것이 일입니까, 기쁨입니까? 목자를 하는 것이 기쁨입니까, 일입니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주의 장막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꼭 장소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고난을 겪어서 성경을 구속사적으로 읽으니까 그런 주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한 사람을 자꾸 많이 만나게 되고 자꾸 모이게 되고, 그렇게 바로 거기가 성령충만하고, 그렇게 모일때 기도응답이 되더라구요. 그래서 참 믿음이 통하는 사람들의 만남이 주의 임재하심이 또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교회에서 그런 사람들끼리 만나는 기쁨이 있었어요. 자, 전체적으로 보면 주의 집을 사모하는 자의 삶은 주께 부르짖고, 안식을 얻으며, 항상 찬송하며, 새 힘을 얻고 슬픔 가운데도 은혜를 얻고, 주님께 나아가는 생활.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주의 장막에 거하는 것이지 교회 가는 것만이 다는 아니예요. 1차적으로 가야되겠지만. 왜냐하면 시인은 지금 성전 밖, 성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못 오면서도 이런 찬송시를 썼다는 거예요. 그니까 이런 은혜를 고라자손이멸절할 뻔 했는데 지금 문지기로 턱걸이를 해서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 여러분의 교회생활을 어떠십니까? 주일예배, 목장예배, 수요예배를 사랑하십니까? 너무나 다른것은 같잖아서 주일예배만을 사랑하십니까?
3. 내 하나님의 성전을 마음과 육체가 쇠약해지기까지 사모합니다.
너무나 사모해서 쇠약해질때까지 앉으나 서나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한다고 했어요. 시인의 마음이 너무나 간절히 내 마음과 육체가 쇠잔해져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기까지 사모하는 거예요. 부르짖는 소리는 기쁨의 환호성뿐만 아니라 슬픔의 애곡소리도 다 포함이 됩니다. 얼마나 폭풍과 광풍이 휘몰아쳤으면 내 영혼이 지치기까지 쇠약해졌겠습니까? 고라자손이 모세와 아론에 반역한것 때문에 아주 이 고라자손의 씨를 말리는 것처럼 땅이 입을 쩍 벌리고 삼켰는데 여기서 남은자가 되었다는 것이죠. 영적 혈통이 좋은 그들이 당연히 교회가서 살아야되는데 쫓겨났기 때문에 주의 궁정에서 하루만 살아도 좋겠다고 하루만 살아도 좋겠다고 하면서 조상의 죄를 내 죄로 여기고 겸손해졌습니다. 오늘 나에게 광풍이 휘몰아치면 그냥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 우리 조상의 무언가 죄가 있어 그렇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고 주의 궁정을 정말 쇠약하기까지 사모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하게되는 것은 나의 원수가 육신의 정욕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가장 큰 무서운 원수가 내 속에 있는 육신의 정욕인 거예요. 근데 이 고라자손이 그만큼 육신이 원수인거예요. 너무 잘난척 하잖아요. 높은 자리에 가있는 사람은 내려오기가 하늘의 별따기인거예요. 마음과 육체를 끊지 못합니다. 그래서 너무나 불신결혼땜에 힘들어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눈물을 흘리는 엄마들이 많아요. 나쁜 남편, 좋은 남편 없어요. 진짜 이런분들이 교회를 나가는 거죠. 직분도 가지고 있는거죠. 고라자손 같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내 마음대로 안되는 거예요. 고라자손도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자기가 그러고 싶어서 그랬겠습니까? 모세와 아론에게 시기질투가 나는거예요. 모세와 아론이 틀렸다고 생각이 드는거예요. 하지만 죄를 지은 사람들이 상처가 있어서 악하고 음란하게 나갔다가 의지의 대상이 바뀌어서 주의 궁정에 돌아오면 말씀이 꽂히고 그 누구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근데 고라자손은 안된다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영적인 우울감이 제일 무서운 거예요. 직분타령하는 교회치고 분쟁이 안일어나는 교회가 없잖아요.
여러분은 정말 어떤 상황에서도, 쇠약해졌어도 지금 그 상황을 가지고 사람을 살려야하는 거예요. 남편이 바람을 피던, 아내가 바람을 피던, 자녀가 가출을 했던, 그 쇠약해진 상황을 가지고 남편이, 아내가, 자녀가 그러면 똑같은 환경에 있는 다른 사람을 살리고 유동함없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살릴 수 있는게 아니예요. 그런 환경은 다른 사람 살리라고 그런 환경을 줬어요. 땅 끝까지 내려가서 육체가 쇠약해지니까 살아계신 하나님께 부르짖고 사모하게 되는 거예요. 안 그런 사람들이 누가 그렇게 사모합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속에 모든게 있어요.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나한테 주시는 선물로 받아들이셔야 되는 거예요. 아내고, 남편이고, 사람이고, 직장이고, 건강이고, 물질이고 다 나한테 주시는 선물인거예요.현재는 선물이라구요. 그래서 내가 힘들고 아무것도 안되니까 드디어 쇠약해져서 하나님께 부르짓을것 밖에 더 있습니까? 우리가 쇠약해질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오직 쇠약해지기까지 주님을 사모하라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은 뭐든지 할 수 있다가 믿음의 정의입니다.
(적)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서 지옥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정말 내 마음과 육체가 영적으로 쇠약해지기까지 주님의 궁정을 사모합니가? 한마디로육신이 쇠약해져서 지옥을 살고 있습니까? 영으로 쇠약해져서 주님의 궁정만 사모하고 있습니까?
4.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주님이 안식처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이 얼마나 성전을 사모하는지 제단 곁에서 자유롭게 집을 짓고 새끼를 위한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새들을 부러워할 정도라고 고백합니다. 수백년 내려올 때까지 고라자손이 회개하지 않았어요. 다 씨가 말랐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세월을 지나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방문해 주셔서 드디어 성전 문지기하는 자손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이게 성경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집에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식구가 있어도 나는 하나님이 방문해주실 것을 바라보면서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 하고 가야 합니다. 이것이 안식입니다. 그래서 안식은 나중에 누리는게 아니라 오늘 누리는 것이 안식입니다. 나는 참새, 제비 한마리값도 안되지만 주의 궁정에서 새끼들 보금자리를 얻은 것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주인공입니다. 나는 모태전부터 창세전부터 택함 받은자,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는 자인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식해야 합니다. 건물이 허름해도 주의 임재에 있는 곳에 거하는 자가 복있습니다. 주께 힘을 얻으려면 그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고라자손은 자기 방법으로 사람에게 힘을 얻기위해 애를 쓰다가 마음의 원망의 대로가 있고, 미움의 대로가 있고, 불법의 대로가 있고, 정욕의 대로가 있었기에 버림을 당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안 돌아올 사람인거예요. 고라자손은 말로 해서는 안되는 사람인거예요. 그래서 이런 사람 죽을때까지 영접하지 않는거예요. 죽을때까지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훗날에 그 자손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 남은 부분, 그루터기를 보신거죠. 지금 안되는 사람도 있어요.
(적) 여러분의 안식처는 어디입니까? 누구에게 위로를 얻고 있습니까? 마음속에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까. 원망의 대로가 있습니까?
5. 내 하나님의 성전은 눈물 골짜기를 통과할 때 사모가 됩니다.
아무리 기쁨으로 순례의 길을 떠났더라도 그 길이 평탄치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순례의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이미 시온으로 대로가 뚫려있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눈물골짜기를 통과할 때 다른 사람이 나때문에 샘물을 마십니다. 내가 눈물골짜기로 그렇게 주의 성전을 사모하면은 그렇게 나땜에 샘을 마십니다. 고라자손이 이걸 알게 됐어요. 내가 너무 수치를 당하고, 치졸하고, 졸렬한데, 눈물골짜기를 너무 잘 지나고 있으니까 내가 샘이 되어서 나 땜에 사람들이 살아나는 거예요. 눈물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이 기적을 창출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되셔야 합니다. 영적인 자는 조그만 일에도 감사의 제목을 주셔서 점점 힘을 얻어가는데, 감사하는 사람은 매일 감사하는데, 비판하는 사람은 매일 비판하니까, 있는 힘도 자꾸 없어져갑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어요. 그래서 택한자에게 나의 얼굴을 살펴보세요 하면서 하나님 면전에서 너무너무 눈물을 흘리면서 사모하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으로 유명한 10절 말씀이 나왔습니다. 반역으로 인해서 쫓겨났던 고라가 이제는 하나님의 궁정에 문지기도 좋다는 거예요.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은 인생에 다른 어떤 조건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궁정에서의 하루는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좋은 곳입니다. 이곳에서 예배하고, 말씀을 배우고, 기도합니다. 신약에서는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자기네 가문을 완전히 깡그리 망가뜨려서 공동묘지에 간 것처럼 전부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제일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할 것이라고 이런 고백을 고라자손이 했다는 거예요. 해는 두루 주시고, 두루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고, 방패는 언제나 보호자가 되어 주신다는 거예요. 영화와 은혜를 주시는 분도 하나님인데 그러려면 정직히 행하는 것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정직히 행하려면 거짓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진실을 말해도 한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면 거짓입니다. 매일 한계를 뛰어넘는 약속을 하고 지나친 강조를 하고, 지나치게 말이 많고, 이게 다 거짓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거예요. 주께 의지하지 못하면 날마다 실수할 수 밖에 없고, 정직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맨날 치우치고 맨날 지나치고 말이 많고, 부족하고, 과장하고, 한계를 뛰어넘습니다. 내 의견인지 사실인지 자기도 헷깔리고, 누구한테 얘기할 때 사실만 얘기하는게 아니라 순식간에 자기 의견이 거기 덧붙여져서 나갑니다. 그러면 그것이 가십이 되고 소문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고라자손의 특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기도하고 정직히 행하려면 하나님께 양육을 잘 받아야 합니다. 빈들과 풍요 양쪽 다에게 아끼지 않고
최고의 것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세번에 걸쳐 복이 있다는 선언을 하셨어요.주의 집에 거하며 주님의 집을 향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다 이 얘기입니다. 예수안에 생명이 있어요. 예수안에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적) 너무도 절망적인 환경에 처하셨습니까? 눈물골짜기에도 많은 샘이 예비된 것을 믿으세요. 그분의 위로를 체험하십니까?
오직 오늘 이게 모든것의 결론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모든 힘든것들의 종결자가 되어주시고 위로자가 되어주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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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 조승현 : 1.16일에 유년부 큐티 페스티벌에 참석할 수 있도록
2. 직장에서 질서에 순종하고 화나는것을 건강히 드러낼 수 있도록
3. 큐티 말씀으로 일터와 가족관계에서 잘 해석받기
- 84 황동수 : 1. 항상 겸손하기
2. 화내지 않기
3.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 85 황명운 : 1. 결혼준비 하는 과정에서 믿음의 가정을 기도로 계획할 수 있도록
2. 급한 마음에 쫓겨 준비하지 않고 부#46379;히는 일이 생겨도 큰 다툼없이 계획하도록
- 86 유한진 : 1. 혼자 계신 어머니가 무리하게 일하시가 한동안 일을 쉬기는데 빨리 회복하시길
- 82 박민영 : 1. 이력서를 다시 차근차근 구속사에 맞게 쓸 수 있도록
2. 9월에 전세 계약 만료인데 주어진 상황에 맞게 잘 대처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