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나님의 성전 시편 84:1-12
다 망해서 죽은 것 같았는데 그루터기가 남아있는 남은 자의 모델로 고라자손을 소개하겠습니다. 10절 유다 자손이 아닌 고라자손의 시입니다. 기다리며 그루터기의 남은 자의 삶은 사는 사람들은 정말 주의 궁정을 사모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고라자손은 어떻게 이렇게 주의 집을 사모하는 자의 삶이 되었을까요?
첫째, 권위에 도전을 해서 망한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다 동등하다는 뜻입니다. 너만 왜 직분을 가지냐 이런 이야기죠.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흔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 모세가 정치적, 세속적인 야망이 있었다면 히브리인을 자처하고 애굽 왕정을 뛰쳐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인의 지도자가 되므로 애굽의 모든 부귀영화를 얻었지만 광야에서 특혜를 얻진 않았습니다. 백성들을 보살피는 일에 하루도 마음 편한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았습니다. 모세는 이들의 폭동을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최종심판을 산채로 땅에 묻게 하시고 불에 타죽게 만들었습니다. 이 반역사건은 아픔으로 기억될 역사로 기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해서 전염병이 온 백성에게 퍼졌습니다.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모세는 아론에게 향을 피우고 백성들에게 속죄하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죽음의 전염병 사이로 가는 것은 두려운 것입니다. 모세는 가지고 나갔습니다. 아론은 향을 피우고 죽은 자와 산자사이에 섰을 때에 멈춰졌다고 합니다. 제사장은 굴림하는 자리가 아니고 죽은 자와 산자 사이에 서야하는 자리입니다. 사망의 권세가 가득한 곳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자기 몸을 던져 생명을 보호하는 자리가 바로 제사장의 자리입니다.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우리는 하나님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은 모든 자는 죽은 자와 산자 사이에 서서 죄인 된 사명을 감당해야합니다.
좋은 목원, 나쁜 목원은 없습니다. 나에게 맞는 목원만 있죠. 안 맞으면 맞추면 되고, 아니면 목장개편이 있잖아요~ 목자의 자리에 있으면 미움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 직분에 대한 욕심으로 반역을 한 적이 있습니까? 반역을 당할 때 엎드려서 기도하나요? 분해하나요?
구원 받은 성도라면 향을 피워 속죄했던 모세와 아론처럼 죽은 자와 산자사이에서 죄인들을 위해 중보하면서 제사장적인 사명을 감당하기로 결단 하십니까?
둘째, 주의 장막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1-4절 고라자손은 시편을 11편정도 썼는데 그 중에서 84편은 제목에 따라 ‘인도자에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라고 되어있습니다. 깃딧이란 오늘 날에 기타와 유사합니다. 그것을 기쁨으로 부른다는 것은 포도주를 밟아서 짜잖아요. 우리 인생도 밟혀서 십자가를 거친 이런 찬양의 의미를 고라자손이 경험했다고 보여집니다. 고라 자손이 주의 장막, 여호와의 궁정, 주의 재단, 주의 집 등 교회하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감격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보다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회막에서 수종 드는 일, 찬송하는 일, 성막 문지기를 맡는 일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고라는 이런 일들을 하찮게 여겼지만 고라자손은 그 일들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고라는 외면적인 일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고라자손은 내면적으로 봤다고 합니다.
우리는 고라의 태도로부터 벗어나 고라자손의 신앙으로 성숙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궁정에서 섬기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모르고 직분타령을 하고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던 이 조상의 후예들을 성전문지기로 허락하셨는데 너무 기뻐서 찬송하는 것입니다. 주의 장막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직분이 높고 낮아서가 아니라 사모하는 교회가 있고 얘기가 통하는 보고 싶은 사람이 있고, 예배 볼 시간이 있다는 것이 감사한 것 입니다.
하지만 내가 직분타령을 하고 교회에 오면 보기 싫은 사람이 문 앞에 있으면 고라자손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평신도 중에서도 사역자를 세우는 교회라서 아주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인정이 되기가 진짜 어렵습니다. 같이 훈련을 받았다고 같은 사람은 아닙니다. 직분을 높이 받으려면 고난이 없는 사람도 감당하고, 고난이 있는 사람도 살려내야 점점 높은 직분을 받는 것이 맞습니다. 모두가 또 타당한 원리는 아닙니다. 고난이 많다고 고난이 많은 사람만 살리면 고난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공이 있는 사람은 보내기만 하면 살려냅니다. 정착시키고 살려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어그리가 안 되는 사람은 꼭 있습니다.
섬겨야할 사람이 다 따로 있는 것입니다.
* 교회 오는 것이 너무나도 기쁨입니까? 일입니까? 목장은 기쁨입니까? 일입니까?
주의 장막을 사랑한다는 것은 =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믿음이 통하는 사람끼리 만남이 기쁨이 있습니다. 교회 가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 것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 교회생활은 어떠십니까? 주일예배, 수요예배, 목장예배를 사랑하십니까? 이 중에서 무얼 사랑하십니까?
셋째, 내 하나님의 성전을 마음과 육체가 쇠약하기까지 사모합니다.
2절 너무 사모해서 쇠약해질 때까지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시인의 마음이 너무나도 간절히 영적육적으로 쇠잔해져서 큰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것은 환호소리와 슬픔의 애곡소리고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지치기까지 쇠약해졌습니다. 땅이 입을 벌리고 삼켰는데 여기서 남은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적혈통이 좋은 그들이 당연히 교회에서 살아야 하는데 쫓겨났기 때문에 주의 궁전에서 하루만 살아도 좋겠다고 하면서 조상의 죄를 내 죄로 여기고 겸손해졌습니다.
오늘 나에게 광풍이 휘몰아치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것저것도 해결이 아무것도 안되면 조상의 죄가 뭐가 있겠구나. 자손이 몇 백 년 동안 힘든 것입니다. 주의 궁전을 쇠약해질 때까지 사모해야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하기위해서는 나의 원수가 육신의 정욕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원수는 내 안에 있는 정욕입니다. 제대로 조절하기가 힘든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기는 하늘에 별 따기 입니다. 마음과 이런 육체가 같이 부르짖어야 하는데...
불신결혼의 특징들은 사람은 선남선녀라는 거죠. 신자를 넘어서는 매력과 메리트가 있으니 빠져드는 것이죠. 마음과 육체를 끊지 못합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괴로워하는 것과 다르게 아주 정돈 없게 헐크처럼 너 죽고 나죽자는 것이 있습니다. 부인을 사랑하기 보다는 자존심 때문입니다. 유교적인 이 나라에서 이 오픈을 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남자들은 사랑해서 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 버려지지 않아서 못 버리는 것입니다. 사랑도 아닌데 죽을 것 같은 것입니다. 육적으로 너무 쇠약해져서 내 마음과 육체의 중심을 잡지를 못합니다. 그런 일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사랑으로 착각하지 마시고 그냥 우리 가운데 죄가 있을 뿐입니다.
마음은 아는데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고라자손도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모세와 아론에게 시기질투가 나는 것입니다. 사람 살리라고 주신 남편과 아내인데 내 것이라고 해서 힘든 것입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 죄를 짓는 사람일 뿐입니다.
영적인 우울감이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쇠약해 졌어도 지금 그런 상황에서도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요동함 없이 가야한다고 합니다. 아무나 살릴 수 없습니다. 고라자손처럼 해석이 안 되면 최고의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누군데 이러면서 자존심을 세우면서 이혼을 하는 것입니다. 죽어도 죽어도 그 집에서 안 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집안이 거룩해 진다는 거죠. 교양 있는 사람만 있으면 거룩의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저절로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습니다. 어떤 사건이 와도 나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present is present. 현재는 선물입니다.
내가 힘들고 아무것도 안 되니까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죠. 또 어디서 쇠약해질까요? 상처 많은 사람은 상처가 아프기에 이 상처가 예수 안에서 해결이 안 되면 100% 약한대로 강한대로 남을 찌르던 나를 찌르던 공격을 합니다. 쇠약해질 일은 너무나도 많습니다. 그러나 오직 쇠약해질 때까지 주님을 사모해야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은 모든지 할 수 있다가 믿음의 정입니다.
*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서 지옥을 살고 있나요? 아니면 내 마음과 육체가 영적으로 쇠약해지기까지 주님의 궁정을 사모합니까? (= 이 육신이 쇠약해져서 지옥을 살고 있습니까? 영으로 쇠약해져서 주님의 궁정만 사모하고 있습니까?)
넷째,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주님이 안식처입니다.
3절 내가 형편없지만 주님을 부르짖게 되니까 안식을 얻게 됩니다. 수 백 년이 지나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방문해주셔서 드디어 성전 문지기하는 자손이 생긴 것이죠. 우리 집에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가정에 방문해주실 것을 믿으며 여호와로 인해 기쁘고 즐거워하리라. 이것이 안식입니다. 안식은 나중에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누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놓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하면서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주인공입니다. 모태 전부터 창세 전부터 택함을 받은 자.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는 자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4절 건물이 허름해도 주의 임재가 있는 곳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5절 주께 힘을 얻으려면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고라 자손은 자기 방법으로 사람에게 힘을 얻기 위해서 애를 쓰다가 마음의 원망의 대로, 미움의 대로, 불법의 대로, 정욕의 대로가 있기에 버림을 당한 것입니다. 그 때는 안 돌아올 사람인 것이죠. 이런 사람은 죽을 때까지 영접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안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 여러분의 안식처 어디 있나요? 누구에게 위로를 얻나요? 마음 속에 시온의 대로가 있나요? 원망의 대로가 있습니까?
다섯째, 내 하나님의 성전은 눈물골짜기를 통과할 때 사모됩니다.
6절 내가 눈물 골짜기를 통과할 때 다른 사람이 나 때문에 샘물을 마십니다. 그리고 눈물 골짜기를 통과하면 먹을 마실 물들이 있습니다. 실제로도 샘이 솟는 곳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고라자손이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눈물 골짜기를 통과하는 것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 샘물을 마셔야합니다. 이 기적을 창출하시는 주인공이 되셔야합니다. 비가 조금 와도 윤택을 입히게 됩니다.
7절 영적인 자는 조그마한 일에도 감사합니다. 점점 힘을 얻어갑니다.
8절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9절 나를 도와줄 사람은 없지만 나의 방패 되심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10절 반역을 이용해서 쫓겨났던 고라가 하나님의 궁정의 문지기라도 좋다고 합니다. 어떤 조건과도 비교 할 수 없습니다. 구약에서 시간은 내용으로 결정됩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의 임재가 결정합니다.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11-12절 자신의 가문을 망가트려서 공동묘지에 간 것처럼 전부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제일 좋은 것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면서 이런 믿음의 고백을 고라자손이 했다고 합니다.
방패는 언제나 보호자가 되어주십니다. 은혜와 영화를 주시는 분도 하나님인데, 그러려면 정직해야하는 것이 수반되어야하는데 정직히 행하려면 거짓이 무엇인지부터 살펴야합니다. 거짓이란 어떤 사실자체와 자신의 의견을 구별을 못하는 것입니다. 소문을 퍼트리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해도 한 말에 책임지지 못하면 거짓입니다. 매일 한계를 뛰어넘는 약속을 하고, 지나친 강조를 하고, 지나치게 말이 많고 이것이 다 거짓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것이죠. 주께 의지하지 않으면 날마다 실수할 수밖에 없고 정직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내 의견인지 사실인지 자신도 헷갈립니다. 누구에게 이야기 하면서 자기생각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로뎅이 오뎅이 됩니다.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때 저 사람이 가십만 퍼트리는 사람인지,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인지 분별해 낼 수 있는 사람이 내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 한다고 분별이 안 돼서 다 남들 죽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다 가십이 되고, 소문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고라자손의 특징 이였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려면 하나님께 양육을 잘 받아야합니다.
오늘 본문에 세 번에 걸쳐서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4절에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5절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12절에 주께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예수 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 너무도 절망적인 환경에 처하셨습니까? 눈물 골짜기에도 많은 샘이 예비 된 것을 믿으세요? 그 분의 위로를 체험하십니까?
<기도제목>
다혜언니
허리 치료잘 받을 수 있도록
진로기도 할 수 있도록
집에 전화 자주 할 수 있도록
경연
아빠랑 만날 수 있도록
큐티 조금이라도 읽고 할 수 있도록
소연이를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지현
반수 잘 견딜 수 있도록
아빠 정죄하지 않을 수 있도록
시온
규칙적인 생활하면서 알바핑계대지 않고 해야 할 것 할 수 있도록
가족들에게 대우받으려고 하지 않고 해야 할 역할 할 수 있도록
SNS 및 핸드폰 사용 자제할 수 있도록
지원
몸과 마음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사람들한테 할 말 잘 할 수 있도록
일찍 잘 수 있도록
경은
실습하면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받지 않을 수 있도록
교회 다니면서 덜 외로워질 수 있도록
다음 학기 기독교 동아리 기도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의지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아빠구원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혜령
큐티 시작할 수 있도록
가족여행 아무 사고 없이 싸우지 않고 잘 다녀올 수 있도록
다이어트 건강하게 할 수 있도록
세영
실습 나머지 기간도 잘 버틸 수 있도록
매순간 하나님께 지혜 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