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10_일3_김양재목사님_내하나님의성전_시841-12
[주일예배 설교]
시편84편 10절. 저 유명한 구절은 유다 자손의 시가 아니라 고라 자손의 시 입니다. 고라 자손이 어떻게 이렇게 주의 집을 사모하는 자의 삶이 되었을까요?
1. 권위에 도전을 해서 망한 경험이 있습니다.
(고라 자손은)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을 했습니다. 너만 왜 직분을 가지냐?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흔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모세에 대해서는 교만하다 분수에 지나치다 왕이 되려 한다고 선동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는 늘 백성들의 원망에 시달렸고. 하루도 마음 편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이들에 대한 폭동을 하나님에 대한 폭동으로 간주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산채로 땅에 묻었습니다. 고라 자손의 책임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렸어요. 온 백성에게 전염병이 퍼지게 되었어요. 여기 저기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 속에서. 모세는 아론에게 향료를 가져와서 향을 피워 백성들을 위해 속죄하라고 합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속죄의 향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죽음이 멈췄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임에 틀림없지만. 제사장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야 하는 자리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예수님은 제사장의 완전한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서 죄인을 위해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적용
생명을 내놓고 중보하는 이런 제사장의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나눔
집사님의 목장에 왜 그런 힘든 사람들이 왔을까요?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들이 쎄요! 내 맘대로 안 되는 삶이 있던 삶을 산 사람들은 굉장히 약해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풀리지 않는 고난이 있다면,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있구나.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것이 있구나. 생각하세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랬더니 맞아요~ 그래서 평원님이 또 얘기하는 거에요. 목장은 붙어있는 것만도 감사하다. 이런 군번은 아니죠. 바른 말을 들을 수 있는 수준도 있기 때문에. 한 세 번 정도 들어주세요. 두 번 정도 옮기고 나면 그 다음은 안 옮기세요. 자, 우리가 별 인생이 없습니다. 부부도 나쁜 신랑 좋은 신랑이 없어요. 나에게 맞는 신랑이 있을 뿐이에요. 둘이 둘이 너무 이상한데 둘이 맞으니까 잘 살더라구요. 좋은 목원, 나쁜 목원 없습니다. 그저 나에게 맞는 목원이 있을 뿐이에요. 우리에겐 목장 개편이 있잖아요! 목자의 자리에 있으면 누군가에게 꼭 미움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혹시 누군가 목자를 미워한다면, 그 사람은 목자 되고 싶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하세요.
적용
직분에 대한 욕심으로 반역을 한 적이 있습니까? 반역을 당할 때 분해 합니까, 억울해 합니까? 모세처럼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서 죄인들을 위해 제사장적인 삶을 살도록 감당하십니까? 생명을 내놓고 살려야지 이러시면 아니되옵니다.
2. 주의 장막을 너무나 사랑합니다.
1-4절
고라 자손은요. 시편을 열 한 편 쯤 썼는데. 제목에 84편을 보면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깃딧이란 오늘날의 기타와 비슷합니다. 포도주를 밟아서 짜잖아요. 우리 인생도 십자가에 밟혀서 짜인. 완전히 망한 인생. 고라 자손도. 교회! 하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감격하는 것이 생겼습니다. 고라 자손은 그들의 선조 고라의 길을 따르지 않고 회막에서 순종하는 일, 찬송하는 일, 성전 문지기로 섬기는 일을 귀하게, 귀중하게 봤습니다. 고라는 외면적인 것을 중시했지만 고라 자손은 내면적인 것을 중시하고 고라를 떠났습니다. 고라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고라 자손의 성숙된 태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직분 타령을 하고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던 고라 자손. 화장실 청소한다고 너무 기쁜 거에요. 할렐루야 놀랠루야 애들 갈랠루야. 얘기가 통하는 사람이 있고. 갈 예배가 있고. 부글부글 끓고. 교회 가면 보기 싫은 사람이 딱 있고. 그러면 고라가 되는 거에요. 평신도. 쟤하고 나하고 뭐가 달라? 이렇게 되는 거죠. 우리는 아주 성숙하지 않으면 이것을 인정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그것의 모델을 보일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직분을 높이 받으려면 고난이 없는 사람도 살려내고, 고난이 있는 사람도 살려내야 직분을 높이 받습니다. 내공이 있는 사람은 고난이 있는 사람도, 고난이 없는 사람도 보내기만 하면 딱딱 살려냅니다. 힘든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어쨌든 정착하고 살려내는 사람이 있는 교회가 성숙합니다.
나눔
이분이 부목자를 오래~ 하고 목자가 됐어요. 이분 나눔이 그거에요. 목자 되고 딱 하루 좋았다. 부목자 고난이 시작되었다. 평원님이 이렇게 처방합니다. 우리가 바울 보고 분한 게 아니라 옆집 김집사를 보고 분한 거에요...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왜냐하면 저는 남의 말을 안 듣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제가 목자님의 부목자로 갔다고 생각해보세요. 섬겨야 할 사람이 밑에 와 있으면 우리는 괴로운 거에요.
적용
교회 오는 것이 너무나 기쁨입니까, 일입니까? 목장에 가는 것이 너무나 일입니까, 기쁨입니까? 목원들, 목자들, 부목자들, 권찰들, 다 적용해보세요. 사람은 환경에 장사가 없어요.
장소와 시간을 사모하는 건. 그건 진짜 장소의 감격이고 시간의 감격인 것 같아요. 장막에 대한 사모함이라는 건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사모함 같아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주의 장막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은 꼭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한 사람을 자꾸 만나게 되고 자꾸 모이게 되고. 기도응답이 되더라구요. 또 물론. 교회에서 그런 사람들끼리 만나는 그런 기쁨이 있었어요. 교회 가는 것만이 다는 아니에요. 왜냐면 시인은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살고 있는 거에요. 교회를 못 오면서도 이런 찬송시를 썼다는 거에요. 고라 자손이 멸절될 뻔 했는데. 지금 문지기로 턱걸이로.
적용
여러분의 교회 생활은 어떠십니까? 목장모임, 주일예배, 수요예배를 사랑하십니까? 주일예배, 목장모임, 수요예배 중에 뭘 사랑하시는지 돌아보세요.
3. 내 하나님의 성전을 마음과 육체가 쇠약하기까지 사모합니다.
2절
너무 사모해서 쇠약해질 때까지. 앉으나 서나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한다고 했어요. 속에서 폭풍이 일어날 정도로. 쇠약하다는 초췌해지고 시들어가는 상태에요. 시인의 마음이. 살아계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기까지 사모하는 거에요. 기쁨의 환호성 뿐 아니라 슬픔의 애곡소리까지 포함합니다.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었으면 내 영혼이 슬프기까지 부르짖었겠습니까. 고라 자손이 산 채로 땅에 묻히는데. 땅이 입이 쩍 벌리는데. 여기서 살아남은 자가 되었다는 거죠. 주의 궁정에서 하루만 살았으면 좋겠다! 조상의 죄를 내 죄로 여기고 겸손해졌습니다. 오늘 나에게 광풍이 휘몰아치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거 저거 아무 것도 해결이 안 되면 우리 조상에게 뭐가 있어! 죄가 있어! 이렇게 생각하고 주의 궁정을 정말 쇠약하기까지 사모해야 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하는 것은 우리 육신의 원수가 바로 내 속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고라 자손의 원수가 바로 육신이었잖아요. 높은 자리가 많은 사람은 내려오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거에요. 정말 마음과 육체가 같이 부르짖어야 하는데.어떤 집사님은 맛있는 음식점을 향해 입맛을 다시다가 회사도 뒷전으로 하고 찾아간다는 거에요. 진짜 문자적으로 힘든 거에요. 불신결혼의 특징은 다 선남선녀라는 거죠. 너무나 이 불신결혼 때문에 눈물 흘리는 엄마들이 많아요. 나쁜 남편, 좋은 남편 없어요. 네. 진짜. 직분도 가지고 있는 거죠. 고라 자손 같습니다. 그분도 어떻게 해야 자신의 마음을 잡을 줄 알면 좋은데 안 되는 거에요. 어떻게 하죠? 견디다 견디다 자살충동을 느껴서 병원에 갔는데 거기서 우리들교회 설교를 들어보라고 했다는 거에요. 남자들은 여자들과는 달리 헐크처럼. 부인을 사랑하여도 자존심 때문에. 정말 유교가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우리 나라에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오픈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이에요? 얼마나 사단이 격동하겠습니까. 육적으로 너무 쇠약해져가지고 내 마음과 육체의 중심을 잡지 못합니다. 그냥 우리 가운데 죄가 있을 뿐인 거에요. 그거는 여자의 잘못도 아니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거에요. 마음은 원이로되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거에요. 고라 자손도.모세와 아론에게 시기 질투가 나는 거에요. 여기는 음란을 행한 사람보다 더 힘든 거에요. 역사상 최고의 심판을 당한 거에요. 생매장 당했잖아요. 목사아들, 청년부 리더 출신들. 문제가 생길 때. 사람 살리라고 주신 이 남편, 아내가 수고를 하는데. 내꺼 내아내 내남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내꺼가 다른 사람꺼 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이 받는 것입니다. 내꺼가 어디있어요? 다 하나님꺼지. 근데 고라 자손은 안 된다는 거에요.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거에요. 직분 타령 하는 교회치고 분쟁이 안 일어나는. 여러분은 아무리 쇠약해졌어도 지금 그 상황에서 사람을 살려야 해요. 그 쇠약해진 상황을 가지고 요동함 없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나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환경은 다른 사람 살리라고 그런 환경을 줬어요. 안 그런 사람들이 누가 그렇게 사모합니까? 이 고라 자손처럼 해석이 안 되면 최고의 직분을 가지고도 이혼을 그렇게 해대는 거에요. 한 집안 식구에서도 이렇게 안 되는 사람이 있으면 거룩해지고 다 천국 간다니까요? 저절로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나한테 주시는 선물인 거에요. 현재는 선물이라고. 할렐루야. 또 어디에서 해결이 안 될까요? 상처가 예수 안에서 해결이 안 되면 100% 남을 찌릅니다. 오직 쇠약해지기까지.
적용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서 지옥을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마음과 육체가 영적으로 쇠약해지기까지 주님의 궁정을 사모합니까? 한마디로 육신이 쇠약해져셔 사모합니까? 영으로 쇠약해져서 사모합니까?
4. 내 하나님이 주의 전에서 안식처입니다.
3절
수백년 내려 올 때까지 고라 자손이 회개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수많은 세월이 지나 하나님이 방문해주셔서 드디어 성전 문지기 하는 자손이 생겼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방문해주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라, 하는 것이 안식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놓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고 가는 것입니다. 나는 창세 전부터 택함 받은 자,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는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4절
고라 자손은 자기 방법으로 쉼을 얻고자 힘쓰다가 버림을 당했던 것입니다. 고라 자손은 말로 해서는 안 되는 사람인 거에요. 이런 사람은 죽을 때까지 영접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훗날에 그 자손들을 통해 이 남은 그루터기를 보시는 것이지요.
적용
여러분의 안식처는 어디입니까? 누구에게 위로를 얻고 있습니까?
5. 내 하나님은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할 때 주의 성전을 사모하게 됩니다.
6절
눈물 골짜기를 너무 잘 지나고 있으니까 내가 샘이 되어 나 때문에 다 살아나는 거에요.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얻기에. 애통하는 나를 통해서 다들 나를 인하여 위로를 얻습니다.
7절
영적인 자는 조그만 일에도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자는 매일 감사하는데 비판하는 사람은 매일 비판하니까 있는 힘도 매일 사라져갑니다.
10절
반역으로 인해서 쫓겨났던 고라가 이제는 하나님 궁정의 문지기도 좋다는 거에요. 구약에서 시간은 내용으로 결정되는 거에요.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결정됩니다. 신약에서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11-12절
자기네 가문을요. 깡그리 망가뜨려서 완전히 공동묘지에 간 것에도 불구하고. 이런 얘기를 고라 자손이 했다는 거에요.
★ 정직히 행하려면 거짓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소문을 퍼뜨리는 거. 진실도 한 마디 책임을 지지 못하면 거짓입니다. 지나치게 말이 많고. 이게 거짓이에요. 정직하지 못한 거에요. 맨날 치우치고. 말이 많고 과장하고. 내 의견인지 사실인지 자기도 헷갈리고. 그래서 로뎀이 오뎅이 됩니다. 솔직하게 얘기한다고 분별이 안 되서 다 남들 죽입니다. 까십이 되고. 소문이 됩니다. ★
진짜 우리들교회처럼 정신병원 같은 곳이 없어요. 빈들과 풍요. 양쪽 아끼지 않고. 오늘 본문에 세 번에 걸쳐 복이 있다고 했어요. 4, 5, 12절. 예수 안에 생명이 있어요. 예수 안에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목장에서 목자님들을 힘들게 했던 사람이 나였습니다. 야. 느그들이 내 고난을 아냐? 이런 사람들이 힘든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어떤 사람이 와도 요동함이 없이 잘 받아낸대잖아요?
적용
너무도 절망적인 환경에 처하셨습니까? 눈물골짜기에도 많은 샘이 예비된 것을 믿으세요. 그분의 위로를 체험하십니까?
[목자님의 목장 스케치]
지난 주와 같은 장소인 3층 테라스로 이동하였습니다. 일부 참석하지 못한 목원들이 있었지만 다음 주에는 모두 참석하기를 고대하며 6명이(박수동, 표승범, 이종춘, 황태훈, 이익, 이성규) 내 하나님의 성전이 안식처인지와 눈물의 골짜기를 통과해야만 사모가 되는지를 대해서 나눔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