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진짜 일케 제목 쓰구
오늘 회사 가자마자 안쓰면 사람이 아니다!!!!
쓸거야 정말 정말 쓸거야 정말루! 적용!!!
ㅠㅠ 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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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토요일 자정이 되어서야 올리네요 ㅠㅠ 흐아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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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6월 26일 주일설교) 이사야 6:1~8절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화해를 하고 화려한 장례식을 해도 또 서로 용서를 해야할 일이 있고 그 가운데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을 주님은 부르십니다. 왜 부르십니까? 거듭난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서 기다리지 못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선지서는 선지자의 소명을 맨 처음에 기재하는데 왜 그럴까요?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제 화나셨어요. 회개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시고 이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을 막으라는 것을 말해야하는 기가 막힌 사명을 가진 선지자입니다. 우리가 6.25를 상기하면서 폐허의 아픔에서 회복시켜 주셨는데 지금 죄와 동행하는 우리민족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150여년 후에 망할 것을 말해야하고 또 망하지도 회복하지도 않았는데 회복된다고 말해야하니 배경설명이 없이는 이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1장부터 5장까지 죄만 짓는 이스라엘의 모습에 대해 나오고 이 죄가 큰 만큼 6장의 부르심의 내용도 혹독합니다. 이제 오늘은 그 부르심을 받는 과정을 다루고자합니다. 이사야 6장은 일대일 양육과제 큐티 본문이예요. 그래서 양육을 받은 분들은 아마도 이해가 너무 잘되지 않을까 싶은데 오늘은 일대일 양육을 하는 것처럼 한절 한절 찾아보고 나누고 기도도 해볼까 합니다. 일대일 양육을 안 받은 분들은 오늘 체험학습을 하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첫째, 부르심은 위기를 기회가 되게 하십니다. 1절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 그랬습니다. 웃시야왕이 죽었답니다. 이 죽던 해에 항상 육하원칙으로 생각해 볼 때 [죽던 해에 이사야가 본즉]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어야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웃시야 왕이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보면 앞뒤전후 문맥 역사를 생각해보는 것이 적용에 도움이 됩니다. 웃시야왕은 52년간 유다를 통치하며 유다의 유례없는 번영을 주도한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블레셋 지역을 장악하고 항구를 장악하여 국제무역에 뛰어들어 사치품을 많이 수입했으며 산간지역을 개간하여 농업을 장려했고 신앙적으로도 아주 훌륭한 왕이었어요. 그러나 많은 축복을 누리게 되자 교만해져서 제사장의 사역을 탐하며 자신이 예배를 주관하다가 문둥병에 걸린 왕입니다. 마지막에 안좋았지만 나라에 부와 권세와 힘을 가져다준 왕의 위세에 기대어 살던 백성들에게 이 왕의 죽음은 큰 상실감을 가져다준 커다란 고난이었을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의지하는 대상이 없어졌기에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누구를 의지해야하나 또 누가 내편인가 하는 극도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사야는 무엇을 보았습니까?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그랬습니다. 웃시야왕의 보좌가 너무나 높고 그때 이방나라인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722년에 멸망시켰으니까 그 앗수르왕의 보좌는 더 어마어마하게 높고 그런데 그 왕들의 보좌보다 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주님을 이제 봅니다. 이사야가 웃시야왕을 의존하며 그아래 왕실 서기관으로 있을때는 하나님의 계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웃시야왕이 죽었을 때 비로소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옷자락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연기가 충만한 것을 봅니다. 자 어디에서 보았습니까? 성전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국가적 개인적 위기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닌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엎드려있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본것입니다. 성전이 중요합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를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과 씨름하며 오래 인내하고 기도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예배생활을 여전한 방식으로 잘하는 것이 부르심에서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관점에서 1절을 다시 본다면 나의 가장 큰 의지의 대상인 웃시야왕이 바로죽던 그해에 성전에서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계신 진정한 왕 여호와하나님을 보았다라고 할수 있겠죠. 즉 내가 의지하는 웃시야가 죽을때까지는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으시는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의 웃시야가 죽을 때 부르심을 받습니다. 웃시야의 죽음은 큰 고난이지만 인간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일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내가 기대하고 의지하는 웃시야는 누구입니까? 선지자 이사야는 웃시야왕때 부르심을 받아서 요다마하스(?), 히스기야와 같은 여러왕을 거칩니다. 웃시야 왕 밑에서 편안하게 잘먹고 잘살수 있지만 그런 웃시야는 죽습니다. 웃시야가 죽는 것이 부르심을 받는 기회가 되었으나 이사야에게는 고난이었고 이후 아하스라는 아주 악한 왕을 섬깁니다. 또 히스기야는 성군이어서 좋았지만 알다시피 앗수르가 쳐들어오는 나라적인 환란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왕에 따라 좋은 왕, 악한 왕을 거칠때에 믿음이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어요. 이사야는 4왕을 거치면서 한결같은 소명의식을 가져야만하는 그런 엄청난 소명을 받습니다. 이 소명은 환경에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선지자는 누구를 만나더라도 어디를 가더라도 한결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믿음이 없는 아버지 밑에서 핍박받고 있다가 믿음좋은 시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잘해주니 도리어 믿음이 나태해지고 흔들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사야처럼 부강한 왕, 아주 악한 왕, 최고의 성군 등 네 왕을 만나면서도 믿음을 지켜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엄청난 소명이라고 봅니다. 이 1절을 저한테 적용해보면 저도 인생의 완전 의지의 대상인 남편이 죽었어요. 남편이 힘들게했지만 의사이고 원장이고 죽을때까지 나를 근사하게 포장해 줄 사람이기에 그가 새사람이 되어서 같이 주의 일을 해야지, 죽는 것은 내가 죽어야지 남편이 죽는 것은 제 각본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아무렴 제가 과부로 주의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겠습니까. 과부는 아무리 힘들게 해도 차원이 다른 아픔입니다. 여자도 무시를 받는데 과부는 얼마나 더 무시를 받겠습니까. 아이들도 남편이 힘들게 할때는 같이 한편이 되는게 있어요. 그러나 남편이 없으면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반쪽의 아픔이 있습니다. 아무리 여자가 잘나도 50밖에 안되잖아요. 그남편이 1이라도 51이잖아요. 이 배우자의 아픔과 비교가 안되는 것이 자녀고난이라고 이 목사가 이번에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자녀를 과부가 되어 키우는 것보다는 아무리 힘든 남편이고, 못난 아버지고 그 아버지가 힘들게 해도 그것이 온가족이 깨어있는 비결입니다. 인간이 노예근성이 있어서 과부엄마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이 무서운 폭력을 행하는 아버지가 한마디만 하면 천마디 잔소리와 비교할 수 없는 권세가 있기 때문에 학대를 통해서 깨어있게 됨으로 그래서 훌륭한 아버지라고 하는 겁니다. 얼마나 과부에게 자녀들이 효도가 안되면 디모데전서 5장 4절에 과부들에게 자녀나 손자가 있으면 효를 행하게 하라 고 명령하셨어요.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것이라고. 여러분들은 과부를 만나면 자녀들에게 “엄마에게 효도해라” 고 말하면 하나님이 여러분 받으신대요. 그니까 얼마나 과부 자녀들이 엄마에게 효도하기 힘든지 모릅니다. 그래서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인것입니다. 남편이 죽던해에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를 봤기 때문에 그 영광이 너무나 대단해서 말씀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에스겔 말씀으로 정확하게 날마다 큐티를 통해 높이 들린 주님을 보게 되었어요. 여러분들도 큐티를 하다보면 이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왜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인가 하면은요, 제 남편을 데려간날 에스겔도 아내를 데려갔기에 이것이 영광중의 영광이었어요. 제가 따라갈 수 도없는 에스겔 선지자와 똑같은 고난을 당한거예요. 상상할수도 없는 주님의 영광이 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느꼈어요. 에스겔 말씀으로 내 삶이 해석이 된거죠. 이것이 성경이 나를 읽고 가는 것입니다. 웃시야가 죽고 사명을 받았듯이 에스겔이 아내가 죽고 전 세계를 향해 나아갑니다. 이 모든 것이 내 이야기로 들리니 최고의 고난이었지만 영광 중의 말씀으로 부르심을 받는거지요. 제가 지나고 보니 남편은 갔어야 되는거예요. 너무나 가치관이 단단해서 그 남편이 나를 문밖출입을 못하게 했기에 거듭났어도 아마 이 사역을 못했으리라 생각을 해요. 저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아무리 믿음이 있어도 절대로 저를 사역을 시키지 않았을거란 굳센 믿음이 있어요. 정말 사람이 믿어도 되는게 있고 안되는게 있는데 하나님을 늘 신뢰하고 갈때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지금은 모르나 후에는 알리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적용)
내가 의지하는 웃시야왕은 누구입니까?
내게 찾아온 웃시야왕의 죽음, 이 위기에서 어떻게 반응합니까?
말씀으로 고난보다 높은 주님을 보고 있습니까?
성전 앞으로 나아와 무릎을 꿇습니까?
늘 큐티를 하고 목장에 참여하십니까?
웃시야, 요다마하스, 히스기야 누구를 만나더라도 한결같은 믿음으로 나가십니까?
짧지만 1절로 기도를 해보겠습니다. 이제 정말 내가 의지하는 웃시야가 누구인가, 나의 웃시야가 죽더라도 하나님의 더 높은 영광을 보게 해달라고 내가 누구를 만나더라도 한결같은 믿음을 가지게 해달라고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나의 웃시야가 죽었습니다. 고난보다 더 높은 주님의 보좌를 보게 하여주시옵소서.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한결같은 믿음을 허락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제가 큐티를 하면서 막 혼자서 기도하고 눈물흘릴때가 많아요. 이게 말씀으로 기도하기이고, 제가 전화를 하면 또 말씀으로 상담을 해요. 그날 큐티책을 펴놓고 누가 오면 말씀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제 책 중에 고난이 보석이고 상처가 별이되어 있지요? 맞습니다. 제가 늘 고난을 나누고 상처가 별이 되어서 말씀대로 나누었습니다.
둘째, 겸손한 사명자의 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절입니다.
이 구절은 이사야가 아니라 천사들의 모습인 것이예요. 스랍들은 하나님 곁에 머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들로서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명자의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날개가 있어 둘로는 얼굴을 가리웠고 둘로는 그 발을 가리웠고 둘로는 날고 있습니다. 얼굴을 가리웠다는 것은 영광을 자기가 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로는 발을 가리웠다는 여기서 발이란 사울이 그의 발을 가리러 굴에 들어갔다가 다윗에게 죽을뻔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 발과 같은 언어예요. 인간의 구조로 말하자면 성기가 있는 부분을 가리웠다는 뜻입니다. 가장 부끄러운 부분을 가렸다는 것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가장 부끄러운 부분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무엇무엇을 했다는 생색인 것 같아요. 사명자는 사역을 하기 때문에 나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수 있어야 해요. 사명자가 생색을 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예요. 생색을 가리우길 바래요. 그리고 날개 6개중 2개만 활동하는데 쓰고 나머지 4개는 하나님 앞에 드러난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는데 사용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사역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날마다 하나님 앞에 직면해 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를 회개하고 정결하게 되는 거룩의 과정을 겸손한 모습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나의 부끄러움을 보고 이를 가리우는 것이 바로 큐티입니다. 저에게 적용을 해보면 저의 사명자의 본이 되는 분은 나서는 것을 싫어해서 얼굴과 발을 가리운 어머니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저가 과부가 된 것이 생색낼것이 뭐가 있겠어요.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사냐 하면서 아이들한테 생색낼 수 있었겠지요. 횟수로 제가 30년 과부의 삶을 살면서 조용히 6날개가 있어도 얼굴과 발을 가리우고 조용히 내 위치를 잘알고 조용히 날개짓을 했떤 것 같아요. 내가 겸손하려고 한게 아니고 과부로 환경이 겸손할 수 밖에 없으니 큐티를 하면서 저절로 이런모습이 올 수 밖에 없게 하셨어요.
나눔입니다. 나같이 성실하고 실력있는자가 왜 대우를 못받고 망하는지 사회와 환경에 욕을 하면서도 있어야 될일이라고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니 내 가정에임한 구속사의 사건으로 해석할 수 없었다. 근데 결정적으로 깨닫게 된 것은 10년동안 교회를 다니면서 나도 속고 남도 속인 내 열심을 내려놓게 되면서이다. 내가 굳세게 믿었떤 선한일이 끝이 나면서 하나님은 이런 선한 일도 끝이 있게 하시는구나. 하면서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는 적용을 하게 되었다. 내가 망하면서도 못깨달은 것을 내가 헌신했다고 생각한일을 내려놓게 하심으로 구속사적으로 내가 가장 안되는일, 내가 가장 선하다고 여기는 부분을 제하심으로 가르쳐주셔서 감사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교회일을 10년하게 되었다가 못하게 되었다. 이것이 사회에서 망한것보다 더 힘들었다는 고백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굉장히 힘든 적용인데 이것 때문에 주님을 만났다고 하시니까 얼마나 이 부르심이 있게 될줄 믿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무엇입니까?
가리우지 않고 드러내고 싶은 생색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명을 받들기 위해서 내가 있는 자리를 잘 알고 지키고 있나요?
여러분에게 본이 되는 분은 누구인가요?
또 자녀에게 본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기도를 해보겠습니다. 지금 이 내용을 가지고 내가 생색내고 있는 것이 무언가, 얼굴을 드러내고 발을 가리우지 않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아버지 하나님 얼굴을 가리우고 발로 가는 것을 숨기며 생색내지 않고 왔다고 하는 그런생색이 저에게 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을 좋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스랍들처럼 제 주제를 잘 알게 하여주시옵고 겸손한 사명자의 본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저에게도 본이 되는 사람을 붙여주시고 제가 본이 되는 목사와 어머니가 될수있도록 은혜를 내려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셋째, 부르심을 위해서는 나의 부정함을 인정하는 거룩이 있어야 합니다. 3절입니다.
여기에서 거룩하다를 3번 반복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찬양했기 때문입니다. 숫자 3은 완전수를 뜻하는데 하나님의 거룩함은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사명을 받으려면 이 구별된 가치관을 가지고 가야 하는데 이사야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오직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거룩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삼위 일체를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부하나님의 숨겨진 위로의 뜻이 성자하나님의 디자인하심으로 나타나심으로 그 경륜이 마리아 뱃속으로 겸손하게 들어오셨어요 낮아지고 낮아진 모습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야하는데 가장 낮아진 밑바닥에서 하나님을 나타낼 때 성령하나님이 도와주시는거죠. 그래서 낮은 자리로 갈 때에 예수님이 낮아지셨고 온땅의 영광이 충만했습니다. 특히 만군의 여호와라는 성호는 하나님이 전쟁에 능숙하심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그 누구도 하나님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내가 감당할수 없어보이는 전쟁에서 구별된 가치관을 갖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낮아지는 순종을 할 때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미 이기신 싸움을 하게 하실줄 믿습니다. 자, 이구절은 제가 어떻게 적용할까요? 저도 걸레질로 낮아졌고 그것이 거룩하다 3번으로 삼위 하나님이 저에게 완전히 나타나셨는데 걸레질을 할때는 숨겨진 하나님읙 경륜을 몰랐죠. 그 감춰진 하나님의 영광을 걸레질로 낮아져서 알아갈 때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결혼을 잘 지킬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 영혼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은 믿음의 분량대로 감춰진 하나님의 영광을 잘 몰라요. 그래서 저도 그때 죽고싶고 이혼하고 싶었는데 이 낮아지고 계집종인 저를 성령하나님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쉽게 이혼을 하고 자살을 하는데 저는 죽지도 이혼하지도 않게 하셨기에 지금 하나님의 대단한 경륜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거룩입니다. 진정한 거룩은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같이 써야 한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내 삶으로 거룩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낮아짐의 경험을통해 거룩을 설명하셔야 합니다.
나눔입니다. 저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신 아들이 황폐해지기까지 끝을 보며 끝이보이지 않는 절체절명의 위기속에서 찾아오셨습니다. 근데 기복적으로 기도받고 기도하고 기도원을 찾아가도정신병원에 찾아가도 답이 없고 아들은 약을 먹지 않고 또 하나님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끝도 없는 방황과 학교 부적응으로 이분이 낮아진 것은 특별히 교사이기 때문에. 교사인 엄마 아들이 중학교, 고등학교도 졸업못하게 생겼어요. 결석일수가 늘 안차서 죽을껏같아서 울고 땅끝까지 내려가는거죠 얼마나 수치스럽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그러나 그 땅끝까지 내려갔을 때 주님이 기가막힌 셋팅으로 다시 길을 내사 죽을 것 같으면 겨우겨우 어떻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겨우겨우 가까스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리고 대학에도 들어갔다는 것 아닙니까. 길갈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게 되었고 약재료로 다른 사람을 살리게 되었습니다. 문제부모와 문제 학생에 대한 체휼의 마음을 가지고 도와주게 되었어요. 거룩한 삶이 하나님이 도우셨습니다. 그때는 감춰진 하나님의 경륜을 알 수 없어요. 힘만들어요. 근데 지나고 보면 전부다 상처가 별이 되었습니다.
적용) 여러분 인생의 목적은 거룩입니까? 행복입니까? 지금 여러분의 인생은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습니까?
4절입니다. 목장에서 나누는 오픈과 찬송이 스랍의 찬송소리와 같고 예배때마다 느껴지는 우리들교회 생기가 문지방을 요동케 한다고 어떤분이 나눠주셨어요. 5절입니다. 여호와의 임재와 영광을 보는 첫 고백은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하다] 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자들이 해야할 말입니다. 한마디로 나는 죄인이다, 근데 죄인은 하나님을 보면 살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나의 실체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마도 이사야는 현실을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과 기존의 가치관이 산산조각나는 부서지는 경험을 했을 겁니다. 이사야는 자신도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고, 또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설 수 없는 내 자신이 죽어진 경험을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이런 고백이 필요합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유독 입술이 부정하다고 했을까요?선지자는 하나님 말씀을 전해야 하니 말을 잘해야 되잖아요? 입은 말씀을 전해야하는데 가장 필요한 도구일 뿐 아니라 또 가장 죄를 쉽게 지을 수 있는 기관입니다. 말을 잘해야하는데 거기서 날마다 나의 죄성을 보면서 간다는게 보통 어려운게 아닙니다. 왜냐면 그래서 “말은~잘하시네” 이러잖아요. 말은 잘하시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안되요.
말은 잘하시네 하는 부목사님의 나눔을 들려드리겠어요. 목장에서 목사가 올해 부임한 이 목사님을 보고 이제 아내를 사랑하냐고 물었어요 근데 금세 대답을 못하고 쭈뼜쭈뼛 하다가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을 한거예요.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아내가 예쁘세요?” 에 또 대답을 못하고 있다가 “마음씨가 예쁩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이제 했어요. 그리고 오다가 아내에게 솔직한답시고 또 이야기를 했어요. “ 나는 당신이 10년동안 입은 옷이 단 한번도 마음에 든적이 없어. ” 이러니 아내가 상처를 받는 것이 당연하죠. 아내가 이런 나눔을 받아낼만해서 했기에 저는 사모님 믿음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근데 거기엔 이유가 있겠죠. 물론 아내가 교사인데다가, 아 뭔가 나를 뒷바라지 해줄 것 같아서 결혼했는데 결혼하니 너무나 빚이 어마어마하게 있는거예요. 10년동안 빚을 갚아왔대요. 목사가요. 그러니 불평이 쌓여서 보기만하면 너때문이야 되잖아요. 그러나 그래도 어느 사모님보다 우리들교회와서 말씀이 들리는 거예요. 아내의 약재료를 대담하게 쓰이는 역할을 해줘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간이 배밖으로 나와서 이런 설교를 하나 했더니 우리들교회와서 아내팔아서 설교를 좀 해볼려고 한다. 우리들교회화 되어 벌써 답을 합니다. 이렇게 고백한다고 사모를 아무도 무시하지 않고 도리어 존경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남편의 말에 좋아하고 상처받고 이따구 짓 하지 말아요. 자존감 가지시기 바래요.
또 다른 부목사님은 아버지가 목회를 너무 잘하시는 존경받으시는 목사님이었는데 이 아버지가 너무 어려운거예요. 아주 성역 그자체인거예요. 하늘의 언어만 쓰시는 거예요. 올해 처음 아버지 앞에서 가정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는데 이 목사님이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아버지로부터 오는 모든 육권세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그 장면에서 울컥했대요. 그러자 돌아가면서 말씀을 나눌 때 아버지 목사님이 나도 죄인이라고 처음으로 고백을 하셨대요. 지금까지 드린 평생의 가정예배중 가장 은혜스러운 예배가 되었대요. 아버지가 죄인이라고 고백한 후 아버지가 편해졌대요. 자기의 부족과 죄를 고백하면 이렇게 편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듣고 싶은 고백은 뭘까요? 내가 하나님 영광을 보았지만 나의 죄를 공동체에 고백하며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지금 주님의 종으로 부르신 것 아닌가. 죄인인 나는 이를 감당할 수 없다 이것이 주제가가 되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날 때 그 때 나를 부르신다는 거예요. 죄를 보게 되면 아무것도 진도가 안나갑니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생각할 정도로 내 죄의 심각성을 봐야 합니다. 또한 선지자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으로부터 정결케 되어서 다시 입술이 부정한 백성으로 파송된 사람들이예요. 그래서 공동체가 아주 중요하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은 부정한 백성들이 있는곳에 왕으로 나타나셨습니다. 부르심을 받은자들은 구별된가치관으로 성전에서 혼자 거룩한 것이 아니라 백성과 동일한 죄의 정체성을 짊어지고 백성의 죄가 나의 죄라고 고백을 해야 합니다. 지나고 나서 보면 제가 다른 사람 때문에 힘들 때 너무 체휼이 되니까 같이 백성과 함께 갈 수 있게 해주셨어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체휼이 되고 애통이 되고 그 마음을 생각하게 되니까 여러분들 그런 마음 없이 입으로 설교만 하면 변하겠습니까? 이사야의 고백이 내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를 품고 가야 합니다. 그래서 부르심은 성경 인물을 보면 자원함이 아니라 부르심이 다 먼저라고 했어요. 모세는 혀가 둔하다, 예레미야는 나는 어리다,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하다, 그니까 소명받고 걸어가는 것은 절대 자원함이 아니라 부르심이 먼저라는 거예요. 공동체에서 열매 없는 사람이 공부잘 한다고 신학을 하면 많은 목사님들이 목회를 해도 열매가 없는게 아닌가. 내 열심히 사역하면 금세 탈진이 됩니다. 건강한 두려움을 끊임없이 저에게 주셨습니다.
적용)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듣고싶은 고백은 무엇일까요? 가족의죄, 공동체의 죄가 나의 죄라고 여기며 고백하십니까?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있습니까? 건강한 두려움이 있습니까?
기도) 여러분은 공동체의 죄가 나의 죄라고 고백하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하나님 나의 입술을 다리미로 밀어주시고 거룩하게 해달라고. 정말 하나님 말씀을 나와의 싸움에서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도록.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잘쓰게 해달라고.
[주님, 참으로 가족의 죄와 모든 목장식구들의 죄가 나의 죄인 것을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참으로 모든 것이 나와의 싸움인 것을 알게 하여주시옵소서 입술로 짓는 수많은 죄에 핀 숯을 가져다가 대고 아버지 정말 우리가 아픔을 통해서 하늘의 언어와 땅의 언어를 잘 쓸수 있도록 역사하여주시옵소서 그래서 참 거룩을 알고 설명할 수 있도록 그래서 인생의 주제가 거룩이라고 하셨사오니 이 거룩을 잘 설명할 수 있고 거룩한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넷째, 죄사함의 은총을 경험해야 합니다. 6절, 7절입니다.
이사야 자신이 망하게 되었다고 자신의 입술이 부정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 고백을 들으시고 이사야의 입술을 숯불로서 깨끗하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죄를 고백해야 우리 죄를 사해주십니다. 죄를 용서받은 경험이 없이는 누구도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나의 주홍같은 죄를 눈과 같이 하얗게, 진홍같이 붉은 죄를 양털같이 깨끗게 해주십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라고 어떠한 죄가 있다고 고백하면 타락하고 병든 부분을 하나님께서 정결케 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죄를 선포해주셔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고 이사야가 살아납니다. 죽음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의미하지만 죄를 고백하면 죽었던 우리의 영이 살아납니다. 핀 숯을 가져다 댈 때 굉장히 아프겠지요? 옛날에 다리미는 숯을 넣어 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네 죄가 사해졌다는 말씀에 드디어 이사야에게 생기가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날마다 사죄 선언을 들어야 합니다. 정죄의 마음이 아니라 회개의 마음은 인간 최고의 마음입니다. 회개가 최고의 감정이기에 제가 눈물을 흘리지만 얼마나 많이 누리는지 모릅니다. 죄를 사함으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로 자격을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도 살리는말, 절제의 말, 사람들이 살아나는 말을 하기 위해 사죄선언을 들어야 가능합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선언을 듣고 있습니까?
8절입니다. 이사야가 죄를 고백하고 사죄받은 다음에야 사명을 주십니다. 순서가 바뀌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마치 혼자 탄식하듯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자마자 이사야는 아까는 못간다고 입술이 부정한자라고 하더니 이제는 [내가 여기있나이다]. 짧은 순간 이사야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의 은총을 경험함으로 선지자 사역에 적극적 자세를 취하고 긍정적인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죄의 은총과 죄사함의 은총이 있을 때 부르심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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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냐늄>
1. 첫째, 부르심은 위기를 기회가 되게 하십니다.(1절)
적용) 내가 의지하는 웃시야왕은 누구입니까?
- 나의 웃시야왕은 누구인지 나누어보자.
혜주언니 : 아빠인 것 같다.
아빠가 굉장히 꼼꼼하고, 아빠가 소개팅남의 직장 다 검색해보심 .
그 회사는 연봉이 얼마 밖에 안돼. 생각해봐야겠어. 등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심.
근데 그런 아빠의 말에 내가 영향을 많이 받음.
아빠의 말에 휩쓸리게 됨. 소개팅 많이 할 때였음. 큐티 말씀은 정정환목사님.
지금의 나를 다 만든 거라구. 아빠와 분리가 안되었음을 알게 되었음.
아빠는 내가 만났으면 싶은 남자상이 따로 있는데, 나 또한 자꾸 이끌려가게 된다.
아빠의 말 한 마디에 크게 반응하는 내 모습이 있음.
아빠는 내가 청소년기에 계속 주식하시면서 집에 계셨음.. 그래서 오히려 자주 보는 아빠하고의 관계가 좋았음... 엄마가 일 나가고 아빠랑 얘기 많이 한...
아빠 우상이 있었음. 아빠를 우상시 하는 게 있는 거 같음.
혜준언니 : 나는 엄마가 우상. 아빠도 부족함없이 많이 사랑해줬음.
아빠는 좀 내가 보기엔 가정적이진 않았음. 나에겐 잘해줬지만 부부사이에서는 좋은 관계는 아니었음. 가족여행 간 적도 없음. 특별한 분열은 없었고 그렇다고 그렇게 화목하지도 않았던. 엄마가 우상이었음.
어렸을 때 하나님자리에 엄마를 올려놓고.. 엄마처럼 되고 싶어했음...
나도 항상 엄마처럼 저렇게 이쁘게 하고 다녀야지.. 이런 게 있었음.. 웃시야왕은 엄마였음...
말씀 보면서... 나의 음란함들이 깨달아지고... 엄마에 대한 우상이 깨졌음. 목사님이 천국에서는 우리 식구만 모이는 게 아니라, 구원받은 자들이 모이는 거라고 했는데.. 그 때 이후로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선이 되어갔던 거 같음. 그리고 교제에 대한 문제도 너무 눌려서.. 교제에 대한 두려움이 막연하게 있었음... 아빠 알콜중독 이런 게 있으니까. 나도 나의 음란함을 많이 보게 된... 엄마와의 갈등들도 해결됨....아빠도 경제적으로 기댔던 웃시야왕이었던 것 같음.. 아빠와의 분리가 안됨.
혜주언니 : 우리 아빠도 술만 마시면 마음에 담고 있었던 얘기들 하며 술 마시고 얘기하는..
아빠가 무시되는 마음이 있음. 어머니가 경제적인 부분 담당하시니까,
혜준언니 : 이사야왕.. 입술 관리.. 후우 ㅋㅋㅋ
말을 이쁘게 하지 않음. ㅋㅋㅋㅋㅋㅋㅋ 요즘 잠언 큐티 하면서도.. 지혜로운 자의 혀를 말씀하시는데, 분노표출을 그냥 함. 스트레스 푸는 방법이라고 합리화를 시켰었음.
남동생....한테도 무시 발언 ㅋㅋㅋ 웹개발 프로그램 함.. 수업 연계해주고 그런 거 함..
군제대 이후로 방황하고 있는.. 핸드폰비 내주고..
분노표출 언어생활.. 그 동안 아빠와 동생을 죽였구나.. 하는 생각이 듦.. 회개도 되고 그랬음. 근데 동생이... 누나 나 이제... 공부를 열심히 해볼려고 ㅋㅋㅋ 이랬음 ㅋㅋ
나름 적용으로 너 생각 잘했다고 칭찬의 언어 썼음 ㅋㅋㅋㅋ
동생이 듣더니 또 ‘나 그래서 목표가 생겼어!’ 라고 했음. 미국으로 가겠다고 한 동생.
성공을 해가지고 좋아하는 여자를 만나겠다 함. 학원에 갔는데 이쁜 여자 짱 많음 이럼 ㅋㅋㅋ 허접한 소리 하게 되는 ㅋㅋㅋㅋ 그래서 나도 모르게 또 한심해서 육두문자가 하나가 툭튀나왔음. 넘어가지지 않는 부분이 있음...
오늘도 계속... 어쟀거나.. 가정에서 부르심 받았는데.. 핀숯 갖다 대면.. 내가 아프니까 힘들기 싫으니까 스트레스 받는답시고 표출 다 하니까.. 언어생활... 하...
아빠랑 동생...
2. 겸손한 사명자의 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절)
- 생색내지 않고 가리워야 할 것 ??? 다시 말하면 드러내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
- 혜주언니: 인정받는 말, 일 잘했어. 같은.
- 송미: 집안일. 할머니 돌보는 것. 엄마아빠한테 ../// 생색///
- 혜준언니: 새가족목자... 일 중심이 되어야 하는. 나는 관계중심적인 사람인데.
그래서 일할 때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힘듦..
그리고 공동체 붙어있다보니 불러주시는 곳도 많아졌고, 해야할일도 많아졌음.. 예배드리러 온건데, 계속 일을 해야 하는.. 예배 드려도 멍때리게 되고.. 이렇게 까지 있을만한 깜냥이 안되는데.. 하나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심..
내가 내 힘으론 올 수 없는 사람인데.. 감사함도 없이 일로만 생각해서.. 생색난..
<기도제목>
1. 86 장혜주
1) 동생 집에 와서 지내고 잇는데 일주일 더 있는다 함. 둘째 동생.
동생 은근 소심해서, 상처 잘 받음. 사고 쳐서 결혼한거여서 가족들을 힘들게 했다는
그런 맘이 있음. 동생한테 힘든 티 안내고 잘 지내다 갈 수 있게.
집에 와 있는 동안 몸도 쉬면서 맘도 쉬고 갔으면 //
2) 학교에서 애들한테 힘들게 하는 애들이 있음. 강압적이지 않게.
사랑의 언어로 대할 수 있게.
3) 나를 힘들게 하던 학생이 있었음. 큐티책 보내주기. 택배 보내주기. 자기 상처도 보고 나를 좀 그만 귀찮게 했으면ㅜㅜ. 큐티책 잘 전달되길.
4) 신교제. 소개팅 일주일에 한두번.. 연락하고 잘 만나고 있었는데, 문자를 했는데 잘 연 락을 했는데 뒤에[ 연락이 잘 안되고 있는데... 원래 연락을 잘 안하는 사람인 거 같지 만..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음. 만남이 계속 되거나, 끊어질거면 끊어지던가ㅠ
아웃리치팀에서 좀 더 잘 지낼 수 있도록. 낯가림 있어도 한번 눈여겨 보기.
2. 88 한송미
1) 이번 주에 일할 때 좀 언어 생활 좀 잘 할 수 있게. 적용할 수 있게.
2) 아웃리치에 집중할 수 있게.
3) 캄다운할 수 있게. 혼자 있는 시간 잘 보낼 수 있게.
3. 85 공혜준
1) 목자 자리가 부담스러움. 나의 약점들이 많이 드러남. 말을 조리있게 잘 못함. 나의 숨 기고 싶은 죄들두 많은데 숨기지 않구 잘 드러내면서 본이 되는 목자가 되었음 좋겠음.
2) 집에서 나의 언어생활을 돌아보면서 ..장난으로라도 욕하지 말도록.
3) 아웃리치 준비 잘 할 수 있게.
4) 우리 모두 아웃리치 같은 곳으로 가니까 좋음. 셋 다 공동체 안에서의 즐거움을 즐기 고 누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