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씀요약 : “ 각인의 분량대로 ” ( 창 49:13-28) ♥
후일에 당할 일을 알려주는 것이 최고의 유언인데 최고의 유언은 유다처럼 내 죄를 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언이고 그것은 다른 말로 각 사람의 분량대로 주신 은사대로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65279;. 듣기 힘들어도 각자의 처한 상황과 입장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경계를 지킬 때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고 경계를 넘어가면 해롭게 합니다.
8명의 은사를 경계를 지킬 때와 넘어갈 때로 각인의 분량대로 보겠습니다.
1. 거하는 은사 스불론입니다.
공동체는 대부분 평범한 교인들로 구성되기에 이렇게 잘 거할 수 있는 교인이 없으면 졸립기만이 흔들립니다. 요동치 않고 정해진 지경에 거해주는 것이 얼마나 은사인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의 은사이기도 합니다. 나는 교회만 다니잖아 그러니까 나는 대단한 은사야 굉장히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스블론이 후한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2. 낮아짐의 나귀 은사 잇사갈입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얼마든지 져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령도 안 부리고 또 우직할 정도로 손해를 감수하고 남이 놀려도 놀리는 줄도 모르는 단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남이 옆에서 아무리 성질을 부려도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다가 한숨자면 다 잊어버립니다.
이렇게 섬기는 사람이 공동체에 있으면 그 자체가 남을 세워주는 은사가 됩니다.
어제 주인하다가 오늘 종이 되어도 상처가 없어요 이런 은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스불론보다 2줄이나 차지합니다. 굉장히 비중 있는 은사입니다.
그러나 잇사갈 같은 사람이 경계를 넘어가게 되면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는 것이 아무리 심각해도 놀 일이 있으면 만사를 재끼고 노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다보면 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에만 만족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봤자 무슨 소용있어 어떤 것으로도 이 상황은 변화시킬 수 없어 평소에는 아주 행복하고 명령대로 순종하며 자기 일과 조직에 아주 만족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기 방식대로 일이 전개되지 않으면 무척 조급해하고 짜증내다가 그것과는 무관한 상황에서 감정을 폭발하고 맙니다.
#65279;이런 방식은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유다처럼 자기 희생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잇사갈 처럼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면 하루아침에 주인에서 종으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3. 심판의 은사 뱀인 단입니다.
라헬의 종인 빌하의 소생으로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셨다는 뜻입니다. 옳고 그름을 헤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공동체에 있으면 얼마나 결정이 빨라지는 지 모릅니다. 단 같은 사람이 있으면 이 공동체가 탄력을 받습니다.
그러나 판단을 잘하다보니까 월권을 합니다.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밖에서 해결하는 것이 기복신앙입니다.
북이스라엘의 금송아지숭배에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단은 넘어가도 한참 넘어갔습니다.
단 같은 사람은 공동체를 해롭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망가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4. 추격하는 은사 갓입니다.
갓은 늘 추격을 합니다. 상처가 있지만 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목표의식이 분명하고 비젼을 제시하며 추격을 합니다. 공동체는 추격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적극적이라하고 유능해 보이며 자신감 넘치는 인물로 봅니다.
갓처럼 추격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이 경계를 넘어가면 자신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보면 시기와 질투를 느낍니다. 수단방법가리지 아니하고 성공하려 합니다. 늘 공격을 받고 해야 하니 강박관념으로 일 중독이 됩니다. 그러나 목표를 성취하려는 욕구가 지나치면 거짓과 기만에 취약해 집니다.
(적용) 스블론처럼 평범하게 거하다가 경계를 넘어서고 잇사갈처럼 낮아지다가 쉴 곳을 찾아 헤메이고 단처럼 심판하다가 월권을 하고 갓처럼 추격하는 중에 일 중독이 되는 은사중에 어디에 해당하십니까?
5. 공궤하는 은사 아셀입니다.
셀처럼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공궤하는 것도 좋지만 음식자체가 우상이 되어서 봉사중독이 되어서 예배를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갓지파나 아셀지파는 나중에 드보라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게 되어서 공개적인 비난을 받았습니다.
자기 은사를 넘어서면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6. 납달리 암사슴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은사입니다.
찬양의 은사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찬양할 때는 좋은데 상처가 많으니까 트러블 메이커가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항상 박수를 쳐주니 항상 특별하다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믿음도 없이 찬양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으면 믿음이 들어가기가 하늘에 별 따기입니다.
#65279;박수 받는 게 얼마나 독인지 모릅니다.
사람이 언제나 특별하고 선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기보다는 본인이 대단히 아름다운 소리를 이제 발한다고 생각하니까 경계를 넘어가며 노래를 합니다.
7. 보여주는 식물의 은사 요셉입니다.
얼마나 보여줄 것이 많은지 유다와 똑같이 다섯 절이나 축복을 합니다.
요셉의 이름은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는 뜻이고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름같이 된 것 같아서 전율이 느껴집니다.
유다는 처음부터 이름이 찬양하다입니다. 요셉은 적용을 잘해서 범사에 형통케 하셨습니다.
사자와 나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종류와 장르와 레벨이 완전히 다른 식물입니다.
고상한 축복으로 레벨이 다른 축복을 받았습니다.
경계를 넘어가지 않으면 이런 축복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공동체에서 이렇게 반드시 보여지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65279;요셉의 형통도 필요합니다. 역할모델인거에요
그러나 요셉은 무성한 가지로 경계를 넘어갔습니다. 받을 수 있는 복은 다 받아서 존재 자체가 여러 사람을 주눅 들게 합니다. 이렇게 많은 복을 받았는데 도리어 이런 복이 고약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존감은 나는 할 수 있다 인데 자만심은 나는 가지고 있다가 됩니다. 개인의 자존감이 지나치게 높을 때 자만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훗날에 보면 방종한 삶에 빠지고 요셉지파가 우상숭배에 몰두함으로 앗수르에 멸망당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8. 물어 뜯는 이리의 은사 베냐민입니다.
베냐민은 지고는 못삽니다. 그러나 물어뜯어도 저녁에는 나누니까 이런 무리가 있으면 교회가 일이 됩니다. 언제나 물어뜯어서 다 데려다 앉혀 놓습니다. 전도를 해도 지는 법이 없고
그래서 교회에 다 필요합니다. 베냐민이 경계를 잘 지키면 너무나도 아름다운 은사로서 공동체를 유익하게 합니다.
그러나 자기밖에 모르고 남한테 주는 것을 모르며 물어뜯는 이리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기가 쉽습니다.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섬김같이 데려다 놓고 하는 것 같아도 이기심으로 한 것들은 공동체에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옵니다.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과 구원 때문에 한 것은 나중에 표가 납니다.
그러나 이기심을 합리화하고 숨기려 할수록 신앙생활이 피폐해집니다.
정리를 8가지를 해보면 복음은 경계라 했습니다. 부족해도 넘쳐도 안 됩니다.
부족하면 사명을 못한 것이고 넘치면 사명을 넘어간 것입니다.
목음은 경계입니다. 자기자리 자기위치 자기주제를 아는 것입니다.
(적용) 아셀처럼 공궤하다가 봉사중독이 되며 납달리처럼 찬양을 하다가 노래를 하며 요셉처럼 무성한 복을 보여주다가 교만해지며 베냐민처럼 자라 나누다가 물어뜯는 은사 중에 어떤 은사인가요?
(적용) 난 어떤 지파인가?
결론적으로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을 받으려면 회개를 해야 합니다.
회개가 축복의 비결입니다. 각인의 축복은 회개해야 그 은사를 쓰임 받습니다.
(적용) 여러분의 은사는 회개 전 입니까? 회개 후 입니까?
#65279;
*(기도제목)*
정덕화
1. 막내 동생 불쌍히 여겨주세요
2. 말씀 잘 듣고 잘 회개하도록
3. 명주 수정이 놓고 기도 열심히 하도록
김가민#65279;
1.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2. 직장일의 영역이 넓혀지도록
3. 주님이 주신 사명의 길을 잘 가도록
4. 잘 회개를 하도록
5. 항상 건강 할 수 있게
김명주#65279;
1. 교회를 매주 잘 나올 수 있도록
2. 불쌍히 여겨주세요
3. 가족구원
4. 직장에서 일처리 잘할 수 있도록
김수정#65279;
1. 직장 일을 구하고 있는 데 잘 구해지도록
2. 배우자 만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