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스타벅스
참석: 이선애 강혜림 박세#65279;현
말씀: 창 49:13-28
제목: 각인의 분량대로
설교:
재미 있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부모가 육적으로 잘 살면 자녀가 잘 될 수 있는 확률이 7 프로밖에 없고, 부모가 고생을 하면 잘 될 수 있는 확률이 70 프로라고 합니다. 알맞은 가난은 얼마나 최고의 교육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녀들에게 고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이를 갈고 돈을 법니다. 후일에 당할 일을 알려주는 것이 최고의 유언인데, 최#65279;고의 유언은 유다처럼 내 죄를 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언이고 그것은 다른 말로 각 사람의 분량대로, 주신 은사대로 축복을 하는 것입니다. 듣기 힘들어도 각자의 처한 상황과 입장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말해 주는 것이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은사는 경계를 지킬 때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고, 경계를 넘어가면 해롭게 합니다. 지난 번 최고의 유언을 해 준 네 명을 제외한 여덟 명의 은사를, 경계를 지킬 때와 넘어갈 때로 각인의 분량대로 보겠습니다.
1. 거하는 은사 스불론 입니다. (13절)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해변에 거주 한다는 것이 무슨 축복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는 대부분 평범한 교인들로 구성 되기에, 이렇게 잘 거할 수 있는 교인이 없으면 존립 기반이 흔들립니다. 요동치 않고 정해진 지경에 거해 주는 것이 얼마나 은사인지 모릅니다. 한 절에 쓱 지나가는, 축복 같지 않은, 대단한 축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은사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나는 교회만 다니잖아. 그러니까 나는 대단한 은사야.” 하고 굉장히 감격하시기 바랍니다. 붙어만 있으면 수지 맞는다고 늘 말하는 축복이 바로 스불론 의 축복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해변에 배가 매여 있으면 언제나 망망대해로 나갈 수 있는 확률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여기 경계가 있다고 하잖아요. 여호수아 서에 보면, 스불론 에게 할당된 땅은 베들레햄 근처 내륙의 땅인데, 해상 무역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해변으로 움직인 것입니다. 스불론 지파가 상업적 동기에서 애초에 분배 받은 땅을 떠났다는 사실을 본다면, 야곱이 미리 알고 이것을 예언 했으니까 약간 비난에 가까운 예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가 돈이 좋아서 해변에 갔지만 그래도 시돈까지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시돈을 넘어가면 안 된다. 여기까지다.” 그런 거예요. 스불론 이 ‘후한 선물’이라는 뜻이에요. 후한 선물 이미 받았는데 더 많이 가져서 더 큰 영광을 돌리겠다고 시돈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2. 낮아짐의 나귀 은사, 잇사갈 입니다. (14-15절)
건장한 나귀가 꿇어 앉아 있는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약간은 모자라 보이지만, 자기한테 잘 해 주기만하면 아무 곳이나 꿇어 앉습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얼마든지 져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령도 안 부리고, 또 우직할 정도로 손해를 감수하고, 남이 놀려도 놀리는 줄도 모르는, 아주 단순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남이 옆에서 아무리 성질을 부려도 눈만 껌벅껌벅거리고 있다가 한숨 자면 다 잊어 버립니다. 이렇게 섬기는 사람이 공동체에 있으면 그 자체가 남을 세워주는 은사가 됩니다. 어제 주인 하다가 오늘 종이 되어도 상처가 없어요. 오케바리 좋아 좋아. 이런 은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스불론 보다 두 절이나 차지합니다. 굉장히 비중 있는 은사입니다. But, 잇사갈 같은 사람이 경계를 넘어가게 되면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는 것이, 아무리 심각해도 놀 일이 있으면 만사를 제끼고 노니 문제입니다. 교회에서도, “우리 이번 주일에 놀러 안 가요?”, “외식 좀 합시다.”, “누가 콘도 좀 안 빌려주나?” 밤낮 일년 열 두 달 엠티다, 바람 쐰다 그냥 놀러 갈 생각만 합니다. 그러다 보면 변화를 시도하기 보다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에만 만족합니다. 꾸물거리고 뒤로 미루고 완고해 집니다. 문제가 있을 때 목표를 설정하고 계획을 세워 봤자, “무슨 소용 있어? 어떤 것으로도 이 상황은 변화 시킬 수 없어.” 그러나 자기 방식대로 일이 전개되지 않으면 무척 조급해 하고 짜증내다가, 그것과는 무관한 상황에서 감정을 폭발하고 맙니다. 이런 방식은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다 처럼 자기 희생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잇사갈 처럼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면, 하루 아침에 주인에서 종으로 바뀔 수가 있습니다.
3. 심판의 은사 뱀인 단 입니다. (16절)
단 은 라헬 의 종인 빌하 의 소생으로,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셨다’ 는 뜻입니다. 옳고 그름을 헤아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때마다 심판을 잘 합니다. 이런 단 지파는 규모가 작아도 이스라엘을 너무 정의롭게 판단해서 한 지파의 구실을 톡톡히 합니다. 이런 사람이 공동체에 있으면 얼마나 결정이 빨라지는지 모릅니다. 문제를 바로 바로 해결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밤낮 잠만 자는 잇사갈 이 이런 결정을 하겠습니까? 그러나 단 같은 사람이 있으면 공동체가 탄력을 받습니다. But, 17절에, 그러나 뱀의 특성이 몰래 측면 공격을 해서 치명적인 독으로 죽이는 것이죠. 판단을 잘 하다 보니까 월권을 합니다. 그래서 약속의 땅을 받아 놓고 초점에서 벗어난 순종을 했어요. 유다 는 122 성읍을 다 우직하게 정복을 했는데, 단 은 여호수아 가 할당해 준 성읍을 쳐다도 안 본 거예요. 단 이 어떻게 넘어갔는가 하면 그 여호수아 가 할당해 준 성읍을 쳐다도 안 보고, 아주 평화롭게 살고 있는 라이스 주민을 갑자기 마구 약탈하고 정복하고 나서, 이것이 하나님이 명령하신 땅을 정복한 것이라고 부르짖었어요. 진짜 말도 안 되게 넘어갔어요. 안에서 해결 해야할 문제를 이렇게 밖에서 해결하는 사람의 특징이 기복신앙 입니다. 예를 들어서 죽어도 못 살 것 같은데, 그걸 버리고 갑자기 선교사로 떠나는 거예요. 이혼을 하고 떠나 버리는 거예요. 아내, 남편 다 꼴 보기 싫어서 떠나는 거죠. 결국 단 지파가 취한 라이스 성읍은 북 이스라엘의 금 송아지 숭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단 은 넘어가도 한참 넘어갔어요. 단 같은 사람은 공동체를 해롭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망가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4. 추격하는 은사 갓 입니다. (19절)
갓 은 늘 추격을 합니다. 왜 추격을 합니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민수기에서 르우벤 과 므낫세, 갓 지파는 서편 땅을 정복하기 직전에 푸른 초장이 있는 요단 동편이 너무 좋아서 그걸 달라고 해 가지고 분배 받았어요. 자기들이 원하는 곳은 딴 사람도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 트랜스? 요르단 지역은 열강이 침을 흘리는 곳이 되었어요. 날마다 침략을 받습니다. 그래서 추격을 받으니까 또 해야 되잖아요. 정신이 없습니다. 상처가 있지만 이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목표 의식이 분명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추격합니다. 공동체에는 어쨌든 추격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적극적이라고 하고, 유능해 보이며, 자신감 넘치는 인물로 봅니다. 그런데 히브리 언어로 갓 을 이야기 하는 이 19절은, 여섯 단어 중에 네 단어가 ‘괴롭히다’, ‘약탈하다’ 어근인데, 이 어근에서 변한 것입니다. 갓처럼 추격의 은사를 가진 사람이 경계를 넘어가면, 자신보다 앞서 가는 사람을 보면 시기와 질투를 느낍니다. 외부적인 성취와 업적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우를 범하니까 수단 방법 가리지 아니하고 성공하려고 합니다. 늘 공격을 받고, 해야 하니 강박관념으로 일 중독이 됩니다. 그러나 목표를 성취하려는 욕구가 지나치면, 거짓과 기만에 취약해 집니다.
Q. 스불론 처럼 평범하게 거하다가 경계를 넘어서고, 잇사갈 처럼 낮아지다가 쉴 곳을 찾아 헤매이고, 단 처럼 심판하다가 월권을 하고, 추격하는 중에 일 중독이 되는 이런 은사 중에 어디에 속하십니까?
5. 공궤하는 은사, 아셀 입니다. (20절)
공동체에서 음식 잘 해서 대접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지요. 우리 목장 예배 다 밥 먹으러 다니잖아요. 그 재미 때문에 가는데, 그래서 그 은사가 얼마나 사람을 세우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배우자 감을 만났는데 나는 일식, 중식,.. 전부 다 자격증이 있다고 하면 금새 합격되는 거 아시죠? 요새 이쁜 거 다 소용 없어요, 밥 잘 해 줘야지. 요새 젊은 사람이 밥을 너무 안 해요. 목장 예배 갔는데 젊은 새댁이 있는 집에 가면 우리 다 괴로와요. 그러니 목장 예배 때 밥을 좀 하기 바래요. 밥을 해 주기만 해도 고마운데 더군다나 음식을 잘 하니까 너무나 우리를 기쁘게 하는 거예요. 거기까지는 좋았으나 but, 아셀 처럼 사람들에게 음식으로 공궤하는 것도 좋지만, 음식 자체가 우상이 되어서 봉사 중독이 되어 예배를 넘어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갓 지파나 아셀 지파는 나중에 드보라의 전쟁에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공개적인 비난을 받았어요. 자기 일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예배에 참여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교회에서 김장 김치 담그고 꽃꽂이를 해 놓고는, 그러고는 예배도 못 드리고 그거 감상 하잖아요. 만나는 사람한테 “내 김치 어땠어요?”, “오늘 꽃꽂이 멋있었어요? 어땠어요?” 물어보고 평판에 신경 쓰느라고 봐도 예배가 안 들어오고, 사람들 만나도 그 얘기 물어 보느라고. 그리고 더 맛있는 김치 만들려고 젓갈 사러 전라도 갔다 와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를 놓쳐요. 예배가 문제가 아니에요. 목장 예배가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면 또 아셀 처럼 한 절에 쓱 지나갑니다. 물론 이런 사람 있어야 하지만, 자기 은사를 넘어서면 그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6. 납달리 암사슴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은사입니다. (21절)
아름다운 소리는 좋은 소리고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는 은사를 가졌습니다. 교회에서는 문자적으로도 찬양의 은사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정말 납달리 은사를 잘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But, 그러데 첩인 빌하 의 소생 납달리 는 아버지가 야곱 의 첫 아들, 르우벤 하고 통간을 한 상처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상처가 별이 되어 (우리가 이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노래를 하면 굉장히 아름답잖아요.)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면서 찬양을 할 때는 너무 아름답지만, 우리가 어떻게 날마다 아름다운 찬양을 하겠습니까. 찬양할 때는 좋은데 상처가 많으니까 트러블 메이커 가 되기도 하는 거예요. 왜냐 하면 제가 어려서부터 성가대를 해 보니까, 사람들이 항상 박수를 쳐주니 항상 특별하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믿음도 없이 찬양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으면, 믿음이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인 거예요. 박수 받는 게 얼마나 독인지 모릅니다. 사람이 언제나 특별하고 선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기 보다는, 본인이 대단히 아름다운 소리를 발한다고 생각하니까 경계를 넘어가며 ‘찬양’이 아닌 ‘노래’를 합니다. 저의 언니 목소리 다 버렸는데, 그렇게 평생을 선교지에서 보내고 와서, 목회자 세미나에서 찬양을 했는데 정말 목소리도 그래도 좀 그 날은 나오더라구요. 우리는 목소리로 찬양을 듣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언니를 통해서 알았어요. 그런데 전부 다 노래를 하려고 합니다.
7. 보여주는 식물의 은사, 요셉 입니다. (22절-26절)
얼마나 보여줄 것이 많은지, (유다 하고 똑같이) 다섯 절이나 축복을 합니다. 요셉의 이름은,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는 뜻이고,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 하시기를 원하노라.’ 의 뜻 입니다. 그런데 이름대로 된 것 같아서 전율이 느껴집니다. 유다 는 처음부터 이름이 ‘찬양하다’ 입니다. 그런데 요셉 의 이름이 이래요. 요셉 은 적용을 잘해서 범사에 형통케 하셨습니다. 사자와 나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종류와 장르와 레벨이 전혀 다른, ‘식물’ 입니다. 야곱이 자녀를 ‘사자’, ‘이리’, ‘나귀’ 이렇게 표현하기도 하고, 물질로 표현 해서, ‘해변’, ‘물의 끓음’,.. 이렇게 표현을 했거든요. 그런데 이 요셉 은 종류와 장르와 레벨이 완전히 다른, ‘식물’ 로 표현을 했어요. 가지를 담장 넘어 드리우면서 우리가 따라가도 따라갈 수 없는, 고상한 축복으로, 레벨이 다른 축복을 받았습니다. 경계를 넘어가지 않으면 이런 축복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공동체에서 이렇게 반드시 보여지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재벌이 예수 잘 믿는 다고 하면, “야~ 예수 잘 믿더니 과연 재벌이 되었어.” 이러지 않습니까? 신자에게는 유다 의 찬양도 있지만, 반드시 요셉 의 형통도 필요합니다. 역할 모델인 거예요. 그런데 but, 요셉 은 무성한 가지로 경계를 넘어갔습니다. 받을 수 있는 복은 다 받아서, 존재 자체가 여러 사람을 주눅 들게 합니다. 이렇게 많은 복을 받았는데, 도리어 이런 복이 고약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자존감은, ‘나는 할 수 있다.’ 인데, 자만심은, ‘나는 가지고 있다.’ 가 됩니다. 개인의 자존감이 지나치게 높을 때 자만적으로 될 수 있습니다. 훗날에 보면 방종한 삶에 빠지고, 요셉 지파가 우상 숭배에 몰두하므로, 앗수르 에 멸망 당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관리하는 것. 이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8. 물어 뜯는 이리의 은사, 베냐민 입니다. (27절)
베냐민 은 지고는 못 삽니다. 그러나 물어 뜯어도 저녁에는 나누니까 이런 무리가 있으면 교회가 일이 됩니다. 언제나 물어 뜯어서 다 데려다 앉혀 놓습니다. 전도를 해도 지는 법이 없고, 그래서 교회에 다 필요합니다. 베냐민 이 경계를 잘 지키면 너무 너무 아름다운 은사로써 공동체를 유익하게 합니다. But, 베냐민 지파의 땅은 이스라엘 종족 중에서도 제일 강한 지파인 유다 와 (요셉 지파의 후손인) 에브라임 지파가 남북으로 막아주고 있어서 이방인의 침략을 덜 받는 곳이었어요. 여기처럼 안전한 땅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족한 것도 없고 약하지도 않은데, 그러면 감사해야 될 텐데, 자기 밖에 모르고, 남한테 줄 줄을 모르며, 물어 뜯는 이리의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쉽습니다. 헌신적이고 이타적인 섬김 같이 날마다 물어다 놓고 데려다 놓고 이러는 것 같아도 이기심으로 한 것들은 공동체에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옵니다. 전도를 이렇게 많이 하는데, (전도 왕을 뽑으니까) 몇 명을 한다고 해도, 인정 받으려고 한 것과, 정말 구원 때문에 한 것은 나중에 표가 나지요. 그런데 이기심을 합리화하고 숨기려 할수록 신앙 생활이 피폐해 집니다. 그 사람의 신앙 생활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이번 주일에도 제가 나눔을 보니까, “딸과 친한 친구가 잘 나간다는 소리를 듣고 속이 상했다.” 이러고 나눔을 했어요. “겉으로는 잘 되었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시기와 질투가 났다. 또 아들과 동갑인 언니의 딸들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그것도 시기가 나더라. 하나님께서 다 각자 다른 달란트를 주셨는데, 내가 왜 고민하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시기 장애, 질투 장애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런 것을 목장에서 나누는 게 어디에요. 그게 감사한 거예요. 말도 안 하고 있으면 정말 밥 맛이잖아요. 보면 다 아는데. 저 사람이 시기가 있는 걸 다 아는데. 그래도 말 하면 그 날부터 좀 귀여워 지잖아요. “나는 시기가 있어.” 이렇게 말하는 거 하고, 맨날 우멍하게 가만히 있는 사람은 우리는 말도 하기 싫어요. 그래서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게 너무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까지 정리를 해 보면, 복음은 경계라고 했습니다. 민수기에서 동서남북 경계를 딱 정해 주셨는데,부족해도 넘쳐도 안 됩니다. 부족하면 사명을 못 한 것이고, 넘치면 사명을 넘어간 것입니다. 복음은 경계입니다. 자기 자리, 자기 위치, 자기 주제를 아는 것입니다.
Q. 아셀 처럼 공궤하다가 봉사 중독이 되며, 납달리 처럼 찬양을 하다가 노래를 하며, 요셉 처럼 무성한 복을 보여주다가 교만해지며, 베냐민 처럼 잘 나누다가 물어 뜯는 은사 중에 어떤 은사인가요?
이번 주일은 목장 예배를 드리면서 나는 어떤 지파인가 여덟 가지 지파를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해변에 거하는 스불론 인가. 늘 쉴 곳을 좋아하는 잇사갈 인가. 맨날 옳고 그름만 판단하는 단 지파인가. 물어 뜯는 이리 인가. 보여주는 요셉 인가. 추격하는 갓 인가. 여러분들의 특징을 하나 자기가 정하세요. 결론적으로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을 받으려면 회개를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회개가 축복의 비결입니다. 각인의 축복은 회개해야 그 은사를 쓰임 받습니다.
☞ 이 지파들 중에 제일 많이 경계를 넘어간 두 지파에 대해서 다뤄 보려고 해요.
첫째, 단 지파 입니다.
단 은 태생부터 야곱의 첩 빌하 의 자식으로, 억울하게 태어났습니다. 눈치 보며 살다 보니 아무 죄책감 없이 거짓말 하고 변명하는 상황들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며 정당화 하고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순간순간 임기응변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옳고 그름을 헤아리는 것 같지만, 자기 입장에 유익한 것을 쫓습니다. 그래서 결국 공동체를 떠나 마음대로 금 송아지 섬기고 이스라엘을 도탄에 빠지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신약에 유다 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고 하신 것 처럼, 야곱 도 단 에 대해서 예견을 했다고 봅니다. (18절) 그래서 야곱은 이 기가 막힌 자식 단 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를 했어요. 여호와 만이 구원인데, 단 은 여호와 만이 구원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경계를 넘어갔잖아요. 우리도 내 자식이 구원되지 못 할 확률이 12분지 1인 거예요. 그러니까 단 이 구원되지 못 할 확률이 되어서 나중에 열 두 지파에서 빠졌어요. 그러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그래도 결국 이 단 지파는 구원되지 못 했어요. 야곱 의 기도도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서 그 12분지 1에 속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요셉 지파 입니다.
그런데 경계를 넘어가는 지파가 또 있으니, 바로 요셉 지파입니다. (24절) 요셉 지파는 단 지파랑 똑같이 이스라엘에 금 송아지 우상을 가져왔습니다. 그리스도의 표상과 진짜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요셉 은 마지막 분별도 그러했지만, 결혼도 요셉 은 이방신을 섬기는 애굽 의 온 지방의 제사장, (‘온’ 은 ‘태양의 집’ 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제사장 중에도 최고 제사장. 그 애굽 신을 섬기는 제사장 보디베라 의 딸 아스낫 과 했습니다. 아주 요셉 은 애굽 인인 거예요. 완전 거기 귀화 했어요. 총리가 됐어요. 이름도 애굽 식으로 바꿨어요. ‘그 신이 말씀하신다’ 뭐 그런 뜻으로 이름도 바꿨어요. 그러니까 야곱 은 그냥 애굽 인으로 살아가는 이 요셉 을 보면서 기도가 저절로 나왔을 거예요. 죽기 전에. 그래서 24절에 야곱 은 전능자 이스라엘 의 반석인 목자 때문에. (이스라엘 이 야곱 이 변해서 이스라엘 이 됐잖아요.) 나의 (이스라엘 의) 반석이 되신 목자 때문에 (영어로 because of shepherd) 그러니까 정말로 전능자 이신 목자 때문에 그 손을 힘 입어서 요셉의 팔이 힘이 있다는 거예요. 25절에도, 네 아버지 야곱 의 하나님이 너를 도울 것이라고. 복을 주실 것이라고. 26절에도, 네 아버지 야곱 의 복이 네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너를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라. 이렇게 세 절에 걸쳐서, ‘나’의 하나님이 ‘너’를 축복해주기를 원한다고 너무 너무 간절한 마음으로 요셉을 축복했어요. (나는 죄가 많기 때문에 아버지의 하나님, 할아버지의 하나님이 그냥 나를 직접 길러 가셨다고, 업어서 직접 길러 가셨다고. 내가 하도 속을 썩이니까.) 그래서 나를 지금까지 길러주신 그 하나님이 너를 축복하기를 원한다고. 간절한 마음으로 했어요. 이게 유다 하고 무슨 차이가 있냐 하면, 유다 에게는 '규' 가, '홀' 이 너를 떠나지 않고 '실로' 가 오시기까지 움킨 것을 찢는 너는 사자라 그러면서 아들이라도 유다 는 막 존경하면서 예수님 을 보듯이 축복했기 때문에 더 이상 내 하나님이 너를 축복해 주실 필요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유다 에게 이런 말을 하나도 안 했어요. 왜냐 하면 유다 는 예수님 자체니까. 예수님의 조상이니까요. 이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요셉 에게는 보이는 복을 다 주어도 뭔가 2프로 부족해서 막 더 간절히 축복합니다. 요셉 의 일생은 보이는 복이 너무 너무 많이 있고 완전해 보입니다. 그러니 요셉 이 얼마나 훌륭합니까. 보디발 의 아내의 유혹도 거절했어요. 형들이 다 죽이려고 해도 용서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애굽 의 총리가 되어서 재산으로 베풀기까지 하는 거예요. 예, 너무 너무 완전해 보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허벅지를 꼬집어도 보이지 않는 영적 복을 시들하게 볼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영적 복까지 대단하게 보는 것 처럼 보였어요, 성품이 어찌나 좋은지. 그러니까 야곱 도 분별을 못 했잖아요, 마지막까지. 그런데 요셉 은 깨끗하게 살아서 그것 자체가 축복이지만, 진짜 마지막 축복은요, 험악한 삶을 산 사람이 하는 거예요. 진짜 축복은 험악한 삶을 산 사람이 이렇게 요셉 을 축복할 수 있고, 바로 를 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 은요, 죽기 전까지 요셉 을 너무 사랑해요. 진짜 얘가 세상에서만 옳다 여김 받고 구원받지 못 하면 어떻게 하나. 있는 정성, 없는 정성으로 지금 축복을 하는 거예요. 대개 집안도 대단하고 교회에서도 인정 받는 직분을 가지고 있으면, 유다 같이 찌질한 지파가 믿음이 좋다는 말에 인정을 안 하고, 영적인 복을 명예와 지위 등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역사적으로도 진짜 일어났습니다. 오늘 저는 성경 전체를 아우르면서 지금 요셉 설명을 합니다. 요셉 지파는 여호수아 서에서 그 제비 뽑아서 땅을 분배 했어요. 그런데 딱 나온 소리가 “어찌하여 우리 요셉 자손에게 한 분깃만 주냐.” 고 불평을 했어요. 그게 적으면 스스로 개척을 하라고 그러니까, “그 땅도 너무 작다고. 그리고 골짜기 마다 철 병거가 있어서 우리는 못 간다.” 이러면서 핑계를 대는 거예요. 근데 똑 같은 그 때 유다 지파의 갈렙 은 아무도 안 가려는 헤브론 산지를 달라고 하면서, “내 나이 85세 이지만 여호와 께서 나에게 힘을 주심으로 갈 수 있다.” 고 합니다. 남들 안 하는 화장실 청소, 세팅 봉사를 내 역할, 내 책임으로 여기는데, 그것을 보고도 요셉 자손들은 하나도 은혜를 못 받고, “시 아버지하고 며느리하고 동침을 했는데 저 찌질한 것이 화장실 청소하는 것이 마땅하지. 돈이 없으니까 그런 거 당연히 해야 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장 기득권을 가진 요셉 자손이 불평을 하니까 나머지 지파들도 영향을 받아 전부 다 지체하고 일을 안 했다는 거예요. 이게 그대로 나옵니다, 여호수아 서에.
요셉 자손이 이런 식으로 교회에 영향을 많이 끼칩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남보다 우월하다고 여기기에, 다른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기대하고 이들에게 내가 주장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계속 자만합니다. 우리 그러잖아요. “내가 아버지 먹여 살렸어. 내가 형 먹여 살렸어. 나는 언제나 대접을 받아야 돼.” 이거예요. 그러더니 이제 그 때 정신을 못 차리고 여호수아 를 지나 열왕기 시대에 이르러, 솔로몬 왕 시절엔, 바로 그 요셉 의 아들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 여로보암 이 다윗 지파의 남 유다를 대적해서 (예수님이 오는 지파 아니에요?) 북 이스라엘 왕국을 세웁니다. 얼마나 요셉 지파가 영향을 끼치는지 이스라엘 의 열두 지파 중에서 열 지파가 여로보암 에게 합세를 합니다. 우리는 누가 뭐래도 시대를 초월해서 요셉 이 정말 정말 좋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이렇게 지면을 많이 할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북 이스라엘을 세우고 보니까 거긴 성소가 없는 거예요. 여호와 대신에 가기 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백성들 보고 절을 하라 그러는 거예요. 금 송아지 숭배가 거기서부터 나오는 거예요. 이게 바로 요셉 후손이 한 짓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북 이스라엘의 왕들은 한결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북 이스라엘의 왕들 중에서는 선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거예요. 우리가 제일 힘든 것은 미국, 일본, 중국이 아니라 바로 내 조국 북한 인 거 잖아요. 그런 것처럼 남 유다가 가장 힘들어 한 족속이 바로 내 고향 족속 북 이스라엘 인 것입니다. 요셉 이 비록 바로 의 총리를 했지만, 그건 이방 나라의 총리지 하나님 나라에서 제사장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나라 가서 재벌하면서 그 약간의 돈으로 도운 건데, 사람들은 너무 대단하게 보지만 사실 이스라엘을 괴롭힌 장본인이 이 요셉 지파라는 거 아니겠습니까. 요셉 지파인 북 이스라엘이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망하고 이 세상에서 존재가 없이 사라졌는가 했어요. 유다 지파는 계속해서 예수님이 오시잖아요? 그런데 말이죠, 성경의 맨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 7장에 인침 받은 열두 지파가 나오는 거예요. 근데 거기에 에브라임은 없어지고, 맨 마지막 턱걸이로, 꼴찌로 요셉 과 베냐민 이 입성을 합니다. 단 지파는 결국 빠졌지만, 요셉 은 이스라엘을 애굽 의 기근으로부터 구한 공로가 있으니, 계속 괴롭혔어도 계시록에서 입성을 합니다. 우리가 남을 도와준 것은 그래도 하나님께서 기억 하십니다. 정말 남을 도운 것은 하나님께 꿔 드린 거예요. 하나님이 꼭 기억하십니다. 유다 지파는 38장에서 한 번 회개한 후에 지파 계수할 때마다 언제나 일등으로 나옵니다. 성경 전체를 통해서 언제나 일등을 놓친 적이 없어요. 근데 요셉 지파는 이때 이후로 사라졌다가, 성경에서 존재를 감추고 있다가 마지막 계시록에서 입성하게 된 것은 이 야곱 의 간절한 기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 과 요셉 은 너무 똑똑합니다. 그만큼 경계를 넘어가서 공동체를 위협합니다. 다른 지파는 한 줄에 쓱 지나갔지만, 그런 지파는 공동체를 위협하지는 않았으니 공평하신 하나님입니다. 열두 지파 중에서 단 은 우상 숭배로 지경을 완전히 이탈 했지만, 정말 힘든 사람은 요셉 입니다. 공동체를 나가지도 않고 교회 주인으로 너무나 세력을 행사하면서 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괴롭히고 무시 합니다. 저는 무시를 잘 받아서 이런 게 잘 깨달아 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요셉 같은 사람을 볼 때 위축이 되고 주눅이 들 때도 있지만, 이 세상에서 보이는 복을 다 받는 것을 좋게만 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은 한 절에 쓱 지나가고, 요셉 은 다섯 절, 유다 도 다섯 절이지만, 마지막 계시록 7장에 가 보니까, 구원 받은 수는 다 똑같이 지파 마다 12,000명 씩 열두 지파, 144,000명으로, 나중에 천국 가는 것은 어떤 은사를 가진 자나 똑같이 입성한다는 뜻입니다. 천국에만 가면 되는 거예요. 찌질한 유다 나, 훌륭한 요셉 이나 똑같이 입성을 하는데, 요셉 이 약간 부끄러운 턱걸이 입성을 하더라 이 얘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나는 왜 이것 밖에 안 되나. 나는 왜 스불론 밖에 안 되나.” 이러면서 제발 요셉 을 부러워 하면서 가지는 말자 이 뜻입니다. 어디서나 상처 많고 문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 공동체 입니다. 이 열두 지파의 범주에서 벗어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 열둘 중에 하나의 은사가 반드시 있으니까 그걸 찾아 내셔야 합니다. “나는 은사가 없어요.” 이런 사람은 “난 예수 안 믿어요.” 하는 거 하고 똑같애요. 각각의 역할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역할이라도 회개하고 천국 가면 다 똑같다는 거예요. 유다 는 우리가 보기에 가장 안 좋은 역할이지만, 그래서 평생 회개를 합니다. 그런데 회개한 후에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요셉 은 우리가 보기에 가장 좋은 역할이지만 회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거예요. 이 역할 모델로 주셨어요. 요셉은 회개가 안 되는 거예요. 허벅지를 꼬집어도 안 되는 거예요. 이렇게 여러 역할들이 공동체에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 의 ‘형통하다’ 도 좋지만, 유다 의 ‘찬송하다’ 는 비교할 수 없는 회개 후에 찾아오는 엄청난 축복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형통하다’ 보다는 ‘찬송하다’ 가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라는 거죠. 각인의 분량대로 주신 우리의 은사는 회개 전에는 공동체를 해롭게 하다가 회개 후에는 그 누구도 유익하게 합니다. 공동체에는 회개 전과 후의 사람들이 다 모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필요하고, 회개까지 이르기 위해서 기도가 필요하고, 회개한 성도들은 당연히 또 다른 성도들을 회개케 하기 위해서 “네가 나보다 옳도다” 를 부르짖으면서 가게 돼 있습니다. ‘우리들 교회가 고난이라’ 자꾸 얘기를 하면 이건 아직 ‘내가 회개가 안 되었다.’ 이 뜻입니다. 그러니까 저절로 회개가 되면 유다 처럼 말 없이 섬기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요셉 은 끝까지 불평을 하는 거예요. “왜 내가. 왜 내가.” 자꾸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은사 살펴보면 금새 딱 나오게 돼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은사가 유익하게 하는 은사가 되려면 반드시 회개가 수반 되어야 합니다.
기도제목
이은혜
1. 공예배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2. 매일 큐티하며 말씀과 기도가 회복될 수 있도록
3. 가족 구원과 엄마 건강 위해
4. 작은 오빠의 온전한 자립을 위해
강혜림
1. 주신 모든 사건에서 내 죄를 보고 가족들에게도 '옳소이다' 적용하도록
2. 내일 예비 심사에 제출할 논문 최대한 쓰도록 지혜 주시길
3. 내일 오전 면접에서 말씀의 지혜로 대답하고 결과에 순종하도록
4. 신결혼
박세현
1. 가족구원(아빠, 엄마, 세라, 동규)-구원을 위해 손과 발이 가는 적용 하도록
2. 생활 예배 중수
3. 건강 회복(심장약이 잘 듣고 휴식 충분히 취해서 정상 상태로 회복하도록)
4. 유치부 아이들 영육 강건
5. 매사에 분별 잘 하고 관계속에서 지혜롭게 대처하도록. 내가 옳다 하지 않고 잠잠히 있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