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교요약*그는 나보다 옳도다 (창세기 38:12~30)
'당신이 나보다 옳아'가 평생 안되는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이것만 되면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될텐데,이것이 안되는 것이 죄인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그리스도의 표상이지만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씨입니다. 여러분, 모형과 진짜는 다르죠. 아무리 닮았다 하고 아들이다하고 다르잖아요. 이 차이인거예요.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직계조상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로 초점이 모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혈통의 근원이 무엇일까를 보며줍니다. 요셉과 너무도 비교되는 악한 유다가 과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을까요?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는 이 유명한 회개의 고백을 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가장 중심 구절이고 성경의 중심 구절인 이 구절이 해석되면 구속사가 이해될 것입니다. 오늘 이구절이 무슨 뜻인가 다시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에서 비롯됩니다.
얼마 후에는 그 동안 무슨 사건이 지난 후라는 걸까요? 우리는 1절부터 11절까지의 유다의 짓꺼리를 봐야해요. 몇가지로 요약을 해보면 공동체를 떠나고 불신결혼을 하니까 문제아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그 문제아들을 하나님이 죽이시는, 둘이나 죽는 고통을 당합니다. 그거에 대해 며느리에게 책임전가를 합니다. 유다는 아버지가 그렇게 이뻐하던 요셉을 팔아먹고 죄책감이 들었겠죠. 그리고는 아버지와 형제들에 대한 이것이 환멸로 이어졌어요. 아버지나 형제들이나 다 악하기 짝이 없고 그 다음에 시기와 질투로 요셉을 죽이려 했잖아요. 유다는 은근슬쩍 생각해주는 척 하면서 팔았어요. 이런 모든 사실에 환멸을 느껴서 믿음의 공동체를 떠납니다. 항상 떠날 때는 '너 때문이야.'이 이유가 있습니다. 믿음의 공동체라고 해서 환멸이 없겠습니까? 그런데 유다는 '이러고도 하나님 믿는 사람인가' 이러면서 떠났어요. 하지만 유다는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 이방사람 히라와 가까이 지냈는데, 근데 그렇게 이제 유다의 삶이 완전히 내리막길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도 내 안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유다처럼 이렇게 배우자 탓, 공동체 탓, 식구 탓을 하면서.그들과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듭니다. 여러분에게 목장가라는 것은 너무나 목장이 좋아서 위로받으러 가라는 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은 싫으면 안보면 되는데 목장은 나를 위하여 값주고 죽어주신 보혈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거기는 아무 차별도 없기 때문에, 차별이 없는 공동체에 가서 계속 차별하고 있는 여러분들을 바라보라고 가라는 거죠. 내가 얼마나 차별하는지를 보라고, 교만한지를 보라고 목장에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정확한 공동체는 쉽지만은 않습니다. 위로도 처방도 정확하기에 잠시후에는 시원함이 있습니다. 잘 참아내길 바랍니다. 이런 과정들을 겪어가면서 공동체에서 성숙해가는 것입니다.
#65279;(적) 여러분도 힘들어서 공동체를 떠나고 싶으세요? 아니면 '그래도 붙어만 있으면 수지 맞으니까 붙어만 있어야지.' 그런 생각 자유롭게 나눠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공동체를 떠난 실수를 하므로 유다가 세상으로 떠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떠나면서 곧 영적으로 다운되기 시작했습니다. 히라와 놀다 보니까 돈 많은 집안의 성적매력을 갖춘 여자를 소개시켜 준 것입니다. 유다의 무의식에는 요셉만 편애하는 아버지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컷을거예요. 나도 보란듯이 잘 살아보겠다. 채색옷을 내가 지어입겠다 하면서 장인 덕을 보고자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신결혼을 위해, 리브가는 야곱의 신결혼을 위해 얼마나 큰 값을 치르는 노력을 했는지 모릅니다. 그로인해 야곱은 신결혼 때문에 얼마나 험악한 인생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유다는 여봐란 듯이 이어지는 결론으로 불신결혼을 했습니다. 유다는 형제들 중에 불신결혼의 효시가 되었습니다. 유다는 불신결혼으로 아들 셋을 낳았습니다. 거짓의 도시에서 위선적으로 살면서 아들 낳고 미녀와 살고 부자 장인의 덕을 보고 있고 며느리까지 예쁜 종려나무 같은 다말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유다를 예수님의 조상으로 만세전부터 지목하셨기에 일이 터지기 . 자녀사건이 계속해서 찾아옵니다. 불신결혼의 여파로 문제아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성적으로 방종하고 이기적인 아들들이 영적인 기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기에 여호와 보시기에 악해서 첫째 아들인 엘을 죽이셨다고 했습니다. 고엘, 곧 기업무르기 제도로 오난은 남편의 동생으로서 형수와 결혼하는 것이 마땅한 책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난은 수치당하기는 싫고 결혼해서 재산을 나누어 주기도 싫어요. 왜냐면 형이 죽었으니까 그 재산이 다 자기 것이 될텐데 형수의 아기를 낳아주면 그것은 그 아기의 것이 되기 때문에 겉으로는 혼인을 했지만 이제 태어나는 아기에 대해서 형의 후사로 호적될 것이기 때문에 잠자리를 할 때마다 땅에 설정을 했습니다.
단지 성적 쾌락만을 맛보고자 했습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형수와 잠자리를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수태를 방해했습니다. 극도로 이기적임을 넘어서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악한 둘째도 죽이셨습니다. 유다는 며느리 다말이 기업을 이으려면 하나남은 막내아들까지 주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이 상황에서 책임전가를 합니다. 막내 아들도 죽을까 염려한 나머지 며느리 다말에게 수절하고 너는 고독하게 죽으리고 명령을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장성해서 줄 생각이 지금 하나도 없어요. 유다는 아들이 둘이나 죽었는데 걍팍하고 아들을 위해 울었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장자 엘과 차자 오난의 죽음을 보면서도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악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며느리 다말이 불행을 가져왔기 때문이라고 책임전가를 합니다. 유다는 자기 죄와 아들의 죄는 못보고 며느리보고 너 때문에 우리 아들이 죽었다고만 합니다. 이렇게 현상을 보고 책임전가를 하시면 안됩니다. 회개의 반대는 '너 때문이야.'입니다. 이것은 책임전가입니다. 그게 진짜 회개가 최고고 최고로 나쁜 말은 '너 때문이야.'이런 판국에 아내까지 죽었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위로를 받았는지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여전히 옳아서 공동체로 돌아갈 생각을 안하고 딤나로 올라가서 이제는 아내까지 죽었으니까 일에 미칩니다. 전체적으로 1절에서 11절까지의 적용은 유다가 죄책감으로 공동체 떠나고, 불신결혼하고, 문제아 자녀들이 성적으로 방종하고 돈 밖에 모르는 자녀가 되어서 죽은 것은 유다의 이어지는 악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목장까지 와서 비판을 일삼는다면 자녀들에게 비판과 이기적인 것이 그대로 전수될 것입니다. 항상 누군가를 비판하고 이기적으로 나가면 자녀들이 오롯이 다 배우게됩니다. 유다는 이런 상황에서도'너 때문이야.'의 책임전가를 하면서 일에 미칩니다.
(적) 여러분은 이 유다의 악의 단계중에 어느 단계에 있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2. 결정적인 악을 범합니다.
#65279; 다말이 창기로 변장한 동기는 셀라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죠. 다말은 기업이 이어지는 것이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창기로 변장을 했습니다. 유다는 슬픔을 일로 잊으려고 했고, 성적인 쾌락으로 잊으려 했습니다. 풍성한 양털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드리지 않고 깨어있지 않으니까 당연히 육의 쾌락을 찾게 되고 가나안 생활방식에 젖에 있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나고 엘과 오난이 어떤 영향을 받고 악을 저질렀는지 알게됩니다. 쾌락을 쫓고 창녀와 행음을 하려 했는데 유다에게 죄의 흔적이 남게 되었습니다.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줌으로 언역의 주도권이 완전히 다말에게 넘어갑니다. 그리고 나서 창녀가 안보이니까 도장 생각이 났겠죠. 부끄러움 당할 걸 생각하고, 또 그리고 또 그 책임을 친구에게 전가합니다. 그대가 못 찾았다고. 하나님보다 인간을 의식하면 지은 죄가 절대로 멀어지지 않고 더 큰 범죄의 기회가 옵니다. 자기도 행음했건만 며느리의 행음 소식에 불사르고 죽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이렇게 자기 죄를 인식하지 못하면 인정하기는 더더욱 어렵습니다, 공자기씨, 예수씨인줄도 모르고 며느리를 끌어내어 불사르고죽이라고 명령까지 하는 치명적인 악을 범했습니다. 내가 옳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늘 틀렸기에 더욱 정죄를 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크리스찬 남성이라면 고통을 무릅쓰고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을 배워야 되요. 날마다 누구 때문에, 아버지 때문이야, 어머니 때문이야, 내 환경 때문이야. 이거는 이제 좀 그만해야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는 단 한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끌려가나가 날마다 결정적 악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고 나서는 남의 탓하기 일쑤입니다.
(적) 계속 무너지고 있는데도 내 죄가 인정되지 않고 결정적인 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65279;
3. 나보다 네가 옳다 - 내 책임입니다.
지혜로운 다말은 이 물건 임자로 임신했다고 그랬어요. 시아버지라고 안 그러고 팩트, 실체를 밝혔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된 것은 사실 시아버지가 더 나쁜거죠. 계대 혼인법으로 기업무르기 해야 하는 지금 안 했다는 걸 딱 일깨워줍니다. 드디어 1절부터 계속되던 유다의 악이 끝납니다. 도장을, 끈을, 지팡이를 알아봤어요. 약속을 알아봤어요. 언약을 알아봤어요. 드디어 깨달았어요. 의롭다고, 옳도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이 일을 행했다고. 음욕의 대상으로 대했다는 걸 지금 회개합니다. 우리가 그는 나보다 옳도다. 하나님이 옳도다 하면은 이제 그 모든 잘못된 관계를 청산하셔야 되는 거예요. 청산하시는게 그는 나보다 옳도다 입니다. 유다는 이 죄를 공동체 앞에서 고백한거예요. 그녀의 행동이 영적후사를 위한 행동임을 알았기때문에 이제 무조건 회개를 했습니다. 유다의 모든 아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구원, 믿음과 전혀 상관이 없는데 며느리인 다말 혼자서 다윗의 가문을 잇게하는 구속사적으로 아주 중요한 일을 한거예요. 유다가 이렇게 이렇게 안되는 때 땅끝까지 내려가는 사건이 오니까 드디어 깨어져서 영적후사에 대한 관심이 생기게 된거예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게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나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이 죽어주신 사건입니다. 유다를 깨닫게 하기 위해선 다말의 죽어짐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내려오는데 유다 혼자서 깨달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의 남편 혼자서 깨달을 수가 없어요. 그를 사랑하는 다말의 죽어짐이 있듯이 하나님의 죽어지심이 있듯이, 그 누구도 죽어지지 않으면 오픈도 고백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어요. 유다또한 죽어지지 않으면 이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공동체와 지체가 없는 사람은 잘 살때는 몰라도 힘들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다말이라는 지체의 희생에 의해서 '그는 나보다 옳도다.' 한 것은 이제는 니 책임이 아니라 내 책임이라는 거예요. 쭉 죄가 생각이 났어요. 다말의 행동을 통해서 내 죄가 생각이 났어요. 가고 오는 모든 세대에서 유다의 말은 인정되어지고 다말은 찬란히 빛나는 구속사의 계보에, 마태복음 1장까지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말을 인정하고 회개한 유다는 다윗으로, 예수님으로 찬란이 이어졌어요. 다말보다 위대하게 된 사람이 유다예요. 그러니까 '니가 나보다 옳도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위대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 보여주셨어요. '너는 나보다 옳도다.' 이게 그렇게 얘기하기 어려운 거예요. 다말이 죽어졌더니 그걸 인정한, 다말을
인정한 유다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스스로 죄를 지은 것이든, 누군가의 희생량이 된 것이든 중요하지 않고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적) 당신은 나보다 옳다고 말해보겠습니까? 그것은 내 죄를 인식할 때만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4. 최고의 축복을 주십니다.
다말의 부끄러움을 무릅쓴 적용은 시아버지도 살리고 쌍둥이 아들을 주심으로 두 아들 죽인것을 보상하게 하셨습니다. 창녀로 변장하고 또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쌍둥이를 임신했고, 태아의 위치도 정상적이지도 못했고, 삼개월때 화형에 처해질 위기에 처하는 등 영육간에 고통이 심했을 것이예요. 자기 남편도 구원 못 시키고, 둘째 아들 남편도 구원 못 시키고 그만 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을 거예요. 역사상 다말처럼 비참한 여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도무지 안변하는 남편을 보면 죽고 싶고, 이혼하고 싶고 하는데 우리는 예수 생명 위해서, 예수의 생명 바치리라 하지만 손톱만한 자존심땜에 무릎도 꿇지 못하고 부끄러운 말 입에 대기도 싫죠. 하나님은 유다와 다말사이의 불륜관계 속에서 난산을 통해 태어난, 그것도 장자가 아닌 차자 베레스를 통해서 기업을 잇게 하셨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저주이고 창피스러운 말이지만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최고의 축족의 구절인 것입니다. 예언대로 유다와 베레스의 세계가
다윗으로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유다가 이해가 됐습니까? 이런 사람이 예수님의 직계조상이 됐습니다.
한 사람 다말이 중심 잡으면 다 살아납니다. 너는 나보다 옳도다 이것만 부르짖으면 죽은 사람도 살아나게 될 줄을 믿습니다.
*기도제목*
* 문보호 : 1. 목원들 잘 섬길 수 있도록
2. 신교제
* 박정훈 : 1. 신교제
* 김대호 :참 좋은 목장(??) 이 되도록
* 김윤석 : 1. 한 주간 별 탈 없이 건강할 수 있도록
2. 믿음의 여인을 만나도록
* 유지승 : 1. 나의 중심으로 돌아가길 원하는 욕시신을 버릴 수 있도록
* 김의석 : 1. 사회에 물들 저를 주님안에서 살아ㄱ갈 수 있도록
2. 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박민영 부목자 : 회사에서 인수인계를 하며 공황장애가 다시 오려 합니다. 잘 견뎌내며 마무리 잘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