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마지막 분별 창세기 48:8-22
화해를 해도 분별이 어렵습니다. 사랑을 믿음으로 분별한다는것은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축복할 때 상대방에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서 분별되어지는 것입니다.
첫째, 마지막까지 사랑합니다.
야곱은 분별하는 과정에서 요셉의 아들들을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야곱이 축복을 좋아합니다. 요셉에게 아들들이 누구냐고 물은 것은 제대로 된 축북을 주기 위함입니다. 이삭은 잘못 분별했지만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아서인지 분별을 잘했습니다. 정확히 축복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다고 너 틀렸어 하고 끝나지 말고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해야합니다. 자녀가 안받아들이는 것은 그의 몫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합니다. 자녀의 구원을 위해 끝까지 사랑해야합니다.
* 세상 사랑입니까? 구원의 사랑입니까?
둘째, 마지막까지 축복합니다.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 나를 기르시고 건져주신 하나님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기업을 위해서 건져주셨습니다. 요셉이 언약의 계승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역사의 중심부에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자녀들에게 늘 축복하기를 바랍니다.
* 자녀에게 축복을 합니까? 언어로 합니까. 말씀으로 합니까.
셋째, 마지막까지 분별합니다.
총리 요셉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요셉이 아버지가 에브라임의 머리 위에 손을 보고 기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셉이 아버지가 자기의 생각과 다른 것을 보고 악해지고 사나워져서 못마땅해합니다. 눈이 어두워서 이런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총리 정도가 되면 이 세상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다른데 옳고 그름으로 사건을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셉도 장자가 아닌데 장자 중에서 맏아들이 받아야하는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셉의 문제가 바로 여기있습니다. 자기가 형들을 살리고 자기가 용서했다고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을 합니다. 요셉은 앞날을 보는 눈이 없습니다. 요셉은 교양이 있어서 무섭게 자기 감정을 조절합니다. 무섭게 단단히 붙드는 행동입니다. 강하게 반드시 돌이켜야한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안수를 너무 쉽게 여겼습니다. 배부르고 등따뜻한 요셉에게 아들의 앞날은 알려주시지 않았습니다. 자기 유익의 길로 가고자하면 자녀의 앞날을 모르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잘 지고 가는 것 같아도 길고 짧은 것은 재보아야합니다. 주목해보아야할 것은 당사인 므낫세는 장자의 축복을 빼앗겼지만, 하나도원망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했습니다.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이 믿음 좋은 요셉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다 하면 아닌것인데 처음부터 알지 못하고 일이 이미 벌어진 후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함께 있고 싶다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고 합니다. 이제 내 맘대로 살아봤자 돌아갈 뿐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라는 길을 가면 실수가 없습니다. 목장의 처방대로 가면 더디가는 것 같아도 실수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경험과 지식을 다 합해도 자녀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결국 마지막 분별은 믿음의 분별입니다. 구원으로 이르는 것입니다. 이 분별을 했기 때문에 야곱이 믿음의 조상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직분이 좋아도 믿음 좋은 사람이 있다면 따라가야합니다.
* 믿음인지 성품인지 분별하십니까? 구원의 분별이 최고의 분별이라는 것을 분별하십니까? 구원때문에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 기도제목 *
경연
- 한주간 큐티잘할수있도록
- 부담되는 과제 힘들이지않고 잘 소화할 수있도록
- 아빠 구원을위해 기도할수있도록
혜령
- 큐티잘 할 수 있도록
- 가족한테 짜증 내지않을 수 있도록
- 방송국사람들 잘 대할 수 있도록
소연
- 큐티할 수 있도록
- 감정기복 심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세영
- 분별잘 할수있도록
- 큐티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