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문] 160327 강혜림목장 16
장소: Mekong Thai
참석: 강혜림 이선애 이은혜 박세현
말씀: 창46:27-34
제목: 아버지 품으로
설교:
도피성에서 낮은 자이고, 새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종이고, 목숨 걸고 보냄 받은 사도로서의 자기 소개가 이루어지면, 누구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퀘슬러(무디 성경학교 교수)의 얘깁니다. 어린 시절에 TV에서 나오는 가족 드라마를 보면 가족 생활은 다 이런 거다. 하는 걸 보여주는데, 엄마는 앞 치마 두르고 나와서 빵을 열심히 굽고, 아빠는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고, 집은 언제나 깨끗하고, 언제나 맛있는 것이 있고, 언제나 예의 바르며, 위기가 일어났을 때는 한 삼십 분쯤 지나면 식구들의 폭소와 함께 항상 다 깔끔하게 해결되는 모습이, 이제 TV에 나오는 가족 드라마의 내용이에요. 그래서 가족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아버지 머리 맡에서 맥주병을 깨트리던 그 밤,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나는 그런 가정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는 것이죠. 그런 경험은 매우 고통스러웠지만, 지나고 보니 순기능 가정이 아니라 역기능 가정에서 나는 아주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그랬습니다. 정상적인 가족 구성원보다 역기능 가정에서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확률이 훨씬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시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1. 환란 당하고 원통한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27절)
“서얼”은 한이 서린 말입니다. 양인 첩의 소생은 “서어”라고 하고, 천인 첩의 소생을 “얼”이라고 했으며, “서자”, ”얼자”, “첩자”라고도 불렀습니다. “서얼”이 품은 한의 역사는 조선 초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조선개국공신 정도전이 바로 서얼입니다. 이방원은 반대편에 선 그를 몹시 미워 했습니다. 정도전을 죽인 후에 왕 위에 오른 이방원은 재위 14년 되던 해에, 서얼에게는 현직을 금한다고 했고, 성종 때에는, 서얼 자손이 대대손손 벼슬을 할 수 없도록 “서얼금고” 규정이 만들어 졌습니다. “부자유친”을 밤낮으로 입에 달고 살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유교적 가부장 제도 아래 만들어 낸 이 법이 얼마나 가족을 파멸로 몰고 간(차별인지를 모른다는 것 입니다).. 남자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양반이고 천민이고 다 떠나서 주색 잡기를 그들이 누려야 되는 당연한 것으로 알면서, 그리고 그들이 수 없는 서얼들을 생산해 내면서도 자기가 생산해 낸 아들의 차별은 관심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서얼들은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 하고, 돌아갈 아버지의 품도 없으니까, 그들의 한이 얼마나 조선 천지를 뒤덮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과연 성경은 성경입니다. 수천 년 전에도 성경은 적자고, 서얼이고, 70명이 애굽의 총리가 보낸 수레에 여자, 남자, 차별 없이 타고 갑니다. 야곱의 첫 부인 레아에게서 아들, 손자까지 다 합해서 33명, 레아의 종 실바에게서 16명, 두 번째 부인 라헬에게서 14명,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7명, 합해서 70명인데, 이게 이제 8절부터 27절까지 그 이름을 다 썼어요. 그 모계의 족보를다 썼습니다. 이때부터 믿음에는 그 만큼 엄마가 중요하고, 유대인은 엄마가 유대인이면 유대인으로 치고, 아버지가 유대인이 아니면 유대인으로 치지 않았습니다. 열 두 아들은 이미 열 두 가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혈육이라고 해도, 다 함께 이민가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러면, 야곱 가족이 형제애가 두터웠습니까? 다 죽일 듯이 싸웠습니다. 특별히 사랑이 너무나 없는 가족이었습니다. 문제가 일반 가정보다 훨씬 심각한 가정이었습니다. 19절입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 곧 요셉과 베냐민이요 그 이름들을 다 언급하면서 야곱은 두 번째 아내 라헬만 죽어라고 끝까지 이렇게 “아내”라고 칭합니다. 믿음의 조상이 차별의 왕인 것입니다. 이렇게 라헬만 이뻐하니까 첫 부인하고 첩들은 얼마나 열등감을 가졌겠습니까. 라헬은 언니가 아들들을 쑥쑥 낳을 때 마음대로 투기 하는데, 언니하고 첩들은 투기도 못 하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라헬의 소생 요셉 때문에, 형들이 죽이려고 팔았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가해자 형들은 이 요셉을 판 이야기를 묻어 두고, 22년이나 어둠의 영 속에 있었습니다. 이런 집에 누가 시집보내고 장가보내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이 집이 장인인 라반부터 이 믿음의 조상 야곱을 속이고 결혼 시켰습니다. 여러분이 결혼하고 속았다고 분해 하는데, 세상에서는 속이지 않으면 절대 결혼도 안 됩니다. 안 그렇습니까? 라헬의 몸종인 빌하는 이름의 뜻도 “겁이 많다”입니다. 이 여자가 겁이 많고, 몸종으로 태어난 것이 자기 탓도 아닌데, 야곱의 첩으로 들어가서 배다른 본처의 큰 아들 르우벤에게서 통간을 당했습니다. 자기 친아들인 단과 납달리는 배다른 자기 형이 자기 엄마를 통간한 사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생각할수록 콩가루 집안입니다. 본처인 레아는 남편 사랑도 못 받는데, 큰 아들은 게다가 남편의 첩을 욕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딸 디나는 강간을 당해서, 디나의 오빠인 둘째, 셋째 아들이 복수한다고 살인을 합니다. 넷째 아들 유다는, 이 잘난 아들 요셉을 팔아먹고, 이방 여인과 결혼해서 아들 죽고, 일에 미치고, 성적으로 문란해서, 길거리 여자와 동침을 했는데, 그 여자가 임신을 했습니다. 그 여자가 며느리로 밝혀지고, 이 며느리와 시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베레스가, 가장 추잡한 태생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이 출생이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부터 27절까지 애굽으로 가는 70명의 이름이 쫙 나오는데, 제가 이름의 뜻을 다 살펴 보았어요. “하나님의 날”, “하나님이 세우신다”, “하나님의 의견” 등. 하나님의 뜻도 많이 들어가지만, 거기에는 “나그네가 되고”, “부정한 자”, “벌레”, “하나님이 병들게 하심”, “삼키다”, “싸우다”, “덥다”, “도망가다”, “서두르다”, “성미가 급하다” 뭐 이런 뜻도 있더라구요. 구약에서는 이름의 뜻이 그 사람의 인생을 대표한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벌써 손자도 이방 여인을 첩으로 들이고, 딸도 강간을 당하고, 혼자 살고 있는, 이렇게 콩가루 집안인데, 이 모든 자손들이 긍휼함을 입어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얘깁니다.
지난 주 나눔입니다. 남편의 큰 누나는 술집 여자에게서 낳은 딸이고, 현재 시어머니는 불륜녀로 계모이고, 대학교 때 학교 앞에서 너 없으면 못 산다고 하는 남편에게 반 강제적으로 혼전 순결을 잃었다. 남편은 음란의 모든 것에 달려들었다. 친정 회사에 남편이 다니고 있는데, 딸이 걱정 되어서 사위를 자를 수 없어 하셨다. 술 먹고 한달 동안 회사를 안 가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죠, 이 소망이 없는 이 남편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서 부목자가 되었어요. 그래서 보면, 전력이 화려한 분들이 다 목자, 부목자를 하시더라구요. 모범생들은 직분을 못 가지시는 것 같고. 그래서 이 족보를 보면(너무 길어서 읽지는 않습니다) 잇사갈의 아들, 스불론의 아들,..(열 두 아들들의 이름), 유다의 아들.. 이렇게 표현하는데, 요셉과 베냐민은 아까 읽은 것처럼 야곱의 아내 라헬의 아들. 이렇게 언급을 합니다. 야곱은 라헬 때문에 평생 몸살을 앓습니다. 언제나 “내 아내는 라헬이다.” 하면서 라헬을 본 부인의 반열에 올리고 싶어했지만, 하나님이 본 부인으로 인정한 것은 유다(시 아버지와 며느리가 동침을 한)의 모친 레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라헬은 그리고 남편 사랑을 받고, 또 늦었지만 하나 낳은 첫째 아들은 홈런을 쳐가지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어요. 레아의 아들을 다 속을 썩이고 있는데, 라헬은 하나 낳은 아들도 이렇게 홈런을 쳤습니다. 그런데 감사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고, 그리고 이제 둘째 아들을 여행하다가 길거리에서 낳았는데, 거기서 아이를 낳다 죽었어요. 남편 복, 자식 복이 있는 대로 많은 사람이, 그 마지막으로 낳고 죽은 아들 이름을 “슬픔의 아들”이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어떻게 자기 아들을 그렇게 슬픔의 아들이라고.. 그러니까 실컷 잘 먹고 잘 살다가 ‘슬프다’ 이러고 이 세상을 떠났어요. 레아는 남편 사랑을 받지 못 해도, 언제나 아들의 이름을 “연합하리로다”, “찬송하리로다”, “후한 선물” 이렇게 지으면서 자기의 인생을 해석했습니다.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고 성경은 절절이 절절이 보여줍니다. 남편 사랑을 받지 못 해도, 자식이 속을 썩여도, 내 자리 지키면서 가정을 지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해서 영원 천년 동안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가고, 야곱의 본 부인으로, 야곱의 뜻과 달리 레아가 기록된 것입니다. 야곱이 드디어 레아를 인정할 수 밖에 없고, 인정했다는 구절이 마지막 죽기 직전에 창세기 49장 31절에 나옵니다. 라헬이 아니고 레아가 믿음의 막벨라 굴에 장사가 되었어요.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합니다. 겉으로는 레아 인생이 슬픕니다. 라헬이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인생이 참으로 짧아서 야곱이 자기가 그리도 사랑했던 어머니도 어렸을 때 생이별하고, 사랑했던 아내 라헬도 길거리에서 죽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 요셉도 그리도 사랑했지만 22년 동안 죽은 줄 알고 못 만났는데, 내가 하나님 자리에 놓고 사랑하는 것 때문에 정작 야곱은 너무나도 슬픈 인생을 살았어요. 정말 험악한 인생을 살았어요. 진짜 아버지 품을 모르면, 슬픈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나중에 진짜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 야곱은 너무너무 하나님께서 험악한 인생을 살게 하셨습니다. 내가 평생 잘 먹고 잘 산다 한들, 짧은 인생입니다. 여러분은 진짜 하나님 아버지 품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서태지 이지아 씨. 얼마나 부럽습니까. 그런데 14년 동안 부인이라고 이름도 뻥긋 못 했으니까, 그렇게 남들이 부러워했지만, 그런 인생이 어딨습니까. 아무리 신비주의 컨셉이라고 해도 세컨드도 아니고. 이 세컨드의 소원은 남편하고 시장 가는 거라고 하는데, 그 분이 시장 한 번 못 가고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여러분, 편애를 해도, 편애를 당해도, 강간을 해도, 당해도, 살인을 해도, 당해도, 통간을 해도, 당해도, 오늘 믿음의 족보로 명단에 찬란히 있는 모습을 보면서, 70명은 7 곱하기 10. 완전수 곱하기 완전수로, ‘하나님이 완전하게 구원하셨다’는 뜻입니다. 애굽에서 총리가 된 요셉이지만, 이제 요셉은 마지막에 총리로 남지 않고, 열두 아들의 한 아들로 들어가게 하시면서, 이 세상 영화와 하나님 나라 영광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백성이라는 것을, 대단한 자긍심을 갖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이제 멸망할 이 세상에서 연약하고 힘들고 쓰러질 것 같이 위태롭고, 너무 침을 뱉어주고 싶은 이런 모든 사람이 도리어 축복이 되어 다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는 얼마나 분하고 억울해서 죽고 싶은 사람들이 많았겠습니까. 여러분들도 얼마나 죽고 싶고, 원통하고, 환란 당해서 오셨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다 구원 되어서, 애굽으로 갈 때는 70명이 떠났지만, 그 애굽을 400년 만에 떠날 때는 200만 명이 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에 가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3대가 215년인데, 215년 만에 겨우 70명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당대 신앙이 이렇게 되어 가는 데는 정말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런데 그 후 430년 만에 200만 명이 된 것입니다. 자연 산술로는 이해가 안 되는데, 여러분들 215의 두 배가 430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애굽의 핍박 중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시면, 나를 택하시면, 부흥하는 데는 한계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시는 언약에 따라 사는 인생은 말씀대로 번성할 줄을 믿습니다. 저도 4대째 만에, 정말 유명한 사람, 저라고나 할까요. 아들도 없고, 이랬는데. 4대째 만에 이렇게 열매가 없는 것 같은데, 이제 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이렇게 인도하는 사람이 된 것이 바로, ‘모태신앙이 다 못 해.’ 같아도 또 하는 게 이렇게 있습니다. 잘난 사람들은 아버지 품이 하나도 안 그립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아들이었어도, 그 중에서 잘난 아들 적자, 장자는 안 따라왔습니다. 첩들의 소생, 서자 중에서도, 그두라 소생은 남자답고 잘 나서 또 안 따라왔습니다. 적자라고, 장자라고, 서얼이라고 예수를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믿음이 안 좋아 보이는, 돈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고,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인 야곱이, 이 야곱이 열 두 아들을 한 명도 빼지 않고 다 입성 시켰습니다. 그 사람은 적자, 장자, 서자, 얼자, 여자, 남자, 종, 몸종, 첩, 다 구원해서 같이 올라갑니다. 내가 형편없어도 우리의 모든 식구들이 아버지 품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우리의 찌질한 식구들을 어떻게 아버지 품으로 데리고 갈까요.
지난 주 나눔이에요. 둘째 아들의 얼굴에 올라 온 두드러기를 본 남편이, 이 아이에게 저녁에 햄버거를 먹였다고 하니까 둘째를 안고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아빠가 그렇게 화내기 시작하면 함구증이 잇는 첫째 아들은 그 모습에 너무 부들부들 떨고 불안해 하고, 둘째는 울면서 아빠 따라서 병원에 가기 싫다고 저를 쳐다 보았습니다. 남편은 옷 수납 박스 세 개를 저한테 연달아 던졌습니다. 왜 나는 맨날 이렇게 맞고 살아야 하나, 정말 이혼하고 싶었고, 더 이상 살기가 싫었습니다. 주일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정말 자기 연민에 몸부림치면서, 그래도 교회에 가게 되었고, 그 날 주일 말씀 제목은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1월 달에 있었던 일을 지난 주일에 나누었어요.) 뭍이 드러난 이 사건이 섬기는 기본적인 토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주에 목장 개편으로 새로운 목장 식구들과 새 가족 방문자 부부가 오셨는데, 저희 부부의 나눔을 듣고, (그렇게 욕하고도 교회를 또 갔다는 거 아니에요. 이 부부가. 이게 중요합니다. 바람을 펴도 목장을 가셔야 돼요. 맞아 죽어도 가셔야 되고.) 그래서 이렇게 부부의 나눔을 듣고, 집에서는 분명히 다음 주에 안 오겠다던 분들이 다음 주에 또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거부감이 있던 새 가족 여자 집사님은 우울증 약을 먹었다는 것을 처음 얘기한다며 나누어주셨고, 우울과 불안, 불면, 자살 충동으로 힘들어 하는 방문자 남자 집사님은, 어릴 적 아버지에게 따귀 맞은 게 아직도 기억난다며 나눠주셨습니다. 정말 신기했습니다. 나는 너무 힘든데, 그냥 내 얘기를 하니까, 사람들이 살아나니까, 제 속에 남편과 살기 싫다는 이 어지러운 마음은 간 곳이 없고, 목장 식구들의 사연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목장에서 나누기만 하면 팩트가 희석이 되 가지고, 내 고난이 약재료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아버지 품으로 데리고 가시는 줄 믿습니다.
Q. 환란 당하고 원통하고 빚진 것이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약재료가 되는 것을 믿습니까?
Q. 무슨 환란과, 무슨 원통과, 무슨 빚이 있는지 나눠 보세요.
2. 중심 잡는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28절)
요셉에게는 애굽에서의 생계와 보전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 야곱의 가족을 믿음의 땅, 고센으로 인도하는 자는 유다입니다. 유다는 며느리와 동침한 사람입니다. 가부장 적인 그 시대에 유다는 회개를 한 뒤에 모든 사람의 중재자가 되었습니다. 총리 요셉이 아니라 유다가 아버지와 자녀들 간의 중재자, 형들과 요셉 간의 중재자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죄 많은 유다가 (자타가 공인하는 죄 많은 유다가) 구속사에 한 획을 긋고, 이 가정에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환란 당하고 원통한 우리들의 친구입니다. 회개한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무궁하신 은혜는 우리의 신앙 상식을 초월합니다. ‘뭐든지 할 수 있어.’ 이렇게 최면을 아무리 걸어보세요. 자기 부인과 최면은 똑 같은 것 같아도, 하나는 하나님 훈련이고, 하나는 최면입니다. 자기 부인의 기도는 예수님도 힘들게 하신 기도예요. 그런데 기복 기도만 하면서 ‘할 수 있다., 믿는 자가 능치 못한 일이 뭐가 있느냐.’ 계속 외치다가 난리의 소문이 오면 정신을 못 차리고 쓰러지는 것입니다. 내 죄를 뼈 아프게 보는 유다가 온 세계에 예수님을 대표하는 중재자가 된 것입니다. 왜요. 자기 부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부인이 있는 사람이 어디서나 진정한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중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29절입니다. 유다 한 사람이 있었기에 요셉과 야곱이 같이 눈물을 흘리면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데,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물로 바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다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이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어요. 회개하는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했기 때문에, 서로 얼싸 안고 죽어도 원이 없다는 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각자 가정에서 중심 잡는 한 사람이 있으면 소망이 있고 아버지 품으로 다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유다가 어떻게 중심을 잡았습니까. 자기가 적자임에도 서자처럼 차별 받았습니다. 요셉은 서자인데 장자처럼 편애를 한 이 아버지를 위해서, 요셉을 위해서 죽겠다고 한 것입니다. 왜 입니까. 내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식구들을 주님께 인도하실 줄을 믿습니다.
지난 주 나눔이에요. 이 남편 집사에게는 여자 속옷을 모으는 성 도착증 증세가 있는데, 이 사건으로 그렇게 인정 중독이 있는 직장에서 경찰에게 연행이 되었습니다. 8개월을 살고 나왔는데, 그 동안에 수 없이 제 설교랑 큐티인을 가져다 주었어요. 그래서 이제 그렇게 기도했으니 나오면 완전히 달라지겠다 생각했지만, 나오자 마자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계속 다니면서 너무나 아내를 힘들게 했습니다. 이렇게 절대로 이 분이 안 바뀔 것 같았는데, 아들이, 자기하고 똑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근데 그 아들이 자기와 같으니까 늘 오살을 하고, 나와 같은 길을 가는 것을 보고, 정말 자기가 말씀을 듣고 교회를 와야 되겠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되고, 지난 주에 목장에서 남편이 고백을 했어요. (모든 얘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아내가 바톤을 받아가지고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자신이 처녀 시절에 음란하게 살면서 불신 교제로 낙태를 했던 자기 삶의 결론이고, 나는 이 남편을 세우겠다. 이런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다. 이런 고백으로 인해 모임의 자리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격과 은혜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이 아내 한 사람이 중심을 잡았기 때문에 이 큰 아들도 교회를 오고, 눈물로 이 가정은, 와서 예배를 사모하면서, 먼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정 중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Q. 여러분은 중심 잡는 한 사람 입니까, 상관 없는 한 사람 입니까?
3. 가증히 여김을 받는 것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 오는) 비결입니다. (31절-)
구별된 가치관으로 살아야 되는데, 가증히 여김을 받는 것이 그 고센 땅에 정착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에서 불러내십니다. 스스로 창대케 못 하니까 잘 사는 애굽에 데리고 가서 부흥케 하십니다. 31절부텁니다. 애굽 사람들은 소를 신성시 여겨서 소로 제사를 드리는데, 소를 잡아 먹는 목축하는 사람들은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막 가증히 여겼습니다. 당연히 그 사람들 하고는 혼인도 안 합니다. 신전 참배도 금지하니까, 목축을 하는 이스라엘은 저절로 순결성을 지키기가 너무 좋습니다. 총리로서 요셉은 이 친척들에게 관직을 주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있을 곳을 마음대로 정해도 되지만 바로가 데리고 오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바로 구원의 일은 이렇게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친척들을 보내는 곳을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곳, 안 가는 곳, 손해 보는 쪽을 택해서 가는 것이 지혭니다. 여러분들이 리더가 되려면 항상 손해 보는 쪽을 택하십시오. 그러면 시샘이 없습니다. 그리고 일평생 항상 손해 보는 쪽을 택하면 결국 남는 것은 내게 좋은 사람이 남게 됩니다. 내게는 믿을 만한 사람만 있게 됩니다. 언제나 유익을 구하는 데로 가게 되면 거기도 유익을 구하는 사람밖에 없습니다. 자, 합리화 시키자면,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가 농사 지었다. 데리고 있던 소, 양을 데리고 왔다. 이렇게 하면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농사 짓다가, 데리고 있던 소, 양 데리고 왔다. 근데 이 애굽 사람들은 목축 하는 사람을 조선 시대 백정들처럼 천히 여기는 거예요. 그리고 요셉의 부인이 대제사장 딸인데 얼마나 무시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그것을 다 넘어서 우리의 갈 곳은 애굽이 아니라 가나안인 것을 알고, 세속적인 것을 피하기 위해서 고센 땅을 택합니다. 여러분들이 예배 때문에 포기해야 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기 아버지와 형들에게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게 하기 위해 대답을 준비시킵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말씀이 들리기 위해서 215년의 고난이 필요했습니다. 처음부터 이 얘기가 들렸겠습니까? 저도 안 들리는 분들한테 들리게 하느라고 아주 창자가 끊어지듯 오는데, 내가 들었으면 좋겠는 사람이 안 들리는 거예요. 죽어도 안 들리는 거야. 아브라함의 아들들이 안 들었어요. 이삭의 아들도, 에서는 안 들렸어요. 야곱의 아들이 3대째 되니까 험악한 인생을 살아가지고, 이 자손들이 좀 들리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안 들리는 사람을 그냥 기다려야 되는데, 제가 막 이렇게 애통함이 넘치는 거야. 그냥은 안 되는 거 알면서도 저는 이렇게 애통함이 넘치는 거예요. 우리들 교회를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이해를 못 하고, 교회를 대충 다니는 사람도 이해가 안 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식구라고 할 지라도 너무나 처절한 배반과 속임과 서얼의 아픔을 겪어보면서, 이 식구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믿어야 되는 거예요. 믿음끼리, 통하는 사람끼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애굽으로 갔지만, 이제 아무도 눈 여겨 볼 수 없는 멸시 받는 고센으로 갔듯이, 지금 우리들 교회도 강남 한복판에 있지만 아무도 눈 여겨 보지 않는 학교에서, 매주 의자를 깔고 접어야 하는, 너무 불편해서 냉난방도 안 되는, 이 곳에 왠만한 사람은 결코 오지 않는, 그래서 애굽 사람은, 강남 사람은, 결코 오고 싶지 않은 우리들 교회에 자연 산술로는 결코 이해가 안 되는 부흥을 허락하셨습니다. 핍박 받고 힘들다는데, 어떻게 이렇게 모이지? 그런 이해가 안 되는 부흥이 일어난 것입니다. 저도 알았겠습니까? 저도, 그리고 우리들 교회도, 천민처럼 가증히 여김을 받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교단 청년 연합회 강사로 (유수한 교단의 강사로) 제가 허락 받고 포스터까지 나왔는데 그 교단은 여자 목사를 인정하지 않아서 여자 목사라 취소되었다는 통보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자가 강단에 서는 것조차 가증히 여기는 풍토에서 우리들 교회 목회가 부흥되고 있는 것은 다들 가증히 여겨주심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가증히 여겨주시는 덕분에 너무도 간절해지고, 너무도 애통하고, 너무도 아버지 품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계속 인정받고 배부르고 등 따시고 냉난방 다 되고 그러면 뭐 이렇게 감사함이 넘치겠습니까. 저에게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목회를 해도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저를 가증히 여겨 주시기 때문에. 여자 목사라서 가증히 여겨주시기 때문에. 과부라서 가증히 여겨주시기 때문에. 저는 날마다 눈물 흘리고 가는 것 밖에 없고, 여러분들의 아픔에 같이 우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서얼의 철폐가 조선 백성의 가치관으로는 도무지 철폐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일제 36년 동안, 양반이고 천민이고 모두 식민지 생활을 하게 하시고 그것을 통해서 철폐하게 하셨습니다. 이 교계에서 남녀 차별이 어떤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오늘 본문이 차별 이야기로 주종을 이루기 때문에, 차별을 받아서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불행이 아니라 변장된 최고의 축복인 것을 알고, 아무리 세상이 가증히 여겨도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남편과, 부모가, 회사가, 가증히 여겨도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아까 말을 쉽게 해서 그렇지 23명의 여자와 바람 폈다는데 너무 가증하지 않아요? 그래도 이렇게 다 가정 지키고 있어요. 이게 너무 멋있는 거 아닙니까? 여러분 이 땅에서 학벌 좋고 멋있는 선남선녀가 가정을 이루어 산다는 것이 멋있습니까, 이렇게 가증히 여겨 준 이 가정이. 정말 가정을 지킨다는 게 정말 멋있는 거 아닙니까? 나를 받아 줄 아버지의 품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을 줄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속인다고 해도 노여워하지 않을 수 있는 가치관이 생깁니다. 나를 생각하는 분이 창조주인데, 내가 거기 안식하고 있는데, 내가 태양인데, 왜 촛불을 보고 놀라겠습니까. 제가 진짜 가증히 여김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여기서 이런 설교를 하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진짜 가증히 여김을 받는다면, 가짜도 언급을 못 할 텐데, 여러분들은 자유함을 가지고 가증히 여김을 받는다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약재료로 끊임없이 나누어 주고 계십니다.
술과 담배와 음란이 저의 주특기입니다. 그러고 그것이 죄 인줄 몰랐습니다. 그러면서 아내에게는, 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 라며 생색을 내는 아주 웃기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다 하나님께서 술을 끊게 하시려고 저에게 당뇨라는 병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내 열심으로 당뇨를 이겨 보겠다고, 이것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라고 하신 사건인데 깨닫지 못 하고 막 또 열심을 냈습니다. 그렇게 제가 안 돌아오니 제 소중한 보물인 아이들을 치셨습니다. 공부 잘 하고 착했던 아이들이 학교를 안 가기 시작하고 방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역시 아버지께서 돌아오라는 싸인을 보여주신 것이었음에도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 때도 돌아오지 않으니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남은 내 가장 소중한 보물인 아내의 바람 사건으로 저를 치셨습니다. 끊임없이 행했던 언어 폭력과,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 하니, 아내가 다른 남자와 가출을 했습니다. 당시에 제가 대기업 부장이었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해달별이 떨어지는 사건이었음에도, 여전히 저는 제 힘으로 극복하려고 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 품으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오자마자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저의 사건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 했습니다. 정말로 제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깨닫고, 나를 너무 사랑하셔서, 건강, 자녀, 그리고 아내가 수고와 수치를 당하게 하셨던 아버지의 그 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깨닫게 되니, 아내가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만나서 감사하다고 하면서 이제 뭐가 된 것 같으니 또 여기까지.. 여전히 여기까지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또 가까이 오라고 암 사건을 주셨습니다. 이제 암 사건 앞에서 저희 부부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지난 주 큐티 나눔이죠) 라는 기도가 여전히 나오지 않습니다. 목자님이 이렇게 물었어요. ‘아내 분을 완전히 용서하셨나요?’ 그랬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용서하려고 하는 마음은 교만인 것 같습니다. 저는 용서할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이기 때문에 아내를 용서했다는 마음보다는 감사한 마음만 있습니다. 이렇게 이 고난을 통해서 온 가족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들 이 가정도 무너져야 될 집안 아닙니까? 이 가정도 다 살아났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Q. 여러분이 가증히 여기고, 여김을 받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Q. 여러분은 항상 손해 보는 쪽을 택하십니까?
Q. 그러면 손해 본 적은 얼마나 있습니까?
이제 아버지 얘기를 좀 하려고 합니다. 오늘의 공동체 고백은 서두의 무디 성경학교의 퀘슬러 교수 얘기를 좀 하고자 합니다. 나는 역기능 가정에서 중요한 교훈을 배웠는데, 첫째, 그림 같은 가정 생활은 없다는 것을 알았고, 가정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고, 성경만큼 진실한 기록부를 적어놓은 책이 없다는 것을 알았고, 아담의 아들 가인은 살해를 하고, 노아는 술이 취하고, 롯이 딸과 근친상간해서 아들도 낳고, 그 유명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족보를 봐도 온전한 가정이 하나도 없고, 예수님의 가족조차도 형제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그를 미친 사람 취급했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가정이 어떤 면에서는 역기능적인 면을 가지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런 역기능 가정을 강력하게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역기능 가정에도 좋은 순간이 있다. 순기능 가정의 아이들이 아무도 먹여주고 입혀주는 것에 감사가 하나도 없는데, 역기능 가정의 아이들은, 우리 아빠도 옛날에 언젠가 입맞춰 줄 때가 있었어, 사랑하실 때도 있었어, 언젠가 나랑 대화를 해주신 적이 있었어. 이런 것이 너무 너무 감사함으로 기억이 된다고 했어요. 나에게 엄마 아버지의 흉터가 남지 않은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식칼로 아버지를 위협하던 그 밤, 아버지가 석유로 불을 지르겠다고 하던 그 밤, 어머니의 자살 기도 실패 후에 욕실 거울에 유혈이 낭자했던 그 밤의 기억들이, 두려움과 절망감으로 엄습해오고, 그런 기억들 속에서 살고 있을 때, ‘여보, 당신은 이제 그 집에 살지 않아요.’ 이렇게 배우자가 위로를 해주면, 어른이 되어서도 울음을 터트리게 됩니다. 감정적인 흉터 없이 살아가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그 상처들은 무한히 값진 진리를 가르쳐 주었어요. 평생 엄마, 아버지를 묵상을 하면서 가는데, 나의 행동도, 우리 아이들이 평생을 통해서 묵상을 할 것이 아닌가. 내가 하는 행위는 개인적인 것은 없고, 다 그 부모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내가 툭 뱉은 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아이들 마음을 찌르는 지 모른다. 그렇게 힘들게 한 어머니는 30년 전에, 아버지는 15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직도 그 두 분의 파손된 삶의 영향을 받고 있고,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서 주의 깊게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도 무한해서, 나의 결론은 그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두 분 다 술주정뱅이고, 아버지는 날마다 욕설을 퍼붓고, 어머니는 심한 우울증이고, 두 분은 부모로서의 책임을 한 적이 없는데, 그런데, 그런 것들이 그 때도 지금도, 부모님에 대한 나의 사랑을 빼앗아 가지 못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알코올 중독자건 바람을 폈건 마약 중독자건 자녀들은 죽을 때까지 내 엄마,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부모를 잘 나서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일들이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막지 못 한다는 것입니다. 역기능 가정에서 성장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부모의 학대가 준 분노로 깊은 실망감을 감수하는 능력을 배웠습니다. 너무나 이렇게 지금 교수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을 살리는 이 능력 또한, 부모로부터 배웠다는 거 아닙니까. 어쨌든 나는 우리 부모님을 사랑합니다. 지금도 분노와 실망을 느끼지만, 분노와 실망에 불을 붙이는 것이 사랑입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사랑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자녀의 본성인데, 자녀들도 사랑하는 부모의 경력이나, 실력에 좌우되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도 나를 사랑하는 것이, 내가 어린 시절 갈망한 종류의 사랑이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가 그들의 아버지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는 그렇게 평생 동안 알코올을 남용하고, 생애 몇 시간을 입원해서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할 때 숨이 가빠서 대화하기가 힘들었는데, 그렇게 무서웠고 범접할 수 없었던 큰 사람이, 이렇게 작게 누워있는가. 눈에 눈물이 가득하면서, 나는 그 아버지가 좋아서 글씨를 함부로 쓰는 것까지도 모방을 했는데. 내가 아플 때 의사에게 그래도 한 번이라도 데려다 줬던 분. 나에게 처음으로 야구글러브를 사 준 분이었는데, 눈물을 감추면서 속삭였습니다. 내가 마땅히 하고, 해야만 할, 또 할 수 있는 유일한 말. ‘아빠 사랑해요. 사랑해요.’ 그런데 어떤 반사 작용이라도 일어나듯, 전에 무수히 듣고 싶었고, 또 너무나 듣고 싶었던 그 말, ‘나도 널 사랑한단다, 자니야.’ 우리가 서로 나누었던 마지막 말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내가 역기능 가정에서 배운 가장 위대한 교훈이었고, 우리 가정이 이렇게 엄청나게 파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형상의 희미한 흔적이, 인간 사랑이 흩어진 전해 속에서 이렇게 반사되고 있다는, 너무나 놀라운 진리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에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잘난 아들은 다 떠났고 못난 아들이라 더 사랑합니다. 그래서 아들까지 보내서 우리를 자기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사실은, 인간의 형편없는 사랑과는 달리, 하나님의 사랑은 파기될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에, 아버지 품으로 돌아올 때, 여러분들은 모두 이 사랑을 나누어 주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런 가치관이 바뀌어야 할 텐데 아직도 날마다 옳고 그름으로 따지니까, 또 다른 역기능 가정을 만들어, 이 좋은 모든 것을 버리고, 진짜 지옥 자식으로 보내는 여러분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 위하여서는 먼저 내 아버지, 내 부모 품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좋은 부모 나쁜 부모는 이 땅에 없고, 내가 이 땅에 와서 예수를 믿게 해 준 부모가 최고의 부모입니다. 이렇게 정말 역기능 가정에서 최고의 사람들을 살리는 인물들이 나온다는 것을 생각하며, 우리가 지나간 인생을 이렇게 해석을 잘 하면서 이 모든 것이 해석되기 위해서는 오직 아버지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Q. 내 부모이니까, 또 내 자녀이니까, 용서하고 사랑해야 할 내 아버지, 부모, 배우자가 있습니까? (그것은 해도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환란 당하고 원통한 자들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하십니다. 각자 집안에서 중심 잡는 한 사람이 돌아오게 한다고 합니다. 누구 탓이 아니고, 자식이면 자식, 부모면 부모, 자기가 먼저 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가증히 여김을 받는 것이 비결이라고 합니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오늘 이제 주와 함께 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눔
(A) 저는 욕심이 많은 편인 것 같다. 우리들 공동체에 와서 말씀이 들리기 전까지는 손해 보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자) 니가? 너는 배려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A) 그럴 때도 있지만, 일단 내가 정해 놓은 선까지 만이다. 내가 정해놓은 선을 넘어서면 더 이상 배려하기 싫어지고, 손해도 보기 싫고, 욕심과 탐심이 많은 내 마음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래도 지난 번 직장 사건이 있었을 때, 목장에 오픈하고 처방대로 순종했는데, 확실히 묻고 적용하며 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고난을 감해주시는 면이 있는 것 같아 감사했다. (목자) 처방이라고 하긴 했지만, 니가 힘들 것을 뻔히 아는데, 그래서 돌아가는 발걸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는데, 니가 잘 적용하고 순종해서 감사했다.
(B) 하나님 아버지를 안다고 해서 인생이 슬프지 않은 건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모르면 인생이 더 슬플 것 같다. 주중에 너무 힘들었다. 몸이 늘 아프니까. 몸이 안 아픈 데가 없고 머리도 아프고 그러니까 너무 괴롭다. 오늘도 머리가 많이 아파서 힘들었다. 이 직장을 정리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매일 오늘 뭐 먹지 그런 걱정이다. 뭘 먹어도 혼자이고. 특별한 사건은 없는데 늘 괴롭다. 밥 먹는 것은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내 영이 아픈데 말씀 먹을 생각은 안 하는 것 같다. (목자) 너의 외로움이 너무 느껴졌다. 그래도 말씀대로 가려 하는 모습이 기쁘다. 기도하겠다.
(C) 조직 검사를 하고 나서 계속 마음이 불안하고 무겁다. 암이어서 죽을 까봐 너무 무섭다. 한편 남자친구와 교제 중인데 혼전 순결 지키고 싶은데 그게 어렵다. (목자) 최대한 참아봐. 기도하겠다. (A) 일단 딱 한번만 참아보자. 라고 생각하고 참아 봐라. 그 고비만 넘기면 한풀 꺽일 수가 있다. 위험하겠다 라고 느껴지는 선을 니가 제일 잘 알지 않나. 그러면 안 해야 된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거 하라고 해서 미안한데.. 그래도 어쨌거나 데이트 시간과 장소 , 모든 것을 지혜롭게 잘 정해서 최대한 그 상황을 피했으면 좋겠다.
기도제목
이선애
1. 검사 결과 암이 아니기를
이은혜
1. 매일 큐티하며 말씀으로 기도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2. 주 안에서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3. 건강과 체력 지켜주시고 지혜 주시기를
4. 가족 구원을 위해 날마다 기도 할 수 있도록
강혜림
1. 논문 쓰는 데 하나님의 지혜 주시고 진로 인도해 주시길
2. 남동생 예배 회복되고 신결혼 하도록
3. 가족들 한 말씀으로 나누고 엄마 십일조 신앙회복 되길
4. 5월 첫 주 여행에 하나님 동행해 주시길/ 언니 ,남동생 운전 연수 잘 받도록
5. 신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