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 아이스 빌리지
참석: 이은혜 이선애 서수연 강혜림 박세현
말씀: 롬1:1
제목: 자기소개
설교:
테#51084; 아웃 커피 30년이면 5500만원이 소비가 된다고 합니다. 푼 돈이 부자의 습관을 바꾼답니다. 부자 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구나 했는데, 세계 100대 부자 서열을 보았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회장인 빌게이츠가 부동의 1위를 차지했는데, 그의 재산은 792억 달러, 한국 돈으로 약 95조를 넘습니다. 더욱이 그는 10년 훨씬 넘게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만일 그가 우리 가족이라면, 하나님보다 더 자랑하고 싶지 않을까요? 부지중 오살을 하고 도피성에 숨어 있으면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무엇이 훈련되어야 할까요? 자기 소개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소개를 어떻게 하십니까? 집안이 자랑인가요, 학벌이나 외모가 자랑인가요? 아니면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어서 남들 앞에 설 때마다 항상 주눅이 드나요? 오늘은 2000년 전의 바울의 자기 소개장은 어떠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1. 바울은 자랑스럽게 자기 소개를 합니다. (1절)
로마서는 음행의 도시 고린도에서 기록 되었습니다. 쾌락의 도시였던 그 곳에 12개의 거대한 신전이 있었습니다. 한 신전에 창녀가 1000명쯤 있었다고 합니다. 이 죄 많은 곳에서 로마서를 썼기에, 로마도, 고린도도 다 변한 것입니다. 복음이 변화 시켰습니다. 우리 나라도 지금 10위권에 드는 경제 대국으로 성장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심각합니다. 악한 성공과 음란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2007년부터는 학원 복음화가 완전히 막혔다고 합니다. 이 문제는 복음으로만 기억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면, 예수님을 소개해야 하는데, 그 때 예수 믿는 자기 소개를 잘 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로마의 형제, 자매 들에게 소개하면서 아주 자랑스럽게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 의 종이라고 자기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사실을 정말 자랑스럽게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그 때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세상에서 본다면 실패한 분 아닙니까? 장가도 못간 분, 집도 한 칸 없었던 분, 젊은 나이에 요절하시고, 고생 고생하다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분. 그 분이 훌륭해도 나는 그 분을 닮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라면 예수님이 자랑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예수님은 바울에게 자랑거리였습니다. 어떤 유명한 신학 대학원 교수님 사모님께, 처음으로 교수님 댁을 방문한 제자가 자녀에 대해서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몇 살이고 어디 학교 다니고 이런 얘기할 줄 알았더니, 그냥 큰 아이는 주님을 영접해서 선교사까지 된다 그래서 너무 자랑스럽고, 둘째는, 그래도 그 아이는 거듭난 신앙 생활을 해서 그것도 감사한데, 셋째가 아직 주님을 못 만났다고. 이게 기도 제목이라고. 기도해 달라고. 이 사모님의 관심의 초점은 온통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는지, 안 만났는지가 모든 자랑 또는 염려의 기준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낮아지셔서 오신 성육신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것은 대단한 사건인데, 그 분이 나의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앉으나 서나 예수님이 내 인생의 그리스도 되시는 것을 당연히 자랑해야 합니다. 이제 내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이렇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전도의 기회가 열립니다. 요즘에는 개인 전도의 기회가 좀 줄어 들었지만, 병원에 한 번 심방 갔을 때, 거기 문병 오신 분 들까지 있어서 전부 복음을 전하고 영접 기도까지 시켰는데, 그 분들이 아는 환자들이 있다고 해서 또 그 병실에 다 가서, 한 집 심방 갔다가 세 곳의 병실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고 온 적이 있습니다. 나에게 복음의 소개장이 준비 되어 있으면, 어디에서나, 또 누구에게나 자기 소개로, 예수님을 자랑하게 될 줄 믿습니다.
Q. 어느 자리에서나 그리스도인 인 것을 자랑스럽게 소개합니까?
Q. 자녀를 소개할 때 학교, 직장, 외모 등을 소개하지는 않습니까?
Q. 면접이나 맞선 자리에서 믿음으로 소개하고, 소개받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임을 알고 있습니까?
Q. 여러분은 앉으나 서나 예수님 자랑이 나옵니까, 자기 자랑이 나옵니까?
Q. 말씀 나눔을 하면서 자랑 같지 않게 자랑을 하지는 않습니까? (지나온 일의 상처를 얘기해 보라고 하면 업되고흥분이 되어서 상처 얘기를 하면서 자랑하시지는 않나요?)
2. 소개의 내용입니다.
(1) 파울로스(작은 자), 바울입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파울로스. 즉, 작은 자라고 소개를 합니다. 예수 믿고 보니 한 없이 작은 자라는것 입니다. 바울의 본래 이름은 사울 (“희망으로 하나님께 구한다”는 뜻)입니다. 베냐민 지파인 사울은 초대 임금, 사울 지파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대통령을 배출해 낸 지파 아닙니까? 아무리 비참하게 망했어도 대통령의 가문은 대단합니다. 우리나라에도 현존하는 대통령 가문이 있는데, 잘 했든, 못 했든, 대통령을 배출한 집안에서 자녀의 혼담이 들어온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바울이 그러한 왕가의 후손입니다. 사울의 부모는 베냐민의 명예를 드높이라고 하면서 어려서부터 요구했을 것입니다. 사울의 뜻은 “희망으로 하나님께 구한다”는 뜻입니다. 베냐민의 희망이고, 사울 집안의 희망이었을 것입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이를 악물고 모든 것을 쟁취해서 다른 사람 상처 주는 데 씁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고 구해서 KS마크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해서 석학이 되었으며, 다소 시 출신의 로마 시민권 등, 가질 것을 모두 구했지만, 결론은 세계적인 설교자인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자기 자신의 열심이 무엇을 하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습니다. 모든 것 요구하기만 하는 사람은 만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강권하심으로 주님이 만나주신 사울은, 거듭난 다음, “못난 자, 작은 자”의 “멸시 받는다”는 뜻인 라틴어인 바울로, 스스로 큰 자에서 작은 자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성경적으로 이름은 겸손하게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백의의 민족 같지만, 천자의 민족이고 전투적인 민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지을 때, “큰 대”자, “높을 고”자 등 크고 멋있는 이름으로 짓고 싶어합니다. 열심이 특심인(?) 어머니께서 딸의 이름을 "최고야" 라고 지어 주신 분이 계세요. 근데 이 딸이 알코올 중독, 담배 중독에 최고가 되었고, 아이들을 심하게 다루고 가정을 돌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믿어서도 열방을 향해서 나아가는 “최고” 밖에 몰랐다고 합니다. 이름을 “최고”라고 지었는데 이상한 데서 최고가 되면 어떡합니까? 이름을 온유로 지었다고 또 온유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 나라는 얼마나 최고를 좋아하는지, 나라 이름도 대한민국입니다. 하여튼 “큰 대”자 엄청 좋아합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의 복은 5복을 넘어서 8복이 아니겠습니까? 가난하고 애통하고 청결하고 나라를 위해서 핍박을 받고.. 그렇다고 이름을 김청결, 이가난, 한애통, 이렇게 지으라는 건 아니에요. 잘 들으셔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부모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 믿음의 부모를 닮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 것이니, 믿음의 조상치고 고난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기에, 현세적인 5복 보다는, 영적인 8복을 원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이름은 평범하고 겸손하게 짓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죽을 때까지 생각해도 세계적인 설교자요, 전도자인 스데반을 죽인 것은 얼마나 눈물을 흘릴 일이었겠습니까. 자기를 아무리 못난 자, 멸시 받는 자라고, 자기를 조롱한다고 해도 자기는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이렇게 자기가 작은 자다. 이런 생각이 있어야 해요. 사울을 겪고, 지나면서 인생이 헛된 것을 알게 됩니다. 파울로스의 “파워” 동사는 “포기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기득권, 가말리엘의 문하생, 다소 시 출신 등등,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2016년도 첫 목장 예배 모임에서 각자 자기 소개를 한, 한 목장의 나눔을 읽어 드리겠어요. 우리들 교회는 이렇게 자기 소개를 해요. 처음 만난 사람한테 목자가, 저는 분노 조절 장애입니다. 하루는 네 명이랑 싸운 것처럼 생활할 때도 있습니다. 요즘은 옆 집에서 인테리어 공사 중인데, 옆에서 문 열어 놓고 공사를 해서 싸우고 나가다가, 또 덤프 트럭 기사와 싸운 적도 있습니다. 지금의 아내와는 결혼 11년 차가 되어가는데, 엄청 싸우면서 결혼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들 교회 목장 예배를 드리면서 권찰이 뛰쳐나간 적도 있습니다. 이걸 소개라고 하니까, 또 딴 분이, 우리 부모님은 어릴 적 잘 사시던 분들이셨는데 망하고, 게다가 아버지가 도박을 많이 하시고, 집 안에서 부재 중인 시간이 많으셔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괜찮아 보이지만, 제 힘으로 하려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기적인 모습이 있고, 저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여자 목원 집사가 저는 오빠를 인정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그 오빠가 우리들 교회에 와서 인정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의아해서 와 보고 싶었어요. 그러다 따라왔어요. 어릴 적 저의 엄마는 남편보다 자식이 더 우선이라고 저희들을 키워주셔서 그런지, 그 영향이 저에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집사가, 저의 소개는, 제가 성품으로 하는 것이 있어요. 또 한 분은, 비뇨기과 검사 중에 재검을 하라는 진단이 나와서 그 때부터 제가 신앙 생활을 다시 하게 됐다고. 이런 소개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떨 거 같아요? 이런 소개를 하면 갑자기 편할 것 같지 않아요? 그런데 그냥, 여기 서울 대학 나오시고, 저기 삼성 다니시고, 뭐 이런 소개를 하면(그것이 사실일지라도) 갑자기 도로 다 가고 싶어질 것 같아요.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다 이렇게 좀 망가지면 좋겠습니다.
Q. 여러분의 사울은 무엇입니까? 누구였습니까?
Q. 무엇을 지나고 겪으면서 작은 자가 되셨습니까?
Q. 아직도 왕과, 돈과, 명예와, 학벌이 좋아서 사울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둘로스 종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작은 자라는 것을 인식하니까, 이웃과의 관계에서 둘로스, 종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외국의 한 아파트에 사는 한국 남자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너무 창피해하며, 자신이 그 아파트 관리인이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한국에서는 대령으로 제대한 장교였다고 이걸 자랑을 했습니다. 아무도 자신이 누군가의 종임을 자랑하는 이는 참 드문 것 같아요. 종을 부리는 자라야 자랑하고 소개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파울로스, 작은 자가 되면 대인 관계에서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종이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종은 노예입니다. 지난 골로새서 설교 때에 백정 장로 박성춘 장로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2000년 전의 로마의 노예는 그보다 훨씬 비참했습니다. 로마 인구의 절반인 6000천만이 노예였기에, 공장의 기계나 다름 없는 그들이었고, 시장에 나가면 반나체가 되어 진열이 되어 있어서, 다 흥정을 해서 사가는 물건인 거예요. 그리고 뚫려진 귀에 주인의 이름을 새긴 귀걸이를 해주면, 그 주인의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름도, 생각도, 꿈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종에도 차등이 있었습니다. 집사인 종은 약간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짐을 지고 가는, 그것도 높은 계열의 종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종도 몇 계층 계급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하위 계급이 둘로스였습니다.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있고, 전혀 자유가 없고, 빚지고 갚지 못한 자, 중죄인으로 사형시키지 않고 부려 먹을 수 있는 자. 그래서 배 밑창에서 바깥을 쳐다보지도 못 하고, 노를 저어도.. 이런 둘로스는 새 한 마리 값도 안 되어서 바다에 버리든지 산에 버리든지 주인의 마음대로 해도 되는 노예가, 히브리적 표현으로 둘로스인 것입니다. 그런데 당대 엘리트이고,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이 자기를 목수의 아들, 나사렛 예수의 둘로스라고 소개한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둘로스보다도 더한 비참함은 영원히 죄에 매여 종 노릇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죄에서 나를 자유하게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스스로 예수님의 소유가 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 보면, 죽기를 무서워하여 일생에 매여 종 노릇 하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자유함도 없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1장에 보면, 그 6년 노예 생활을 한 후에는, 7년 째에, 자유를 주라고 합니다. 그런데 둘로스보다 더한 비참함이 영원히 죄에 매여 종 노릇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를 그 죄에서 자유하게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노예도, 육적으로 자유하게 해주었어도, 내가 이 주인이 너무 좋으니까 스스로 주인의 소유가 되기로 결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신분을 떠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만이 진정한 노예 해방, 자유를 누리는 것입니다. 내가 자랑하는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면, 나도 못 박히겠다는 것이 예수님의 종으로 소개하는 것입니다. 나도 십자가를 지겠다. 하는 삶의 결단입니다. 내가 그 예수님의 종이라면, 상대방을 예수님으로 생각하는 것이 구속사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죄에서 구원 받았다면 상대방도 그 구원을 누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생사여탈권이 내가 믿기 원하는 부인에게, 남편에게, 자식에게, 부모에게, 상사에게, 부하에게 있다는 걸 왜 모르십니까. 물론,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맹목적인 순종을 하는 건 아니에요. 구원을 위한 순종입니다. 그래서 나의 생사여탈권이, 내가 믿기를 원하는 모든 식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죽든지 살든지 나는 예수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신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예수 믿기 위해서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은 기가 막힌 구원의 언어, 구속의 언어입니다. 듣기만 해도 숨이 안 쉬어지죠? 자, 이번 주일에 전도하기 위해서 가서 나는 당신의 종입니다. 좀 해보세요. 부모가 자녀에게 무릎 꿇기가 하늘의 별따기이고, 자녀는 어렸을 때부터 무릎 꿇어. 잘 그랬으니까. 자녀가 교회 오기 위해서 무릎을 한 번 꿇어보세요. 부모는 영원히 용서하지 않는다고 그랬잖아요. 무릎을 꿇고 좀 데려와 보십시오. 그래서 자기의(나 자신과의)관계에서 파울로스가 된 사람은 이제 이웃과의 관계에서 둘로스라 그랬어요. 그래서 이제 목장에서도, 내가 미천한 거, 이거 알지만, 목장에서, 공동체로 또 도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종이 되나. 그래서 목장에서 몇 가지 목장 닉네임 후보가 물망에 올라가지고이것을 투표하는 과정을 읽어봤습니다. 첫째가, “구원 목장”이 후본데, 종류와 장르는 다르지만 주님 안에서 각자 죄를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새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아주 작고 비천한 죄인 신분 임에, 단 돈 십원보다 일원이 부족하여 구원 밖에 안 됐지만, 구원을 사모하고(salvation을 사모하고), 말씀에 붙어가며, 종의 입장으로 십자가를 지며, 주님께 구원을 간구한다는 취지의 구원 목장이 하나 나왔어요. 그랬더니 두 번째 후보가 “쓰레기 목장”이에요. 목사님의 마지막 주일 설교 말씀 중, 버리고 삶에 인내합시다. 라는 깊은 뜻을 되새겨, 세상에서 찌든 교만과 생색과 혈기와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 탐식, 시기, 질투 등. 주님 보시기에 쓰레기 임이 분명하니, 쓰레기를 버리자는 취지로 “쓰레기 목장”이 후보로 나왔어요. 세 번째 후보가, 구원 목장과 쓰레기 목장을 절충하여서 탄생한 하이브리드 형으로, “구레기”였는데. 그런데 조금 재미를 위해서 “구뤠기 목장”으로 투표해서 당선이 됐답니다. 결국은 “구뤠기”가 승리했다고. 2016년도 표어가 “결국은 승리합니다”잖아요. “구뤠기”에는 주님 보시기에 구더기, 쓰레기만도 못 했던 우리들 각자의 출애굽 역사가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담임 목사님의 시집 살이를 비유한 비단 치마 속의 넝마 신세도, 구뤠기 신세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우리 처지와 일맥상통하며 오버랩되어 불현듯 걸어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이제 목장도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지어야 되는 거예요. 이게 전부 다 겸손한 이름이예요. 종의 이름인 거예요.
Q. 예수님의 종으로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가족과 동료를 섬기는 종으로, 둘로스로 자처합니까?
Q. 복음 때문이 아니라, 배우자의 경제력, 자식의 성공을 위해, 육신의 정욕에 매여 종 노릇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Q.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둘로스입니까, 남편의 둘로스 입니까, 자식의 둘로스입니까, 돈의 둘로스입니까?
이렇게 내가 정말 자신과의 관계에서 작은 자가 되어, 남에게는 종의 입장을 거쳐서 세 번째는,
(3) 아포스톨로스(부르심을 받은 자, 보냄 받은 자), 사도입니다.
자신과 남을 거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헬라적 어원의 아포스톨로스 사도라고 소개를 합니다. 사도는 원어로 아포스톨로스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 “보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작은 자로서 감당할 길 없는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고백을 통해 바울은 마침내 사도가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저런 전쟁이 많았는데, 전쟁이 나면 사도를 보내서 분쟁의 원인을 알아보고 타협점을 찾곤 했습니다. 사도로 보내진 사람이 타협을 잘 하면 전쟁을 막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 B.C. 490년, 그리스의 사도가 42.195 킬로미터를 뛰어서 승전보를 전해 준 것이 마라톤의 기원이 되었다고 하지요. 그 때 외친, “유안겔리온(기쁜 소식)”이 복음의 어원입니다. 승리의 소식, 죽음에서 살아나는 소식을 전해주는 자가 바로 사도인 것입니다. 그러나 타협이 안 되면 그 자리에서 적군의 사도를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로 가면 죽어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사실 사도는 참으로 끔찍한 직분입니다. 타협이 안 되면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좋은 사도를 보내야 전쟁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생사의 소식을 가지고 달려오는 사도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아닙니다.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더욱이 옛날에는 하나님의 소식을 전하는 사도나 제사장이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만인 제사장, 만인 사도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가 전부 사도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종인데. 생사여탈권이 주님께 있는데. 우리가 감히 한다, 안 한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믿는 자에게는 이렇게 둘로스로서 선택권이 없습니다. 작은 자, 종, 사도. 이 세 가지가 바울의 자기소개 내용입니다. 자신이 작은 자임을 깨닫고 나니까, 종으로 자처하게 되고, 종으로 자처하다 보니까 사도로 뽑혔습니다. 그래서 “파울로스”는 라틴어 어원이고, “둘로스”는 히브리어 어원이고, “아포스톨로스”는 헬라어 어원이에요. 우리 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유대인의 왕이라고 각종 언어로 거기 써 있었다고 했어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작은 자, 종, 사도. 이거를 자처하고 가면 전 세계 공용어가 된다 이거예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의 언어는 누구도 못 알아 들을 언어가 없습니다. 언어조차도 그렇게 써져 있습니다. 복음의 길은 저절로 그렇게 내가 작은 자임을 알게 되면, 종으로 저절로 가게 되고, 그럼 목숨을 걸고 사도로 보내심을 받는, 그렇게 저절로, 저절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억지로, 내가 직분을 탐해서 사도를 가야지. 그렇게 해서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들 교회 온 지 3년이 될 무렵, 이쯤이면 부목자가 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님으로부터 집사님이 충분히 될 수 있는데 이번에는 안 됐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냥 네. 겉으로는 얌전하게 얘기했지만 이미 지옥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찌 이럴 수가. 우리들 교회는 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면서. 에이. 다른 교회로 가야지. 하는 마음 또한 있었습니다. 방에 들어와 탄식과 원망으로 시작된 기도는 깊은 회개와 뉘우침으로 이어지며, 왜 아직 부목자가 되지 못 하는 지에 대해 답을 얻었습니다. 30여 년의 신앙 생활이 있고,결혼 전에 10여 년 넘게 기도 생활을 했는데. 지금 현재의 나의 모습은 목장에서 나눔의 의도도 모른 채 횡설수설하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말씀에 반응한 적용이 따르지 못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이제 쪽이 팔린 거예요. 그래서 이 교회에 계속 있어야 하는지를 또 물었습니다. 직분이 안 오면 떠나야 됩니까? 다음 날 주일의 설교 말씀을 통해 룻기 2장 8절, 9절 말씀을 통해 정확하게 여기에 머무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 텀에 부목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처럼 저 또한 그저 부목자라는 타이틀만 으스댔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정한 섬김의 삶은 살지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또 6년째가 되었는데, 또 지금은 목자가 안 되 가지고 또 이 목자의 자리를 탐하고 있답니다. 분명 그 자리는 섬겨야 하고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고 죽어야 하는 자리인데 말입니다. 그러나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랐던 요한과 야고보가 주님 곁에 있었더니, 예수님의 마시는 잔을 나도 마실 수 있다고. 그랬더니 책임져 주신 것처럼 우리들 공동체에 잘 붙어 있어 나의 삶이 구원의 일에 사용되어 지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사도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애요. 이 분의 적용하기는, 큰 아이가 말이 안 되는 말을 하여도 윽박지르지 않고 다섯 번 설명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잠자기 전 기도 시간을 5분이라도 가지겠습니다. 이 분이 이렇게 솔직하게 자기의 적용을 얘기했기 때문에 바로 이런 것이 사도로 가는 하나의 디딤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유함을 가지고 이런 숙제를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 이 분은 30년이 됐는데도 지금 부목자를 하고 계시다고 하는데, 또 어떤 분은 말이 안 되는데 또 목자를 하고 있어요.
말이 안 되는 목자의 나눔을 또 읽어 드리겠어요. 교회 등록 전에는 믿지 않았기에 우리 집은 바퀴벌레 가족이었다. 내가 집에 들어오면 사방으로 다 숨어버린다. 폭군이었고, 한 달에 반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악하고 음란했으며, 가족에게 강압적으로 놀러 댔다. 아내와 한번 말을 안 하면 6개월도 말을 안 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저는 성경을 잘 알지는 못 해도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해석이 된다. 그리고 질서에 순종하는 거 이거 하나는 잘 한다. 하늘 얘기는 내가 부족한 게 많지만은, 그래서 나는 땅의 얘기를 하고 가고자 한다. 이러면서 여기는 또 소개를 하더라구요, 목장에서. 그러니까 이 분은, 불신자였는데 오셔서 이렇게 또 확 변해서 사도가 되어서 목자를 감당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 부인 권찰님이 남편의 얘기를 하는 거죠. 결혼 이후 남편은 사업이 잘 됐대요. 사업이 잘 되니까 교회를 안 오죠. 하지만 밤 늦도록 도박을 해도, 안 들어와도, 어디에 있는지 알아도 전화도 못 하고, 그것을 뭐라 말도 할 수 없는 무서운 사람이었다구요. 그러니까 바퀴벌레죠. 힘들어서 운동에 마음 붙이고 살았고, 너무 힘들어 이혼할까, 자살할까, 생각하던 중, 힘든 사람들은 휘문에 있는 우리들 교회를 가면 살 거라고 알려주어, 휘문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휘문 여러분, 여기가 살아나는 교회에요, 진짜 도피성인가봐.) 그러나 공동체는 낯설고 여자들끼리 모여 흔히 시어머니 흉보는 모습으로만 보여 싫었고, 그래서 목사님의 설교와 예배만 드리고자 일부러 다 피했다. 그러나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병원에 입원 했는데, 주보를 보니 그 많은 지체들의 이름이 있었는데, 아무도 날 찾는 이 없어서 외로왔고, (사람이 만 명이면 뭐합니까, 한 명이 지금 안 찾아오는데.) 그래서 그 중 한 이름을 보고 연락을 했더니 찾아와서 기도와 위로를 해주어서, 공동체를 경험하게 됐답니다. 그러니까 왜 꼭 다리를 다쳐야지 오냐구요. 제 정신 가지고 오면 안 돼요? 그래서 이제는 남편도 교회를 나오고, 부부가 목자의 사명을 따라 섬기게 되었다. 자, 이런 분들이 사도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을 보면, 이렇게 작은 자, 종의 과정을 지금 겪게 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남편이 너무 무섭고, 이런 것들을 미리 경험을 했지만, 이 분도 또 먹고 사는 게 있으니까 와서도 공동체 안 들어가잖아요? 그럼 이렇게 다리가 또 부러지는 수가 있어요. 빨리 빨리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Q. 하나님의 사도로 보내진 가정과 직장이라는 것을 인식하십니까?
Q. 그래서 복음을 외치고 있습니까?
Q. 혹시 체면 때문에, 열등감과 죄의식 때문에 사도직을 버리는 비겁한 신앙생활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죄가 많아서 목장에 못 들어가고,죄가 많아서 목자를 못 하고…그래서 밤낮 이렇게 비겁하게 사도직을 계속 피하는 거죠.거기 죄가 있어요,들어가 보면…
3. 소개의 목적입니다.
바울이 자신을 작은 자,종, 사도로 소개를 한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기 때문입니다.이 문장을 원어로 보면 “복음을 위하여서”.. 보단 “복음 속으로”가 맞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는 것은 내가 복음 속으로 뚫고 들어가졌다는 뜻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불가항력 적인 일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불가항력 적인 일입니다.배후의 나를 복음 속으로 밀치신 하나님의 손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열심으로 달려가는 사울을 다메섹 도상에서 쓰러지게 하신 하나님의 밀치심 입니다. 사울을 바울 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도로 세우신 것이 하나님의 밀치심입니다. 그의 전도로 수 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2000년 동안 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게 된 것이 하나님의 밀치심입니다. 왜 고난이 축복이라고 하겠습니까? 너무 열심히 죄에 매여 종 노릇 하는 인생을 살고 있을 때, 고난을 통해 하나님이 제동을 걸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택정함보다는 구별됨이 맞는 해석입니다. 성경에서 “구별”의 어원은, “죽이기로 작정한 것 같이 끄트머리(미말)에 두셨으매” 와 같은 어원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9절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별된 삶을 산다는 것은 “땅 끝까지 내려가서 죽는 것”을 뜻합니다. 또, “택정함을 입다” 는 바리새인의 “바리새”와 같은 어원으로, “분리 되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나는, 하나님에 의해 구별되고 분리된 영적 바리새인인 것입니다. 육적인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택정하심이 아니라 스스로 구별되어서, 영적 교만으로 치달은 결과, 세상이 아닌, 하나님과 분리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영적 바리새인들은, 기쁜 소식인 복음을 위하여, 죽기로 작정한 사람들입니다. 복음 때문에 세상과 구별되게 사는 것이 부름 받은 자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사랑으로 깨닫는 자만이 분명한 삶의 목표를 가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죽기 살기로 열심히 노력합니까. 바울은 죽을 각오로 복음을 위해서 자기 삶을 드리는 자라고 지금 자기자신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삶의 이유이고,목적이었던 것입니다.
Q. 세상 목적을 향해 달려가던 나를 복음 속으로 밀치신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Q. 그 사건으로, 나를 구별하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았습니까?
오늘 1절에서 제가 원어를 좀 읊었습니다. 왜냐하면 원어에는, 그렇게 파울로스, 둘로스, 아포스톨로스, 쫙 연결해서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소개에 예수 그리스도가 빠져있다면 얼마나 충격적인 소개가 되겠습니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의 핍박을 위해 살았던 카타콤은 지하 감옥과 같은 곳인데, 토양이 부드러운 응회암으로 되어있어서 쉽게 파낼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공기에 노출되면 아주 딱딱해져서 수백 년이 지나도 견고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흙을 파내서 건축 자재로 판매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흙이 시체 썩는 냄새까지도 다 흡수해 가지고, 이런 기가 막힌 섭리로 313년 동안 600만 명의 사람들이 카타콤 안에서 죽고, 시신으로 묻혔는데도 그리스도인들이 발각되지 않고 살 수 있었다는 것이에요. 내가 둘로스로, 작은 자 파울로스로, 비참하게 산 것 같아도, 내가 복음을 위해서 살 때, 하나님은 지하 감옥에서도 삼백 년 동안 살 수 있도록 형편을 마련해 놓으신 줄 믿습니다. 오늘 내가 힘들어서 곧 죽을 것 같아도 사도 바울처럼 내 자신을 소개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지키십니다. 우리 중에 자신이 원해서 못난 자가 되고, 노예가 되고, 사도가 되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세상의 헛된 것을 쫓는 사울을 겪으며, 하나님이 뚫고 들어오셔서 내 죄를 보게 하시고, 그 은혜로 내가 작은 자, 종,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힘든 환경과 유혹의 환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뚫고 들어오시기를, 그리하여 바울과 같은 자기 소개서를 가진 우리 모두가 되기 위하여 도피성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자, 오늘은 금산리에, 전주, 정읍, 김제 읍을 모두 연결해주는 “용화 마을”이라는 교통의 중심지가 있었습니다.그러다 보니 용화 마을에서는 마방의 주인이 지역에서 가장 큰 부자였고, 당시 용화마을 마방의 주인이 바로 오늘 소개해 드릴 김제 지주 조덕삼입니다. 유교 정신에 투철한 보수 집안의 조덕삼은, 헌신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테이트 선교사의 용기에 감동해서(자신도 부자인데 훨씬 더 부자 나라인 미국에서) 어떻게 당신의 나라를 포기하고 이 가난한 조선 땅에 왔는가 묻자,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때문이라고 대답을 했어요. 그래서 1905년 봄부터, 조덕삼의 사랑채에서 조덕삼씨 부부를 비롯하여 마부였던 이자익, 같은 마을에 사는 박화서?부부, 왕순칠, 박동호, 김윤창, 그리고 조덕삼씨의 자녀들이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금산 교회의 시작입니다. 여기서 오늘 조덕삼의 마부였던 이자익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어려서 부모가 돌아가시고, 경상도에서 행상 차림을 하고, 고픈 배를 부여잡고 전라도로 간 이자익은 조덕삼의 집에서 머슴으로 일하게 되는데, 너무 놀란 것은 머슴들에게 쌀밥을 주었다는 거예요, 그 당시에. 그 때부터 이자익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자신보다 열 다섯 살 많은 조덕삼의 마부로서 열심히 일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이자익이 천자문을 외우는 모습을 본 조덕삼은, 그 날 이후로, 자신의 아들과 동일하게 이자익에게 공부를 시킵니다. 이처럼 금산 교회는 조덕삼과 이자익을 중심으로 부흥하기 시작합니다. 1906년 5월 30일, 조덕삼과 이자익이 함께 세례를 받고, 한 주 후에 함께 집사로 임명을 받습니다. 사실 주인 입장에서는 머슴이 자기와 같은 집사라는 것이 불쾌할 수도 있죠. 우리가 박성춘 장로 때, 그 대단한, 우리나라가 양반과 천민, 이거 너무 대단한 거 아시잖아요. 그러다가 일년 후에 교회가 부흥되면서, 금산 교회에서 한 명의 장로를 뽑게 되었습니다. 장로 후보는 교회에서 가장 열심인 조덕삼과 이자익이었는데, 여러분, 상식적으로 누가 장로가 되어야 되겠습니까? 조덕삼은 사적으로 이자익의 상전입니다.아버지 같은 사람이고, 나이가 열 다섯 살이 많습니다. 마을의 최고 부자고, 금산 교회의 터를 마련해 준 인물입니다. 더군다나 그 인격과 인품도 흠 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투표 결과 머슴 이자익이 장로가 된 것입니다. 당시 장로는 실제적으로 설교도 하고 교회를 이끌어 가는 총 책임자였습니다. 이자익이 장로가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상전인 조덕삼이 이자익의 설교를 들어야 하고, 반발도 할 수 없고, 맨날 “이리오너라” 하다가 그냥 장로님, 장로님 하고, 오히려 그 머슴을 도와서 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이 싫어서 박성춘이 다니던 관자골 교회에서는 양반들이 뛰쳐나갔잖아요.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때도, 교회가 갈라지기 일보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테이트 선교사에게 조덕삼 집사가 발언권을 얻어서 나가서 뭐라고 인사를 했는지 아십니까? 우리 금산 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고 있는 이자익 영수는 저보다 신앙의 열의가 대단합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자익 장로를 잘 받들고, 더욱 교회를 잘 섬기겠습니다. 지금이라면 가능하지만, 그 때는 가능하지가 않은 거예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겠습니까. 신분을 뛰어넘고, 전라도 경상도 지역 차별을 다 뛰어넘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종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후에 이자익을 데리고 평양신학교를 같이 가서 입학을 시켜주고, 머슴이었던 그를 공부가 끝난 후에는 금산 교회로, 담임 목사로 청빙을 해서 당회장 목사로 죽을 때까지 깍듯이 모셨다는 거예요. 조덕삼 장로는 52세의 나이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는데, 그 마지막 유언이, 절대로 우상 섬기지 말고 제사 지내지 마라. 예수를 잘 믿어 나를 만날 수 있도록 신앙 생활을 잘 하거라. 그리고 너희들은 내 대를 이어서 이 목사님을 잘 섬기고 교회를 지켜야 한다. 였습니다. 이 때,가장 많이 통곡을 한 분이 이자익 목사였습니다. 하나님, 여섯 살에 고아가 된 떠돌이를 받아주어 예수 믿게 하고, 장로로 세워 결혼도 시켜주시고, 신학 공부 시켜 목사 되게 하신 장로님. 내가 이런 장로님을 어떻게 다시 뵈올 수 있겠습니까. 장로님, 장로님, 내 생명이신 장로님. 하며 그렇게 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이자익 목사는 예수교 장로회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다고 해요. 그 총회장은 지금까지 재선을 한 사람도, 한 사람도 없답니다. 새벽기도를 처음 실시한 길선주 목사님도 부 총회장에서 총회장으로 선출되지 못했는데, 연소한 머슴 출신인 이자익 목사가 세 번이나 된 것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었다고 합니다. 이 분이 배운 게 많아서가 아니라, 항상 그렇게 중재를 잘 했다고 해요. 분란을 다 합쳐지게 하는데 너무 탁월해서 지금까지도 그 기록은 깨어지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이 분은 스무 개 교회를 설립하고, 대전 신학교를 설립했는데, 평생 큰 교회 청빙을 거절하고 농촌의 그 작은 교회를 지키고, 설립을 또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정치적 흥정에도 절대로 흔들리지 아니하고 함태영 부통령이 장관직을 제수를 했는데, 그냥 단 칼에 거절하고 저는 평생 주의 종의 길을 가겠다고. 그래서 이 분은 이자익 기념관이 대전 신학교에 있는데 , 거기 이렇게 써져 있다고 해요. 그는 가난과 고아와 마부라는 인생의 밑바닥에서 시작하여 목사로서 최고의 영예와 영광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교만이나 권력과 명예에 대한 집착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섬겼던 한국 교계의 큰 바위 얼굴이다. 이러한 이자익 목사를 키워 낸 조덕삼 장로를 생각할 때에, 이렇게 세계 교회사에 남는 그 역사가 100년 전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자익 기념관이 있다고 했는데, 종의 의미를 정말 잘 설명해 준 조덕삼 장로, 이자익 목사의 금산 교회의 역사였습니다. 어떻게 조덕삼 장로는 시기와, 기분과, 수치를 그렇게 뛰어넘었을 수 있을까요. 조덕삼 자신이 전도한 마부가 세례 받고, 영수가 되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고, 총회장이 되는 것을 본 이런 사도의 사명이 있고 기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 자이고, 종이고, 사도라는 자기 자신의 소개가 확실하지 않다면, 이런 열매는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5년 4월 19일에 이자익 목사 전기 출판식이 있었는데, 그 날 조덕삼 장로 손자인 조세영 장로가 축사를 하고, 이자익 목사 손자인 이규한 장로가 한국 고분자 화학 분야의 일인자 교수님인데, 그 분이 인사말을 했어요. 인사말을 하러 나온 이규한 장로가, 갑자기 조세영 장로 앞으로 나아가서 허리를 굽혀 큰 절을 하면서 인사말을 했어요.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 만났습니다. 만약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 만나지 못했다면, 오늘 우리들도 없고 할아버지도 안 계셨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회중들이 전율을 느끼는 감동을 경험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당시는 이자익 목사가 장로로 선출되고, 목사가 되고, 총회장이 되었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따라갈 수 없는 그 조덕삼 장로를 더욱 기립니다. 사실은 바로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종의 모습일 것이에요. 테이트 선교사님의 헌신적인 종의 모습으로, 조덕삼 장로가 재물의 헛됨을 알고, 그렇게 그리스도의 종으로 헌신을 했고, 그리고 이자익으로 넘어갔는데, 이 예수님 같은 사랑을 맛 본 이자익은, 그렇게 가난했다가, 총회장을 세 번이나 하는데도, 전혀 이 세상 권세에 굴하지 아니하고 참으로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 종의 모습을 보여준 모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들 교회도 목장에서 각자 자기소개를 너무나 잘 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종을 자처하시고, 사도 역할을 잘 해 주셔서 힘든 분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가정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분도 있어요. 회사에서 갑이면 교회에 와서도 갑처럼 생각하시는 분이 계세요. 나이가 많다고 젊은 사람 섬기기 어렵다고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들 교회가(사회에서 갑이면,교회에서도 갑으로 대해주는데 그러나) 우리들 교회가 그렇지 않으니까 도리어 차별을 받는다고 떠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덕삼 장로와 이자익 목사를 보면서, 우리가 복음이라는 것은 자기 소개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전해질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 소개가 이렇게 확실한(나는 죽고,예수 그리스도만 나타날 수 있는)이런 소개를 할 때, 엄청난 우리나라 한국 교계에, 제일 큰 교단의 총회장을, 아무것도 없는 이 분이 세 번이나 한 것은 그 조덕삼 장로의 사랑덕분에 이렇게 복음이 편만하게 펼쳐진 것이 아닌가.생각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스승 되시는 자랑스러운 자기 소개를 해야 합니다. 소개의 내용은 작은 자가 되어, 종이 되어,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소개의 목적은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도피성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이렇게 나는 죽고, 예수님만 나타나는 자기 소개가 되기까지 우리가 그렇게 자기 소개를 하도록 여러분들에게 각자 도피성에 있어야 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신 줄 믿습니다. 내가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제목
강혜림
1. 억지로 진 십자가 끝까지 잘 지고 내 죄만 보도록
2. 내일 면접에서 예수님을 기준으로 자기 소개 잘 하기를
3. 가족들 한 말씀으로 나누도록, 관계 회복하기 위해 작은 자가 되어 잘 섬기도록
4. 남동생 주일성수, 공동체 정착
5. 신결혼
이은혜
1. 말씀이 들리고 기도가 회복될 수 있도록
2. 마음의 평안 주시길
3. 건강과 체력 지켜주시고 지혜주시길
이선애
1. 남자 친구와의 만남 인도해주시고 확신도 주세요.
2. 내일(월) 세브란스에서 조직 검사하는데 큰 병 아니기를
박세현
1. 가족구원(아빠, 엄마, 세라, 동규)
2. 직장에서 맡은 바 잘 감당하고 모든 관계 원만하도록
3. 말씀으로 잘 해석 받고 가는 목장 되고, 유치부 아이들의 영적. 육적 건강
4. 교회, 직장, 가정 등 각 처소에서 내가 죽어지는 적용으로 종이 되어 섬기도록
5. 신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