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장소: 강남 CGV
참석: 강혜림 이선애 박세현
말씀: 마 27:1-10
제목: 자살
설교:
여동생이 우울증에서 조울증으로, 조울증에서 분열증으로 가며 발작을 하고, 자살 시도를 함으로 정신병원에 들락거리게 되어, 엄마가 그 사건이 해석 되지 않는 가운데 자살을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남동생과 나와 남편도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고 해요. 엄마는 어릴 적부터 신앙으로 가르치셨는데, 엄마가 그 순간 잘못된 선택을 하신 거다. 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느 때는 엄마가 택자가 아니었나.. 하다가, 어느 때는 이 사건으로 우리들 교회에 오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목장 나눔을 읽었습니다. 오늘은 요즘 나라적인 이슈인 자살에 대해서 드러내어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에1위라고 합니다. 지난 시간 설교에 중독을 목 밟으라고 하니까 수많은 중독의 실체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끝내 밟지 못 하면 중독이 끊어지지 않아서 죽고 싶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에 지도자가 중요하지만 자살은 정말 지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자살로 이끄는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1-2절)
산헤드린 공회는 예수님을 사형으로 정죄한 뒤, 사형집행권이 있는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이송을 합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해 뜬 후에만 모일 수 있는데 밤새 불법 회의를 하고, 동 트기 직전에 모여서 예수님 죽이는 회의를 한 것입니다. 계속 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은혜로 시작해야 할 하루의 첫 시간인 새벽에 예수님을 죽이는 회의를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본문을 보면서 예수님은 무조건 좋은 분, 대제사장은 무조건 나쁜 사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말씀에서 적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현재의 삶에서 속고 배신 당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당한 사람뿐 아니라 가해자도 예수님 입장에서 적용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술 먹고 바람 피우고 빚진 사람이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행위로 볼 때, 너무나 나쁜 사람이니까 집안 어른들이 새벽부터 모여서 회의를 한 뒤 이혼하라고 하면, 이것이 바로 예수님 죽이는 회의입니다. 당시 최고 지도자들이 죽이려는 예수가 누구입니까? 인류의 구속사를 이루는 분 아닙니까? 그러므로 문제 많고 행위가 바르지 못한 사람이라도, 우리 집의 구속사를 이루는 인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집안이 구원될 것인데, 구원의 통로를 없애자고 회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갔습니다. 고소했다는 뜻입니다. 목사인 제가 믿는 사람들의 문제를 동장에게 가서 해결해 달라고 하는 꼴입니다. 믿는 시댁의 문제를 친정에 가서 고소하는 꼴입니다. 이런 것이 예수님 죽이는 일입니다. 어떤 악한 일을 해도 주님은 그 집에서 누가 먼저 회개하는 가를 보십니다. 구원을 위해 그 사람이 악역을 맡았다면, 그것 때문에 구원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 통로를 잘라버리면 안 됩니다. 주님은 죄가 있어서 당하신 게 아닙니다. 죄 없이 인류의 죄를 위해 껴안으셨습니다. 내 가족의 죄를 내가 껴안지 않으면 누가 합니까? 한 몸인 배우자를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어쩝니까? “어떻게 그런 놈 하고 살아?” 하면서 이혼을 모의하고, 더 나아가 대제사장처럼 돈 있고 기득권 있으면 변호사 고용하고 없는 죄라도 만들어 죽이는 의논을 합니다. 이런 목사, 부모, 형제, 배우자가 바로 자살로 이끄는 지도자입니다. 힘든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헤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죽이는 의논을 하니, 이걸 보고 자란 자녀들이 힘든 일이 닥치면 자살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통로를 잘라버리는 부모, 형제, 목사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새벽, 밤으로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학교로, 학원으로 태워다 주면서 무슨 의논을 하십니까? 일류 대학에 가면 주님 살리는 일일까요? 유다도 일류니까 돈 궤를 맡았을 텐데 주님을 죽였잖아요. 부모가 가정에서부터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으면 일의 결국은 주님을 죽이는 일로 끝날 수 있습니다.
지난 주 강원도 원주에서 C형 간염 집단 발병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 병원 원장은 일류로 키워져서 의사까지 되었을 텐데 여기서 헤치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 하고 자살을 했습니다. 적용 해보세요.
Q. 구원을 위해 악역을 맡은 사람 때문에 내가 예수를 믿었는데, 내가 오히려 그 사람을 내쫓고 끊으려 하지 않습니까?
Q. 내 가족의 죄를 껴안지 못 하고 구원의 통로를 잘라버려, 자녀를 자살의 길로 이끌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군가 한 사람의 지도자가 교회마다 집집마다 필요합니다. 오늘은 요즘 나눔을 한 우리들 교회의 여러 가지 자살 사례들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이 자살 설교를 하려고 보니까 이게 다 지난 주 나눔 내용이에요. 너무 놀랐어요. 자살에 대한 나눔이 너무 많았어요. 남들은 금기시 여겨서 말도 못 하는데 얼마나 나눔을 자유롭게 활발하게 하시는지 모릅니다. 오늘 이 사례들이 우리의 아픔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자살은 공동체가 절대적으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동체가 돕지 못 하면 자살로 갈 수 밖에 없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숨겨놓은 자살의 얘기들을 이렇게 목장에서 나누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나누시고 가면, 자살을 했어도 지금부터 자살의 영이, 어둠의 영이 물러갈 줄 믿습니다. 자살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들 교회는 목사여도, 평신도여도 자살을 경험하고 자살의 문제를 자유롭게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들 교회 정 목사님 나눔이에요. 아버지가 투병하시던 16년의 시간 동안 뇌경색인 아버지의 병이 기적적으로 낫기만을 바라면서(가족 우상주의가 있어서) 똘똘 뭉쳐서 온 가족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식구들이 집을 비운 사이,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셔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그 당시 신학대학원을 다니던 저에게는 도저히 납득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투병 중에 간절히 기도하시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잊혀지지 않고, 왜 이런 식으로 응답하셔야 하는지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후에 다니던 교회와 직장에서 아버지 자살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들 교회 사역자로 인도함을 받게 되었고 무덤까지 갖고 갈 수치와 상처를 이야기 하시는 분들의 간증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아버지의 사건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수요 예배를 드리던 중, 악한 부모, 선한 부모 할 것 없이 나를 예수 잘 믿게 해준 부모가 최고의 부모라는 목사님의 설교가 나팔 소리처럼 귓가에 울려 퍼졌습니다. 저의 과거가 해석 되다 보니 자살하고 싶다고 하는 분들과 자살한 가족이 있는 분들에게 제 사연을 나누면서 함께 울고 기도하는 인생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장례 예배를 인도할 때면 언제나 저의 간증과 살아야 할 이유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저야말로 정말 수지맞은 인생임을 고백합니다. 정 목사님의 이 간증이 여러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좋은 지도자 밑에서도 자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3절)
저는 이것이 가장 가슴 아픈 자살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유다는 인류 최고의 스승인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뉘우치기만 하고 자살을 했습니다. 유다가 어떻게 뉘우쳤습니까? 3절입니다. 유다가 예수님이 사형을 선고 받자 스스로 뉘우쳤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절대 사형 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유다에게 있었다는 뜻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켜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고, 은 삼십도 벌고, 또 유대인은 수치를 당할 것이니 절대 해악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곧 십자가에 달려 죽을 것이라고 해도, 그래서 아무도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도 유다도 다 예수님이 죽지 않으리라는. 예수님은 죽는다 그러는데 절대로 안 믿어요. 그런데 눈 앞에서 예수님이 끌려가니까 양심의 가책이 느껴집니다. 회개는 안 되는데 후회와 가책이 있는 것입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로 인해 죽는다고 생각하니 죄책감이 밀려와서 미치겠습니다. 깨달았으면 회개하면 되는데 뉘우치기만 해서 끝까지 자기 힘으로 하려 합니다. 스스로 뉘우치는 것은 하나도 도움이 안 됩니다. 여러분, 양심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것 같은 생각이 들지요?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많이 받을수록 좋을 것 같죠? 그런데 타락한 죄인의 특징이 양심이랍니다. 본래적인 의를 상실하고 남은 것이 양심이라고 해요. 그래서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자꾸 가책하고 반성하다 보면 자신이 너무 너무 초라해 보여서 회개에 이르지 못 하고 자살하게 되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이 많을 때 자살을 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울증 환자가 자살로 이어지는 빈도가 많은 것은 양심의 가책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우울증 환자들이 대부분 착하기에 가책이 많은 편이에요. 그렇지만 착함이 아닌, 오직 주 안에서 양심이 회복되어야 회개로 나가게 됩니다. 유다는 스스로 뉘우친 뒤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돈을 좋아하는 유다는 역시 돈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의 자살은 여러가지 원인을 추론해 볼 수 있지만, 그의 탐심이 주된 이유라고 봅니다. 유다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 아래 부은 마리아를 보고, 이 향유를 300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어찌하여 주지 않느냐. 하고 비난한 것을,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러라 하고 유다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자살 이유가 첫째가 돈이었다는 거죠.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근원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이 정말 많습니다. 여러분들 무슨 사건이 왔을 때 그러므로 이렇게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시면 안됩니다.
4절입니다.유다가 죄를 고백했습니다.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예수님은 무죄하다.나는 죄를 범했다. 고 멋지게 고백하고 있습니다.“범하였도다” 는 부정 과거 형으로, 계속적인 애통이 아니라, 옛날에 죄 한번 지었지. 하는 표현입니다. 회개에 근접한 것 같지만 회개가 아니라 뉘우침으로 그쳤습니다. 뉘우침과 회개는 아주 다릅니다. 뉘우침의 원어는 진정한 회개에는 사용되지 않는 단어입니다. 단순한 후회나, 생각이 바뀐 정도입니다. 죄의 결과에 대한 감정적 후회 정도의 반응입니다. 그러니까 돌아온 탕자처럼 죄를 지었으니, 품군의 하나로 써달라는 구체적인 적용이 없이 내가 죄를 지었다. 예수님은 죄 없다. 하는 것입니다. 죄는요, 내가 돈을 사랑해서 은 삼십 때문에 예수님을 팔았다. 이렇게 구체적인 회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저희 남편도 죽기 전 하루에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이것만 하더니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낙태 수술한 것을 고백했습니다. 구체적인 회개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얼마나 돈을 사랑했는지 구체적인 죄를 회개하지 못 하고 후회로 끝났습니다. 뉘우침과 회개는 아주 달라요. 후회와 회개는 아주 다릅니다.
5절입니다. 4절에 죄를 범하였다 하니까 대제사장들이 니가 당하라. 그러니까 마치 대제사장이 안 받아줘서 죽는 것처럼 목을 맸습니다. 우리가 돈을 떼여서, 실연을 당해서, 복수하려고 죽는 것입니다. 그렇게 뉘우치더니 스스로 자신의 죄를 집행하고 목을 맸습니다. 구약의 사울도 자살을 했습니다. 사울도 끝까지 하나님보다 사람을 의식했습니다. 끝 없이 사람을 의식하는 것은 정말 심판이라고 생각합니다. 끊임 없이 사람의 체면을 의식하고, 눈을 의식하는 사람은 정말 심판 가운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중상을 입고 이때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와야 하는데 사울이 그것이 안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31장에 보면 무기 든 자에게 죽여달라고 했어요.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 무기 든 자가 22장 녹당에 제사장을 죽인 도엑이라고 합니다. 신접한 여인과 지체가 되더니, 악한 일을 같이 도모하던 도엑과 지체가 되어 비참하게 죽습니다. 칼의 노래를 부르더니 칼로 인해 자살을 합니다. 정말 자살은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사울에게는 사무엘과 다윗과 요나단같은 세계적인 믿음의 친구가 있는데, 바로 그 친구들 공동체에서 악의 공동체인 신접한 여인, 도엑, 이런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 멸망을 당했습니다. 유다도 예수님 옆에서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어울리더니, 결국 그들과도 하나가 될 수 없어서 이렇게 자살을 했습니다. 너무나 세계 최고의 공동체에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하고 그렇게 놀기도 어렵겠죠? 이게 다 똑똑하고 잘 나서 이런 것 같애요. 사울도 잘났잖아요. 유다도 똑똑하고. 죄보다 이 세상에서의 수치를 더 염려하기 때문에 자살을 했습니다. 죽고 나서 최고의 지속적인 비난을 받는 것이 자살입니다. 세계적으로 자살을 한 대통령은 히틀러와 노 대통령뿐이라고 합니다. 제가 노 대통령 얘기를 자꾸 언급하게 되는 이유는, 국민이 사랑하는 지도자였기에 그의 영향으로, 그 뒤로 너무나 자살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타인을 죽이는 것이 살인이라면, 자신을 죽이는 것이 자살입니다. 살인이 미움에서 비롯되니 똑같이 미워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울은 다윗을 죽도록 미워했지만, 그것이 자신을 죽도록 미워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가 백의의 민족이라기 보다, 전투적이고, 천자의 민족이라고 했는데, 이런 사울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이 많아서 죄보다 수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기고 이기려고 하니까, 아니 어떻게 이렇게 조그만 나라가 자살률 1위일 수가 있어요? 가난할 때는 자살률 없었어요. 이 천자의 나라가 되고 보니까 이렇게 자살이 높아집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 중에도 자살 시도는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죽고 싶다가 입에 배었습니다. 자살을 죄로 여기는 신학을 정립한 사람은 어거스틴입니다. 자살이 타살 죄보다 큰 이유는 첫째, 자살은 죄를 회개할 기회가 없습니다. 가롯 유다는 죄책감에 못 이겨 목매달아 자살을 했는데, 요한복음 6장 70절, 71절에 보면 마귀 자식이라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옥을 갔다는 뜻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반항하는 죄입니다. 사무엘 상 2장 6절에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도다 하셨습니다. 민수기 27장 16절에는 모든 생명에 대한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자기 생명이라고 제 것인 줄 알고 자살하는 것은 하나님께 반항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권세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 8절, 9절에는 자살은 삶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반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3장 19절에서는, 그러므로 인간이 최종적으로 선택할 것은 자살이 아니라 회개, 회개라는 것입니다. 자살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여하는 죄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한 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고 했는데, 살인자는 타살이나 자살이나 유황으로 타는 못에 안 가겠습니까? 물론, 행위로 천국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살인을 해도 죄를 돌이키고 회개하면 천국 갑니다. 그러나 남을 죽인 자는 회개하고 구원받을 기회가 있지만, 자살한 자는 회개하고 구원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질병으로, 순간적으로 사고사처럼 자살할 수도 있습니다. 삼손처럼 이타적인 자살도 있습니다. 평가는 천국에 가서 물어봐야겠지만요.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자살한다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이 고통스럽고 괴롭다고 자살하는데, 이것은 후라이 팬이 뜨겁다고 영원한 불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아무리 괴로와도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안됩니다. 지옥에 들어가면 자살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살함으로 너무도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에 하면 안됩니다.
윈스턴 처칠의 막내 딸 다이아나 처칠은 자살자를 돕는 사마리안이라는 기관에서 봉사했는데, 그녀도 자살을 했습니다. 공양미 삼백 석에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이가 효녀라고 하지만, 그것도 죄입니다. 유교적인 가치관에서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현재까지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보면 자살 희생자의 약 90%가 정신과적 진단을 가지고 있으며,특히 우울증이 가장 흔하다고 합니다.우울증의 많은 원인이 있지만 특별히 자신이 의지하던 힘의 원천,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뒤에 나타나는 반응에서 참 많이 찾는다고 해요.또,증오의 대상인 부모나 형제가 죽기를 원하지만,막상 그들에 죽게 되면 자기 소망 때문에 미워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생각으로 더 깊은 우울에 빠진다고 합니다.프로이드는 사람마다 가까운 가족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 해서 가까운 사람이 죽었으면 하는 욕구가 있대요.그런데 그 대상으로 향하던 살해 의지가 자신에게로 바뀌는 것이 자살이라고 합니다.후회를 많이 하는 사람은 정죄감이 많습니다.유다처럼 예수님 믿지도 않으면서 정죄하고,미안해하고,그리고 상대방을 미워하는 죄책감으로,상대방을 죽이려다가 복수하려고 자신을 죽이는 것, 이것이 자살입니다.
Q. 여러분은 이렇게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습니까?
Q. 그리고 어떻게 도움을 받았습니까?
지난 주 본인이 자살 기도를 한 나눔입니다.내 2-30대는 사역밖에 없었고 그 삶이 전부였다.그러다가 취직을 했는데 사역의 삶과 너무 괴리감이 들었다.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담대히 살았지만 사회적으로 보니 너무 약자였고 무시당했다.그것을 나누면 성령 충만하지 않은 것에 정죄감이 들고,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됨을 느꼈다.내가 열심히 선교하고 봉사할 때만 잘 되게 해주시고,그렇지 않을 때는 힘들게 하신다는 생각에, 우울증인지도 모르고 우울하게 지냈다.어느 날 퇴근 후 소주를 사서 마신 후 한강 다리에서 투신을 했고,눈을 뜨니 병원이고 엄마가 울고 계셨다.그런데 구조 대원이 말하기를,이 사람은 수영을 못 하는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한강에서 수영하고 있었대요.그래서 한강 다리에서 떨어졌는데 다친 데 없이 그냥 살아났다잖아요.그래서 정신과를 가보라고도 했는데,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풀리지 않으니,약으로는 풀리지 않았고,듣고 싶지도 않았다.그래도 약을 먹으며 2-3년 동안 천천히 회복되었다.왜 선교지에 있을 때만 만나주시고,세상에 나오니 날 버려두시나 했는데,이 세상이 내가 정복해야 할 땅임을 몰랐던 것 같다.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은 것처럼 사역에서 성공하고 싶은 욕구가 좌절되어서 그랬었음을 깨닫고 있다.하나님이 나를 살려주신 것에 대해 많은 은혜를 보답하고자 지내었는데,결혼을 하고 신랑과의 갈등에서 그때 감정이 올라와서 힘들다.이 자살 시도한 일을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목사님 says, 용서해 주십니다.) 여전히 내 안에 완벽하게 치료되지 못한 것이 있는데,내 열심인 것을 알면서도 진심으로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런데 이 얘기는 내가 죽을 때까지 오픈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분이 오픈하게 된 것은,지금 앞서 우리들 교회의 정목사님의 아버지 자살 간증 때문이었다고 하는 거예요.목사님도 그럴 수 있구나.그래서 이 분도 목장에서 이 얘기를 날마다 자유롭게 약재료로 나눈다는 거죠.결국 내 상처가 사명이 되는 데는 자살도 예외가 없습니다.음란,부도,바람,가출도 예외가 없습니다.
Q. 나는 진정한 회개를 합니까, 후회와 뉘우침의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까?
Q. 죄의 문제까지도 내 힘으로 처리하려는 마음이 있습니까?
Q. 욕심에 이끌려 선택을 하고서 남 탓을 하며 상대방을 미워하고 복수하려 합니까?
3. 자살을 해도 상관이 없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4절에 보면, 니가 당하라 이런 지도자가 있어요.구원에 이르게 할 사람을 쫓아가야지,믿음도 없는 사람을 쫓아가서 되겠습니까?제사장들은 유다를 감당할 정도의 사람이 못 됩니다.직분이 있다고 지금 이 사건을 해결해 줄 수 없어요.사건에서 딱 빠지고 싶은 사람들이 여기 모여있는데,그러니 상담자로서도 자격이 없지요.우리도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 상담해오면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그런데 유다가 예수님께 양육 받고, 예수님을 팔고,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지금 상담하러 간 것입니다.대상을 이렇게 잘못 알아요.그러나 유다가 내가 죄를 범하고 무지한 피를 흘렸다고 하면 대제사장이 돼서 그거 받아줘야 되지 않습니까?그런데 돈 주고 예수님 인수할 때는 언제고, 이제 무슨 상관이든지 니가 당하라.그들은 유다의 죄책감과 후회에 너무 무관심합니다.지금 유다가 딱 죽기 직전 아닙니까?십자가는 지혜고,지혜는 타이밍인데,타이밍을 몰라요.그런데 여러분이 너무 바빠서 죽음에 이른 사람 내버려 두는 것이 바로 예수님 죽이는 일입니다.예수 믿으면서 제일 교만한 사람이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지?하는 사람입니다.극성 부모가 되어서 잘못된 결혼으로 이끌고는,이혼한다고 하면 니가 당해. 부모라고 해서 올바른 결정을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부모의 영향으로 나쁜 결정으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지금 마지막에 찾아 온 자를 회개로 이끌어야 하는데,회개와 상관없는 부모,형제,배우자가 너무 많습니다.우리가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닙니다.끝도 없이 들어줘야 하고,정답을 줄 수는 없어도 같이 울고,기뻐하고,도움이 못 돼서 미안해요. 하면서 들어주는 것입니다.이게 바로 우리의 목장 아니겠습니까?그런데 자살 직전의 사람에게 니가 당하라.이러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유다가 목을 매 죽었습니다.인간 최고의 감정은 회개라고 했습니다.비슷해 보여도 후회와 회개는 너무 다른 것입니다.회개는 유턴이고,후회는 감정적 죄의 결과입니다.지금 회개하고 돌아오면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다.그러므로 후회와 회개는 하늘과 땅 차입니다.사랑,기쁨,모든 걸 느껴도 세상 최고의 감정은 회개인데, 유다가 이 회개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습니다.그러므로 믿음의 배신자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다 버림받습니다.장로들은 유다의 고통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없습니다.끝까지 찾아가야 할 사람을 분별을 못 하니까,택함 받지 않은 유다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은 삼십을 줄 때는 높은 대제사장과 논다고 얼마나 뻐겼겠습니까?인간은 어디에다가 무엇을 상담해야 될 지를 몰라요.소중한 것을 투자할수록 투자 대상에 대한 기대 수준도 키워가는데,정도가 심해지면 그냥 기대를 믿음으로 변화시켜 버려요.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에요.그래서 어떤 얘기를 해도 내 기대를 저버릴 수 있는 얘기에는 눈과 귀를 다 닫습니다.애인의 배신 가능성,투자금을 날릴 위험성,그런 얘기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그러니 수십 년간 내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준 자녀 문제에 이르러서는 두 말 할 나위도 없습니다.자식이 큰 문제를 일으켰을 때 가장 당황하는 사람이 부모라는 거죠.세계를 경악시킨 버지니아 공대 참사의 범인 조승희의 가족도 승희가 그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아주 철옹성 같은 확신들을 다 가지고 있어요.이걸 가족 우상이라고 하죠?
Q.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습니다. 아니 무슨 상관이냐, 하며 계속 술 마시고 바람피고 있습니까? 자녀에게 우울증이 올 때 상관없는 부모는 아닙니까?
우리가 목장에서 이렇게 자유롭게 나눔을 하니까 그냥 이것이야 말로 상담이 되어 자살의 아픔에서도 자유롭게 되는 것을 정말 우리들 교회를 통해서 봅니다.이것이야 말로 저절로 상담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비싼 돈 내지 마시고 목장에 들어가서 그냥 얘기하세요.팩트를 자꾸 나누다 보면 중독이 희석이 되고 아픔이 자꾸 자꾸 엷어집니다.
이번 주 나눔입니다.본인이 인정 중독자인데, 인정 받고 싶을 때마다 남편이 여자 문제를 일으킨대요.아까 집사님 얘기 들으셨죠?간증한 집사님. 그럴 때마다 타투와 피어싱을 하고 싶대요.이번에도 어디에다 문신을 할까 했대요.남편이 꼭 기브온 같답니다.근데 왜 타투와 피어싱을 하냐하면 문신을 하면 아프잖아요.그래서 나도 아프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는 건가요?목장에서 이렇게 나눔을 했어요.그러면서 사실 자살하고 싶었는데 친정아버지가 자살하셨고,가족의 자살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알기에 혼자서 삭히는 거예요.말씀을 들을 때마다 남편이 변할 것 같아 기대했는데 목자를 해도 바람을 피고, 치리를 받아도 술을 먹는구나.(내가 이렇게 교양있게 읽었지만 나눔은 안 그랬어요.)이래도 저래도 안 되니 여기서 잘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야겠다고 마음을 바꿨습니다.처방하는 평원님이 이혼도 안 되고 자살도 안 되는 것을 알고 포기하는 것이 말씀을 뚫고 들어가는 것 이예요.그리고 하나님이 집사님을 세우시는 거예요.집사님 너무 수고하셨어요.이뻐요.이렇게 격려를 해줬어요. 이렇게 자살하고 싶다고 얘기할 수 있는 공동체에 있는 것이 자살을 막는 비결입니다.그런데, 유다도 사울도 공동체를 이용하지 못 했어요.아니,버렸습니다.게다가 악한 공동체에 있는 건 더 심각합니다.믿음이 하나도 없는,신앙 고백이 그냥 일개가 없는 악한 신접한 여인들하고 있다 보니까 이렇게 비참하게 죽은 거죠.
또 한 사람의 나눔입니다.아버지가 자살하고 형님도 자살하고 동생도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답니다.이런 얘기를 나누니까 목원들이 생각하기에,그러면 믿는 가정인데 거기는 천국가셨나,지옥가셨나.우리 모두 이게 너무 궁금해요.여러분들 모두의 궁금증을 제가 모아서.그런데 이 아버지는 조울증이 있고 평소에 구원의 확신이 있었다고 합니다.저는 여러분들에게 아버지가 그렇게 구원의 확신이 있고,그렇게 가셨다면 저는 유가족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구원의 확신이 있는 아버지는 자살하셔도 유가족들이 굉장히 편안합니다.그렇다고,믿어도 자살할 수 있고,자살해도 천국 갈 수 있다고 자꾸 이렇게 얘기해 주면 자살이 얼마나 늘어나겠습니까.그래서 천국 간 거,지옥 간 것은 오직 주님께 맡기고,자살은 안 해야 하는 것으로 정리를 해야 합니다.그러니까 이 서두의 집사님도 엄마가 정신병 걸린 동생 때문에 자살하시고, 구속사의 시간이 들어오는데 그 고통이 컸답니다.그래서 백프로 옳으심을 인정하지 못 했는데 엄마를 객관화하지 못한 것 같다고 나눔에서 이런 얘기를 합니다.엄마는 엄마고 나는 나인데,엄마의 영혼은 내가 죽고 나서 가서 물어봐야겠다.그런데 정말 재밌는 나눔을 읽었어요.이렇게 동생이 아프고 엄마가 자살하고 이런 어마어마한 사건이 있었음에도,이 분이 여기 와서 말씀이 들린, 정신이 번쩍 든 사건은 남편의 바람 사건이었다는 거예요.그러니까 각자의 고난의 한계가 다 다른 것 같애요.그래서 저도 힘든 시집살이를 하면서도,시어머니나 남편에게 돌을 던지지 못 하고 자꾸 저를 정죄하고,찌르고,못났다고 생각했어요.그래서 얼마나 괴로우니까 자살을 하려고 저도 수면제를 두 번이나 먹었어요.식구들은 다 모르지만.그래서 너무나 자살하는 마음을 제가 이해를 합니다.그런데 믿고 나서 신앙 고백 이후에 어려운 일이 많이 생겼지만, 그래도 자살충동은 없었습니다.그것이 믿는 자의특징일 것입니다.
Q. 상담할 일이 있습니까?누구에게 가야 할까요?
Q. 그 사람이 구원에 이르도록 상담해 줄 수 있는 깨어있는 지체입니까?
Q. 그리고 죽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4. 말씀을 이루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6-10절)
스가랴11장12절 말씀의 성취입니다.어떤 일이 와도,예수님 팔아먹은 돈 조차도 이방인 묘지 사는데 쓰였습니다.영적으로 이방인인 사람 유다처럼 수치를 받습니다.교회에 와서도 공동체에 들어오지 않고 이방인으로 있으면 유다처럼 수치를 당하고,후회하면서 자살할 수 밖에 없습니다.옳지 않은 핏값을 성전고에 넣어두는 일은 무엇입니까?우리도 그런 일을 합니다.예수님 팔아먹고 헌금하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타락한 일로 벌어서 헌금하고 자살하면 예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그래서 성전고에 두지 않고 토기장이의 밭을 샀습니다.그러니 예수님을 판 돈이 거룩하지 못 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거한 것이지요.유대인의 묘지를 사면 유대인들이 아무도 와서 뭍히지 않을 거니까 이방인 나그네 묘지를 샀습니다.이렇게 신앙의 핵심을 놓치고,종교적인 행위만 하면 안됩니다.또 이 모든 일이 이미 성경에서 예언된 일이라고 하니,우리도 누구에게 팔린 일이 있어도,또 자살한 일이 있어도, 억울해만 할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이루는 일이구나 하시기 바랍니다.유다뿐 아니라 구약의 사울처럼 열심히 살다가 중상을 입은 분들이 많습니다.그렇다고 삶이 힘겹다고 사울처럼 자살하는 것은 영원한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꼭 알았으면 좋겠습니다.어떤 경우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합니다.사울이 죽은 것은 블레셋 때문이 아니라,여호와께 범죄했기 때문에.근데 그 범죄는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신접한 자에게 가르침을 청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분명히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신접한 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고.
예수 믿는 사람은 암으로,교통사고로,돈이 없어서 죽지 않습니다.블레셋 때문에,남편 때문에,자녀 때문에 시어머니 때문에 죽지 않습니다.사명이 끝나기 때문에 데려가시는 것입니다.사울은 평생을 칼의 노래를 부른 가인처럼 칼에 의지해서 살다가,마지막 인생도 칼로 마무리를 했습니다.그러나 자살을 했어도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끝까지 지키셨습니다.끝까지 그를 사랑한 사무엘,다윗,요나단의 기도를 멸시치 않으시고, 그의 후손을 버리지 않으시고,세월이 흐른 후에,천년 뒤에 자살한 사울의 후손에서 예수님 버금가는 사도 바울이 나오게 하셨습니다.요나단과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사울의 가문이 끊어지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우리 식구들의 구원도 그럴 것입니다.자살을 했다 해도 말씀을 내가 믿고 갈 때 반드시 말씀을 이루는 믿음의 후손이 나올 것을 믿어야 합니다.그러므로 내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합니다.우리는 자살해서 지옥 가는 거 아닙니다.예수 안 믿어서 지옥 가는 것입니다.자살이나 음란이나 다 똑 같은 죄입니다.그런데다만 자살은 회개할 기회가 없으니 너무나 큰 죄라는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자살해서 지옥 가는 게 아니고 예수 안 믿어서 지옥가는 거 맞습니다.근데 자살하면 예수 믿을 기회가 없잖아요.그 나머지 것은 다천국가서 물어보시기 바래요.우리는 모르는 거 많아요.그러나 자살을 했어도 우리 식구들이 다 열심히 기도하니까 사울의 후손에서 사도 바울이 나오지 않았습니까?그러니까 자살이라는 죄를 막 지옥 가는 엄청난 죄라고 모든 조상을 정죄하면서 우리 집에 자살이 생겼다는 둥,이런 얘기 하지 마시고 여러분부터 믿음의 자손으로 자리 매김하고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공동체 고백이에요.이분도 너무나 엄마의 불행한 가정을 보면서, 행복한 남편을 만나려고 했지만 첫 결혼에 실패하고, 엄마가 자살을 하셨어요.그리고 자기도 결혼에 실패를 하고,그러면서 돌이킬 수도 없고 앞만 보고 가야 되는 어떤 상황이 생겼어요.자기도 재혼을 추진하게 되었는데 지금 남편의 전처가 자살한 것을 알았지만, 같은 아픔을 겪어 본 저로서는 저를 서로 품어주고 가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혼인 신고를 했습니다.그런데 남편은 집 안에서 무언의 폭력과 갑자기 변하는 무언의 감정 폭력에 영문도 모른 채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목사님을 통해 남편이 범 불안 장애,공황 장애라는 것을 알게 되니,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환자라고 생각하면서 견뎠습니다.그러므로 마음이 곤고하니 두 시간 반이 걸리는 휘문 성전에 예배를 다니면서 세례와 양육을 통해 구속사의 말씀을 알게 되었고,내 생각으로 이혼하고 아들을 두고 왔었는데 아이에 대한 무책임한 죄를 보게 되었습니다.그런데 남편이 또 미혹의 영이 들어가서 다른 여자를 만나서 음란을 행한 모습을 우연히 목격하게 된 난 화가 났지만,아이들에 눈에 밟혀 남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가족들에게 인색한 남편 옆에 살면서 많이 지쳤는지,절망감, 우울감에 빠져 자살 충동도 느꼈고,우울증이라는 진단에 약을 먹으면서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남편의 전 부인의 자살한 그 아내의 자리에서 살아내기가 너무나도 버거운 나는 주님을 의지하고 찾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그것이 아니었습니다.저는 행복과 안정된 재혼 생활을 대용품으로 놓고 남편에게 치우치면서 맹종의 빠른 발로 참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저는 생색병에 사로잡혀 많이 아픈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런데도 8년 동안 부부 목장을 섬기면서 온전한 마음으로 예배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남편이 목자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섬겼고,제 삶이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복으로 섬긴 것을 알게 되어서, 이 성전 가까이 장막을 옮기게 해달라는 이 기도를 응답하셔서 빚 없이 죽전에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남편이 겸임교수 일을 하면서 직분을 내려놓게 되었다는 거죠.집을 빚 없이 들어왔는데,목자가 되었는데,이제 부부 목장을 지금 섬기지 않으니까 너무 편해가지고,그러다 보니까 주님이 회개하라고 하셨답니다.아프리카 선교보다 힘든 재혼의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도와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 이 내 삶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고.그러니까 이제 이걸 깨달은 거죠.직장이 이렇게 됐으니까 내려놓을 수밖에 없으신데, 직장이 멀어도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우리가 핑계를 대는 거예요.조금 나아지셨나봐요.그러니까 여기도,엄마도 자살하고,전처도 자살하고,이 자살의 영이 있는 이 가정에 들어가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그 남편의 공황 장애,범 불안 장애,이런 모든 것들을 목장에서 편안하게 다 나누어 주시니까,얘기할 때마다 이것이 이렇게 희석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이 외에도 자살에 대한 나눔이 많이 있었지만,오늘은 우리들 교회 목장이 얼마나 건강한가를 나누어 드렸습니다.자살 얘기를 이렇게 편하게 하기에,남은 가족들이 말씀을 이루며, 이 일에 사명을 감당하며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모두 이런 얘기를 그냥 나의 쇼핑 중독,이런 것을 나누듯이, 자살의 문제도 이렇게 편하게,여전한 방식으로 나누고 가시면서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그러니까 자살이 별게 아닌 것이에요.정말 별 게 아니라고 생각되게,말씀 아셔야 되잖아요.말씀을 알아서,말씀대로 이루어 지는 것이구나.여러분 한 사람,한 사람이 다 주인공이 되어서 그 중심이 될 때에 여러분들의 모든 가정이 믿음의 가정으로 완전히 변화되고 말씀을 이루는 성가정이 될 것을 믿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자살로 이끄는 부모, 형제, 지도자가 있다고 합니다.좋은 지도자 밑에 있어도스스로 뉘우침에 그쳐서 자살할 수 있다고 합니다.양심의 가책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자살이 상관이 없는 지도자도 있습니다.그런데 말씀으로 기도하고 가면자살을했어도말씀이이루어지는역사가일어날것입니다.그러므로자살은살자로바꿔야합니다.그러니까사단에게속지마시고예수님이오라그러실때이초청을받아들이시길바랍니다.
기도제목
강혜림
1. 말씀이 들리고 내 죄가 보이기를. 큐티할 때 집중하고 딴 생각 안 하도록.
2. 논문에 지혜 주시고 진로 인도해 주시길
3. 남동생 주일 성수하고 공동체에 정착하도록, 엄마 십일조 신앙회복
4. 신결혼
이선애
1. 아빠 예수님 영접하고 천국 가도록
2. 남자친구가 배우자인지 분별하도록
박세현
1. 가족구원(아빠, 엄마, 세라, 동규)
2. 매일 큐티 하기. 아직 처리되지 않은 상처와 내 모습(상처가 두려워 움츠러들고 교묘히 회피하고 싶은 마음) 잘 들여다 보고 말씀 안에서 처리 받을 수 있도록.
3. 외로움에 흔들리지 말고 매사에 똑바로 분별 하도록
4. 신교제
지난 주일에는 영화관으로 봄 나들이를 갔어요.주토피아를 보았습니다. 애니메이션이지만 메시지가 있는 작품이어서 좋았어요. 즐거운 나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