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국의 비전과 새로운 소식을 안내합니다.
청년 공동체의 삶과 고민을 함께 나눕니다.
청년 공동체의 생생한 모습을 전합니다.
목자와 공동체 리더를 위한 소통 공간입니다.
청년국 양육 과정의 피드백과 평가를 나눕니다.
야고보서 3:1~12 온전한 말
섬기는 삶 살기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말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부드러운 말을 넘어 온전한 말을 해야 한다. 말씀을 듣는 구조 속에서 늘 말씀을 들여다보면서 있는 것이 야고보서의 행함이다. 온전케 된 믿음은 온전한 말로 나타난다. 외모로 사람을 차별하는 끝에 돈이 있다. 내 속의 문제는 돈인데 나타나는 것은 말로 나타난다. 그래서 온전한 말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1 말은 영향력이 있다.
(3~5절) 말로 비방하는 것은 살인보다 무섭다. 명예가 망가지는 것은 살인이 계속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중심에 말이 있어서 말이 구원받아야 한다. 우리 교회에서 나눔 중에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다. 상처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은 모두에게 문제가 있다.
적용 > 말로 상처를 주는 편인가? 받는 편인가?
양쪽 다 자기 죄를 보고 가야한다. 이런 문제로 상처를 받고 있으면 찾아가서 사과해야 한다. 두고두고 원수가 되어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적용 > 내가 최근에 상처를 준 말은 어떤 말이었나?
상처를 줬다면 가서 회개하고 받았다면 내가 감당못하는 연약함을 보게 해달라고 적용해라.
2 말은 위험한 것이다.
(5~6절) 야고보가 말에 대해 부정적인 것은 혀에서 나오는 자기자랑 때문이다. 없는 것을 있는것처럼 꾸며내고 능력 밖의 일을 자기 것인 양 착각한다. 하나님의 자리에 가고자 하기에 마치 하나님의 사람인 것처럼 과시하고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 남을 욕하는 것보다 자랑하는 것이 훨씬 더 큰 죄이다. 자랑하는 것은 도덕적과 인격적인 연약함을 과시하는 것이다. 늘 자랑하는 사람과는 인격적으로 자랑하기 힘들다. 가장 큰 악인 자랑의 배후에 지옥불이 있다.
(7~8절) 혀는 훈련되어야 한다. 혀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요8:44 우리의 본질이다. 앉으나 서나 욕심밖에 없는 우리다. 내 유익에 반하면 죽여 버린다.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옳다고 여기고 높임을 받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했다. 항상 비판적인 말 하는 사람은 마음에 비통함이 있기 때문이다. 자랑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마음에 정함이 없기 때문이다.
적용 > 우리는 늘 자랑하는가? 비판하는가? 지옥불을 경험하고 있는 악과 독이 있나? 어디에서 지옥불을 경험하고 있나?
3 말은 이중성이 있다.
(9~12절)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욕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이다. 자녀는 나에게 청지기로 맡겨주신 선물이다. 자기 자신의 이중성을 보면서 너무 혐오스럽지만 내가 참 더럽구나 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생명 샘의 근원이 있는 사람이다. 그 죄의 고백이 없이 날마다 죽을 것 같은 사람은 생명 샘의 근원이 없는 사람이다. 근원이 없는 사람의 특징이 억울하고 죽을 것 같은 것이다. 이 현장만 벗어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적용 > 말에 이중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오늘 가인처럼 회개하지 못하고 억울하고 죽을 것 같나? 생명 샘의 근원이 없는 사람인가? 근원이 있는데 오염된 물인가? 온전케 되어 가고 있는 사람인가?
4 온전한 말은 어떻게 할 수 있나?
(1~2절) 온전한 말하기 위해 형제가 있어야 한다. 말로 상처를 주는 것이 어떤 말인지 공동체에서 상처를 받아 경험하면서 깨달아갈 수 있다. 낮은 입장에 서야한다. 이해하는 것이다. 아무 말이나 하고 싶은 것을 통제할 수 있으면 선생의 자격이 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갖춰야 할 자격 요건은
(1) 말에 실수가 없어야 한다. 특히 혀를 자신을 자랑하는데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목원들이 체휼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목자에게 자랑이 있기 때문이다. 몇 배를 더 노력해야 한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2) 온전한 언어는 사명의 언어다. 온전케 된다는 것은 내 생각 내려놓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다. 쉬지 않는 악과 죽이는 독이 변화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내 속에 쉬지 않는 악과 죽이는 독이 있다고 쉬지 않고 외칠 때 그게 가장 변화되는 지름길이다. 교양 있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언어로는 단 한명도 변화시킬 수가 없다. 내 부족함을 고백하는 것이 가장 온전한 언어다. 예수님 없이는 온전한 언어를 할 수 없다. 내가 죄인인 것을 모르는데 어떻게 주님을 찬송하는 온전한 언어가 나오겠나?
적용 > 나는 선생된 자로 낮은 곳에서 가르치고 있나? 아니면 판단하고 있나? 말에 실수가 있음을 인정하고 나의 부족을 보면서 주님께 지혜를 구하고 있나?
나를 회개케 한 말이 온전한 말이다.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는 말이 최고의 말이다. 내가 죄인인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말이 가장 온전한 언어이다. 가장 온전한 말은 그분을 닮기 원하고 노래하듯이 얘기하듯이 다른 사람을 주께 인도하는 언어가 최고의 언어 온전한 언어이다.
출석 : 주금만82 양요한83 이정준87
결석 : 이건상82 이양식83 최영준85 정기성85
장소 : 카페모카가 많이 달달한 달콤커피
시간 : 4시 ~ 6시 반
금만형 : 말로 상처 받는 사람인가? 주는 사람인가?
온전한 말을 가르쳐줄 공동체가 있긴 하지만 이런 공동체의 생활 속에서 우리가 잘 듣고 가고 있나? 내가 상처받는 말을 할 수도 있고 내가 모르는 부분을 말을 하는데 내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나는 내 스스로가 어느 정도의 수준이라는 것이 있다. 나보다 수준이 낮은 사람을 보면 자존적인 교만이 나온다. 상대의 좋은 말을 들어도 나보다 수준이 낮아 보이는 사람의 말은 무시하게 된다.
나는 상처를 주는 쪽이다. 어머니의 부탁에 틱틱대며 감정이 상할만한 말을 했었다. 친구들과 술 먹을 때 너는 그 정도밖에 안 된다는 말을 많이 했다. 내 주장이 맞다는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주장을 존중하지 않고 내게 따라오라고 했다. 저번 주에는 목원들의 말에 공감의 언어를 쓰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유치부에서는 아이들에게 잘 대하면서 조카에게는 그러지 못한다. 누나가 이혼했는데 내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있다. 조카를 대하는 모습과 유치부에서의 모습이 다른 나의 이중성을 보며 유치부를 섬기게 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위 사람에게 닭살 돋는 멘트를 하지 못한다.
요한 : 나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좋은 의도로 한 말이 나쁜 결과로 다가올 때 상처가 된다. 난 말실수를 잘 하는 것 같다. 얼마 전 친구에게 양말 골라달라고 했는데 너무 유치한 양말을 가리켜서 “나 그딴거 안해”라고 말해서 상처를 주었다. 평소에 아닌 것에 대한 단호한 면과 내면의 공격적인 성향이 그런 순간적인 말로 쏟아져 나온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전 여자친구에게도 공격적인 말을 많이 했었다. 그런 것이 습관화되지 않았나 하며 말해놓고 스스로 많이 놀랐었다. 말 내뱉으면서 거의 동시에 말실수라는 것을 느낀다.
금만형 : 맞다. 그렇다고 말을 아낄 수도 없고 순간적으로 말을 판단해서 할 머리가 안 되니 힘들다.
요한 : 평소에 마음 밭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어렵다. 이번 주에 기숙사에 같은 방 쓰는 형들은 담배를 안 폈다. 하지만 스스로 믿음이 조금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무너져서 우울했다. 내 악한 마음이 너무 잘 보였다. 현재까지 해결되지 않는 부분을 생각해봤다.
전 여친이랑 7년정도 만났었다. 서로 결혼생각이 있었는데 전 여친은 살이 쪄서 대인기피증이 있었고 살 빼기 전에는 죽어도 결혼 못한다고 했었다. 멀리 떨어져 살았었고 일 못하는 전 여친 월세와 생활비를 내가 주고 있었다. 살이 계속 찌는 전 여친에게 이유를 물으니 헬스장이 멀어서 못가겠다고 했었다. 나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헬스장 바로 앞에 방을 얻을 테니 내가 있는 동네로 오라고 하여 같이 지내기 시작했다. 집 앞에 제일 비싼 헬스를 등록하고 돈을 못 벌어 미래에 대해 불안해서 계속 먹는다는 전 여친을 위해 다른 것 생각하지 말고 다이어트만 하라고 월급을 모두 주기 시작했다. 월급의 대부분은 둘의 술값으로 소진되었다. 그렇게 같이 지낸 후 몇 달 뒤 오히려 30키로가 더 찌는 것을 보며 내가 사람 잘못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얘랑 나는 안 되는구나 라는 생각과 몇 년간 응원하고 믿어준 마음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에 이별하게 되었다.
몇 년 전에 내가 돈이 없어 고시원 비 내주지 못할 때는 힘들게 사는 것을 부모님에게 절대 말하지 못하겠다고 하여서 몇 달 동안 같이 피시방이나 전철역에서 추위에 떨면서 노숙한 적도 있다. 그러다가 나중 되어서 같이 살기 시작하고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다해주고 나니 그것들이 내 의가 되었다. 전 여친에게 ‘나는 이렇게 너에게 다 해주고 열심히 사는데 너는 왜 살을 못빼냐, 결혼 할 생각이 있긴 하냐, 내 생각에 너는 말로만 사랑한다고 하고 날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라는 식의 말을 자주 했었다.
이번 주 큐티설교 중에 재혼하는 사람에게 다시 그때의 상황이 오면 이혼할거냐는 질문을 한다는 것을 듣다가 나는 앞으로 결혼해서라도 다시 이 때와 같은 상황이 오면 헤어질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놀랍게도 헤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면에 전 여친에 대한 원망이 해결되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전 여친과 정말 잘 되고 싶었는데 그런 상태까지 몰고 가고 날 못 따라와 준 것에 대한 깊은 원망과 미움이 지금도 있다.
그러다가 오늘 설교 듣는데 내가 너무 사이코 패스 같았다. 내가 해줄 것 다 해주어서 할 말 없게 만들고 살 빼라고 강요를 했었던 것이 전 여친에게는 너무 괴로웠을 것 같다. 한 달에 한번 내 앞에서 몸무게 재는 순간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지금은 애초에 같이 살고 돈을 주고 거리를 두지 못했던 내 악함이 인정된다.
금만형 : 있어야 될 사건으로 들린다. 나는 요즘 3주정도 나에대한 정죄, 비판, 연민, 자책이 심하다. 구원을 받았음에도 믿지 못하고 불순종하는 마음이 있다. ‘나의 죄 때문에 이런 심판을 주실 거야’ 라는 생각이 있다. 교만한 마음이 있다. 목자모임 가기 전 친한 믿음의 선배인 어느 형하고 나눔을 하였다. 정신과 가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 애기를 들으면서 예전에 정신과를 같이 교제하던 사람하고 가라는 다른 지체들이 권유를 했었지만, 그 당시 난 굳이 정신과에 가야 되는 이유도 내 상태는 괜찮아 라는 이유로 가지 않았다고 말을 했었지만, 나눔을 하면서 정신과 가라는 말이 참으로 고맙고, 이제는 가야겠다는 마음이 섰다. 난 지금 나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이 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나를 봐주는 여러 가지 채널이 있는 것이 정말 좋을 것 같다. 난 너무 음란하다. 이번 주엔 4일 연속으로 웹툰을 보며 혼자 음란을 즐겼다.
요한 : 내가 말로 상처 받을 때는 상대가 ‘헤어지자, 너 싫다‘ 등의 말을 할 때이다. 좋은 관계가 깨지는 상황이 오면 불안감이 심해진다. 얼마 전 교회 지체가 내 행동을 오해하여 날 싫어한다는 얘기를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는데 너무 기가 막히고 상처가 되었다.
금만형 : 나에게도 안 보이는 병이 많은 것 같다. 네 말을 들어보면 내 안에도 수많은 병이 있는데 애써 내가 그렇지 않을 것이란 부정이 있다.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 인정이 안 되니까 나야말로 사이코패스 같고 정신과 가봐야 할 것 같다. 사이코패스의 좌뇌 우뇌가 감정을 못 느끼는 것처럼 죄를 짓는 것에 대해 못 느꼈던 내 안에 사이코패스가 있는 것 같다. 어떤 말씀을 들었을 때 내 안에 찔림이 없다는 것 자체가 내 안에 사이코패스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늘 음란하다는 것을 계속 말해야한다. 되었다 함이 없는 인생인데도 이정도 말하면 된 것 아냐? 라는 생각이 있었다.
정준 : 나는 상처를 준다. 대학교 때 여자들에게 말 안 가리고 막 했었다. 친해지기 전에는 매너남이고 이해해주는 척을 하지만 친해지면 막말한다. 말로 지지 않으려는 게 있다. 말 할 때는 상대가 상처받을 것을 모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비효율적인 시간낭비이다. 회사에서 일이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 보일 때 시간낭비로 보이지만 상사에겐 말 못한다.
금만형 : 나는 자랑하는가? 비판하는가?
정준 : 난 자존감이 높지 않다. 주위에선 좀 교만해도 된다고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지 못한다. 누가 부탁할 때 내게 피해주면서 부탁하면 짜증난다. 우리 교회 간증을 들으면 연민과 상대적 위로를 느낀다. 서울대 간증이 요즘 많이 들리는데 듣는 사람이 학벌에 대한 열등감을 느낄 수 있어보인다. 남이 내게 피해주는 것이 싫다. 개인주의가 좀 있다.
금만형 : 원래 다 이기적이라서 얼마나 그걸 보고 알아 가느냐가 중요하다. 나도 참 이기적인 사람이고 내 것만 있다. 너도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어서 상대를 정죄하고 판단하게 된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약간 저럴 수 있다는 이타적인 마음이 있다면 그 안에서 있어야 될 사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요한 : 나는 비판보다 자랑을 많이 한다. 전 목장에서도 내 자랑을 너무 많이 한 것 같다. 객관적으로 날 설명하려 했지만 자랑이 되었다.
금만형 : 내 스스로 생각한 것은 절대로 주관적인 것이지, 객관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앞 뒤 말이 안 맞는 것이다. 말씀 속에서 그 부분을 네가 봤다고 하면 네가 객관적이 될 수 있다.
요한 : 제 작년 목장에서 직장에 나의 동급인 직위의 어느 사람과의 다툼을 나눈 적이 있는데 내 나눔을 듣고 취업을 못하고 있는 누군가는 나를 부러워하였고 일 하고 있는 누군가는 열등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것이 너무 충격이었다. 그래서 그런 방면으론 말을 전혀 하지 말아야 하는지 고민하였었다. 오늘 설교 듣는데 내 말속에 자랑이 있어서 그랬다는 것이 많이 와 닿았다. 부자가 천국가기 어렵듯이 나도 비교적 잘하며 살아온 것들이 많아서 나에 대해 말하다보면 자랑이 된다. 요즘은 금만형을 롤 모델 삼고 싶다. 금만형이 그런 부분을 잘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준 : 특정 사람에게 시험 들게 하는 말이 가끔 있는 것 같다. 직장에서 힘든 얘기를 취업준비생에게 하면 절대 공감이 안 된다. 취업준비생 입장에서는 어디라도 취직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금만형 : 우리 목장 서로가 서로를 깨어있게 해주는 부분이 있다. 목장을 위해 기도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모든 사명이나 열매는 관심에서 시작된다. 내가 관심 있어야 체휼이 되고 사명의 언어를 쓰게 된다. 가족의 구원에 관심이 있어야 기도를 하게 된다. 관심이 있어야 부서를 섬길 수 있다. 난 그저께 목자 모임에서 내가 깊숙이 느끼지 못한 주님의 손길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수련회에서 만나길 기도하고 있다. 난 붙박이 장이 내 기도장소이다. 기도가 안 되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하면 좀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기도는 호흡이고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이다. 그것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것을 느껴보자. 난 항상 음란한 상상이 끊을 수 없어서 계속 기도하게 된다. 기도 하지 않으면 율법적 찔림이 있다. 이건 성경말씀 속에 명령이기도 한다.
내가 말을 할 때 툭툭 내뱉는 것이 상대에게 오해를 살 수 있고 그 오해가 또 다른 사람에게 오해를 불러서 제 3자에게 피해를 주는 일들이, 우리가 그럴 수밖에 없다는 자체를 인정해야한다. 그것에 대해서 우린 어느 누구도 비판이나 판단 할 수 없지만 또 우리의 연약함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기도하는 것이 좋다. 공동체 안에서 상처를 줄 수도 있고 받을 수도 있는데 그런 것을 공동체 안에서 느껴야 한다. 그것으로 인해 ‘나 교회 안다녀’라고 하면 안 된다.
난 요즘 한사람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한다. 자기 필요할 때만 전화를 주는 사람이 있다. 소심하고 위선적인 사람이다. 난 이 사람 얘기만 나오면 재수 없다는 등 비판을 하게 된다.
요한 : 몇 달 전 친구에게 ‘난 요즘 신앙 상태가 이래, 난 요즘 이런 걸 깨닫고 있어, 이렇게 살고 있어’라며 은혜 받은 것을 나눴었다. 근데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너 내게 그런 얘기 하지 마. 난 네가 그런 얘기 할 때마다 영적 열등감을 느껴”라고 했었다. 그 당시에 기가 막혔었는데 자랑이었다는 것이 오늘 인정이 된다.
금만형 : 그러니까 우리는 안 되는 사람이다. 난 예전에 ‘목자가 왜 처방질만하지? 그냥 들어주면 안 되나?’라며 목원들을 위로해줬었다. 결국엔 그 말 속에 내 힘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나는 은혜로 해도 주위 사람이 봤을 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네가 정상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사람도 네게 계산적으로 다가가지, 인간적으로 다가가지 않는다. 아까 네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한 말처럼 겸손이라는 것이 정말 어렵다. 늘 겸손하게 해달라고 기도 하지 않는 것은 더 힘든 고난을 주실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다. 나보다 앞서나가시는 주님께서 그것에 대해 가지치기를 해 주시는 것을 내가 하기 싫으니 직면하지 않는다. 중요한건 분별하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걸 알려주는 것은 공동체밖에 없다. 공동체 안에서 칭찬받을 수도 있고 욕먹을 수도 있다. 이런 것을 공동체에서 느끼고 난 후 사회생활 하면 더 겸손해지지 않을 까 한다. 공동체 안에 있는 우리는 지금 그것을 느낄 수 있는 환경으로 각자 가고 있다.
기도제목
주금만82
1.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말들을 잘 분별할 수 있도록
2. 가족, 목장, 공동체에 공감의 언어, 사랑의 언어, 체휼의 언어를 잘 THINK하며 사용할 수 있도록
3. 싫은 소리를 들어도 마땅히 들을 수 있는 마음 밭이 될 수 있도록
4. 건강 검진을 받는데 편안한 마음으로 받을 수 있도록
5. 내 수준이 낮음을 인정하고 목장식구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양요한83
1. 영적 진실성이 있는 성품으로 인내하도록
2. 죄의 자리를 지혜롭게 피하고 생활예배 잘 드릴 수 있도록
이양식83
1. 현명한 선택 할 수 있는 지혜주시길
2. 말하기 전 10초 멈출 수 있는 절제함 주시길
3. 담대함 주시길
이정준87
1. (카티아 라는 프로그램)교육 잘 받도록
2. 저와 가족건강
3. 큐티와 모임참석 잘 하도록
4. 나태해지지 않도록
홍기범87 (새가족)
1. 거짓된 삶을 버리게 하여 주시고 진실로 믿을 수 있는 삶을 주세요
2. 지킬 수 있는 것을 지킬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세요
3. 꾸밈없는 저의 모습을 사랑하게 해주세요
4. 현명한 사랑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