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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요약
제목: 섬기는 삶(창1:9-19)
2016년 첫 주일, 2015년의 심히 창대하리라의 표어는 심판을 거쳐서 남은 자가 되어서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신다고 했는데 문자 그대로 되었다 생각된다. 올해의 표어는 결국은 승리하리라. 심판을 겪었지만 팔복의 가치관으로 힘든 사람들이 모여오는 교회가 되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굽이굽이 성화와 영화를 거쳐서 내 인생의 종말을 맛보며 이제야 섬기는 삶으로 사명이 바뀌어 가는 것이다. 어떻게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하나?
1. 기본적인 마음밭이 준비되어야 한다.
9절) 하나님이 천지 창조 셋째날과 넷째날에 사역을 시작, 첫째날 둘째날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궁창위의 물과 아래의 물도 나누셨는데 이제 바다와 땅에 대해서는 모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나뉠 것이 있고 모일 것이 다르다. 바다와 땅은 모이고 드러나라고 하시니까 한쪽은 모여서 바다가 되고 한쪽은 모여서 마른 땅이 되었다. 둘다 없어져야 할 것 아닌 각자 알맞게 쓰임받는 것이다. 바다는 물이 모여 더 풍성해진다. 모인다는 단어는 함께 묶이고 튼튼하게 한다는 뜻. 빛이 나에게 와서 정한것과 부정한 것을 나누다 보면 모이라고 하실때가 온다. 예배로 공동체로 묶여서 함께 튼튼하게 되면 능력의 역사로 마른 땅도 되고 뭍으로 들어나기도 한다. 내 현주소 보내한다.
쓸모없는 땅으로 그 모습이 덮여서 그 모습이 안보일뻔 했는데 물이 마르듯이 힘든 과정을 통해 드러나고 보니까 수없이 바람을 주셔서 말려가셨다. 그러니까 식물이 자라고 사람이 거하는 환경이 되었다. 물을 말리지 않았으면 땅은 존재할 수 없었다.
목장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죄와 고난을 오픈해서 드러나는데 또 다른 사람은 고난이 없어도 그 나눔을 들어서 간접경험을 하고 풍성한 물이 된다. 이것이 서로 이기는 것이다. 바다보다는 사람이 땅에 거한다. 그래서 우리가 벌거벗어 드러내지 않고 오직 풍성한 바다만 되기를 원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모이고 드러나는 과정 힘들지만 섬기는 삶을 위한 기본적 토향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10절) 바다와 땅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한다. 이제 이땅에서 물고기와 식물들이 살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갈 것 생각하니 하나님이 기쁘셨다. 하늘은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 없는데 땅은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한다. 땅에는 식물과 인간이 산다. 땅에는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닌 유리병, 양철조각, 플라스틱 등 아프게 하고 찌르게 하는 것들과 더러운 오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내려온다. 그래서 가장 낮은 땅은 최고의 옥토라고 했다. 이것을 다 받아내는 것이 땅이다. 믿음의 땅 옥토가 되어서 올해는 싸이코패스 같은 내 식구들 뿐 아니라 어떤 사람도 감당할 수 있는 한해가 또 우리가 되길 바란다. 이런 상처와 아픈 사람을 섬기려면 상처와 쓰레기를 받아내는 마음밭이 되어야 하는데 혼자서는 안되고, 또 숨어서 혼자 은혜받는다고 하지말고 힘들어도 이것이 드러나서 말리면서 기본적인 마음밭이 되어가는 땅으로 가야 한다. 힘들어도 말려가며 땅이 드러나야 한다.
적용: 나는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한 마음밭이 준비되어 있나?
내가 드러내고 모여야 하는 땅과 바다인 것이 인정이 되나?
내가 받아내야 할 유리조각과 쓰레기 같은 사람은 누구인가?
2. 종류대로 열매를 맺어야 한다.
11~12절) 각기 종류대로가 짧은 구절에 3번이나 나온다. 각기 종류대로란 말만 보아도 진화론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쥐가 변해 박쥐가 되고 원숭이가 변해 사람이 되는 것 아니다. 풀과 채소와 나무들이 각각 종류에 따라 지었다. 고건 서울대 컴퓨터 공학대 교수가 나는 왜 크리스챤인가란 칼럼에서 현대의 생물학도는 다윈의 종의 기원 읽지 않아, 20세기 노벨상 수상자들의 98%가 하나님을 인정한다고 했다. 뉴스위크지도 과학자들이 종사이를 연결하는 중가형태의 화석을 찾으려고 아무리 해도 낙담만 할 뿐이라고 했다. 중간형태의 화석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이라고 했다. 화석들이 진화론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증거가 되고 있다. 하나님께선 종류대로 구별해서 창조하셨다. 그래서 이것을 함부로 교배, 교란 시키는 것은 죄이다. 자연 질서에 있어서도 지켜야 할 도덕적 자세가 있다. 각기 종류별로 채소, 풀 나무로 존재하게 해야 하는데,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면서 자연법칙 무시하니 광우병이 하나님이 주신 천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이 식물 왜 만들었나? 오직 사람과 동물에게 먹히기 위해 만들었다. 이것이 식물의 역할이다. 성공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내가 야망대로 열매를 맺겠다고 하면 그게 지옥이다. 어떤 작은 풀과 채소라도 종류별로 열매만 맺어서 먹히면 되는데, 들풀이 노력해서 아름들이 나무 되겠다고 일생을 노력하니 이것이 지옥이다. 들풀은 들풀의 주제를 알아야 한다. 근데 계속 아름드리 나무 되겠다고, 풀도 지렁이도 하나님의 독창적 작품이다. 부도가 나도 이혼을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독창적인 작품이다. 자꾸 비교하지 말라. 종류대로 열매만 맺으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해 주시는 인생이 된다.
맺다는 파종하다 번식하다, 창조하다, 만들다, 배풀다의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이 씨앗을 주시니 열심히 농사지으면 어떤 씨앗이든 창조적 능력있기에 열매를 맺게 된다. 그 어디에도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나 풀은 없다. 내가 열매 맺고 먹힘을 당하지 않으면 찍혀서 불에 던지우는 결말만 남는다.
13절)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어야 한다. 땅에 발을 딛고 살고 있는데 어떻게 어둠이 없겠나? 날마다 고난의 저녁이 있지만 또 날마다 영광의 아침이 있다. 이것이 한달에 한번오는 것 아닌 날마다 온다. 날마다 어둠이 오니 날마다 큐티를 하니 않으면 안된다. 고난이 이제 끝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날마다 고난과 영광이 같이 오는 것이다. 잠시뒤에 찾아올 영광을 못보기에 자살하려고 한다. 그 과정 속에 열매가 맺혀 간다. 풀과 채소와 나무들의 종류대로 보시기에 좋았다 하는 것처럼 세상에도 여러종류의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좋아해 주신다. 빈부격차와 학력격차를 따지며 한종류만 좋아하고 특별한 관계를 원하는 것은 상처와 욕심이며 죄이다. 하나님이 다 지으셨으니 인생의 목적은 거룩이다. 우리가운데 목적을 가지고 지어주신 서로 그 목적을 알고 가는 거룩한 관계는 있어도 특별한 관계는 이세상에 없다. 종류대로 각각 다르지만 서로 나누며 종류대로 열매 맺으며 같은 상황의 여러분들을 섬기며 가는 것이 종류대로 열매 맺는 것이다.
적용: 하나님이 지으신 종류와 목적대로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있나?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는 날마다의 고난에 과정이 인정이 되나?
내 인생에 거룩한 관계와 특별한 관계중에 어떤 관계를 원하나?
3. 세상을 비추는 삶이다.
빛과 어둠을 나누시더니 이제는 낮과 밤을 나뉘게 하신다. 밤이 어둠의 세력으로 나쁘다는 것이 아닌 최초로 하루를 주신것이다. 밤과 낮을 주셔서 밤엔 자고 낮엔 일하게 하신것이다. 이렇게 나눠주신 것이 쉼이고 사랑이다. 잘 자고 잘 일어나야 잘 섬길 수 있다. 낮엔 일하고 밤엔 자는 사람에겐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알게 하신다. 하루를 잘 사는 것이 최고의 적용이다.
14절) 낮과 밤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일하기 위해 할수 없는 사람도 있지만 낮엔 자고 밤엔 안자는 사람은 다 병든 사람이다. 세상을 비추려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낮과 밤에 순종해야 한다. 잘 때 일할때를 잘 알아야 한다.
15절) 낮과 밤을 잘 지키면 하늘의 궁창에 광명체를 주셔서 비추라 말씀하신다. 처음에 빛이 있으라 하실땐 비추란 말이 없었다. 태양은 자신의 유익과 상관없이 자신을 불태워 지구의 생명을 살린다. 나에게 빛이 임하면 우린 비추는 삶을 살수 있다.
16절) 하나님이 그것들을 궁창에 두어 땅을 비추게 하시며, 큰 광명체로 낮을 작은 광명체는 밤을 주관하게 한다. 대단한 태양도 파르스름하고 창백한 점하나에 불과한 지구를 위해 나중에 창조되었다. 내가 큰 광명체인가 작은 광명체인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 모든 낮과 밤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신것이 중요하다. 태양은 발광체가 되어 스스로 비추지만 달은 태양빛을 반사해서 빛을 낸다. 그러니 달이 태양앞에 자랑할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 은혜롭게 되었는데 내가 빛을 비춘다고 어떻게 자랑할 수 있겠나? 우리에겐 생색낼일이 하나도 없다. 예수그리스도를 보기만 하면 살아나는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만 하면 빛을 비추워서 살아나게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섬기는 삶을 살수 있다. 태양이 떠올라 온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장면을 생각해보면 너무 대단해 보인다. 그런데 태양이 지구에게 없어선 안될 존재임에도 하나님이 이름을 주지 않으시고 그저 큰 광명체로 칭하신다. 궁창에도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없었듯이 이들에게 이름을 주지 않는다. 왜그럴까? 태양이 우상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태양신을 섬기는 이방인이 많이 있다. 이스라엘의 무나세왕도 일월성신을 섬겼다. 하나님은 사역 가운데서 하나님 한분만 영광 받길 원하신다.
18절) 우리는 창세기를 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땅과 바다를 나누는 것을 우리가 간증하고 나가는데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실 것이다. 영원토록 나눠야 할 것이 빛과 어둠이다. 이렇게 나뉘어 가는 모습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한다. 모이는 것도 은혜, 나눠가는 것도 은혜다. 나 스스로 태양이라 여기며 지구같은 인생을 하찮게 보면 안된다. 내가 하찮은 빛이라 할지라도 내 평생을 비추다 가면 된다.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을 섬기면서 나혼자 태양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내가 주는 사람이 아니다. 공동체에서 나와 같은 아픈 가진 사람들과 공감하며 그냥 가야 한다. 같이 울어주고 아파하면 저절로 남을 비추는 인생이 되는 것이 섬기는 삶이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사이코패스가 났길 바라고 속상하고 연민이 와서 아무것도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섬기는 것이 아니고 지옥을 사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이코패스 변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우리들교회에서 변하여 진 사람도 많다. 우리가 내려 놓을때 변할 수도 있다. 다들 자기의 죄패와 부끄러움을 드러내고 자연스럽게 나눠주니 자연스럽게 남에게 비춰주는 인생이 되어 목자 부목자로 섬기도 있다. 얼마나 죄인들이 모인 아름다운 교회인지 모르겠다. 바리새인 같고 죄가 없는 사람들은 너무 불편하게 생각하고 저런걸 자랑이라고 하나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들교회는 뭍으로 드러나야 하는 교회니까, 물속에 숨겨져야 할 교회 아니고 드러나야 할 교회니 다같이 불편한 분들 품으며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용: 나의 섬김의 태도는 어떤가?
문제가 해결되기 보다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비춰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나?
낮과 밤에 순종해서 해야 할 일을 잘 하고 있나?
▶기도제목
하진희 목자언니
1. 영육의 회복과 관계회복
2. (목원들의 권유로 ㅋㅋ) 신교제, 신결혼
3. 직장상황이 어떤형태로든 좀 나아지도록
홍기향
1. 생활예배중수, 건강회복(감기)
2. 부모님과 동생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강권적으로 뚫고 들어와서
삶이 해석되어지는 지혜와 많은 회개의 은혜 부어주시길
3. 남동생 직장 (5여단:국제평화지원단) 인도해주시길
4. 남동생과 부모님에게 합당한 선한 만남의 복으로 목장 정착
5. 1. 10 (다음 주일) 온전히 식구들 예배 인도
6. 어머니 예배 회복과 육적강건 (주일때문에 피곤하지않도록)
장은영
1. 엄마몸이 성전임을 알고 스스로 몸을 아끼고 아프면 병원도 가시도록
2. 회사에서 매주 목장과 부서 섬길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시길.
3. 섬기기 위한 마음밭으로 준비되도록.
4. 신교제
소정, 혜인이 기도제목은 올라오는대로 수정하겠습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