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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마5:3~10)
주님은 팔복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나를 살리는 회개 후에 성화를 넘어 영화를 이루어 가기 위해서는 복에 대한 개념이 거듭나야합니다. 성경전체를 요약한 말이 팔복이며, 그것을 광의적으로 설명한 것이 십계명이며, 간단하게 설명한 것이 팔복이며, 팔복을 간단하게 설명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
가난한자는 ‘웅크린 거지의 모습’, ‘의지할 곳 없는 거지 나사로의 모습’, ‘두 렙돈을 바친 과부’에게 쓰인 단어가 이것입니다. 궁핍한 것보다 훨씬 심한 절대 빈곤의 상태에 있지만, 무엇을 간구하는 능동적인 모습이 아닌, 삶에 시달리고 찌들린 수동적인 형용사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구걸에 의존하며, 괴롭힘과 고난을 당하고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사람, 겸손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겸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가난한자입니다.
사람들은 왜 자기가 가난한 걸 인정하지 못할까요? 자기를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것입니다. 굶주려 죽을 지언정, 자살을 선택 합니다. 하나님 앞에 보면 되는데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아직은 쓰러질 만큼 주리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직 나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힘을 다 잃을 때 까지 기다리십니다. 저항할 수 없을 때 까지, 가난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지금 내 발목을 잡고 있는 힘들고 답답한 환경이 원수가 아닙니다. 원수는 내안에 잇는 욕심이며, 내가 할 수 있다는 교만입니다. 아직도 내 힘으로 잘살아 볼 수 있다고 바둥거린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거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게 복을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고, 손들고 돌아오면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심.
적)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난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물질과 애정, 건강의 의 가난을 당하셨나요? 그것이 영적인 가난으로 이어져서 천국을 사모하게 됐습니까?
2. 애통하는 자
애통은 가까운 가족이 죽었을때 극한 슬픔을 의미합니다. 내 죄 때문에 그런 슬픔으로 울어야합니다. 죄를 슬퍼하며 애통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위로를 얻습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울어야만 하나님이 위로하십니다. 가난함은 애통함과 같이 옵니다. 가난해야 애통합니다. 부유하면 애통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며, 내가 구걸할 수밖에 없는 자이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죄인인걸 깨달을 때 애통함이 옵니다. 하나님의 복 하나님의 위로가 최고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자는 어떤 사건도 문제가 되기 않고 진정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적)우리는 무엇 때문에 애통합니까? 절박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도 필요 없다고 합니까? 믿음이 성숙할수록 나의 가난함을 보고 애통하며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천국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3. 온유한 자
온유한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착하고 얼굴이 온유하고 표정과 말씨가 온유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짐승을 길들일 때 쓰는 말로, 길들여져 주인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날마다 인정하고 하나님께 길들여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러면 온유한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땅을 차지하고 화평을 즐기는 것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등기소유가 내 것이 되지 않아도 이 땅을 즐기는 사람이 땅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내속에 온유함이 없기에 하나남이 주신 땅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 온유함으로 유명한사람은 모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온지면 중의 온유한사람이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형제들이 백성들과 함께 모세를 비방한것과 같이, 우리가 온유함을 갖기 어려운 것은 내 가족과 형제들입니다. 모세를 불평하고 그 형제들이 비방 할때 모세가 온유함으로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여호와 하나님이 그 모든 말을 다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바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누가 비방을 해도 반응하지 않고 입을 다물 수 있습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영육 간에 여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듣는 것보다 하나님이 들었기에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온유는 자신의 지위 뒤에 자신을 숨기지 않고, 진정한 온유는 성품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은 연약함입니다. 진정한 온유는 진리를 붙들고 순교까지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외유내강한 사람이며, 십자가를 경험하지 않은 온유는 가짜입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온유는 내게 많은 재주와 권세와 능력이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능력만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판단해도 불편해 하지 않고,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나서서 해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적) 착한 말을 들으면서 내가 온유하다고 착각하지 않습니까? 성품이 아닌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 하나님 때문에 인내하고 순종하는 온유가 있나요? 우리의 온유는 성품인가? 믿음인가?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는 하나님이 뜻이 내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리고 목말라야할 의는 내 뜻 내 가치관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내 삶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환자들이 자기병의 원인을 찾아서 치료하지 않고, 고통만 제거해달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행복해지고 싶은 것은 고통만 제거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 돈, 애정, 남편, 아내, 자녀의 성적에 주리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매력이 없는지를 알아야합니다. 누군가를 굶주려 하면 할수록 상대방은 도망가게 되어있습니다. 남편과 자식에게 굶주려있으면 그 부담을 견디지 못해서 밖으로 도는 것입니다. 사람과 세상에 주린 것은 내가 주릴수록 채워지지 않으며 더 비참한 목마름과 주림만 경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주리고 목말라할 때 하나님은 분명히 채워주십니다. 인생의 목적, 결혼의 목적이 거룩이라는 것을 알고, 그 거룩을 원할 때 하나님이 내 인생도 가정도 책임져주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은 굶주림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목마름이 있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를 더 주리고 목마르게 하는 것이 주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더욱 사모하도록 나를 가난하고 애통하게 만드는 사람과 환경이 내게 축복이며, 그것을 깨달을 때 진정으로 주리고 배부를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적) 내가 끊임없이 주리고 목말라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좋은집, 좋은차 사람의 관심과 인정받는 것에 목말라합니까? 주리고 목마른 환경을 통해 영적인 배부름을 알게 해준 것에 감사합니까?
5. 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은 창자가 끊어지도록 아파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아파하고, 나를 사랑하듯 남을 사랑하고, 나를 이해하듯 남을 이해하고 내게 관대하듯 남에게 관대한 것이 긍휼입니다. 주님은 음욕을 품는 것 자체가 간음이고,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죽이고, 죽고 음욕대로 행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분노와 상처로 정신병원에 있어야하는데,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나 때문에 창자가 끊어질 정도로 아파하시며 나를 위해 기도하는 것 때문에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얼마나 긍휼이 필요한지를 아는 사람은 남을 긍휼이 여길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불쌍해하고 염려하는 것이 긍휼이 아니라 찾아가서 상처를 만져주고 안아주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실천까지 가는 것이 긍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여김을 받으며 내가 긍휼이 여길 사람이 옆에 있다면 내게 복이 있는 것입니다.
적) 비록 가족이라도 인연을 끊고 싶은 연약한 식구가 있습니까? 염민을 느끼지만 찾아가거나 만나기는 싫어서 돈만 부치는 얄팍한 긍휼을 보이고 있나요?
6. 마음이 청결한 자
마음이 청결한 것은 욕심 없이, 행위의 청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행위로 청결한 것이 아닌, 다윗이 유부녀 밧세바의 행위와 살인으로 청결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다윗은 마음이 청결한자여서 나단 선지자가 와서 죄를 지적했을 때 즉시 죄를 인정하고 고백했습니다. 밧세바 사건을 통해 ‘모친이 죄악 중에 나를 잉태했다’고,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해달라’고 자신의 죄가 씻어지기를 간구했습니다. 어떤 부도덕과 비리를 저질렀어도 그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사람이 청결한 사람입니다. 청결한 사람이 하나님을 본다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거듭난 사람은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불신자는 결코 볼 수 없는 하나님이지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자연만물과 환경을 통해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두 눈을 주신 것은 한곳을 정확하게 보라고 하는 것 입니다. 사람을 사랑할 때 양쪽을 쳐다보고, 두마음을 품는 것은 배신입니다. 마음속에 두마음이 있음을 인정하고, 날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갈등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나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가 청결한 것입니다.
적) 하나님이 내게는 안 보인다고 불평하십니까? 내 죄로 회개하는 눈물로 마음이 청결케 되어 주변의 모든 환경과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까?
7. 화평하게 하는 자
천국에 속한 사람은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화평은 성경에 무려 400번 정도 나옵니다. 성경은 평화를 그렇게 중요시합니다. 화평케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은 하나님과의 평화가 이루어지고 내속에서의 평화가 이루어졌을 때 이웃과 화평하게 되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가 날 위해서 죽어주시므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다면, 우리도 남을 위해 화목제물이 될수 있습니다. 수동적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론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서 갈등과 다툼과 원망의 자리에 들어가 화목제물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적) 가정과 직장내에 갈등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인내를 보이면서 화평을 누립니까?
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
내가 주님을 위해 팔복대로 살게 되면, 나를 기다리는 것은 핍박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믿음 때문에 핍박당할 때 그것을 기뻐하고 즐기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천국이라고 합니다. 팔복의 핵심은 가난이고 주제는 핍박입니다. 팔복의 시작도 끝도 천국입니다. 주님으로 인해 핍박 받지만 환경을 초월하시는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 주님의 제자가 갈 길입니다. 복음은 세상에 고정관념을 깨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외치는 사람들과 복음대로 사는 사람은 세상의 미움과 핍박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세상을 그를 미워했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였습니다. 이것이 세상이 하나님의 자녀를 대하는 태도입니다.
적) 크리스천으로 뇌물과 술자리를 거절해서 따돌림의 핍박당한 적이 있습니까? 믿음 때문에 참고 양보했다가 미련하다는 악한 말을 들었습니까? 그것을 참고 인내하며, 하나님이 내 믿음을 높게 보셨다며 기뻐할 수 있을까요?
-기도제목-
김태원(77) : 1. 대학원 입학 합격하길
2. 아르바이트 자리 구할 수 있도록
3.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원유일(84) : 1. 진실된 말과 행동할 수 있도록
2. 건강 잘 챙길 수 있길
정 율(77) : 1. 생활 속에 큐티와 기도가 자리 잡도록 중심이 흔들리지 않기
문보호(75) : 1. 기도시간 늘릴 수 있도록
2. 신교제
정의현(79) : 1. 아버지 장로님 퇴임식 참석에 대한 부담 내려놓기
2.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에 적응 잘하기
3. 신교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