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죄인가
2015.11.1
롬 7:7-16
목장 참여(5명)
정은, 다영, 혜림, 희령, 민정
나를 살리는 회개를 해도 율법은 필요합니다.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성화를 이루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죄일까요?
1. 율법은 죄를 알게 해줍니다.
(7절)
율법과 죄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우리가 죄와 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죄와 율법에 대해서 죽었으니 자유해지라고 하면 아예 율법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율법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잘 알아야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알아야 죄를 알기 때문입니다.
헬라어로 죄의 의미는 '표적을 빗나가는 것, 가지 말라는 곳에 가는 것, 건너지 말아야할 곳을 건너는 것, 불법, 불경건, 불순종, 불의, 내적/외적 악행' 등을 뜻합니다. 탐심은 내적 악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십계명을 보면 첫 번째부터 아홉 번째 계명은 외적인 죄를 가르치고 있고, 마지막 열 번째 계명에서 '탐내지 말라'는 내적의 죄를 다룹니다. 내적인 죄의 비중이 약해서 마지막에 다룬 것이 아니고, 앞의 아홉 계명에 대한 내용이 탐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마지막에 다루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탐심을 죄라고 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있는 자연스러운 욕구라고 합니다. 외적인 죄만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니 탐심이 죄라는 것을 누가 깨닫겠습니까.
율법은 외적인 행동과 언어로는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내 속에 있는 탐심이 죄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서두에서 언급된 프레드가 어떻게 자기 죄를 알게 되었을까요? 마태복음 5장 28절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신문의 광고 전단을 보는 것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성적 농담이나 비유를 자주 사용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에베소서 5장 3절의 말씀을 무시한 것이었습니다. 책에서 제시하는 남자들의 죄에는 흔히 하는 외도나 유흥업소 출입 같은 것은 포함되지도 않습니다. 저자는 늘씬한 여자가 지나갈 때 훑어보기, 직장에서 여성 직원들 보면서 속으로 품평하기, 속옷 광고 모델을 쳐다보기 등 모두가 알고 있지만 사소하게 여기는 것을 가차없이 죄의 범주에 넣고 있습니다. 저자가 상담했던 남자들의 목록에는 출장때 호텔에서 포르노 채널을 보는 남자, 가족모두가 자고 있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 프로그램에 나오는 트레이너 모습을 보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목욕하는 밧세바를 쳐다보다 일을 저지른 다윗이 생각납니다. 이러한 행동은 성중독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가장 낮은 1단계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온전한 거룩을 이루는 0단계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이 지나치게 율법적이라고 하겠지만, 예수님은 '음욕을 품는 자마다 모두 간음하였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7절에도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여종과 남종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셨습니다. 마음 속에 탐심을 누가 알게 해줍니까? 율법이 알게 해줍니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고 하니, 더 탐이 나서 내 마음 속의 탐심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성형중독, 쇼핑중독도 마찬가지 입니다. 처음에는 보기만 하고 와야지 하지만 하루종일 짝사랑하느라 그 생각만 합니다. 그래서 다시 사러 가는 것과 외도하는 것은 차이가 없습니다. 적당한 수준의 쇼핑은 좋지만, 날마다 하고와서 또 가고 싶다면 중독 수준입니다.
육신은 죄의 도구 입니다. 죄는 율법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래서 육신과 죄와 율법과 죽음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음란은 간음이 드러난 것이고, 미움은 살인이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내 죄를 보지 못하면 이렇게 죽입니다.
적용하기: 드러나지 않은 탐심을 율법으로 알게된 것이 있습니까?
2. 율법은 죄는 살리고 나는 죽입니다.
(8절)
기회는 거점이라는 뜻인데, 죄가 율법을 거점으로 삼아서 탐심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율법이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호기심이 생겨서 죄를 짓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나무의 실과는 다 먹어도 되지만, 선악을 나타내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했을 때, 사단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인간이 원죄를 짓게 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집니다. 길을 가는데 '절대 하지 마시오'하면 지나가다 다 멈춥니다. 인터넷 화면에 19금을 하면 클릭을 하게 됩니다.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도 자꾸 만나지 말라고 하면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잘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은 단지 거점이 되었을 뿐, 내 속에는 원래 죄성이 있습니다. 슬그머니 뿌리 내린 탐심을 율법이 휘저어 놓았을 뿐입니다. 포도주에 찌꺼기가 가라앉아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흔들면 꺼멓게 올라오는 것과 똑같습니다. 내 속에는 죄성이 있고 달궈진 화덕 같고, 율법이 와서 휘저어 놓을 때 그것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9절)
법을 몰라서 죄의식이 없을 때는 내 뜻대로 살았는데, 계명이 이르러서 죄가 살아나고 내가 죽었다고 합니다.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자 죄의식이 생기게 되고 내 힘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는것이 죄는 살아나고 내가 죽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 중에서 유대인이었고 율법으론 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계명이 그에게 이르고 나니 (율법이 복음이 되고 나서), 스스로를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죄가 살아나는 것은 은혜입니다. 죄가 살아나고 내가 죽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안됩니다. 아무리 율법을 읽고 알아도 계명으로 알아야 내가 죽을 수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탐하지 말라는 율법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율법으로 알아도 계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율법은 알아들었지만, 왜 안들어가야 하고 어떻게 해야 안들어갈 수 있는지 계명이 이르러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지식이 아닌 나에게 일러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는 은혜가 임합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율법은 알았어도 계명이 그들에게 이르지 못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향유붓는 여인을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창녀를 경시했고 나사렛 예수는 목수 아들이라는 것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 얘기를 하지 않고 사사로운 이야기를 하느냐고 했습니다. 적용이야기를 하면 시시하다고 합니다. 계명이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새 계명이 이르러서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는 은혜가 이르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서기관들은 영원히 회개하는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지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계명이 이르는 것은 참 힘든가 봅니다. 책 이야기로 돌아갔을 때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내 속에서 죄가 살아나는 것이 인식이 되면 사소한 것부터 적용이 됩니다. 참을 수 없는 유혹을 이기기 위해서는 성적 자극에서 눈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의도적으로 눈을 돌리는 훈련을 6주동안 하니 대부분의 사람이 자유로워짐을 느꼈다고 합니다. 훈련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 남성들이 행하는 성적 부도덕은 본능이라기 보다는 습관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눈이 죄를 행동으로 옮기는 통로가 되기 때문에 의지적으로 피하는 것도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도 은혜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하지 않으면 죄에서 벗어나는 것은 일시적입니다. 안목의 정욕을 끊고 나면, 이생의 자랑이 틈타고, 이생의 자랑을 내려놓으면 육신의 정욕이 들어오게 됩니다. 아주 소소해보이지만 눈 돌리는 훈련을 했다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그저 훈련에 머물지 않고 계명으로 다가오는 것이 있었기에 훈련이 훈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복음으로 깨달을 수록 내 속의 가공할만한 죄를 봐야 합니다.
적용하기: 매일 묵상하는 말씀이 나를 살리고 있습니까? 나를 정죄하고 있습니까?
(10절)
죄를 깨닫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성경에서 문둥병을 저주받은 병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파도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영적 문둥병은 죄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회개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죄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영적 문둥병이 고쳐지기 시작했습니다 감각이 살아나고 예민해지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 죄때문에 애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내 죄 때문에 애통하지 않는다면 영적 문둥병자입니다.
미국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성경에 손을 얹고 시작한 나라 미국에서 국부로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역사학자의 발표에 인하면 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 풍속과 문화를 넘어서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알 수 있습니다. 1784년 워싱턴이 대통령되기 5년 전의 일입니다. 치아가 거의 없던 55세의 워싱턴이 치과의사를 고용해서 노예의 치아 9개를 뽑아 자신에게 이식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회개를 했다고 해도 세상 가치관을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계명이 나에게 이르면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죄를 알게 됩니다. 노예가 법적으로는 주인의 소유라고 해도 그가 나와 동등한 인격체라는 것을 안다면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율법의 기능을 모르면 죄도 알 수 없습니다. 그 죄가 자신도 남도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죄를 모르면 아픔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 계명이 이르면 얼마나 그것이 무거운 죄인지 알고 죽을만큼의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하기: 말씀에도 죄에도 감각이 없는 영적 문둥병자는 아닙니까?
(11절)
죄는 언제나 기만을 동반합니다. 보인이라는 신학자는 죄의 기만을 '1. 죄의 가운데에서 만족을 찾을 수 있다, 2. 죄의 핑계를 찾을 수 있다. 3. 죄의 결과에서 도피할 수 있다'의 세 가지 조건으로 정의했습니다. 죄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만족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죄를 핑계대게 해줍니다. 그렇게 속이고 또 속여서 나를 죽이는 것이 죄의 기만입니다. 율법의 요구는 내적/외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외적인 것이지만, 내적으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니 미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외적인 것인데, 내적으로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니 하지 말라고 합니다. 내적인 미움과 음욕도 품지 말라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사단은 이 기회를 틈타서 속삭입니다. 죄가 기회를 타고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는 것입니다.
적용하기: '나정도면 괜찮은 사람이지' 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흠이 없어, 다들 나만큼만 살라고 그래,' 라고 생각하며 회개할 기회를 잃는다면 나에게 남는 것은 죽음 뿐입니다.
3. 그러나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12절)
율법에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나타나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나타나 있습니다. 구별된 삶, 거룩한 삶을 살게 해주는 것이 성경입니다. 율법을 보면서 내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고 절망을 해가니 율법은 거룩하고 선한 것입니다. 자기 죄로 멸망당하는 고통이나 자기 죄를 똑바로 직면하는 고통은 힘든 정도가 같을 수 있습니다.
(13절)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7장에는 '나'라는 단어가 34번이 나옵니다. 그만큼 나를 살리는 회개를 한 이후에 나 자신과의 싸움이 치열해졌습니다. 분명히 내가 하는 일인데도 나도 모르는 일이 있습니다. 예배와 설교에 은혜를 받고 말씀대로 살기를 결단합니다. 그러나 가정과 직장에 가면 미워하는 것들(게으름, 거짓말, 중독)로 사는 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14절-16절)
새 번역에 따르면 '미워하는 일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행하면 안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율법이 곧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말씀이 선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모를 때는 죄를 짓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이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도 안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온갖 합리화를 하면서 미워하는 것을 행할 때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외도와 거짓말과 같은 도덕적인 기준에 어긋나는 행동도 포함되지만, 놀라운 영적인 힘에 넘어가고, 놀라운 지식, 친밀감, 육체적 매력, 감정에 충실하라고 외치는 문화적 메시지에 넘어가는 행동들도 포함됩니다. 누구든 죄에 대한 이유와 합리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일부러 상처주려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절로 내 감정대로 행하다보면 원치않는 외도와 이혼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 19:6) 의 말씀과 같이 내 뜻의 감정과 말씀을 좇아 행했다가 실패하고 나서 말씀에 시인하게 됩니다. 선한 율법으로 내 죄를 알게 되니 절망하게 됩니다. 실패한 것보다 더한 고난이 내 자신을 직면하는 것입니다. 내 속의 죄와 더러움을 보고 나도 싫은 내 자신을 보면서 죽을 것 같은 절망을 느낍니다. 그러나 절망을 하게 한다고 율법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만이 살 길입니다. 율법 자체는 너무나 선한 것입니다.
낸시 마이어스는 '범죄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사랑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어거스틴도 '사랑으로가 아니면 선할자가 누구냐'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다 하라'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그것이 죄라는 것은 알게 해주지만 술, 담배, 거짓, 시기, 질투의 죄를 끊게 할 수는 없습니다. 죄를 끊는 것은 오직 사랑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내 가족, 이웃, 술과 담배를 다 끊게 됩니다.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알게되기 때문에 음란과 거짓도 끊게 됩니다. 율법을 통해 내 죄가 살아나는 은혜를 경험하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이기에 하나님만을 사모하는 것,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율법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적용하기: 죄를 드러내는 말씀이 힘듭니까? 큐티를 해도 죄가 깨달아지지 않는다고 큐티를 끊었습니까?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아서 나의 큐티와 기도가 무력하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율법은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기도 나눔
정은
1.새벽에 쓸데없는 걱정, 생각에빠지지않도록
2.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날수있도록
3. 작곡을 완전히 손놓고있는데 다시 마음먹을수있도록
다영
1.남자친구의 구원을위해기도하기
2.중등부아이들 목장식구들위해기도하기
3.엄마와의관계회복-엄마를잘이해할수있게
4.매일큐티하기
5.인강미루지않고듣기
6.화요일퀴즈 수요일토론잘하기
민정
1. 죄에 대해 아파할 수 있도록
2. 존재하는 것 자체로 귀하게 여기며 내 자신에게 칭찬해주도록
3. 하나님을 신뢰하며 실직적인 내면의 싸움을 잘 싸울 수 있도록
4. 내경이 발 수술하고 회복중인데 조각이 제자리에 잘 붙도록
5. 소화 잘 되게 도와주시고 위장 건강하도록
6. 고등부 아이들, 목원들 삶에 하나님 동행해주시고 예배가 살아나도록
희령
1. 죄를 살리고 나를 죽이며, 내 안에 질투, 시기, 탐심, 음란을 죽일 수 있도록
2. 생활예배를 잘 드리고 큐티할 수 있도록
3. 가족, 남자친구의 구원을 위해서 시간을 내어서 매일 기도하도록
4. 취준생의 위치에 순종하고, 게으름에서 벗어나 최선을 다해서 지원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