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매인 환경,바로 이 곳에서 오늘도 기도합니다"
골로새서 4:7~9 "신실한 일꾼"
골로새서 4: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4: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4: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골로새서 1장에서 4장까지 읽어오며 무엇을 설교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소명받고 우리와 너희가 되어서
복음의 일꾼이 되고 교회의 일꾼이 되어서 위의것을 찾으며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며 새사람의 옷을 입으라
했습니다. 이원리를 가정에서 먼저 적용하고 사회생활에서 거룩을 이루기 위해서 복종과 사랑과 순종의 언어
를 써야한다고 했습니다. 결국 거룩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것의 결론은 전도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 선교사는 골로새서 마지막에 사람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에 족보 이야기가 나오면
그것은 모두 사람 이야기 입니다. 특히 구속사의 족보는 힘들고 약한사람 가운데 예수님이 오셨다. 이이야기
입니다. 요즘 QT본문인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을 내보내달라고 사명 감당하러 가야하는데 자신의 민족부터
역사가 혹독해서 모세말을 듣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내부적으로 하나가 안되는데 어떻게 바로에게 가서 싸울수
있습니까.우리가 너무 힘들면 말씀이고 언약이고 "돈좀줘바요"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모세는 출애굽기
6장에서 간증을 합니다. 비천한 족보이야기를 합니다. 레아 고조할머니가 사랑도 못받고 증조할아버지 레위를
낳았는데 그 레위가 살인을 하였습니다. 할아버지를 거쳐서 아버지는 나이가 많은 아버지의 고모와 결혼을
했다는것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살인을 하고 불신결혼을 하고 그래서 아내 십보라의 이야기는
족보에 거의 없습니다. 모세의 자식들은 하나도 내세울게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형인 아론의 족보는
장인,처남,아내,아들들의 이름을 찬란하게 거론하였습니다. 결론은 우리집의 역사가 대대로 콩가루 집안인데
400년의 약속의 자손으로 이어져 왔다. 아론의 족보는 나와 함께 일할것인데 흠이 없다. 나의 부족한 모든사연
을 완벽한 형이 도와줄것이다. 자신을 콩가루 집안으로 간증하고 형을 높이니 하나님은 도리어 모세에게 리더쉽
을 주시는 것을 보게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격이 아니라 은혜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레아 할머니도 남편의 사랑도 못받는 고난의 삶을 살았고 그아들 유다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동침한 아들이고
레위는 살인한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후손으로 예수님이 오셨고 레위의 후손인 모세는 구약과 율법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고통의 아이콘 레위로 부터 신,구약을 아우르는 지도자와 메시아가 나온것 입니다. 놀라운
사람의 이야기 입니다. 조강지처의 면류관은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과 라헬이 훌륭한 것 같지만은 진정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 메시아가 나오고 모세가 나왔습니다. 동일하게 골로새서 말미에 바울이 언급하는 여러
동역자를 보면서 이사람들이 내세울것이 없지만 은혜로 쓰인다는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요 이런일꾼들이 왕
노릇하는 교회는 저절로 전도하는 공동체 차별이 없는 건강한 교회의 모델이 될수 있는것 입니다. 결국 사람
입니다. 사람애기 첫번째로 신실한 일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번째. 신실한 일꾼은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 입니다.
내가 저 사람의 사정을 알아주려면 얼굴부터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얼굴부터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표정) 된후 사정을 얘기하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골로새서 4:7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하나님도 사정이 있으시고 바울도 사정이 있습니다. 스승이라고 해도 스승이어서 말을할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스승이기에 말못하는 사정이 있습니다. 사정을 주고 받을때는 주고받는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하고 말씀을 방해한다고 하는 사람은 안무섭지만 사단이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으로 사정을 전하게 되면 바울이 아무리 힘든사정이 있을지라도 골로새 교인들이 도리어
이소식에 위로를 받게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우리는 목장에서 지체들이 돈얘기,힘든얘기하면 듣기 싫어
질수 있습니다. 성령이 주시는 겸손한 마음으로 전하면 힘든것을 들으면서도 위로가 되는 이런 사정을 주고 받게
됩니다. 선교도 마찬가지 입니다. 한국교회는 선교를 잘모르고 선교사들을 싫어한다고 우리가 선교사의 도움을
받어서 이렇게 되었는데 모두 잃어버렸다고 내가 열심히 사역하였는데 왜 몰라주지 이렇게 얘기 하면 듣는사람이
위로가 안될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집안은 왜그래 우리교회는 왜그래 하는것은 서로에게
신실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바울이 되어주지 못하고 두기고가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사람은 한마디만
해도 사정을 알고 위로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약에 다섯번 나오는 두기고의 이름은 행운 이라는 뜻입니다.
두기고의 이름을 성경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사도행전20장4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에베소서6장21절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리리라.
골로새서4장7절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주리니 그는 사랑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디모데후서4장12절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디도서3장12절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 하였노라.
어디를 봐도 두기고가 유명한 설교가도 아니고 기적을 행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그런데 행운입니다. 바울의
마지막 생애를 함께했던 사람입니다. 바울을 도울수 있었다는 것이 생애 최고의 행운이었다는 것 입니다. 왜
이렇게 도와주었을까요. 기록에는 없지만 그 당시 두기고도 로마에 사는 아시아인 이었기 때문에 노예에 준 하는
천한 신분이었을거고 그를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주님과 바울사도로 인해 마지막을 함께하는 행운을 누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그를 바울사도가 세가지로 칭합니다.
1. 사랑받는 형제. 자기희생적 사랑. 모든것을 주어도 아까울것이 전혀없는 친밀한 사이임을 나타냅니다.
2. 신실한 일꾼.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편지를 전달하는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떤일을 맡기더
자신의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이었기에 유능하고도 믿을수 있는 자였습니다. 사역적인 면에서도
바울의 기대와 의도에 어긋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3. 주안에서 함께된 종. 함께. 바울과 가까웠다고 위대한 설교자가 되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동역
하는 같은 일꾼이라는 뜻입니다 함께라는 이야기가 4장에 네번나옵니다. 함께 사역하고
함께 종이되고 함께 갇히고 함께 고난을 받는것이 함께 사정을 알아주는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가 없으면 이런 신실한 일꾼이 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인들에게 가장 잘 안되는 것이 함께 입니다. 자기만 잘났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단결이 안되는 사람
들이 한국 백성들이라고 합니다. 그동안에 안 드러났던 것은 5000년동안 제일 못살았기 때문에 못사는 사람들은
잘난척할수 없었기에 요즘엔 엄청 잘난척하고 있음을 아셔야합니다. 기독교 총장포럼에서 우리의 민족이 백의의
민족같지만 굉장히 전투적인 천자의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너무 무서운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사람은 천자의
민족답게 똑똑하고 머리가 좋은데 전투적이고 호전적이고 최고를 좋아해서 세계최고가 30개가 넘고 모든것에 대교
를 가져다 붙입니다. 한강,강남,성수 대교대교 클 대 자를 너무 좋아합니다. 5000년 반만년만에 세계에서 제일 못
살던 나라가 10위권안에 들어갔습니다. 천자의 민족 맞습니다. 우리가 뭐든지 다 해내니 문제가 생깁니다. 천자가
천자가 되니 최고가 다 좋은것은 아닙니다. 어디서나 이기려고만 하니깐 이혼율,자살율이 세계최고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런일이 왜 생길까요.우리민족은 옛부터 무당에게 가서 물어보는 특성이 있습니다. 물어
보는것은 너무 좋아하는데 알려주는 무당은 너무 천히 여겨서 양쪽의 민족성이 있는것입니다. 점치는거 좋아하면서
점치는 사람 무시하고 양쪽의 민족성이 있는 것입니다. 무속신앙을 섬기다 보니까 그다음 불교가 들어와서 불교가
고상해 보이고 올바른것을 보여주는듯하여 불교에 심취하였습니다. 그래서 1500년 불교국가가 되었습니다. 대승
불교 소승불교가 성행하다가 스님가운데 무당끼가 들어온것을 보았습니다. 바른소리하는것 같은데 스님을 무시
하게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유교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불과 20~30년 만에 바뀌었습니다. 고려시대가 지나고
조선시대 500년동안 성행하였습니다. 유교가 효를 부르짖고 인애를 부르지으니 좋았습니다. 성행하다보니 유림에
무당끼가 들어서 유림을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들어왔습니다. 기독교가 짧은시간에 1000만에
가깝게 된 나라는 유래를 찾아볼수가 없답니다. 천자의 나라. 마음만 먹으면 확 바뀌는 문제는 기독교에도 무당끼가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10~20년안에 또 바뀔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당끼는 기복입니다. 끊임없이 기복을 좋아하면서
기복을 빌어주는사람은 다무시한다는데 왜냐면 삶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함께가 안되는 나라가 우리나라
라 하는데 이것이 천자의 나라의 특징이라 생각됩니다. 그렇지만은 기독교는 유일신이기때문에 천하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이름을 주시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는 않아야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뀌게 되려면 어마어마한 핍박이
오고 무수한 피를 흘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지키려면은.
적용 - 여러분은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입니까?
- 늘 사정이 생기는 사람입니까?
- 우리나라가 천자의 나라라는것이 동의가 되십니까?
- 함께가 잘 되십니까 홀로가 좋습니까?
두번째. 위로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골로새서 4:8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두기고는 대단한 은사가 없습니다. 작은일에 충성하는 두기고의 사랑과 신실한 골로새교회에 위로를 전했습니다.
두기고와 같은 여러분의 사랑과 신실함이 가정과 교회 모든식구들에게 위로를 전하게될줄을 믿습니다. 두기고의
일은 바울의 발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서신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기에 전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강도의 위협과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을 무릎써야하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선교사로
부름받았는데 내가 편지나 전하는 일이나 해야하는가. 다른이가 당신 선교사가 되어서 편지나 전하냐) 하면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여러분들에게 소명이 없다고 보여집니다. 두기고가 그일을 하지않았다면
골로새나 라오디기아 교회에 이편지가 전해지지 못했을 것이고 많은사람들이 어려움가운데 위로를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1000년이 지난 오늘 어떻게 골로새서를 접할수 있겠습니까. 그 당시에 두기고의 헌신이 아니었
다면 지금과 같은 골로새서는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라오디기아에서온 편지를 두기고가 가져오고 가져다주라고
했는데 그편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누군가가 헌신을 하지 않았거나 천재지변의 영향때문이겠지만 내가 그사소
해 보이는 편지 갔다주는 일을 하지않음으로 엄청난 복음 전해주는일을 막은것 입니다. 고린더후서도 편지가
하나 없어졌습니다.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서신하나가 없어졌습니다. 구체적으로 문서사역하는거 책이 없으면
여기서 끝납니다. 남는것은 문서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큐티하는여자 부터 22권의 책이 나왔습니다. 이책들을
통해 문서사역이 놀랍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끼리만 QT 했다면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주보와 온
교인이 QTin을 만들고 목장나눔 인터넷사역 음향 방송사역 영상사역 동영상설교를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고 있는 본인들뿐아니라 다른분들도 이일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설교하여도 남겨주는 사람이 없
다면 하잘것 없는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제가 할수 있는일은 너무도 부분적인 일입니다. 우리들교회 문서사역
도 일이 아니라 사명 입니다. 훗날 이 책들이 계속 읽혀진다면 이일에 동참했던 사역들도 두기고 처럼 별처럼
빛나게 될줄 믿습니다. 어떻게 위로자가 되겠습니까.
나눔)
솔직한 나눔들이 성도들의 자기모습을 보게 성도들의 자기모습을 보게하고 살리고 치유케 합니다.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고 꽁꽁 자기감정을 숨기고 있다가 내자신을 직면하게 되어 본인에게 위로가 되는것을 보게 됩니
다. 어렸을때 매 맞으면 대드는게 축복일까요. 아무말도 안하고 죽을때까지 미워하는게 축복일까요.아이들이
속썩이고 집나가고. 모범생으로 살면서 평생 부모 미워하는게 축복일까요. 그러니까 공평하다는것입니다. 속썩
미워하고 공부잘한다고 이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때려서 공부잘한다는 말 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은
다 똑같습니다. 공부잘한다고 잘난척 할필요 없고 공부 못한다고 열등감 가질 필요없습니다. 아이들은 속을
썩이고 가출하고 지맘대로 자라야 정상아니겠습니까. 맞고 가만있는것이 비정상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고쳐지지
않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입으로 전하지 못하는 옥중생활의 어려움을 두기고를 통하여 전할것이 있었을것
입니다. 사역자들도 사정이 있습니다. 그 것을 두기고가 전해주면 고맙고 안해주면 끝이죠. 전하고 전하지 않게
하는것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권한입니다. 두기고는 가지고간 서신에 덧붙여 바울의 사정을 전달했을 것입니다.
바울과 바울의 동역자들에게 누구보다 올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정확하게 전할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옥에
갇혀서 바울사도가 얼마나 복음전하는일을 쉬지않았으며 골로새 성도들을 사랑하는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감옥에 메여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부유한자라고 여겼습니다.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하는사람들은
지도자를 잃은 골로새 교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당하는 고통만 힘드십니까. 아니면 내가당한
상황때문에 걱정할 사람들이 염려되십니까. 예수님은 십자가 지러가는 고통가운데에서도 수제자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베자 사단아 물러가라 하며 베드로를 책망하시고 말고의 귀를 붙여주시고 가십니다. 내가 지금
위암이 걸렸는데 아들 쫒아다니며 해결해 주는 엄마의 마음과 같습니다. 끝까지 제자를 양육하시고 베드로가
주님을 세번 부인하고 닭이 울었는데 우는 순간에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아주시고 십자가 지러 가셨어요.
마지막까지 자신의 고통보다 다른사람들이 아파할 것을 아시고 양육하시고 돌보아주시며 가시는 주님의 본을
따라야 위로자가 됩니다. 우리들 수준이 이렇게 높습니다. 바울은 두기고 처럼 신실한 일꾼때문에 끝까지 위로
받으며 선교사역을 마칠수 있었습니다. 제가 30대에 남편이 순식간에 갔습니다. 간암으로 하루 아침에 갈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목자를 할때에 감당이 안되는 분들이 염려가 되었습니다. 예수 열심히 믿는다더니 무슨죄를
지었노 하고 나는 집사님처럼 열심히 믿다가 남편데려갈까바 싫어졌어요. 실제로 안나오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나를 잘아는 누군가가 이 사정을 알려주고 그들을 도리어 위로하는 일을 맡을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내
옆에는 그런 두기고가 많았습니다. 김양재 집사는 과부가 되었지만은 거기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고 있어요
죽음을 경험했지만 산자처럼 살고있어요. 그러니까 집에 과부가 몰려오고 제가 위로받아야 하는데 위로자가
되어서 저를 보러 여기저기서 많이 왔습니다. 바로 제 사정을 잘 알려주어야 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것
입니다. 내가 과부가 되었는데 지금 죽음에 이르고 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서 죽어가고 있다. 하면 위로가
되겠습니까. 과부가 되어도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하니깐 보러 왔습니다. 이것이 내가 고난에
처했어도 나를 전해줄 두기고가 있어서 위로가 되고 또 한번 간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두기고가 되어서
제 얘기를 들어보러 온 것을 믿습니다. 저를 피하는 분들은 죄 가운데 있어서 피하는것이죠. 위로자가 항상
좋은얘기만 해줘서는 아닙니다. 어떤 메임가운데서도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할때 위로자가 됨을 믿습니다.
적용 - 내가 아무리 어려움을 당해도 내편이 되어서 나의 사정을 얘기해줄수있는 두기고가 있습니까?
- 내가 힘들다는 얘기를 전해도 내 사정을 듣는 사람에게 위로가 될수 있겠습니까? 복음이 확실해야합니다.
세번째. 사랑을 받는 형제 입니다.
골로새서 4:9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형제 얘기는 8절에도 나왔지만 형제라는 단어 자체도 깊은신뢰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문자적으로는 같은
자궁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바울은 오네시모, 두기고 둘에게 형제라는 표현을
썻습니다. 오네시모는 유익한 이익이라는 뜻입니다. 빌레몬의 노예로써 물건을 훔쳐 로마로 도주했다가 당시
옥 중에 있던 바울을 만나고 그리스도인으로 회심하고 주인에게 돌아간 자였습니다. 바울은 회심한 오네시모
를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로 오늘 인정하였습니다. 빌레몬서 1장 10절. 12절. 16절. 이렇게 부르면서 주변
빌레몬서 1장 10절.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빌레몬서 1장 12절.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니라.
빌레몬서 1장 16절.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사람들에게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여 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오네시모는 처음엔 주인을 저주하며 내 인생이
왜 이것밖에 안되는가 한탄하며 세상을 원망했을 겁니다. 그런 그가 바울의 복음을 듣고 죽음가운데 살아
났습니다. 말씀때문에 살아난 사람은 서로 사랑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좋은것과 싫지 않은것은 아주 다른
것입니다. 말씀을. 사람들이 보기에는 오네시모가 종에 불과했지만은 주 안에서는 바울의 형제인 것입니다.
도망친 노예에서 위대한 바울의 사랑받는 형제요 아들이요 심복이요 심장이 된것입니다. 이런 유익이 어디있
겠습니까. 바울의 심부름을 했지만 오네시모가 대단한 초대교회의 일꾼 아닙니까. 땅끝에서 살아난 사람들이
신실한 일꾼이 되는것을 보게됩니다. 오네시모는 욕먹지 않을만큼만 일했을 노예였고 도망까지 쳤습니다. 그
런 그에게 완전 다른 세상이 펼쳐졌습니다. 노예에서 사랑받는 바울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로마에서 6000만이
노예이고 1억2천이 인구인데 모두 한집 건너 노예밖에 없고 아무리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신분의 차이였습
니다. 그런데 로마 시민권자인 바울의 형제요 아들이요 심복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조선의 마지막 백정 장로
박성춘씨 이야기 입니다. 조선에서는 칠천반이라는 가장 낮은 천민이 있었습니다. 포졸,광대,백정,무당,기생,
갖바치 그중에서도 백정은 가장 낮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호족도 할수 없고 거주지역도 제한되어있었고 남자의
경우 상투,갓,망건 다 쓸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한을 품고 살고 있었겠습니까.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았는데
봉출 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조선왕조 몇백년이 지났지만 길이 없는 것 입니다. 아들을 어떻게 다른 삶을
살게 할수 있을까. 조선왕조 500년 인데. (지금 앞뒤가 꽉꽉막힌 사정을 가지신 분이 계십니까. 길이 안보입니까.)
그때 마침 곤당골에 무어선교사가 와서 교회안에 학당을 지어서 동네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뭔가 길이 있을것이라고 그 학당을 보냈는데 거기서 글을 배우고 셈을 하는것을 보면서 새로운 세상을 조금씩
맛보았지만 아들도 자신도 교회나갈 생각은 안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눈이 띄이고 귀가 활짝 열리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1894년 청일 전쟁이 나니 사람들이 많이 죽고 콜레라가 성행했습니다. 박성춘역시 이병에 걸려서
생사를 헤메이게 되었습니다. 꼼작없이 죽게 된 박성춘 앞에 봉추리가 외국인 두명을 데려 왔는데 한명은 무어
선교사 한명은 에비슨 선교사 인것입니다. 에비슨 선교사는 한국에 와서 제중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궁중의사로
고종을 일주일에 두번씩 가서 치료하는 책임을 맡고 있는것입니다. 그날도 왕이 내려준 가마를 타고 고종 왕을
치료하러 갔다가 이 백정의 집에 딱 왔습니다. 있을수가 없는일입니다. 왕을 치료한 손으로 이 백정을 치료한
것입니다. 나을때까지 계속 와 주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격할일 아닙니까. 이일에 예수 믿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죽어도 좋은것 입니다. 예수때문에 죽어도 좋은사람이 신실한 일꾼이 되는것 입
니다. (여러분 예수때문에 죽어도 좋습니까.) 박성춘 이사람은 예수때문에 죽어도 좋지 않습니까. 서양인의
오해에대한 어떤얘기를 들어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딸도 학교에 보냈고 무어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곤당골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양반들이 백정과 같이 예배를 드리지 않겠다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양반들은 앞에
앉고 뒤에는 백정들이 앉자고 해도 양반들이 도저히 그렇게 예배를 못드리고 또 무어 선교사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양반들이 모두 나갔습니다. 그래서 양반들이 세운 교회가 홍문수골교회 입니다. 박성춘
자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에 상처를 받았지만은 서너명만 남았지만 열심히 전도를 하여 20명의 사람들이
모이고 성경을 가르치는 신실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곤당골 교회의 부흥의 주도자가 되었습니다. 감사하게도
3년뒤에 갈라진 두 교회가 합치게 되었고 1898년 종로에 승동교회를 세우게 된것입니다. 1895년에 세례를 받고
박성춘씨가 1911년에 이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합동교단의 모체가 되는 승동교회의 장로가 백정
출신이었다 입니다. 1914년에는 왕손인 이재왕이 장로가 되어 백정이 왕족과 함께 장로로 섬기게 되는 놀라운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교회를 섬겼던 일 뿐만아니라 백정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큰역할을 하였습니다. 양반의
도움을 받아서 정부에 탄원서를 내어서 백정도 갓쓰고 망간을 쓰도록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깐 백정의
전도활동이 활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실한 일꾼 아닙니까. 그의 아들 봉출 이는 세브란스 의학과를 졸업해
가지고 박서양으로 개명을 했습니다. 이 시절에는 왕족이 귀족입니까 의과졸업한 이가 귀족입니까. 예수믿고
신분이 달라지는것은 하루아침에 안됩니다. 다른사람을 살리기 위해 공부를 하고 귀족답게 공부하는것 만큼
그걸 인정해 주는것이 귀족인것이지. 생각지도 못하는일이 일어났습니다. 고종,세종이 변화시킨것이 아니라
이름없는 무어,에비슨 선교사가 박성춘 손을 잡아주므로 그가 우리나라 최고의 모태가 되는 교회의 주역이 되고
부흥을 시켰고 이름없는 한사람의 신실한 일꾼들이 교회를 나라를 전세계를 변화시킴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근데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실려면 말할수 없는 핍박을 허락하셔서 우리가 학대
가 많음으로 번성케 되는 그 일을 허락하실지언정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가 후퇴되지는 않습니다. 변할수 없었던
사람이 바울의 사랑받는 형제로 자리매김 하는것은 주님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합니다.
오네시모 같은 공동체 고백.
죽음가운데서 살아나니깐 한명데려오기도 하늘의 별따기 인데 모든 식구를 데려오게 됩니다. 학력도 무엇도
다 필요가 없습니다. 고난만 필요합니다. 박성춘씨가 교양이 있었으면 전도 했겠습니까. 지금 최고의 귀족
가문으로 등극 했잖습니까. 오네시모가 말씀에 반응해서 종되었던 오네시모가 바울의 형제요 아들이요 심복
이 되었다고 했는데 이집사님이야 말로 오네시모가 따로 없을정도로 주님만나 신실한 일꾼이 되어서 식구들
과 이 분들을 주께 인도 하는것 입니다. 여러분들이 몇명이나 주께 인도했나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결국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변화되어야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이끌게 되는줄을 믿습니다. 사람에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인도할수 있음을 믿습니다.
나 가진제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것 있으니.
나 남이 못본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것 하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것 갖게 하셨네.
아이잭이 와서 뻘쭘한 시간이 초반에 흘렀습니다. 영어로 말하기...
캘리포니아에서 이대교환학생으로 온 아이잭 법대졸업하고 변호사로 갈 예정.여기까지...
통번역하느라 피곤한 목자님. 새로운일에 적응과 바쁜 석민이 아버지와 일하고오느라 예배 못드렸지만
목장참석을 위해 김포에서 날라온 민규형^^. 놀구 먹느라 피곤했던 저. 부끄럽지만 모두의 한주를 잘나누고
갑니다.
기도제목.
문태진. 1. 내자신의 연약함이 가족의 구원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그 밤이 오기전에 영육간에 말씀으로
준비되어 있도록 인도해 주시길.
박영근. 1. 내 역할에 충실할것에 충실히 행함에 있어 기도하며 묻고 갈수 있길.
2. 아직 내려놓지 못하는 편하고 싶은 습관 내려놓을수 있길.
김민규. 1. 두기고 와 오네시모 처럼 복음을 전하는 사랑받는 형제가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