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목장보고서
민정, 희령, 수진, 정은, 혜림, 다영
전도할 문을 열어주사(골 4:2-6)
전도할 문을 열어주시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 알아보겠습니다.
1. 항상 깨어서 감사함으로 기도해야합니다.
몸바쳐서 일한 회사에서 전도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대기업의 한 임원이 부하직원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자료에 오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아무리 순종의 언어를 쓰려고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참기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 때 심호흡을 하라고 하고 3분만 참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화를 내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일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도를 해야할까요? 내 자신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가장 마지막으로는 기도를 해야합니다. 내 인생을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인 순종과 사랑을 알아도 결론은 기도해야합니다. 유명한 설교가 닥터 조엣트가 말하기를 열 사람에게 설교를 가르치기보다는 한 사람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치겠다라고 했습니다. 결국 변화되는 것은 기도 때문입니다. 기도의 목적도 거룩입니다. 문자적으로 기도를 계속한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변함없이 충성하고 헌신한다는 것입니다. 애착을 가지고 전념을 한다는 뜻입니다. 기도를 하는데 중도에 응답되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도란 골로새서 1장 중보기도에 의하면 오래참고 인내하기 위하여 서로 기도하고 기도 부탁을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계속적인 기도는 감사하며 깨어있게 합니다. 감사하면 하나님의 뜻을 날마다 알아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으로 옳으시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응답이 와도 하나님에 대해 불평하게 하고, 기도를 하면 뭐해 하고 중단하게 만들고, 감사는 간 곳이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기도는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와 깨어있음은 기도를 떠받치는 두 기둥입니다.
어떻게 하면 기도를 계속 할까요?
첫째로, 외적인 훈련을 먼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불신자를 전도하기 위하여 주일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교회에 오신 처음 오신 분을 위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랫동안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데 길들여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각오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육체와 습관은 기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방법으로 기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처음 온 분들은 다 기도할 줄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최고의 기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만 해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기도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어나서, 잠자리에서, 식사할 때 기도, 누워서 기도, 차타고 기도, 침묵으로, 소리내어서 기도하는 것을 습관화 해야합니다. 필요를 위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얼마나 이뤄질까 생각하며 기도하지 마시고, 필요한 것은 모두모두 기도하십시오. 빌립보서 4장 8절에 보면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하는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초신자들의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모든지 기도하십시오.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서 기도하십시오. 무슨 기도를 하시든지 회개 기도를 하시고, 공예배 기도는 공동의 제목을 넣어서 너무 길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쏟아내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통제하에 있지 않은 기도는 무용지물이 됩니다. 중보기도 학교, 중보기도 파수꾼, 특공대 등을 참여하여 기도의 훈련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기도하시면서 그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기도가 습관화되면 배려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내 기도 제목이 하나씩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목장가고 말씀 보면서 죄를 지을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모임할 때 교회 모임에서 이탈하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둘째로, 내적인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장애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지만, 감사하고 만족하기 보다는 원망하고 불평할 때가 더 많습니다. 어떤 엄마가 쌍둥이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쌍둥이가 젖을 찾아대니, 어떤 엄마에게 맡아 키우라고 하였습니다. 키우고 싶지 않지만, 너무 강하게 이야기 하니까 키우게 되었지만 원망이 많았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남의 자식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그 엄마를 보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림자를 발견했다고 했고,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지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원망과 불평도 종류와 장르가 천차 만별입니다. 이렇게 착하게 사는 사람에게도 원망이 나오니, 이런 분에게 어떤 기도를 할까요?
우리는 착함으로 천국가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가는 실제를 성경을 통해 끊임없이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면 기도에 한계가 옵니다. 베네딕트 수도사는 성직자로 살기 위해서 안토니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수도원장이 하루종일 기도하라는 지시를 받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30분이 지나자 기도할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근거로 깊이 묵상하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발전시킨 방법이 큐티입니다. 기도도 하나님과 친해야 응답을 받습니다. 친하려면 날마다 교제해야합니다. 교제는 일방통행이 아닙니다. 전화 통화를 할 때 일방적으로 소리지르고 울부짖으면서 무언가를 해달라고 하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겠습니까, 그렇다고 교제 시간을 오래 가진다고 응답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교제를 할 때 그 대상의 마음을 살피는 것은 너무도 중요합니다. 기도도 똑같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친하지도 않은데 어떤 지위가 있는 사람에게 하루종일 울고불고 문앞에서 한 번만 도와달라고 하면 그 사람이 도와주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평소에 하나님과 친해지는 것을 권합니다. 평소에 기도하면 입시에서 낙방하고 회사가 부도가 나도, 그렇게 오래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평소에 하던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평소에 날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은 하기만 해도 응답이 됩니다. 성경을 깊이 묵상한다는 것은 성경을 인격적으로 읽으면서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훈련입니다.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는 훈련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앞서간 선진들의 믿음의 행전을 보면서 왜 감사해야하는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때문에 묵상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묵상 기도를 하게되면 가지쳐야 할 나의 교만이 보이고 내가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할 지 알게 됩니다. 요즘 사이비 기도원이 많습니다. 울부짖으면서 기도하고, 며칠 동안 금식을 하면 다 응답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외적, 내적 훈련을 따르며 순서대로 하게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기도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고 기도하지 않으면 평소에는 열심히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정작 기도응답이 되지 않는다고 난리칩니다. 그래서 여기서 계속 기도한다는 단어는 참다, 견디다에서 유래하며 말씀을 보며 변함없이 충성하고 전념되게 하기에 묵상기도를 하는 것이 전도의 문이 열리는 비결입니다. 삶으로만 전도하는 것이 남습니다.
적용하기: 우리들의 기도 훈련은 어떻습니까? 식사기도부터 묵상기도까지 어디까지 하고 있습니까? 내적 훈련과 외적 훈련 중에 어떤 것이 어렵습니까? 여러분은 기복 때문에 기도하십니까? 팔복 때문에 기도하십니까? 이타적인 것 , 이기적인 것 어떤 기도를 하십니까?
2. 나의 매임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해야 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대 사도 바울이 기도부탁을 하면서 그 누구도 핑계댈 수 없게 하면서 자기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우선은 기도를 할 우리 공동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매임을 당하였다고 합니다. 보통은 매임에서 풀려야만 전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바울은 매임을 당한 가운데 전도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자세히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되어서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 그 상태에서 전도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보면서 영적인 스승에게 기도제목도 배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날마다 기도 부탁을 합니다. 나는 학벌도 없고, 집도 없고, 차도 없어서 전도를 못하니 그것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육적인 것을 듣고 그렇게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은 사실 그 부분에 자유함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매일의 환경에서 전도할 환경을 열어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말씀의 문을 열어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의 문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말씀을 받아야 전도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말씀이 있어야 전도를 하고, 기도를 하고,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인 환경에 있을 때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려면 확신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내가 원하는 그것이 십년이 지나도 안이루어지고 되는일이 없는 사람은,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붙들어준 인생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시기 위해 붙들어준 인생인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해야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죄수가 아니었다면, 배를 타지도 못했고, 왕을 만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죄수가 된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매인 가운데서 풀어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기를 이야기하길 원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똑바로 갖고 있으면 어디를 가든지 복음을 전하는 환경이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이전까지는 너희를 위해 기도하였으니, 이제는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내 환경에서 전도할 문이 열릴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단어자체가 동격에 소유격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비밀입니다. 비밀(Mysterion)이라는 말은 영지 주의자들이 잘 사용했던 단어입니다. 특별한 훈련을 통해서 알게된 자기들의 지식을 강조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우리도 신학교만 가야 아는 지식, 어떤 훈련을 겪어야만 아는 지식을 알아야 한다면 그 지식은 이미 지옥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런 차별이 어디있겠습니까? 바울은 영지주의자들이 자랑하던 이 단어로 그리스도가 비밀이라고 설파합니다. 이 세상 최고의 지식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감추어져 있어서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되지 않는 신비이지만, 내가 이 비밀을 위하여 매임을 당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이 이방인에게 그리스도를 전했기 때문에 잡힌 것이라고 하는데 바울은 내가 감옥에 갇힌 것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갇힌 것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깨어있기때문에 감옥에 갇힌 땅끝의 상황에서도 항상 전도할 문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남편에 대한 간증을 했습니다. 암으로 간 것은 나의 매임이었지만 그 사건으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되어서 전도의 문이 수없이 열리고 지경이 넓혀졌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적용하기: 우리는 어디에 매어있습니까? 그 매임에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하십니까? 그런데 나의 매임에 공감하는 우리가 있습니까?
3. 마땅히 할 말을 분별해야 합니다.
마땅히 할 말을 해야하지, 마땅히 안 할 말을 참으면서 생색을 내면 안됩니다. 여자로 참고 사는 것을 많이 하니까, 하고 싶은 말을 몇 십 년 동안 못한 분들도 많습니다. 종이기에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수많은 세월을 지나서 오늘의 목회가 있습니다. 자기의 억울함을 포장하면서 나 할 말 좀 하자 하면 안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 인생은 전도하는 인생입니다. 고난의 넓이와 깊이와 관계없이 오래참고 인내해야 합니다. 중보 기도의 결론은 오래 참고 인내하기 위해서 기도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거룩인 것도 전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매임이 있는 것도 전도하기 위해서 입니다. 외인은 불신자입니다. 외인은 참으로 지혜롭게 전도해야 합니다. 외인에게 지혜란 삶이 따르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낀다는 이야기는 상인들에게 기회가 왔을 때 민첩하게 포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악한 세상에서 얼마나 지혜가 필요한 지 모릅니다. 세상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한편으로는 한 마음이 되고, 한 편으로는 휩쓸리지 않고 지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십니까? 미움을 받으면서도 온유하고 땅에 살면서도 땅의 지체를 죽이는 것을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세상에서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는 것이 예술입니다. 어떤 예술 작품을 보는 것을 보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믿음의 사람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보다 아름다운 것이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을 보면 감동이 있습니다. 수많은 작품을 보고 음악을 듣고 공연을 봐도 눈물을 흘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믿음의 사람을 보면서 수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미움을 받으면서도 온유한 것.
특별히 아끼라는 것은 '되사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을 구입해서 자기의 시간으로 만들라는 말입니다. 돈과 시간과 지위를 구원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이 칭찬하고 비난하는 것에는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예수님을 천히 여기는 것입니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불신자와의 언어 생활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매인 환경에서 주님을 생각하며 잘 매여있다면 그것 자체로 최고로 시간을 버는 것입니다. 불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는 것이 시간을 버는 것 입니다. 불신자는 유리그릇 다루는 것처럼 지혜로 다루어야 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로 지혜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예술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지혜로 지혜는 타이밍입니다. 그래서 큐티를 하면서 모든 기도를 하는데 말을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속의 감정과 가치관은 대부분 언어로 드러나게 됩니다. 언어는 믿음으로 듣는자에게는 은혜롭기도 하지만 아픈 소금의 역할도 합니다. 따라서 부드럽고 권위가 있고 맛을 내는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아에서 다르고 어에서 다르다는 것을 압니까? 우리의 언어는 영적인 분위기까지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말씀과 기도로 준비해야 좋은 언어로 각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말을 잘해도 전도를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로 하는 것이 전도가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언어 생활이 구원과 직결되지 않고 있다면 절대로 맛있는 언어를 쓸 수 없습니다. 맛있는 언어는 구원의 언어입니다. 온유하게 하지 않는 것이 맛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나 성도의 기도 몇 마디만 들어도 그 사람이 얼마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 자기 분량에 따라서 듣는 것이 사실입니다. 늘 집에서 싸우면서도 밖에 나가기만 하면 화목하게 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음란한 생각을 하면서 사람들만 만나면 거룩한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잠깐은 속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소 생활이 가장 중요합니다. 언어 생활이 어떻게 갑자기 나올 수 있겠습니까? 평소 생활을 잘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입니다. 평소 생활을 잘 하는 사람이 시간을 잘 버는 사람입니다.
마땅히 할 말의 모델을 소개하자면, 모세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모세가 말씀을 받으러 올라갔습니다. 그 중에 아론이 기다리지 못해 모두에게 금고를 가져오라고 말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번제 화목제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화를 내리겠다고 하셨더니, 모세의 중보 기도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습니다. (14절) 그 일이 얼마나 하나님이 참으신 사건인데, 여전히 백성들이 금송아지와 금송아지 신상 옆에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되었다면 사명으로 이루어져야하는데, 적용이 되지 않았습니다. (19절) 하나님이 너무나 참고 사명으로 가길 원하시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니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모세는 십계명 돌판을 던져 깨트렸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깨트린 것입니다. 사무엘하 20장을 보면 다윗이 나와 이 백성을 치소서라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게 아까운 십계명 돌판을 깨트린 사건은 자기 자신을 깨트린 것입니다. 최고의 기도 응답은 나의 가장 아까운 것을 하나님 앞에 던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던지신 예표이기도 합니다.
가장 아까운 돌판을 깨트린 모세는 아론 대제사장에게 책임을 물었고, 여호와의 편에 있는 사람은 내게로 나오라고 했을 때 레위가문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우상 숭배를 한 백성 103명을 죽이는 헌신을 했습니다. 이것이 헌신이라고 인정이 되었기에 살인자의 오명을 벗고 영원한 제사장 가문으로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사람을 볼 때 행위만 보고 그 사람을 분별하면 안됩니다. 사람을 의식하면 돌판도 못깨트리고, 책임도 못 묻습니다. 하나님의 거룩의 본질이 훼손 되지 않기 위해서 형식적인 하나님의 형상을 버린 것입니다. 가장 아까운 돈이나 자식등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식을 영적으로 살리기 위해서 버릴 수 있습니다. 돈을 벌려면 돈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건강을 찾으려면 건강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건강, 자식, 돈이 목적이 되면 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교회도 목회자가 목적이 되면 사람을 다 잃을 수 있습니다. 모세는 직분에 연연하지 않고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직분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성막을 지을 때는 그 아들들이 짓지 않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짓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은 사람들에게 줄 수 있어도 정말 영적인 일은 영적인 사람들이 해갑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숭상한 죄패를 묻고가고 아론에게 책임을 묻고 부살레를 임명했기 때문에 대표적인 구약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디에서든 헌신을 하는 사람은 자기가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정말 아까운 것을 던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돌려주십니다.
적용하기: 여러분은 가장 아까운 것을 복음 때문에 깨트릴 용의가 있습니까? 은혜로 소금을 치듯이 전도 때문에 부드러우면서도 아프고, 맛있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기도제목
민정
1.가족들 건강 관리 잘 하도록
2.몸의 무기력이 온전히 회복되도록
3.매인 곳에서 한사람 전도하기
정은
1. 입시 준비 잘 할고, 입시 시험 볼 때 지혜롭고 당황하지 않게 할 수 있도록
유진
1.낼 이사장님오시는데 잘 으쌰으쌰 지혜롭게 대처할수있게
2.상사 학부모 아이들 관계의 질서 속에서 지혜로움주시길
3.감사하며 살기를
4.어머니 일자리 구하실 수 있기를 하나님 함께하시기를
수진
1 벌금 내탓이오 할 수 있게
2 인내할 수 있도록
3 몸이 계속 안좋은데 회복 되기를..
희령
1. 공채 서류지원할 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도록
2. 큐티 및 예배생활 회복하도록
3. 규칙적인 생활하며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4. 남자친구에게 집착하지 않고 내 생활을 잘 세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