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
골로새서 2:16-23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8절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라는 것은 상을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불리하게 판정하여 상받기에 부적합하다고도 해석된다. 천사숭배자들이 불리하게 정죄하는 것 때문에 너희 상을 빼앗기지 말라는 뜻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상을 빼앗기지 않는가?
1.그림자와 실체를 분별해야 한다.(16-17절)
주님의 몸된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과정은 인내를 요구한다. 그래서 헛된 속임수에 넘어가서 상을 빼앗기지 말라고 한다. 생명의 원리에서 생각을 해야한다. 바울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장래일의 그림자라고 했다. 이런 그림자로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우리의 습성이다.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 인데 이로는 충분치 않아서 할례를 받고 안식일을 지키고, 어떤 것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는 것이 율법이다. 율법은 필요하나,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거나 의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목회가 비본질에 묶여 있기 때문에 비극이다. 우리가 비본질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만 우리가 스마트폰 시대에 그것이 비본질이라고 그것을 무시해야 하나? 아니다. 예배의 전형적인 샘플이 성경에는 없는데 전통에 맞는 샘플에 맞추어서 예배는 이래야 한다는 것으로 교회를 약하게 만든다. 그런 전통에 맞는 예배에 비하면 우리들 교회는 부흥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르치고 전파하셨지만 자신을 예배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목회의 본질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지 형식적인 예배, 회의, 심방을 하려고 모인 것이 아니다. 심방을 해도 형식적으로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아픔을 듣고 끌어내고 나누는 것은 굉장한 예배이다. 한사람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변화된 사람끼리 모이기에 예배가 살아난다. 본질이 중요하나, 비본질이 쓸데 없다는 것이 아니다. 본질이 큐티라고 해서 아무에게나 가서 큐티해라 하면 안된다. 본질이 잘 보호하기 위해서 비본질이 작용하는 것이다. 비본질은 이렇게 쓰임을 받는 것이다.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진정한 의미가 뭔지 모르고 엉뚱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정죄당하지 말고 상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이다. 적용)나는 그림자 신앙인가, 실체 신앙인가? 형식을 중요시 하나, 내용을 중요시하나?
2. 본 것을 의지하여 헛되이 과장하지 않아야 한다.(18절)
무엇에 상이 빼앗기나? 바울이 특별히 꾸며낸 겸손함과 천사 숭배하는 사람을 주의하라고 한다. 꾸며내어 겸손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보다 본 것을 의지하고 육체의 마음을 쫓아 헛되이 과장을 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우리의 믿음을 측정하고자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사람일수록 겸손한척 과장을 한다. 실체와 본질이 빠지고 믿으려니까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숭배가 나온다. 겸손은 자기를 비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난 아무것도 몰라요가 아니라, 내 계획과 내 힘으로 내 인생을 운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내 뜻대로 내 인생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이 겸손이다. 내가 낮은 것을 생각하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인생이 어떻게 낮아지지 않고 자신을 낮추겠는가? 겸손케 하시기 위해서 나를 낮추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인생은 자존적인 교만이 있어서 낮추시지 않으면 절대 낮아질 수 없다. 나도 개인적인 성향으로는 도저히 낮아질 수 없는 사람이다. 일부러 겸손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천사를 숭배하기 때문에 상대방에 삶에는 관심이 없다. 겉모습만 보고 이 사람, 저 사람을 쫓아다닌다. 십자가가 어떻게 그 인생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관심이 없다. 간증을 들어도 저 사람은 십자가가 다 확실하구나 할 때 은혜를 받는 것이다. 고난도 없는데 잘 믿는구나..는 의심을 해봐야 한다. 그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경험한 신비로운 천사였고, 이것이 구원받는데 필수요건으로 생각했다. 중보자인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배한다. 나는 마리아를 통해서 예수님을 경배한다. 얼마나 겸손해 보이는가? 천사숭배 사상이 율법주의보다 더 무서웠다. 나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있는데, 사람들은 나를 맛있고, 멋있게 해주는데만 관심이 있었다. 귀를 즐겁게 해주고,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보다 내 삶에 관심을 가져주어야 한다.
꾸며낸 겸손은 말은 그럴듯하고 겸손해 보이지만 본 것에 의지하여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을 하는 것이다. 객관적인 이유 없이 말로만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칭찬도 정확하게 해야 하고 쓸데없는 칭찬을 하면 경계해야 한다. 날마다 사람을 격려해야 하지만 쓸데없는 말로 칭찬하면 사기꾼이다. 말로만 칭찬하면 처음 얼마는 잘 지내더라도 결국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자녀들도 쓸데없이 칭찬을 해주면 믿을 수 없게 된다. 정확하게 칭찬하기 위해 말씀보고 기도해야 한다. 칭찬한다고 예쁘지 않은 사람에게 예쁘다고 하는 것도 욕이다. 그래서 묵상이 깊어야 한다. 정확한 적용과 본질을 생각하고 칭찬을 객관적으로 해야 한다. 그러려면 성경묵상만으로는 안되고, 삶에서 당해봐야 본질을 알게 된다. 수영이론을 보고 10년을 공부해봐야 모르는데 물속에 한 번 딱 들어가 보는게 딱 안다. 우리는 날마다 큐티를 이론으로 한다. 사건이 딱 나보면 우리의 큐티가 이론공부인지 물속공부인지 알게 된다. 그래서 사건이 와야 한다. 끊임없이 터지는 크고 작은 문제 속에서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그동안 말씀을 들은 사람의 노하우이다. 그렇게 말씀을 들어도 본 것만 가지고 누구 탓을 한다면 그동안 이론으로만 공부한 것이고 낮아지지 못해서 비천한 생각, 겸손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입으로만 나 같은 죄인 하면서 속으로는 니가 죄인이다 하는 것이다. 낮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 자기를 유지, 관리하는 가장 쉬운 비결이다. 우리는 조금만 환경이 갖춰져도 겸손하기가 어렵다.
하나님은 숭배한다고 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하신다. 하나님은 인격이 있으시기에 서로 사랑하는 대상이다. 그러나 천사는 사랑하지 않고 숭배한다고 한다. 우리들 교회의 인격이 천사도 흠모하는 인격이기를 바란다.
적용) 보이는 것을 가지고 칭찬하나, 외면, 내면 어디를 칭찬하나? 칭찬하기 위해 연구하고 기도하고 묵상하나? 주로 어디서 과장을 하나?
3. 규례에 순종하지 말고 규례의 뜻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규례는 율법적 규정을 말한다. 사람은 노예근성이 있어서 이래라 저래라 시키는 것만 하면 신앙생활을 하기 쉽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큐티하고 THINK하라고 하니까 복잡하고 가기가 싫은 것이다. 교인들은 제왕적인 카리스마로 하던지 인격적으로 하던지 두 가지밖에 없다고 한다. 인격적으로 대접해주면 자유로워서 아무것도 안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제왕적으로 하는 카리스마도 필요하다. 우리는 초등학문을 벗어났다. 초등학생은 할 일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가르쳐주면 된다. 그런데 대학생이 되었는데도 교통신호를 잘지키라는 둥 모든 것을 일일이 지시하면 마마보이가 된다.
큐티 어떻게 해요? 라는 질문을 잘 듣는다. 정형화된 방법을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나 큐티는 정형화 할 수 없다. 큐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본질적인 행위이다. 하나님 말씀은 변치않는 진리이지만 그 말씀의 적용은 시대별 상황별 다를 수 있다. 곡이나 그림의 해석은 사람별 시대별 달라질 수 있는 것과 같다. 말씀을 정형화시키면 이것이 또다른 규례가 될 수 있다. 큐티도 율법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가능성을 바라보고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은 매주, 매월 다른 각도로 내 삶을 조명하게 한다.
말씀묵상이라고 하면서 맹목적으로 따라하면 안되고 잘되고 못 되고가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향한 뜻을 잘 보아야한다. 붙어도 떨어져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것을 전하는 것이 큐티이다. 음란과 정욕보다 무서운 것이 자기 의라고 한다. 자기 의는 지옥 불에서 올라온 교만이기 때문에 결국 상을 빼앗겼다고 한다.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적용)말씀보다 앞서는 나의 순종은 무엇인가? 본질과 적용의 차이점을 아나? 매주, 매월, 매일 말씀을 영육간에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가?
4.그리스도를 머리로 붙드는 자만이 상을 빼앗기지 않는다.
기독교인이 구해야할 최고의 경험은 성도의 연합과 교제이다. 이것이 안된다면 본 것을 의지하여 과장하는 자이다. 내가 죽는 길만이 나의 휘장이 찢어지는 길이다. 내가 죽어야 연합이 되고 하나님이 들어오신다. 연합이 안되면 하나님이 자라게 하지 않으신다. 많은 성도들이 각 지체가 되어서 하나로 연합하는 것이 성장의 전제 조건이다. 연합이란 한 지체가 아프면 다 얽혀서 한 사람이 아프면 다 같이 아파해 주는 것이다. 나홀로 목자도, 나홀로 목사도 없는 것이다.
적용) 우리의 목장은 연합에 힘쓰나? 분열에 힘쓰나? 껄끄러운 관계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
<기도제목>
유진: 부부목장 잘 인도되도록/결혼생활 잘 섬길 수 있게/외삼촌 구원의 사건이 되도록
유정: 시험문제 잘 내도록(고소안당하도록)/간증 잘 준비하도록/수련회 준비 잘 되고 아이들이 하나님 만나는 기회되도록/한 학기 잘 마무리 하도록/동생구원
태경: 아웃리치 준비 성품과 열심으로 하지 않고 믿음으로 준비하도록/ 신교제, 신결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되도록/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시기, 질투를 사랑으로 바꿔주시도록/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 수 있도록
주은: 회사 화요일 행사 야근하는데, 잘 준비하도록/강박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아웃리치 준비 잘 하도록


마지막 기념촬영~ 함께 연합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감사합니다.. 서로의 앞 날을 축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