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로새서 1:15~20
<예수님은 누구신가?>
여러분들은 신앙생활하면서 힘들 때 특별히 감사할 수 없는 환경과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전해준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 때문에 예수님을 많이 알게 되고 내 인생에 예수님께서 크게 자리 매김을 한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런 질문을 가지게 된다. 저 사람은 예수를 만났나봐 어떻게 저렇게 예수님을 소개할 수 있는가? 라는 궁금해 한다. 날마다큐티하는 여자를 보면서 그 목사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서 오신 분들도 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자가 예수 그리스도이다. 내가 하나님을 잘 알도록 소개해준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살펴보자
1.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는데 그 아들 안에서 죄 사함을 얻었다고 한다. 오늘 이 본문에서는 얼마나 대단한 분이시기에 죄사함의 은혜를 주시는 가를 설명한다. 먼저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모방이기 보다는 원형적 모습이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인간은 하나님을 볼 수도 감각으로 느낄 수도 없다. 인간적인 지식이나 추론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파악하려고 할 때 미신이나 이단이 나온다. 칼빈은 그리스도를 떠나서 하나님을 파악하고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를 우상이라고 못 박았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되 아버지의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장 18절 말씀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셨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요한복음 1:1말씀이다. 그리스도는 말씀이기에 말씀 속에 하나남의 형상이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셨다고 한다. 초기 기독교일 때 이단으로 판정받은 아리우스는 이것을 보고 예수님이 피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먼저 낳으심이라는 것은 최초로 피조되었다는 시간적 순서의 의미가 아니다. 피조물의 첫째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존재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았다는 의미다. 메시아적 호칭이다. 신앙생화 하는데도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별게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나님을 믿는데 각자 다른 하나님을 믿는다. 이슬람, 이단, 여호와의 증인,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믿는다. 기독교 안에서 믿는 하나님이 다르다.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예수를 잘 믿는 기독교인들은 나는 ‘하나님 믿는다’ 라는 말을 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 특히 죄사함을 받은 자들은 더 그러지 않는다. 동전이나 지폐에 그려진 초상이나 형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에이콘이라는 단어가 있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아이콘이 있는데 클릭하면 실체가 들어난다. 그런 것 처럼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준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맏 형님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클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이콘이다.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아이콘이 되어서 예수를 보려면 아무개가 되어라 하는 말을 듣기를 바란다. 아이콘은 형상, 닮는 다는 뜻이 있다. 그렇게 주님을 닮아야 한다. 나는 할 수 없어도 예수님의 형상이기에 상대방에게 잘못한 일이 없어도 내가 너에게 잘못한 일을 용서해달라고 해야 한다. 이것은 도저히 내가할 수 없는데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니까 하는 것이 주님의 아이콘 형상으로 사는 것이다. 하루종일 직장에서 일하고 와서 본인도 힘들지만 집에서 맞이하는 부인에게 수고했다고 당신이 있어서 이렇게 일 할 수 있다고 고맙다고 말을 하고 있는가? 부부가 날마다 싸우면서 어떻게 자녀가 올바르게 할 수 있겠는가? 말씀에서 섬겨주고 사랑하라고 하니까 억지로 하다보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이는 것이다. 보이지않는 형상을 내가 보인다는 책임감으로 억지로라도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한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삶이란 흠 없고 완전한 거룩한 삶을 살아야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100%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행동으로 형상을 보일 수 있겠는가? 안 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답답해 한다. 그러나 목장에서 흑암의 권세에서 넘어진 나눔을 통해 서로에게 죄를 오픈하는 것이 하나님의 아이콘으로 클릭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씀을 보면서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은 상대방에게 있어 숨기고 싶은 연약함이 죄가 되지 않고 하나님을 부르짖게 하는 구원의 통로가 된다. 이것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적용) 어떤 상황에서도 클릭하면 나타나는 하나님의 아이콘 예수님이 되고 있는가?
2.주님은 만물을 붙드시는 창조주이시다
첫 번째 단락에서 잠시 설명했지만 잘못 해석하면 그리스도가 창조물의 일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낳으신 자의 설명을 16절에서 하고 있다. 여기서 ‘창조하다’가 2번 사용되었는데 하나는 부정과거 형으로 단번에 가장 완벽하게 창조하셨다는 뜻이 있고 뒤는 미 완료형으로 피조물 가운데 계속 창조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미 구원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 때문에 계속 성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같은 의미. 바울은 ‘만물이 그리스도에게 창조되었고’ 창조의 범위를 말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았으며’는 창조의 방식.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다’ 는 창조의 목적.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 함께 섰다고 한다. 영어 성경에서 hold together로 번역을 하였는데 붙들고 있다고 번역을 하였다. 만물을 붙들고 있는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만물을 계속 붙들고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장 3절에서는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채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내가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요 본체의 형상이 되었다. 그 형상의 힘은 능력의 말씀이다. 우리의 장자 되시는 주님께서 말씀을 덧 입으면 우리도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말씀을 붙들 수 있다. 내가 무슨 힘이 있어 돈, 건강, 사람의 마음을 붙들겠는가?
능력의 말씀으로 하시는 두 번째는 죄를 정결케 하신다. 주님의 죄사함의 권세는 가장 능력있는 사역이시다. 내가 죄사함의 권세를 받는 것은 하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자기 죄를 보는 사람은 겸손하고 자기 잘못을 시인하는 것에 1등이다. 그래서 자기 죄를 늘 보고 제가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할께요 이렇게 말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붙들 수 있다. 내가 잘못을 시인하면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높은 곳에 우편에 앉으신다고 한다.
만물을 가장 적절한 자리에 두시고 관계에 질서를 부여하셔서 운행의 전반적인 주장을 하고 계신다. 만물이 그에 의해 유지된다. 자전과 공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일초라도 붙들고 계시지 않는다면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다. 주님이 붙들지 않으면 다 멸망한다고 하신다. 욥기26장 7절에 보면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 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라고 하신다. 이렇게 아무 것도 없는 곳에 하나님께서 땅을 메달고 북쪽을 허공에 피시고 생각해보라. 하나님이 아니면 공간이 지구를 붙들고 계시는 것이다. 주님이 놓으면 우주도 없어지는데 그렇다면 내가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허공에 메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옷과 같이 낡아지는 것이다.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다 일시적인 것이다. 우주도 무너지는데 우리의 모든 것들이 썩어지지 않겠는가? 옷이 낡아야 갈아입는 것처럼 인생은 옷과 같이 변하지만 주님의 옷을 갈아 입으면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 낡아지고 변하는 이 세상에서 안 변하는 옷은 예수님 밖에 없다. 불신결혼 하지 말라는 것이 예수 없으면 다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예수가 있으면 어려운 일이 왔을 때 알게 된다. 어려운 일이 오기 전에는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가 부모를 보는 것은 알콜중독자 밑에서 자라고 딸이 가출하고 난리를 쳐도 그 곳에 기도하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다면 결국에는 말이 통하는 한 사람이 있어서 살려낼 수 있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하나님없이 누가 인생이 100% 죄인이라고 생각하겠는가? 불신결혼하면 인생이 절단이 난다. 적어도 불신결혼 안 하려고 애를 썼다면 남편이 돈을 못 벌고 무슨 일이 생겨도 하나님께서 최선의 결과로 인도해주실 것이다. 불신결혼하지 말라고 믿는 사람과 했더니 이 모양이냐 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죄사함의 권세를 힘 있고 결혼했다면 별 인생 없는 줄 알고 이혼하려고 하지 않는다. 불신결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을 보신다. 그러기 위해서 믿음의 부모가 필요하다. 안 믿는 사람은 조금만 힘들어도 사업하다가 망했다면 바로 이혼하자 하겠지만, 믿는 사람은 망했다고 하면 하나님이 부르신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옷은 예수님 뿐이다. 날마다 한 말씀 붙잡고 가정을 지켜내시기를 바란다.
적용) 만물을 붙들고 죄를 정결케 하시는 능력의 말씀을 체험하고 있는가? 말씀이 아닌 내 지식과 물질과 감정으로 남편과 자식의 마음을 붙들려고 애 쓰지는 않는가?
3. 천사보다 우월하신 분이다
우리는 이런 능력과 권세를 좋아한다. 그러나 가장 좋아하는 것은 천사, 특별히 그 당시는 천사 숭배가 굉장했다. 왜냐하면 겉으로 보이는 대단한 것들에 대해서 외모로 보이는 것을 내려 놓지 못 하기 때문이다. 피조물과 구분되는 창조주이신데 천사와 예수님을 혼동하면 안 된다. 히브리서 11장4절에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라 ‘라고 하신다. 창조주이신 예수님이시지만 비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셨기에 날개 달린 천사를 더 좋아했다. 천사가 경배의 대상이 되어서 천사같다는 것이 최고의 칭찬으로 여긴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예수님 믿고는 저렇게 달라졌다는 것이 최고의 칭찬이다. 하지만 예수 믿는 사람은 천사 같다는 칭찬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비슷한 능력자처럼 보이는 천사와 예수님을 혼동하고 만다. 권세도, 교양, 지식을 갖추고 천사 같은 사람을 예수님보다 더 의지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가정과 교회의 문제도 그런 사람을 찾아가서 맡기고 싶고 배우자를 골라도 그런 자를 고르고 싶어한다. 예수님만이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슈바이처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갔는데도 존경한다고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래서 이단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 스스로 분별하려고 하는 것 보다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 히브리서 1:5~7. 우리가 너무 쉽게 미혹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제 천사보고 아들이라고 했냐면서 호통을 치고 있다. 천사는 예수님을 경배해야 하는 신분이고 바람과 불꽃은 자유 의지 없는 도구뿐인데 자유 의지를 우리에게는 허락하셨다. 천사도 우리가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예수 믿으면 어떠한 경우에도 부리는 천사를 다 허락하실 줄을 믿는다. 사람도, 돈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모아주셨다. 믿지 않는 사람이 기업을 많이 운영한다. 하지만 믿는 나를 통해서 그들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게 된다. 나를 꼭 도와줄 것 같은 사람이 나를 도와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는가? 식구가 가장 도와줄 것 같은 천사 아니겠는가?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여러분도 살고 가정도 사는 길이다.
적용)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지켜줄 것 같은 천사같은 사람은 누구인가? 예수의 이름만이 가장 아름다운 기업인 것을 믿는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사보다 낫고 바람과 불꽃을 부릴 수 있는 신분의 삶을 누리고 있는가?
4. 교회의 머리 되시는 주님이시다
우리를 통해 일하시기를 기뻐하시기에 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골로새 교회의 잘못된 영지주의, 신비주의가 들어왔기에 머리 되시는 분은 주님이라고 하시는 것이다(천사, 권력, 돈, 도덕, 철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다는 것은 각 지체인 성도가 그리스도를 통해 연합되고 거룩하게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낮은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셨다는 것이다. 사망 권세를 뚫고 부활하셨기 떄문에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은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화목 사역이라는 것이다. 부활을 소망하는 모든 성도의 대표가 되신 것이다. 계속적으로 성도와 하나님과 관계를 중보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여셨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충만을 누리게 하셨다. 으뜸의 근거가 바로 충만이다. 무엇이 가득 차 있을 때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내가 죽어지고 썩어지고 부활을 하면 가득하고 충만이 있다. 언제나 줄 것 밖에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을 보았다. 확실히 알기에 이 일이 가능하다. 누구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아는 분이 너무나 많기에 저 좋아서 하는 것이다. 목사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의 일을 한다. 십자가의 피로 화목해 한다. 이것이 기적이고 교회의 사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정확하게 모르면 인정이 너무나 필요하고 하다가 그치게 되어 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우리들교회를 보이는 일에 모두가 기도로 상처의 나눔으로, 목장나눔으로 ,사역자는 섬김으로, 각 지체가 유기적으로 연합하고 머리 되시는 분이 주님이라고 고백을 하면서 간다. 이제 천국갈 때 모두 함께 간다. 좋은 지체, 나쁜 지체가 없다. 그런데 한 지체가 아픈데 서로 돕지 않으면 다 죽는다. 이것이 교회이다. 그런데 교회가 다른 사람의 아픔에 상관이 없기에 한국 교회가 죽어간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아픈데 도와야 한다. 서로 아파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전화해주고 데려오고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가 교회의 머리되시는 분 예수님의 밑에서 우리가 서로 연합하여 유기적으로 가니까 이 일을 저절로 자원해서 한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다시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충만의 근거가 되신다. 십자가의 피로 화목케 하신다. 교회를 교회되게 예배를 예배되게 하는 그 일에 우리들 교회가 쓰임 받기를 소원한다.
<기도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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