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
(골로새서 1:13-14)
-나와 지체 속에서 왜 희망적인 이야기는 없을까? 그러나 악한 세상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복음은 그것 밖에 없다. 다른 복음은 없다. 세상 성공이 목적일 때는 절대 십자가 복음이 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면 고난이 축복이 된다.
오늘 하루를 욕먹을 각오를 하고, 듣기 싫은 말을 듣기로 결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 아직도 흑암의 권세에 있는가?
끊임없이 기도하며 가야 하는 이유는 이 땅이 흑암이기 때문이다. 이 흑암이 너무 무서우니까 우리를 건져내시려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가 무엇일까?
1.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다.
13절) 하나님은 무슨 은혜를 베푸셨을까?
->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바울은 이 세상을 흑암이라 말한다. 이 세상에서 견져냄이 필요하고, 하나님이 그 흑암에서 건져내셨다고 한다. 기쁨으로 견뎌내야 하는 일은 환경에서의 인내를 말하고, 오래 참아야 하는 일은 대인관계에서의 인내를 뜻한다.
신앙인들도 교회를 나오면서도 자유를 맛보지 못하면 흑암이 다 인줄 알고, 계속 나오지 못하고 계속 걸어간다.
<시각 장애인의 간증>
보통 사람은 캄캄함이 익숙치 않아서 빛으로 걸어나오는데 헤매이지만, 시각 장애인은 캄캄함이 익숙하기에 사고의 지점에서 잘 걸어나올 수 있었다.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있으면서도 관심이 없기에, 오늘 또한 놀러가는 사람이 있음을..
영적 맹인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
흑암의 권세가 있기에 유혹을 당하기 마련이다.(술, 담배, 본드,여자, 남자 ...)
흑암 속에서 어둡고 보이지 않아, 길이 더 이상 없을 것 같으니까, 그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흑암이 익숙한 사람은 빛을 한번 보면 바로 “쏙~” 들어가 버린다.
빛으로 나온 것 같아도 자꾸 흑암으로 돌아가려 한다. 흑암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기에 예수님을 만난 것 같은데도 여전히 충돌의 삶이 계속된다.
Q: 여러분은 흑암의 권세를 어느 정도 인정하십니까?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흑암에서 견져내셨다는 것은 무엇인가?
일어났다 하면 또 넘어지고,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되었다 함이 없다.
삼손도 기도하는 낳은 아들이지만, 여전히 넘어짐을 본다.
빛이 익숙하지 않아서 여전히 어둠속에만 있지는 않는가?
Q: 여러분이 눌려있는 흑암의 권세는 무엇인가?
흑암에서 잘 노시는가? 아닌가?
영적맹인인가? 아닌가?
건져낼 때 우리가 너무 흑암에 익숙한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이 없이 한번도 넘어진 적이 없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사방의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거꾸러 뜨림을 당하여도 잘 있는 것이 견져냄을 당하는 것이다.
Q: 흑암이 단 번에 빛으로 변한다고 생각하는지? 흑암에서도 잘 걸어가는가? 아닌가?
2. 그의 사랑의 나라로 옮기셨다.
13절)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체적으로 안아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신분이 바뀐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로 입성만 하면 무엇을 해도 좋은 것이 있다.
아들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성자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곳이 비록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낸다.
영원함과 천국에 비하면 인생의 고난은 잠깐 낮아지는 사건이다.
이 땅의 것도 다 알지 못하고 가는데, 흑암의 권세에 매달리고 살아야 하겠는가? 이미 우린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기에 사방의 우겨쌈을 당하고 넘어져도 씩씩한 것이다.
내 사건, 고난, 인생이 다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고난 속에 있는 것이 어둠속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을 바뀔 필요가 있다.
“되었다 함”의 평가의 기준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매일 말씀에 비추어서 나를 볼 때만, 아무리 내가 옳은 것 같아도, 내가 흑암 가운데 있는지, 빛 가운데 있는지 알 수가 있다.
흑암의 권세가 무섭지만,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가 더 위대하다.
Q: 여러분의 주소지는 어디인가? 흑암의 나라인가?
점차 빛으로 나가고 있는 중인가?
3. 아들 안에서 죄 사함을 얻게 하셨다.
14절) 넘어지는 사건이 와서 주님이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셨다.
이 땅에서 건짐을 받는 것은 오직 죄를 사해 주심으로 회개하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치우친 면이 있고, 이 땅에서 옳은 것은 하나도 없다.
죄 사함을 모르고 구속의 축복은 없다. 죄 사함은 우리가 받을 축복의 시작이다.
하나님께 화목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는 이 모든 것은 구속 곧 죄사함으로 말미암은 축복이다.
큐티는 죄 보려고 하는 것이다. 여기에 죄사함의 권세를 얻어야 흑암의 권세를 깨뜨릴 수 있다.
사랑의 아들의 나라라고 하신 것은 다가갈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고, 나와 같이 고통당하고 울고 웃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들의 나라 안에서 우리가 죄사함을 얻은 것이다.
아무리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 주셨어도 내가 믿지 않으면 그것은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Q: 나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이 믿어지시는지? 죄사함을 얻었는지?
그래서 내 죄를 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여전히 안되는 부분이 있어서 죄사함을 받지 못했어’ 라고 하며 중독을 끊지 못하는 것을 합리화 하는가?
안되는 자신 때문에 좌절하는가?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과는 너무나 다르다.
이것이 참 죄사함의 은혜이다.
<기도제목>
지영: -말씀 사모함으로 더욱 가까이 하길
-육신의 정욕대로 우상 만들지 않게 시간을 귀하게 쓰고 무엇을 하든 주님의 뜻 먼저 생각할 수 있길
-주님이 나에게 언제나 신실하신 것처럼 나도 닮아갈 수 있길
한나: -할머니의 구원/가족 구원
- 말씀 깊이 묵상하고 사소한 것에 더욱 더 적용할 수 있길
- 주저앉아 있는 상황과 고난에 잠잠하고 감정 요동치지 않고, 삶의 기쁨이 넘치길
- 빛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절박함으로 주님께 기도와 도움 구할 수 있길
- 여러 가지 일들로 지치지 않고 건강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