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골로새서 1:13~14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우리가 소명 받고 가려면 함께 중보 기도해야 할 우리와 너희가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이땅이 흑암이기 때문이다. 이 흑암가운데 건지시려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있다.
1.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신 은혜. (13절)
무슨 은혜를 베푸셨는가? 흑암에서 건져내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건지신다. 여기서부터는 너희에서 우리라고 한다. 이세상이 흑암이다. 흑암의 권세가 있기 때문에 건짐받아야 한다. 건져 내실 분이 필요하고, 하나님이 건져내셨다. 지난주에 기쁨으로 견뎌야 하는 것이 환경에서의 견딤이라면 오래 참아야 하는 것은 대인관계이다. 인간관계의 어려움은 환경에 비교가 안 된다. 왜 이렇게 참아야 할 일이 많나? 이 세상은 흑암의 권세에 있기 때문이다. 흑암에서 태어나서 흑암에서 살다가 내가 흑암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이 세상이 흑암이라는 것을 알려주어 건져내야 한다. 북한이 자유를 모르는 것처럼 신앙인도 자유를 몰라 흑암이 다 인줄 알고 걸어가는 성도들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흑암에서 빛으로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잘나서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 흑암의 권세는 무슨 뜻인가? 이 땅이 흑암이라면, 캄캄한 대서 잘사는 것이 정상인가, 넘어지는 것이 정상인가? 이 세상이 흑암이라면 넘어지고 다치는 것이 정상이다. (나는 정상의 삶을 살고 있군.. 위로.. 토닥토닥) 시각장애인은 눈을 감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 멀리서 오는데, 눈을 뜨고 있는 우리는 영적인 눈을 남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 여기저기 놀러 다닌다. 영적맹인이 더욱 무서운 죄인 것이다. 흑암도 권세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유혹에 넘어간다. 술, 담배, 여자, 남자, 모두 너무 짜릿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안 하는 사람이 희귀하다. 캄캄하니까 길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흑암에 익숙한 사람은 빛에는 눈이 부셔서 쩔쩔매고 잘 넘어지지 않는다. 빛을 보면 자라처럼 쏙 들어간다. 복음을 한 번 듣고 싫어서 안 나오는 사람이 많고, 빛으로 나온 것 같아도 익숙한 흑암으로 돌아가길 원한다. 결국 흑암에 익숙하다는 것은 악하고 음란한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이 캄캄한 세상에서 빛을 찾지 않고 캄캄한데 익숙해지려고 안간힘을 쏟고 무언가 이룬 사람들이 흑암에 익숙한 사람이다. 죄 짓는 삶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 같아도 중독에 이르기까지 흑암에 권세는 다양하게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
<적용> 흑암의 권세를 어느 정도 인정하는가?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흑암에서 건져내셨다는 뜻은 무엇인가? 흑암이 얼마나 무섭고 집요한지 모른다. 일어났다하면 또 넘어지는 것이 이 세상이다. “우리는 되었다 함이 없다.“ 천국 가는 그 날까지.. 넘어지기 전까지는 끊기가 너무 어렵다. 흑암의 영향력은 굉장하다. 우리가 흑암에 너무 익숙해져서 끌려다니고 있진 않나? 빛이 익숙하지 않아서 여전히 어둠속에 있고 싶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적용> 내가 눌려있는 흑암의 권세는? 나는 흑암에서 잘 노나? 넘어지나? 나는 영적 맹인은 아닌가?
건져내실 때, 우리가 흑암에 익숙하다는 것이 문제이다. 하나님 없이 이 땅에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아서 이 땅에서 다 이루었다면 그것이 문제이다. 이 땅이 흑암이기 때문에 넘어지고 깨지는 것이 좋은 것이다. 성도는 아버지께서 자녀 된 우리를 흑암에서 건져내셨다는 것을 믿는 자를 말한다. 성도는 이 땅에서 구별된 자이다. 우리가 답답한 일을 당하고, 핍박을 받아도, 박해를 받아도, 낙심하지 않으며, 버림받지 않으며, 망하지 않는 것이 건져내심을 받는 것이다. 흑암에 있어도 건져내심을 당한다. 어둠에서 넘어져야 이 땅이 살 곳이 못되는 구나하고 빛을 찾는다. 흑암에서 잘 사니까 빛을 찾지 않는다. 그래서 넘어지는 것이 좋은 것이다.
<적용> 흑암이 단번에 빛으로 간다고 생각하나? 흑암에 잘 걸어나가, 넘어지나? 넘어졌다면 어디서 넘어졌나?
2.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시는 은혜. (13절)
우리를 번쩍 안아서 흑암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노예에서 자유인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하나님의 나라로 입성만 하면 뭘해도 좋은 것을 알아야 한다. 아들의 나라는 아버지의 나라와 무엇이 다른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게 해주는 성자 하나님의 나라이다. 우리는 이미 성자 하나님의 디자인된 그리스도의 나라,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다. 점처럼 초라해 보여도 하나님의 경륜을 보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이 33년 고난 받고 가신 것이 잠깐 낮아진 것이다. 영원에 비하면 그것은 잠깐이다. 흑암의 권세가 얼마나 강하던 그것은 잠깐이다. 우리의 고난은 잠깐이다. 아기가 뱃속에 있다가 나오는 것처럼 일시적인 권세에 불과하다. 우리는 평생 이 땅을 다 보지 못하고 죽는다. 그런데 이 땅의 흑암의 권세에 매달리며 살아야겠는가? 이 땅을 떠나면 말할 수 없는 영원의 엄청난 권세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권세가 있는 사랑의 나라에 있기에 구덩이에 빠져도 씩씩할 수 있는 것이다. 성도는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내 고난 내 시련이 주의 손에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 중에 있을 지라도 어둠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빛 속에 있는 것이다. 고난 중에 있는 것이 어둠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생각을 바꿔야 한다. 내 신앙은 나도 속이고 남도 속이는 믿음은 아닌가? 아무리 겉모습으로 죄를 짓지 않고 사람들에게 좋게 해도, 반대로 겉모습은 되었다함이 없을 지라도, 그 기준은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다. 매일 묵상하는 말씀에 비추어 나를 볼 때만, 내가 아무리 옳은 것 같아도 내가 흑암에 있는지, 빛가운데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집안이 살아난다. 흑암의 권세가 위대하지만 빛의 권세는 더욱 위대함을 믿는다. 다 흑암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흑암의 권세는 한 번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흑암에서 건짐 받은 것 같은 아이가 또 흑암으로 내려갔다. 다시 끊었던 담배를 피고, 자살 시도를 하고.. 두려움을 얻고 안정을 잃은 아이.. 세상의 길에서 완전히 나오지 못함)
<적용> 나의 주소지는 어디인가? 흑암인가? 아들의 나라인가? 점차 빛으로 나가고 있는가?
3. 아들 안에서 죄 사함을 얻게 하신 은혜.(14절)
어떻게 건지셨나? 1차적으로는 넘어지는 사건이 와서 구속사적으로는 넘어지는 사건을 통해 죄를 사해주심으로 건져주셨다. 내가 회개하는 것만이 나를 건져나는 것이다. 표적에서 빗나가는 것이다. 죄라고 하면 뭔가 대단한 것을 말하는 것 같지만 언제나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이 죄이다. 치우치면 죄이다. 인간의 속성은 100% 죄인이기 때문에 다 치우친다. 자연인으로서 누구나 다 올바로 살지 못해서 다 치우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옳은 것이 하나도 없다. 죄 사함이란 것은 이 모든 죄에서 해방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죄에 꽁꽁 묶여있다. 그러나 죄인보고 죄지었다고 하면 죄를 안 지었다고 한다. 이 땅은 흑암의 권세에 익숙해져있어서 죄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입만 열면 나 죄 없다고 한다. 이것이 아들 안에서 해방이 된다고 한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구속의 죄 사함을 얻고 흑암의 권세가 깨졌다. 이 아들을 모르고는 결코 죄 사함도 모른다. 죄 사함 없는 구속의 축복이란 없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 상황을 염두해 두고 일부러 이 구속을 죄 사함과 동일시하는 표현을 썼다. 거짓 교사들은 율법을 지키고 겸손한 것을 구속이라고 했고 죄 사함 없이도 구속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죄 사함이 세례 때 받는 축복, 죽은 다음에 받는 축복이라고 생각하나? 죄 사함은 우리가 받은 축복의 시작이며 핵심이며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모든 것은 구속, 죄 사함으로 말미암은 축복이다. 큐티하는 사람들이 우리들 교회를 비난하는 것이 ‘왜 맨날 죄를 보라고 하나?’이다. 큐티는 죄를 보려고 하는 것이다. 죄 사함의 권세를 얻어야 흑암의 권세를 깨뜨릴 수 있는데, 죄를 모르고는 흑암의 권세를 깨뜨릴 수 없다. 이것이 성경이 주장하는 우리들 교회의 핵심이다. 흑암에서 우리를 건지셨는데 그 방식은 죄 사함을 통해서이다. 내가 죄를 진 것을 모르는 사람이 흑암의 권세도, 옮기는 것도, 넘어지는 것도, 아무것도 모르고 북한에서 사는 것과 같다. 북한에서 살아도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니까 북한이 최고다 하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나라라고 표현한 것은 아버지의 나라인데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가갈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나와 같이 고통당하시고 울고 웃으시는 주님,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고 죽으신 아들 안에서 우리가 죄 사함을 얻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주님께서 나를 위해 돌아가셨어도 내가 믿지 않으면 그것이 나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흑암의 권세를 깨뜨릴 수 없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고 갈 수도 없다.
<적용> 나를 위해 돌아가신 주님이 믿어지는가? 죄 사함을 얻었는가? 그래서 날마다 내 죄 보기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시작이요 과정이요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날마다 죄를 보고 고백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흑암이 계속 된다.
<적용> 내가 아직 억울하다고 생각하나? 여전히 나는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죄 사함을 받지 못했고 중독을 끊지 못했다고 하나? 합리화 하면 안 된다. 예수님이 자기 몸을 주심으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 죄 사함을 받았다는 고백이 나에게 있나?
우리가 안되는 것이 많지만 행위로 천국가는 것은 아니다. 베풀어주신 기적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쓰임 받는 것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 개개인적으로는 안 되는 것이 많은 것 같아도 그것 때문에 말씀이 사모되고 교회가 사모되고 예배가 설레니 교회적으로는 많은 사람을 위로케 하시고 치유케 하셨다. 하나님은 내가 잘나서 쓰시는 것이 아니고 불쌍하게 여기셔서 돌보신다. 한 사람이라도 말씀에 붙들린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모든 식구가 돌아오게 된다. 삼손도 다윗도 모두 이 세상에서 계속 넘어지며 갔다. 낙망하지 말고 우리는 예수님이 대신 죽어주신 대단한 신분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이 그런 나를 위해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기도제목>
유진
1.결혼준비 기도하면서 할 수 있도록
2.생색내지 않고 섬길 수 있도록
3.아버지를 위한 기도 계속 할 수 있도록
4.친척들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유정
1.인내와 절제를 실천하는 한 주를 보내도록
2.하나님께 잘 묻고 분별할 수 있도록
3.지금 베풀어 주신 은혜 잘 누릴 수 있도록
4.불러주신 사명에 감사하며 순종할 수 있도록
태경
1.나에게 주신 것을 찾고, 감사할 수 있도록
2.흑암에 눌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 사모할 수 있도록
3.신교제 신결혼 오래 참고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릴 수 있도록
4.앨범 준비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