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위한 기도’
[골로새서 1:9-12]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을 향한 중보기도를 한다. 그들을 향한 감사에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바라는 기도를 한다. 이러한 바울의 기도는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 기도의 모법으로.여겨진다. 바울이 하나님께 성도들을 위한 기도를 드릴 때 그 내용은 무엇 이었는지, 바울의 관심사는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 보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떻게 기도를 해야 하는지 돌아 보았으면 한다.
1. 기도의 방식 - 기도가 응답되어도 그치지 않는다.
바울은 3절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으로 감사 드렸다. 6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 맺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바울의 기도가 응답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응답 되었다면 일반적으로 더 기도할 필요를 못 느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이로서 기도를 그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너무 죄인이기에 태평하다고 기도하지 않으면 안됨을 보여준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대해 처음 듣던 날 부터 쉬지 않고 기도했었다고 한다. 우리도 날마다 기도로 하나님을 깨워야 한다.
바울의 기도 방식에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내가 아니고 우리가 너희를 위해 기도했다는 것이다. 우리와 너희는 너무도 중요한 교회의 요소이다. 너희를 위한 중보 기도를 하려면 지체들의 상태와 기도 제목을 알아야 한다. 사람에 대한 차별 없는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들린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 그래서 ‘이로서 듣던 날 부터’가 중요하다. 하나님께서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을 우리 공동체의 사명이라고 하신다.
“여러분은 다른 성도들이 형통할 때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까? 들리는 순서대로 기도합니까? 하고 싶은 것만 합니까? 쉬지 않고 기도하는 기도 제목은 무엇입니까?”
2. 기도의 목적 #8211;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기 위함이다.
9절, 바울은 제일 먼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게 해 달라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이 아닌 삶의 경험으로 아는 것을 말한다. 골로새 교회의 문제는 지나치게 사변화된 철학적 이론으로 신앙이 위협 받는 것이였다. 하나님을 삶에서 만난 경험이 없는 사람은 자기가 아는 옳고 그름으로, 도덕과 윤리의 가치관으로, 세상의 이기고 이기려는 가치관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욥의 친구들처럼 옳은 말을 하는 것이 옳은 것만은 아니다. 나의 옳은 말, 옳은 일 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법, 즉 사랑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비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아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이다. 옳은 말보다 살리는 말을 하기 바란다. 구속사와 세속사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세속사 관점에서의 라합은 매국노이고, 들릴라는 국가의 영웅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관점은 정 반대인 것을 보면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믿음이 없으면 이와 같은 분별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 만난 경험이 있어야 깨달아 진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수단은 무엇일까? 오늘 말씀에 신령한 지혜와 총명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구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고 매일의 삶에서 참된 지식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가? 주식? 결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워지기를 사모합니까? 그렇다면 고난이 와도 말씀을 사모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배우자와 자식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3. 기도의 내용
1)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생각에서 머물기만 하면 안 된다.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행함은 성경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성격을 묘사하는 특별한 단어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그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삶이 수반 되어야 한다. 합당하게 행하려면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말씀을 사모해야 하며, 말씀을 사모하려면 고난이 와야 한다. 이러한 공식처럼 살아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성경을 아무리 봐도 내가 적용이 중요하며, 기도도 하나님을 알게 해달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적용하지 못해, 하나님을 모르고 엉뚱한 기도를 하고 있다면 당장 그쳐야 할 것이다.
“주께 합당히 행합니까? 사람에게 합당히 행합니까?”
2)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주께 합당하게 행하고 기쁘시게 하면,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로 이어진다. 10절, 선한 일이라는 것은 주님의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일에 열매를 맺기에 바쁘다. 자기 일에 열매 맺기를 바라는 것에 선한 것이 없다. 사사 시대를 보면 왕이 없으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고 한다. 레위인이 첩을 들이고, 첩은 행음을 하는 것으로 볼 때 정말 악한 삶을 사는 것을 보게 된다.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려면 생명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 생명이 들어갔으면 반드시 그 씨가 썩어지고 죽어져서 열매를 맺고 그것을 보고 다른 이들이 생명이 있음을 쳐다보게 되는 것이다. 생명이 있으면 아무리 땅속에서 시간이 지나도 열매를 맺게끔 되어 있다.
열매가 없다면 자기 신앙을 돌아보아야 한다. 성령의 열매라고 하면 전도라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갈라디아서 5장 말씀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는 내적 열매이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한다. 이렇게 내적인 열매가 맺어질 때, 외적 열매도 이루어지고, 전도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의 부족한 내적 열매는 무엇인가 그 부분을 기도해보기 바란다.
선한 일에 열매 맺으려면 열심보다는 침묵이 우선이다. 장마, 뙤약볕이 내려 쬐더라도 더욱 자라게 하기 위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선선하며 비가 오면 좋을 터인데, 당시에 좋아 보여도 가을이 되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장마와 뙤약볕이 열매 맺게 하려는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들 교회도 늦은 비, 이른 비, 장마와 퇴약볕이 있었기에 영광이 힘이 생긴 것이라 본다.
“선한 것에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자기 일에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3) 영광의 능력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본문에서 능력이란 말은 하나님이 내조 하시는 능력을 이르는 말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의 능력인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 능력으로 바울이 구하는 것은 능치 못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기를 구하고 있다. 우리 기도 제목의 절정이다. 능하게 하시면, 여러 상황에 적합하도록 능력이 공급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이 있을 때, 우리는 이런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영적 진실성의 결과도 인내고, 영적 성장의 결과도 인내이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최고봉은 인내하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다. 이 땅의 삶에서 얼마나 참아야 할 것이 많고, 견뎌야 할 것이 많은지 모른다. 그러므로 10절에 모든 견딤, 오래 참음이라 했기 때문에 고난의 종류나 길이와 상관없이 견디고 참을 때 죽을 때까지라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잘하게 하신다는 말이다. 영광의 힘이 대단한 이유는 그 모든 과정을 견디게 하시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영광의 힘으로 그 모든 것을 잘 견디고 참는 것에 능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연약하고 악하기 때문에 정말 자기 뜻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이 나를 너무 사랑해서 참을 일과 견딜 일을 주시는데, 영광의 능력으로 모든 견딤과 참음을 준다는 것이다. 중보 기도의 최고 봉이 이런 것이라고 본문에서 보여준다. 견딜 것이 많은 것은 감사의 제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13절 말씀처럼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 약속을 하셨기에 끝까지 견디기를 바란다. 참지 못할, 견디지 못할 것은 없다.
“영적 진실성의 결과는 인내이다. 여러분은 영광의 능력으로 인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이 있습니까? 이것이 정말 좋은 기도 제목이라 생각합니까? 이것이 성도의 기업인 것이다.”
4) 성도의 기업 얻게 하심을 감사하게 하심을 원하노라.
감사의 제목 중에 가장 큰 것은 아버지께서 성도의 기업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심인 것이다. 어떻게 내가 부르심을 받고 구별된 성도로 자리매김 할 수 있겠는가? 성도가 되면 하나님이 모두 책임 주실 것인데, 이것으로 아버지께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나의 자녀들도 되는 것 없이 살아왔다. 특히 아들은 나의 사역에 쓰임 받으면서 낮아지는 사건의 연속 이였다고 본다. 그렇게 내 아들은 말씀과 기도만 붙잡고 가고 있다. 기도가 필요한 인생, 이것이 예배를 꼭 나오게 되는 것이 세상의 기업은 얻지 못했지만 성도의 기업은 얻었다고 생각하니 항상 감사하다고 기도하며 살아간다.
어느 환경에서도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고 이것이 성도의 기업이다.
시편 16편 6절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나에게 주신 가족은 나의 기업이다. 하나님이 친히 손으로 재어 준 가족이다. 친히 주셨기에 보물이다. 평생 끼고 살면서 자랑해야 할 대상이다. 나는 가족 때문에 고생이라고 하는 분이 있다. 성도의 기업은 누구에게 어떻게 주어질지 모른다. 감당할 만 하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내 몸에 딱 맞추어준 보물이다. 이 세상의 기업은 석양이 깃들면 어둠이 임하듯 불안하기만 하다. 성도인 우리들에게 맡겨진 기업은 빛 가운데에 있기에 어떤 일을 견뎌야 할 때에도, 오래 견뎌야 할 때에도 기쁘게 빛이 나는 인생이 될 것이라 믿는다. 하나님께서 나를 성도로 삼아주신 이유가 한 가지만 있어도 감사해야 할 것이다. 내게 주신 모든 것은 하나님이 친히 주신 것이기에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
“성도의 기업을 얻게 하신 것 때문에 아무것도 필요가 없습니까? 아직도 필요한 것이 너무 많습니까?”
<말씀 나눔!!!>
오늘은 오세광 담당 목사님께서 친히 방문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목원 각각의 나눔을 짚어 주심에 적극적인 나눔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습니다. 한편 목사님께서 방문하셨다는 것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호진 형제는 피자를 쐈고 영육이 풍성해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적용나눔>”여러분은 다른 성도들이 형통할 때 기도가 저절로 나옵니까?
[현성 목자] 교제가 잘 안되어지는 내 모습이 보이며 억울한 감정이 생겼고, 부모님 사랑도 잘 받지 못했는데 교제도 안되나 생각되니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조금 올라왔다. 이런 감정에 힘이 드니 공동체와 밖을 같이 살피며 갈등을 하게 되었다.
목사님 ☞ 항상 내가 먼저 정해 놓는 것이 있는데, 그게 안되니 화가 나는 것 같음. 준비가 되어서 목사하고 목자 하는 건가? 은혜로 시켜 주신 건데 내가 해서 이렇게 된 것이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가장 맞는 때에 주려고 하는 것인데 불평이 나오는 것은 오늘 말씀 처럼 각자의 삶은 하나님이 각기 정하시는 것인데 이것이 인정되는 것이 쉽지 않기에 그러한 것 같다.
[민주] 회사 동료와 차별 받음에 대한 원망이 컸다. 관계하고 싶은 사람만 만나며 차별 받는 환경을 피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 원망을 많이 했다.
목사님 ☞ 윗사람 보기에 민주는 편한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민주: 아니요….) 하나님을 잘 믿으면 평강하게 되고, 타인들이 편하게 느낀다고 한다. 그렇지 못하기에 하나님이 훈련 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 같다.
[주업] 나이에 비해 좋은 차, 좋은 환경에 있음에도 주변 더 잘 나가는 친구들과 비교하며 불평을 하게 되는 나의 교만함을 보고 있다. 그렇게 내 문제에 묶여 있다 보니 남을 아예 살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을 인정하면서도, 환경으로 결과가 안 좋게 나올 때 마다 원망이 올라오는 것은 본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경시 여기고 성경 10장 읽겠다 적용을 못 지키는 나를 묵상하고 있다. 또한 내 소유가 참 많은 내 죄, 악한 습성을 보게 된다.
목사님 ☞ 좋은 차 끌고 다니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가? (주업: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면 큰 부가 온다고 해도 원하지 않는다. 아쉽긴 하겠지만 중심은 하나님께 있는 것 같다.) 불화살이 오는 것은 내가 원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환경으로 해석 받고 싶어하는 우리, 오전에 다짐하고 저녁에 흔들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다. 항상 말씀으로 해석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진욱] 회사의 어려움, 아버지 부재에 대한 결핍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고,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 최근 교제를 허락하셨다. 교제가 되니 이제는 결혼에 대한 욕심을 쫓게 되고 때를 달라, 말씀을 달라며 분별 보다는 떼쓰는 기도를 하고 있다. 이때에 좋은 환경에서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게 되면 몹시 부러우면서 상대적으로 부족한 내 모습을 보게 되며 눌리게 된다. 내 환경에 눌리니 남에 대한 중보는 생각조차 못하게 된다.
목사님 ☞ 오늘 말씀처럼 기도 응답이 되어도 기도는 계속 해야 된다. ^^ 늘 초빙 받으며 사역을 했었는데, 미국을 떠나니 환경이 어려워졌다. 그러던 중 파트타임이라도 좋으니 사역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우리들 교회 파트타임으로 섬기게 되었고 지금 이 자리에 있다. 기도를 잘 해야 한다. 그리고 절대 속지 않는 하나님은 세상기도 절대 안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고 이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나는 20만원 전도사 월급 받을 때 결혼했다. 결혼이란 것이 나귀 몇 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지금 주시는 것이 절대 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100%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습인데 그것이 되지 않으니 눌리게 되는 것 같다. (진욱: 혹시나 내가 적용을 잘 못해서 지금 주어진 회사나 교제를 앗아가지 않을까? 두려움도 종종 느끼게 된다.) 만족감이 없어지는 삶, ‘언제가 때인가?’ 보다 첫발을 요단강에 내 딛는 것이 필요하다. 적용보다 적용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단계마다 원하시는 적용이 있는데, 기왕이면 지금 적용하길 바라시는 것이지 그것에 눌리거나 두려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결혼 보다 결혼 후에 대한 준비가 중요한데, 지금 단계가 아니라도 적용치 못한 부분에 대한 책임은 나중에라도 꼭 물으시니 잊지 않기를 바란다.
[호진] 말씀을 듣고 나도 열등감, 비교의식, 질투가 많아서 내가 가진 것을 참 못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싱글로 커플인 친구들에 대해 질투와 시기가 많고 더 좋은 환경 주시지 않음에 불만이 참 많은 것 같다는 것이 묵상되어 졌다. 그러다 보니 적용 없는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예배에 지각하지 않겠다 하며 매번 지각한다 ㅠ.ㅠ
목사님 ☞ 생각나는 대로 적용하면 사람들이 다 영적으로 교만해서, 수준보다 높은 것을 적용하게 된다. 내가 생각한 것 한 단계 밑으로 적용하길 바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과 과정은 하나님 안에서 자유 하게 하시기 위한 것이지 괴롭히시는 것이 아님을, 세상 너무 좋아하는 우리에게 세상 좀 끊으시라고 하는 것임을 이해하기 바란다.
[영훈] 모델 친구와 동업해서 사업 실패한 사건이 있었다. 이후 그 친구는 좋은 조건에 채용되며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와 달리 좋은 환경이 열렸었다. 그 때 사람에 대한 원망이 생겼었다. 이후 물질적인 고난에 대해 원망하고 작년 여름에는 일거리가 없어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올해에도 여름이 비수기라 같은 걱정을 했는데 지금 물질을 두 배로 부어 주시고 있다. 잘 될 때에 기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나를 본다. 하지만 한동안 안 했다가 작년 서원함으로 회복한 십일조는 꾸준히 하고 있다.
그런데 나는 형들이 말하는 교제나 결혼에 대한 간절함은 적은 것 같고 그에 따른 원망도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목사님 ☞ 결혼은 해봐야 진정한 신앙이 나온다고 한다 ^^
적용 나눔>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습니까? 주식? 결혼?”
[민주] 어려운 부장님과의 사건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지 않았다. 아예 떠날 생각으로 양육교사, 중등부 섬김, 상담 받던 것 모두 내려 놓았었다.
목사님 ☞ 믿는 자들은 억지로 끌고 가시는 것이 있다. 성도를 견인해 간다(머리를 잡고 끌고감)는 강한 표현의 의미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흙냄새를 맡아봐야 ‘살아남’이 있듯이 바닥을 쳐봐야 ‘살리는 말’이 가능하다. 경험하는 것을 통해 민주의 사명을 보게 되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온유한 자는 자기 자신을 베고, 날카로운 자는 다른이를 벤다고 하는데 어떠한 자인지 잘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주업] 하나님 뜻은 알겠으나 인정하기 싫은 것 같다. 집안의 경제가 묶여서 힘들어진 묶어서 하나님 만나기 위한 과정임을 알겠으나 너무나 인정하기 싫어 힘이 든다. 집안 생계를 내가 유지 해왔는데, 나까지 어려워지게 되고 이런 환경이 인정하기 너무 싫어진다. 최근에는 이런 상태에서도 누가 내 믿음 없음을, 내 의를 지적받는 일들이 있는데 이것 또한 너무 아프다.
목사님 ☞ 예전 가정 예배 드리며 일용할 양식을 구했던 때가 나도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내 것이 없음을 알게 하기 위한 훈련 이였다는 것을 안다. 주업이에게 이러한 훈련으로 하나님 만나게 되는 과정인데 당연히 고통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너무나 힘들 것이다. 성경 인물들처럼 고통 스러운 만큼 하나님을 알아갈 것이다.
[진욱] 요즘 들어 힘들다고 하는 지체들의 연락이 자주 온다. 혼자 먹고 살기도 힘든데 하나님이 왜 이러실까 하는 생각이 들던 차에 최근 친하게 지냈던 후배가 내가 정죄한다고 안 좋게 말하고 다닌다는 걸 듣게 하셨다. 게다가 악의는 없었지만 종종 내가 목자 위에 있으려고 하는 거 같다는 말도 듣게 하셨다. 너무나 인정하기 싫지만 교만해서 목자나 어려운 지체나 가릴 것 없이 날카롭게 베어가는 내 진짜 모습 보게 하셨고 그 결과임을 알게 하셨다. 답답한 일들이 하나님의 뜻임을 조금 알게 되니 회개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연약해서인지 이런 생각과 함께 이제 죄값을 받는가 하는 두려움도 같이 몰려왔다.
목사님 ☞ 벌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녀됨 안에서 누려야 하는데 두려움이 있다. 딱 나에 맞는 구원을 위한 재앙, 복이 그치고 온전한 사랑을 신뢰하게 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
[호진] 나도 하나님을 알기 위한 고난이 싫은 것 같다. “대학원이 하나님 길인가요?” 물었던 기도를 했었는데, 하나님께 탓하고자 하는 내 마음으로 인한 것임을 목사님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대학원 학업 과정이 힘든 지금,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원망하고 있음을 돌아보게 된다. 고난은 싫고 복 받는 것만 좋아하는 내 모습이 회개된다.
목사님 ☞ Plan A, B가 있다고 하자. A가 하나님 뜻 이였으나 내가B를 선택했어도 하나님은 뜻을 이루시는 분이다. 이것이 하나님 뜻이라 믿고 가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이다.
[영훈] 최근은 그닥 힘들지 않은 상태지만, 예전 일은 여전히 해석되지 않은 것 같다. 예배 인도자의 꿈이 있었는데 여러가지 사람들 간의 문제에 부딪혀서 접고 도망 나왔다. 그때 훈련 받았어야 했는데 도망 나온 내 자신이 인정되지 않아 오랫동안 교회를 떠나서 힘들어 했었다.
목사님 ☞ 그때 힘든 것, 구체적인 사건을 통해 하나씩 문제를 얘기하고 풀고 나가야 하는데, 머리 속에서 얘기를 빙빙 돌려서 표현하게 된다. 당장 힘들지 않은 것도 회피하며 내가 나이스 해 지려는 것이다. 우리 모두 악한데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 하지 말고, 구체적인 사건 하나하나 짚어 볼 필요가 있다.
[현성 목자] 좋은 학벌의 집사님들이 즐비한 선교 단체에서 활동한 기억이 난다. 친한 분이 결혼하며 다른 교회로 옮기게 되었는데, 10장이 넘는 그분의 청첩장을 전달 받은 선교 단체 집사님께서 모두 쓰레기통에 보란 듯이 버리는 것을 보고 상처를 받았던 적이 있다. 나 또한 친한 분이 그런 취급 받는 것처럼 쫓겨나듯 그 곳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우리들 교회에 왔다. 여기에서 부목자를 오래 섬기며 안팎으로 깨어지는 사건이 많았다. 고난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날 훈련시키시는구나’, ‘아버지가 나 때문에 수고하시는 구나’ 조금은 이해가 되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다시금 혼자 오래 살아서인지 중독에 노출되기 싶고 세상과 타협하려고 하는 악한 습성을 직면하게 된다. 목장, 중등부를 섬기지만 알멩이가 빠져 있는 지금 나에게 광야 생활이 필요함을 다시금 인정하게 된다.
목사님 ☞ 하나님의 뜻, 그분의 성도가 되기 원하는 것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유의 역할을 주시고 이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라고 하시며 오늘 설교 말씀을 맺으셨다. 만명 목회를 해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자기 죄를 보고 각자 자리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과거 삶의 결론’ 이라는 말은 이제 껏의 결과로 끝이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이제껏 일들을 인정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라는 시작의 의미임을 명심하는 것이 목사님 말씀의 의도임을 알았으면 한다. 성도로 기뻐하며 승리하는 삶을 바라시며 하는 말씀이다.
<기도 제목>
[현태]
주님의 말씀 안에서 순종 할 수 있도록
[호진]
1. 날마다 큐티하며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삶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2. 발제(5/20), 기말보고서와 셤준비를 잘할 수 있도록
3. 가족의 건강과 아버지와 형의 구원을 위해서
4. 신교제, 신결혼을 위해 기도하도록
[진욱]
1. 회사, 교제 안에서 내 욕심을 인정하고, 잘 침묵하고 기다릴 수 있도록..
2. 정죄 보다 체휼의 습관 들일 수 있도록.
[영훈]
1. 하나님을 처음 사랑했던 사랑을 회복하는것(큐티좀 꾸준히 할 수 있게)
2.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것(남의 상처에 공감해주고 같이 아파해 줄 수 있게)
3. 내 안에 드러나지 않은 상처들 드러내 보여주세요
[현성 목자]
1. 인내의 때에 스스로의 힘으로 어리석게 행동하지 않도록
2. 말씀 붙들고 회사, 공동체안에서 내 자리 잘지키도록
3. 아버지의 영육의 건강을 위해서
4. 신교제
[주업]
하나님 더 사랑하기 지금 시험 잘 인내하기 새로하는 사업 형통 건강
[민주]
1. 아침에 큐티말씀 집중해서 할 수 있도록
2. 회사에서 권위에 잘 순종하고 주어진 역할 성실히 감당할 수 있도록
3. 신교제, 신결혼 조급해하지 않고 기도하며 준비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