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279; 주일설교
제목: 소명#65279;
본문: 골로새서 1:1~2
어떤 고통이나 어려움이 예상되면 그 일을 안 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사역은 역설적입니다. 고통과 어려움이 예상된다 해서 사역을 회피하는 교회는 그 자체로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 교회는 병이 들어서 성장을 멈추는 식물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예배에 대해서 사무엘의 결론을 들었습니다. 결국 다윗 때문에 우리 모두 수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역에서 섬세함이란 아주 단순하게 말해 다른 누군가의 고통에 대해 마음에 결을 맞추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눈물을 먹는다는 뜻입니다. 눈물을 먹는다는 것은 눈물을 직접 흘리는 사람에게는 물론이려니와 그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에게도 유익함입니다. 이 사역은 예배 공동체인 교회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야합니다.
사무엘상하에의 긴 대장정을 마치고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길 원하실까 묵상을 했습니다. 제가 초심을 잃지는 않았는가. 교회 개척 초기에 처음 정했던 골로새서를 다시 펴 보았습니다.
개척 초기에는 하나님께서 무너진 한 사람 한 사람을 독특한 방식으로 개별적으로 부르시고 세우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뿐 아니라 우리들 교회 전체의 공동체적 사명을 주시고 이에 응답하는지 아니면 내 자신, 내 가족, 우리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며 우리끼리만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지켜보고 계시다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본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집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기 때문이 아니고 그 곳에서 줄곧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아버지의 부르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길을 알기에 내가 쉬고 싶다고 쉬고, 여기까지라고 제안하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부르심의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기다리셨던 아버지의 부르심처럼 생애 마지막까지 구원의 복음이 미처 전해지지 못한 그 곳에 먼저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들 교회를 부르신 이 소명에 응답하는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골로새서 설교를 다시 하려고 합니다.
옥중에서도 다른 사람을 전도할 수 있는 거기까지 가는 사람이 소명 받은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수많은 사설들이 난무하지만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만 완전함과 탁월하심이 있습니다. 고난이 해결되어서 아니면 고난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신앙을 유지하기 어려운 분들이 계십니까? 그런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신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하여 완전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알아야 하고 교회 밖 세상에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 골로새서 1장 1절에서 2절까지를 살펴보며 나와 우리들 교회에 주신 공동체적 소명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1. 소명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한 개인에 대한 의도와 기대를 말합니다. 그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이 소명입니다.
성경을 소명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그 메시지의 중심은 하나님이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부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부르셨을 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붙이셨고 그로인해 자기 백성으로 재정하시고, 창조하셨습니다. 소명이란 현재 우리의 모습이 행위와 다 관련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장차 우리에 될 모습과도 관련 됩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불러 그 분의 백성을 되게 함 같이 신약에서 예수님도 자기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부르실 때는 개별적인 소명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인 소명도 부여하십니다.
어떤 것 하나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해서도 안 되고 하나님의 뜻이면 어떤 일도 해야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나 이런 각자의 소명이 있습니다.
(적용) 하나님의 뜻으로 부르심 받은 자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뜻 이라면 기름 부우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가 힘들다면 소명을 다시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소명하면 굉장히 어려운데 하나님께 부르심 받고 소명의 자리로 가고, 거의 구원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2. 소명에는 동역 자가 있습니다.
디모데는 터키 남부 태생으로 배경이 좋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유대인 이었지만 아버지는 헬라인이었고 바울의 동역 자가 되기에는 출신이 따르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디모데였는데 1차 전도 여행 때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로 한결같이 믿음이 성장하여 바울의 오른 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아들로 시작된 디모데가 형제로 불림을 받습니다. 이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가르칠 때 이런 믿음의 걸물을 키워 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내 힘으로 하면 생색밖에 날 것이 없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력한 집안의 대단한 스펙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렇게 대단했던 사람이 친척, 친구들 다 어디로가고 끝까지 함께 예수님을 부르짖은 사람은 내세울 것 없는 디모데, 부르스겔라 아볼라가 목을 내 놓겠다고 했습니다.
(적용) 소명에 자리에 함께 할 동역 자, 형제가 있습니까? 있다면 누구입니까?
디모데 같은 동역 자가 생기면 지경이 넓어지고 힘을 얻어서 2절 말씀처럼 골로새 같은 교회로 나가게 됩니다.
3. 소명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디모데도 차별이 없지만 지경이 한 사람에게 차별이 없는 사람이 골로새 교회 같이 공동체적으로 또 차별 없는 그 교회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교회 역사학자에 의하면 AD60년 61년경에 가공할 만한 지진이 골로새 지방을 덮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졸지에 골로새 교회는 3류 도시로 전락을 했습니다. 보통 이제 힘들어지면 신흥 이단들이 판을 칩니다. 내 힘든 환경을 잊어버리고 싶어서 대부분 기복이나 이단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현실을 직면하기를 싫어합니다. 씀씀이를 줄이고 열심히 사는 것 이런 것 아주 하기 싫어합니다. 나의 명예를 잃기 싫고 내가 그러려면 아주 죽는다. 그래서 직면하기 싫어서 그래도 내가 누군데 이 세상에서 회복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상한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진짜 하나님께 택함 받은 사람은 절대로 이단에 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 욕심 때문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건강한 사람, 불편한 사람, 성공한사람, 실패한 사람, 사람 사이의 모든 인위적인 구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녹아 없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자발적으로 그런 공동체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끈이 우리를 묶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와 같은 공동체는 아무래도 가족의 모습과 유사 합니다. 비록 화를 내기도 하고, 때려주기도 하고, 욕설이 난무할 때도 있지만 가족이란 내가 가면 받아주지 않을 수 없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적용) 내가 찾아가야 할 영육간의 힘든 소명의 대상, 골로새 교회는 누구입니까?
소명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소명에는 동역 자가 있고, 소명에는 이렇게 힘든 대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찾아가야 할 대상이 있다고 했습니다.
4. 소명에는 가장 중요한 은혜와 평강이 따라옵니다.
‘우리의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은혜는 카리스라는 헬라어로 헬라 식 인사이고, 평강은 샬롬 이라는 히브리 식 인사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소수 민족이어도 선민 의식이 너무 강해서 절대로 히브리 식 인사만 하고, 히브리어만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이 서신이 쓰여질 당시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팍스 로마나 시대로 성경도 헬라어로 쓰여 졌습니다. 영적으로 최고로 교만한 사람과, 육적으로 최고로 교만한 사람이 둘이 붙은 그런 시대에 바울 사도가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두 문화를 다 인정해야 하지 안 겠습니까? 그래서 바울 서신 서에는 항상 은혜와 평강 이라는 헬라 식 인사와 히브리 식 인사를 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에 문화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온 은혜를 길러주며 나라의 문화, 개인의 문화를 인정하면서 지혜롭게 포용할 때 구원의 소명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르치다가 본질적인 것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제사를 지내거나 우상을 섬기는 것은 절대 타협의 대상이 아닙니다.
골로새서의 교회 론을 다시 읽으면서 10년이 넘는동안 정말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려 울며, 애통하며 왔습니다. 그래서 이단이 들어왔다가도 일곱 길로 도망갔다고 믿습니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 큐티를 통하여서 원칙을 지키려고 무조건 노력하다 보니까 그것이 감사하게도 사랑으로 느껴지셔서 그것 때문에 이렇게 교회를 떠나시는 분들이 없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적용) 본질 때문에 비 본질을 포기 혹인 허용하십니까? 비본질 때문에 본질을 포기 하십니까?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은혜와 평강이 있기 위해서 두 번째는 모든 것을 할 때 하나님과 연관 시켜서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오늘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말을 해도 어디를 가도, 모두 하나님과 연관이 되어야 합니다. 1절,2절 다시 읽어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골로서에 있는 성도들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다고 했습니다. 은혜와 평강으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고 했습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얼마나 분별을 잘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학교나 교회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별히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우리들 교회가 엄마와 함께하는 큐티와 어린이 큐티, 청소년 큐티가 장년 큐티 인과 이제 같은 본문으로 나오는 것은 정말 하나님 중심으로 양육 받는 최고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양육을 통해서 한 사람의 소명을 받게 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용)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켜서 하고 있습니까?
소명의 자리에 하나님의 뜻으로 부르심 받은 자리는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름 부으심이 있을 것입니다. 소명의 자리에 함께 할 동역 자, 형제가 있습니까? 내가 찾아가야 할 힘든 소명의 대상, 골로새 교회는 누구입니까? 소명에는 은혜와 평강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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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바게트
수민, 태희, 창섭, 영상, 봉규
나눔주제
-내가 찾아가야 할 골로새 교회는 어디인가?
수민
-이번 주에는 같이 근무하는 사람중에 회사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한테 일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너무 다혈질이라 그 당시에 너무 힘들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한테 나의 칭찬을 하고 다닌 것을 알게되었다. 그러면서 고마운 마음보다는 교만한 마음이 생긴 것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동생과의 관계가 안 좋은데 이런 부분들이 차라리 친하게 지내는 것 보다 말도 안하면서 지내니깐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나의 교만함과 악한 마음을 보게되어 회개하는 한 주가 되었다.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적용하며 회개해야 하는데 요즘 에너지가 없는 느낌이 들 정도로 항상 피곤하고 지쳐있어서 힘든 부분이 있다. 불평하는 마음과 뒷담화를 많이 하는데 이런 부분들을 말씀 보면서 고쳐나가야 할 것 같다.
회사에 한 사람이 있는데 자기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너무 미루고 그래서 나에게도 피해가 오고 그런 부분이 있어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안그래도 나는 내가 불편해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을 싫어하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포용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내가 찾아가야 할 골로새 교회인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목장에 새로 온 목원이 있는데 사정이 있어서 못 나오고 있다. 그 친구가 나의 골로새 교회임을 인정하고 기도해야겠다.
태희
-똑같이 친구들과 함께 여행 다니면서 지냈던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다니는 모임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데 주위에 이런 친구들이 있는 것이 감사하다. 이직을 하려고 새로운 회사에 면접을 봤지만 안되서 붙어있기로 마음을 잡았다. 내가 갈팡질팡 하니깐 이런 사건으로 마음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 같다.
회사에 새로 직원이 들어왔는데 벌써부터 지각도하고 무단 결근도 하고 그러는 바람에 업무적으로 나에게 피해도 오고 그러면서 회사에서 힘든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들에 있어서 내가 어떻게 그 직원을 대하고 어떤 식으로 풀어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점점 화가 쌓이고 있는데 말씀보고 기도해야 할 것 같다.
창섭
-신학 대학원을 다니는 중인데 어쩌다 알게 된 사람들이 있는데 그 모임에서도 우리들 교회 목회자 세미나에 오셨던 목사님이 계셔서 큐티인을 가지고 모임을 하는 것을 알고 그 모임에 같이하게 되었다. 그런데 모임을 가지다보니 나눔을 하긴 하지만 우리들 교회처럼 진실된 나눔이 없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티가 났으면 안됐는데 나도 모르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어느 순간 내가 모임을 주도를 하면서 공격적으로 질문을 하게됐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좋지 않게 보였는지 왜 모임을 주도하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답답함 때문에 이것 저것 물어본 것이었는데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받아드리는 사람들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이 내가 앞으로 목회자의 삶을 가면서 이겨내야 할 문제들인 것 같다.
영상
-여자가 낙이었던 인생에서 하나님만이 나의 인생의 전부이시다.라는 말씀에 아멘으로 여자를 끊는 적용을 하다보니 그동안 미처 못봤던 또 다른 나의 죄를 계속해서 보게된다. 엄마와의 문제라던지 학교에서 아이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문제가 많다. 이제라도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알게하시고, 회개하게 하시니 감사하다. 아직도 내안의 혈기를 다스리는 데에 있어서 힘든 점이 많지만 계속해서 말씀과 기도로 이겨내려 노력하고있다.
봉규
-지난 한 주도 똑같이 바쁘게 지냈다. 업무가 많아서 힘들고 그렇지만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순종하려 노력하면서 지낸다.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 제주시향에 있는데 이번에 교향악 축제 때문에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오게 되었다. 친구 때문에 항상 연주만 하다가 정말 오랜만에 객석에서 연주를 감사했는데 그 시간이 너무 귀하고 감사했다. 하지만 역시 오랜만에 친구와 학교 다닐 때 동기들이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이었졌는데 지금 양육교사를 받고있는 중 임에도 친구들과 어울려 술자리를 즐겼다. 말씀 본다고 보고, 세상적인 것에서 떨어지겠다고 기도를 하지만 여전히 변하지 못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며 회개하게 되었다.
내가 가야할 골로새 교회는 지난 주 이야기 했던 것 처럼 유년 부 아이들인 것 같다. 섬긴다 라는 단어의 뜻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내가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 섬기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아닌 것 같다. 작년 아이들에 비해서 말도 잘 안 듣고, 너무 소란스럽고 그렇다보니 나도 모르게 작년 아이들과 비교를 하면서 아이들을 포기하고 아이들을 위한 기도도 거의 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을 나에게 맡겨주신 이유가 있을텐데 그런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 기회에 회개하고 앞으로 아이들이 내가 섬겨야 할 골로새 교회라고 다짐하고 아이들을 섬기는데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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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제목
수민
1. 맡겨진 일에 불평하지 않기.
2. 회사에 직원과 동생을 잘 대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