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약
골로새서 1:1-2
소명
골로새서는 에베소서와 같이 교회에 대해서 다룬 서신입니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이렇게 서신을 쓰면서 가는데, 그렇게 가는 것이 소명받은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완전하신 예수님을 계속 알고, 그것을 전해야할 소명이 있습니다.
오늘 골로새서를 보며 공동체가 가져야할 소명의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소명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한 개인에 대한 기대와 의를 말합니다.
그것은 나를 위한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소명입니다.
그래서 소명은 부르심으로 번역됩니다.
소명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부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명이란 현재 우리 모습 및 행위와 다 관련이 있으며, 장차 우리가 될 모습과도 관련이 됩니다.
구약에서와 같이 신약에서 예수님도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부르실 때는 개별적인 소명만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소명으로도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부르심받은 자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름부으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가 힘들다면 소명을 다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소명이라 하면 어렵지만, 하나님께 부르심받은 것을 생각해보세요.
2. 소명에는 동역자가 있습니다.
진정한 소명이라면 함께할 동역자를 주십니다.
디모데는 1차 전도 여행때 동역자가 된 이후로, 항상 바울의 오른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그에 따라 가르칠 때, 하나님의 사람이 될 줄을 믿습니다.
늘 내 힘으로 하면 될 것이 없습니다.
불완전한 내가 하는 건 모두 불완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내가 가지지 않은 세상적 스펙이 있거나 그러면 함께 일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은 그분들을 끌어올려서 동역자로 쓰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고 부르짖는 내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오셨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사람의 가치과 상관없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별하지 않고 쓰십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동역자로 삼은 것처럼.
소명의 자리에 함께할 동역자, 형제가 있습니까?
있다면 누구입니까?
3. 소명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땅이 비옥했습니다.
AD60~61년 경에 가공할 지진이 겹쳤다고 하는데, 그때 졸지에 골로새 교회는 삼류로 전락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신흥 이단들이 판을 칩니다.
“그래도 내가 누군데” 하면서 이세상에서 회복되길 바라며 다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하나님께 택함받은 사람은 이단에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 욕심 때문에 이단에 빠지게 됩니다.
당시에도 책망을 받았었는데, 골로새 교회는 그 처지가 되고, 학대를 받으며 힘들었기에 이 천년이 지나고서도 이렇게 언급이 됩니다.
그래서 디모데처럼 힘들고, 골로새처럼 힘든 곳에 우리는 찾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차별을 심각하게 합니다.
그게 죄인줄도 모르고 차별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사람 사이의 모든 인위적인 구별은 하나님 안에서 모두 없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끈이 우리를 묶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공동체는 가족이란 것과 비슷합니다.
욕설과 화가 난무할 수도 있지만, 가족이란 것은 그럼에도 돌아가고 싶은 곳입니다.
내가 찾아가야할 영육간에 힘든 소명의 대상, 골로새 교회는 누구입니까?
4. 소명에는 은혜와 평강이 따라옵니다.
은혜는 헬라식 인사고, 평강은 히브리식 인사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소수민족이어도 선민의식이 너무 강해서, 절대로 히브리식 인사만 하고 히브리식 언어만 썼습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고 하는 시대여서, 영적으로 가장 강한 사람과 육적으로 가장 강한 사람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서신에는 은혜와 평강이라는 헬라식 인사와 히브리식 인사가 함께 쓰여집니다.
우리들교회는 기존에 계시던 분들이 새로 오신 분들을 바로 처방하다가 떠났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려옵니다.
서로 섞여야 합니다.
본질적이 아닌 것은 서로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지혜롭고 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의 소명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본질적인 것을 놓치면 안됩니다.
본질 때문에 비본질을 포기, 혹은 허용하십니까?
비본질 때문에 본질을 포기, 혹은 허용하십니까?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켜서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결론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켜야 합니다.
은혜와 평강도 우리 하나님에게서 온다고 합니다.
어디서든 하나님을 중심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큐티인이 어린이큐티인, 청소년큐티인, 큐티인 등이 나옵니다.
양육을 통해서 소명을 받는 한 사람이 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켜서 하고 있습니까?
나눔
오늘은 6명이서 오토웨이 지하에서 나눔을 했습니다.
참석인원 : 이준호, 조동재, 김건우, 임현규, 이수계, 김태석
기도제목
임현규
체력관리 잘할 수 있도록
영어공부 잘할 수 있도록
김건우
생활예배회복
큐티 잘할 수 있게
김태석
큐티 열심히 하기
군대가는 친구 잘 다녀올 수 있도록
이수계
교회 열심히 나올 수 있게
목 나아서 노래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2017년에 대학편입할 수 있도록
조동재
건강과 체력 관리 잘할 수 있도록
양교 끝까지 잘할 수 있도록
이준호
생활예배
시간관리
일 열심히 하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