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조사>
지난 주 설교 내용인 주님이 공급자 보호자 주인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설교를 들었다. 목장 보고에 올라온 내용을 읽었다. 어느 부분이 인정이 안 되는지. 3가지 모두 다 안되는 집사님이 있다. 내 마음데로 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하나님 없으면 못 살겠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짓고 있으면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다. 그리고 하나님을 찾으면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은 미움 있는 자식이 사고치면 경찰서에서 데려오는 그런 마음인거 같다. 하지만 완전히 돌아오지 못한 것이 있다. 악해서 그런건가요? 어떤 때는 이 세계를 몰랐으면 좋았을걸 할 때도 있다. 지금은 기쁘다기 보다는 그 보다는 나보다 낫지 하는 마음이 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교회를 다니신 분의 나눔이다. 사무엘하는 인구조사라는 죄 짓는 것으로 끝난다. 삼위의 하나님을 찬양하던 다윗은 세력과시 하면서 끝나는 것이 슬프기까지 하다. 마지막에도 이렇게 죄를 짓는 다윗의 모습을 보면서 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인간이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다윗이 위대한 것이 아니다. 오직 일생동안 다윗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기에 가능한 것이다. 인구조사는 무슨 죄이며 무슨 의미가 있는가?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신 하나님이시다. 왜 다시라는 표현을 쓰셨을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아여 전에도 진노하시고 지금도 진노하실 예정이다. 왜 진노하셨는지 본문에는 이 내용이 확실히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일로 다윗을 격동시키사 인구조사를 하게 하시고 벌을 내리셨다. 그것이 무슨 죄길래 7만명이나 죽게하셨을까? 하지만, 100% 옳으신 하나님이기에 왜 진노하셨는지 알아봐야 한다.
1)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서 3년간 심한 기근을 주셨다.
다윗은 그런 일을 두고 하나님께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기근의 원인이 사울왕이 기브온 족속을 심하게 억압하고 죽인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일로 인하여 사울의 7자손을 나무에 달아 죽이고 리스바의 회개로 기근이 멈추고 그 후에야 기도를 들으시니라 하고 끝을 맺었다. 그 때도 사울과 백성이 같이 죄를 범했다. 그런데 사울은 너무 알아듣지 못 하기 때문에사울 시대에 죄를 묻지 않았다. 다윗 시대에 죄를 물었다. 알아먹을 다윗에게 물었다고 한다. 다윗은 그 문제를 잘 처리했다. 그런데 다윗시대의 죄를 다시 다윗에게 묻는다. 다윗은 조상의 죄나 자신의 죄나 모든 집안의 죄를 언제나 죄를 다윗 혼자 책임지는 자이다. 여러분 가운데 왜 내가 이 일을 혼자 해야하는지 그 사람은 다윗이기 때문이다. 안 하는 사람은 사울이다. 나는 다 맡아서 하는 사람은 다윗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너무 이뻐하신다고 생각하면 된다. 연대 순으로는 인구조사가 마지막에 있는 일이 아니고 밧세바 사건 이후에 압살롬 반란 이후의 일이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범죄인 음란과 살인을 저질렀다. 그 범죄로 카린의 집에서 떠나지 아니했고 ‘네 이웃들이 네 아내와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심판의 말씀을 주시며 그 일들이 차례로 일어났다. 당장에 아들을 치셨고 차례로 예언하신 일이 일어났다. 11장에서 다윗의 범죄는 전적으로 다윗 한 사람의 잘못을 따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13장부터 20장까지 다윗자녀들의 강간, 살인, 반역들이 차례대로 일어났다. 그 때 다윗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철저히 무능력한 모습으로 나온 모습을 기억한다. 그리고 철저히 회개로 나아갔다. 그러나 백성들이 항상 지도자인 왕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몰아갈 수 있기 때문에 왕이 잘못한 것이 백성의 잘못이기도 한 것을 마지막에 확실히 밝힌 사건이 인구조사이다. 백성들의 잘못이 선행되어 왕이 범죄되는 배경을 밝힌 것이다.
2) 백성의죄는 무엇인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서 궁을 떠날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따르지 않고 압살롬을 따랐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은 자인데. 붓지 않은 자인 압살롬 반역자였다. 대적자가 자기 아들이었다. 많은 백성들은 잘 몰라서 따라갔다고 한다. 하지만 압살롬이 이스라엘 마음을 훔쳤다고 표현하고 있다. 정상적이면 훔쳤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언변과 외모에 넘어가지 않아야 할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아야 될 사람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넘어간 것이다. 지금껏 따랐던 하나님의 종 다윗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장과 외모과 탁월한 사울왕 때에도 무서운 사울의 압제를 경험하였다. 그러나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사울왕의 때를 기억하지 못 하고 세상통치의 전형인 압살롬의 외모를 못 벗어나고 다윗에게 반역을 한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잡류에 불가한 베냐민 사람 비그리 아들인 세바를 온 이스라엘과 사울족속이 따랐다. 사울의 고향 베냐민이다. 뿌리 깊은 죄를 보게 된다. 다윗 시대에 이런 많은 일이 일어났다. 다윗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윗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기 때문에 백성을 치리 하셔야만 했다. 기근의 문제와 인구조사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징계에 대한 목적이 있다. 이건 다시 말하면 하나님 쫓다가 세상 쫓다가 이런 식으로 나간 것이다. 우리가 행위로 구원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구원된다. 하지만 행위가 없어보이는 다윗에게 구원이 있는 것이다. 잘생긴 압살롬에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닌데. 사람들이 자꾸 압살롬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을 반역한 것이다. 우리는 항상 구원이 어디 있는지 분별해야 하는데 다윗이 너무나 형편 없어서 왠만한 사람이 분별이 되겠는가? 압살롬은 너무 불쌍해 차별 받고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여러분이 구원 받지 않으면 성경이 너무나 어려운 것이다. 다윗이 모든 죄와 수치를 다 들어냈다. 죄와 수치를 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다윗은 들어냈기 때문에 인류의 조상이 되었는데 압살롬은 잘 생긴 외모와 언변으로 훔쳤다고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길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명예과 권력에 마음을 두고 하나님을 아는 것처럼 하면서 교회에서도 날마다 계속 반역을 한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왕을 배반하는 일에 끊임없이 동참을 한다. 되었나 보다 하면 다른 곳으로 가고 팔복으로 가는 것 처럼 보이다가 기복으로 가는 것이다.
적용) 여러분은 세상 왕을 끊임없이 벗어나지 못 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이 무엇인가?
2. 다윗을 격동시키셔서 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이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죄를 묻고자 다윗을 격동 시켰다고 하신다. 역대상 21장1절에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라고 나온다. 사무엘서에서는 하나님이 주어인데 역대상에서는 사탄이 주어이다. 격동과 감동이 원어로 같다. 찌르다는 의미에서 파생하여 누군가의 마음을 미혹하거나 화나게 함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 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과 사단이 같은 단어의 주체로 기록되었다. 성경에 오류가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가 하지만 욥기에서도 보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사단이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이 죄를 범하도록 직접적으로 역사했다고 보기보다는 사단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상태에 있을 때 사단이 공격을 하는가? 다윗이 이스라엘 인구 조사를 할 시기는 밧세바 사건 이후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다윗이 다시 승리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이제 다윗에게 등을 돌렸던 많은 백성들이 돌아왔다. 다윗의 왕권이 다시 안정을 찾아갈 시기였다.
다윗의 격동을 좀 더 생각해보자. 모든 백성의 마음을 도적질한 훔친 압살롬이 백성들의 마음이 향했던 것을 알았기에 편해지니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압살롬에 쫓겨갔을 때에는 다윗이 수치스러워도 회개를 하면서 갔기 때문에 해석이 되었다. 그런데 평정이 되고나니 시간이 지난 후일지라도 밧세바 사건의 상처가 올라올 수 있다. 그 열등감으로. 지난 시간의 상처를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자기 죄의 결과로 압살롬이 반역을 했기 때문에 격동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열등감이 들 때에 상처가 비집고 올라와서 격동이 되어서 자기의 군사를 과시하고자 한다. 내가 아니면 칼 뽑을 사람이 130만명이나 있겠느냐 하는 마음이 있다. 다윗이 하나님 나라에 충만할 때는 지나간 상처가 별이 되지만, 통일 왕국의 왕이 되어 부흥을 걸을 때는 상처를 덮고 싶다. 상처가 또 다시 상처가 되고 그러다 보면 상처가 많은 사람은 교만하게 안 할 자랑을 하게 된다. 간증을 하고 나서 별 이유 없이 내려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적인 생각이 들어가는 것이 늘 사탄이 노리는 충동이다. 열등감이 들어갈 때가 사탄이 가장 노리는 것이다. 백성들이 얼마나 자기에게 돌아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백성들의 확실한 마음을 알아서 압살롬이 백성들이 훔쳤던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게 자기 과시를 하고 싶은 것이다. 다윗이 모두가 모를 것 같지만 간음하고 거짓말하고 살인을 한 것을 암암리에 알았기 때문에 압살롬에게 간 것이다. 믿음이 충만할 때는 괜찮아도 편안하니까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누구는 깨끗한 그릇으로 주의 일을 하고 있는데 죄를 지은 사람이 왕 노릇을 하고 있으니 왕 노릇을 하고 있으니 한 쪽에서는 얼마나 무시가 되겠는가? 간증을 했을 때에도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박수를 치지만 세상적인 사람은 손가락질을 할 것이다. 이 때 사단이 틈을 타서 격동이 되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하시시도 받지도 않는다. 시험은 욕심 때문에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다윗의 마음이 사단이 격동되는 것을 허락하셨다고 한다. 여기서 격동, 충동, 감동이 다 같은 단어다. 격동, 감동, 충동은 같은 단어인데 얼마나 분별이 어렵겠는가? 남녀 간의 관계에서도 만나는 안 되는 관계임에도 감동되어서 충동되어 가는 관계가 있다. 다윗의 이런 마음은 바로 자신이 양을 치던 목동 시절부터 왕이된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 주셨던 하나님을 지금 갑자기 온전히 신뢰하지 못 하고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열등감이 많이 들어오면 격동되는 것이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첫 사랑이라는 단어에 감동하고 격동된다는 것이다. 격동을 감동으로 합리화 시키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내가 돈, 여자 좋아해도 일만 잘해면 된다는 것이다. 격동, 충동되는 것을 감동으로 포장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적인 생각이 들어가는 것이 사단이 노리는 충동이고 열등감이 들어갈 때가 사탄이 가장 노리는 순간이라고 한다. 고난과 믿음의 아이콘인 다윗도 격동될 때가 있는 것이다.
적용) 격동, 충동 되는 것을 감동으로 포장하며 합리화한 적이 있는가? 상처가 별이 되는가? 아직도 상처가 상처가 되고 있는가?
3. 인구조사의 실체는 넘버게임이다
현대인의 사단의 계괴는 수이다. 육적 영적 모두 포함된다. 이제까지 사탄의 사주에 따라 예방 세력이 방해했었는데 다윗 왕국이 확연해지니까 사단도 다윗에게 직접적 방해를 한다. 그래서 넘버게임을 하고 수를 자랑하고 내가 잘했다고 하고 싶은 것이다. 넘버 게임에 말리게 되었다. 단에서 브엘세바는 나라 전체를 조사하라고 했다. 다윗의 모사 요압이 말렸다. 제촉까지 하면서 명령하였다. 하나님은 숫자 세지 않아도 백배나 더 할 수 있는 분인데 왜 그러냐고 하는 것이다. 성공 중독증인 요압이 보기에도 아닌 것이다. 요압은 두기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없는데 이때는 바른 말을 하였지만 다윗은 듣기 싫어한다. 요압이 올바른 이야기를 했는데 왜 안 들었을까? 격동되었기에 들리지 않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들을 때는 들어야 하는데 다윗이 왜 안 들었겠는가? 아무리 성경적인 충고이지만 요압이 다윗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전달이 되지 않는 것이다. 말을 안 듣는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사랑이 느껴지지 않아서이다. 믿음이 신실하지 못할 때 사랑이 없는 충고는 받아들이지지 못 한다. 요압은 이렇게 바른 충고를 했지만 다윗의 37용사에 못 들어간 이유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만 알면 되는데 우리는 너무나 알고 싶은 것이 많다. 호기심하고는 다른 것이 많다.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는데 나의 열심이 하나님의 열심에 앞서서 문제가 되는 것이 많다. 우리는 늘 숫자에 약하다. 숫자가 그렇게 무섭다. 돈, 성적, 학교의 순위 등 돈이 많아도 없어도 모두가 돈을 신뢰해서 많으면 우월감으로 교만하고 없으면 열등감으로 나간다. 지금까지 다윗의 전쟁은 하나님께서 붙이시면 이기고 진노하시면 졌다. 하나님이 해주셨는데 자랑이 나온 것이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가다가 130만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적국의 병사가 130만보다 적다고 하면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적국의 병사가 200만이 되면 두려워서 싸울 생각이 없어진다. 우리는 팩트만 알면 되는데 비교는 여기서도 해당이 된다. 물론 인구조사가 나쁜 것은 아니다. 민수기는 그 이름 자체가 숫자다. 모세가 한 것은 홍해 바다를 건너서 살아있는 것이 감사한 개수였다. 그럴 때는 넘버게임이라고 하지 않는다. 순수한 것으로 한 것인가 열등감으로 한 것인가가 중요하다. 사단이 격동한 것에 다윗이 넘어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열등감 때문이라고 하였다.
쓸데없는 것 같은 지명이 많이 나온다. 쓸데 없는 것 같은 사람도 만나봐야 하고 가봐야 한다. 9달 20일 동안 시간, 인력, 물질 낭비를 한다. 9달이나 그동안 점령한 곳을 돌아보게 하였다. 9달 20일동안 다윗의 마음의 변화가 없었다. 자기가 다 물리친 것 같았다. 그래서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단에게 점령당한 생각일수록 빨리 행하고 싶은 것이 인생이다. 혈기, 욕심이 여기에 해당한다. 좋은 생각은 빨리 적용해야 하지만 신중하다가 적용하지 못 할때가 있다. 하고, 말하고, 가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말릴까봐 빨리 저지르는 것이 욕심이고 혈기다. 어떨 때는 혈기를 부려도 하나님께서 에스겔 4장 말씀처럼 인분을 쇠똥으로 감해주시지만 어느 때는 두고보시다가 쇠똥을 인분으로 갚아주실 때도 있다. 재촉하고 싶은 것은 참고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은 거꾸로 적용하시기 바란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로 했다고 하면서 마지막에 다윗이 세상 복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부자는 돈을 자랑하고, 교수는 학위를 자랑하고, 이쁜 사람은 용모를 자랑하면서 교회 크기를 자랑하는 것이 모두 넘버게임이다. 그래서 인구조사가 잘못이라고 한다.
적용)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숫자는 무엇인가?
다윗의 열등감으로 인구조사가 행해진 것처럼 누구에게나 열등감은 무서운 것이다. 열등감이 없는 사람도 없다.
<기도제목>
신천섭
1. 큐티할때 깨닫는 영을 주시도록
2. 회사 프로젝트 잘 진행되도록
3. 신 결혼
이주홍
1. 양육 잘 받도록
2. 항상 감사하기
김경배
1. 큐티보며 말씀으로 내 모습 직면하기
2. 신 교제 잘 이어가기
3. 두 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 인도하심대로 순종하기
김진우
홍주형
1. 큐팅 잘 받도록
2. 진로 인도 받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