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조사
날짜 2015.03.22
목장참여: 권민정, 이정은, 강리경, 새롬
설교 김양재목사님
본문 삼하 24:1~9
지난 주 설교 내용인 주님이 공급자, 보호자 주인 되시는 하나님에 대한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한 목장보고서를 읽었습니다. 우리가 어느 부분에 대해서 인정이 안되는지에 대해서, 어떤 분이 나누셨습니다.
"나는 공급자,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다 인정이 안돼요.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부분은 내맘대로 하고 싶은 경향이 있어요. 그래도 하나님 없이도 못살겠어요. 그래도 사람이 죄를 짓고 있어도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이 너무 놀라워요. 그리고 하나님이 찾으면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마음은 마치 너무 미운 자식이 사고치고 경찰서에 갔다오면 다시 꺼내오는 부모 심정같아요. 하지만 저는 아직 완전히 유턴하지 못한 것이 있어요. 왜그럴까요? 제가 악해서 그럴까요? 어떤 때는 이 세계를 몰랐으면 좋았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지금은 기쁘다기 보단 그 누구도 나보다 낫지 하는 마음은 있어요."
오래 믿음 생활을 하신 집사님의 나눔입니다.
사무엘 하는 다윗의 인구조사라는 죄짓는 이야기로 막을 내립니다. 세력과시를 하는 다윗의 모습으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왜 자꾸 죄를 짓는지, 그래서 인간이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다윗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일생동안 다윗의 승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다윗의 인구조사는 무슨 죄이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 다윗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신 하나님입니다. 왜 다시라는 표현을 쓰셨을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전에도 진노하시고 지금도 진노하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진노의 이유는 본문에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 일로 다윗을 격동시키사 인구조사를 하게하시고 벌을 내리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죄라고 7만 명이나 죽게 하셨는지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100프로 옳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왜 진노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이스라엘 땅에 심한 기근을 주셨습니다. 그 일로 인해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가 물을 수 밖에 없었고, 기근의 원인이 사울이 기브온 족속을 심하게 억압하고 죽인 결과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서 사울의 일곱 자손을 나무에 달아 죽이고, 리스바의 회개가 있은 후 그 후에야 기도를 들으시니라로 끝을 맺었습니다. 그 때도 사울 왕과 백성이 같이 죄를 범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사울 시대에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다윗시대에 조상의 죄를 물었다고 했습니다. 알아먹을 다윗에게 물었다고 했습니다. 다윗은 그 문제를 잘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시대의 죄를 조상에게 묻습니다. 다윗은 그 문제를 잘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시대의 죄를 다윗에게 묻습니다. 다윗은 조상의 죄, 자기의 죄, 집안의 죄에 대해서 언제나 혼자 책임을 지는 사람입니다. 연대 순서로는 인구조사가 마지막에 있는 일이 아니고 밧세바 사건, 압살롬 반란 사건이후의 일입니다. 다윗이 밧세바의 사건을 저질렀고,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당장의 아들을 치셨고 차례로 예언하신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11장에서 다윗의 범죄는 전적으로 다윗 한 사람의 잘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13장부터 20장까지 다윗 자녀들의 강간, 살인, 반역이 차례로 일어났습니다. 이 때 다윗은 철처하게 무능력한 모습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회개를 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항상 지도자의 잘못으로 모든 것을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왕의 잘못은 백성들의 잘못도 있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죄가 선행되어 왕이 범죄하게 되는 배경을 밝힌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성의 죄는 무엇인가?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겨서 궁을 떠날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은 따르지 않고 압살롬을 따랐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왕입니다. 그 아들 압살롬은 하나님께서 기름 붓지 않으신, 자기 스스로 왕이 되고자 반역을 일으킨 대적자였습니다. 많은 백성들은 자신들은 모르고 잘 알지 못해 따라갔다고 했지만 압살롬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훔쳤다"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외모와 언변에 넘어가지 말아야할 사람에게 이스라엘 사람이 넘어간 것입니다. 그만큼 여태까지 하나님의 종 다윗에 대한 믿음이 그만큼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신장과 외모가 탁월한 사울 왕때도 무서운 압제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왕이 되고나서도 사울왕의 선례를 기억하지 못한채 세상 통치의 전형인 압살롬의 외모에 넘어가고 다윗에게 반역을 한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도 잡류에 불가한 베냐민 사람 비글의 아들 세바를 온 이스라엘과 사울족속이 따랐습니다. 사울의 고향이 베냐민입니다. 뿌리깊은 지역감정을 성경에서도 계속해서 보게 됩니다. 다윗 시대에 이런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다윗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윗을 배반한 백성들의 문제이기도 했고, 이것을 치리하셔야 했습니다. 기근의 문제와 인구조사의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징계의 목적이 있습니다. 백성들이 사무엘을 쫓다가 사울을 쫓고 다윗을 따르다가 압살롬을 쫓았습니다. 결국 하나님 쫓다가 세상 쫓다가를 반복한 것입니다. 우리는 행위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위가 없어보이는 다윗을 통해 구원되는 것입니다. 잘생긴 압살롬에게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압살롬을 자꾸 따르고 이것은 하나님을 반역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구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물론 다윗의 너무 형편없는 음란, 살인, 반역이 반복되니까 웬만한 사람으로서는 분별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 인들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믿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길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권력과 재물과 스펙과 명예에 마음을 두고 하나님께 반역합니다.
적용하기: 세상 왕을 끊임없이 벗어나지 못해서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이 무엇입니까?
2. 인구조사는 다윗을 격동시키셔서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죄를 묻고자 다윗을 격동시키셨다고 하십니다. 역대상 21장 1절에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와 같은 일화를 보면 사탄이 다윗을 충동시켰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이 주어인데, 역대상에서는 사탄이 주어입니다. 옛날 한글 성경에는 "감동시켰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격동과 감동이 원형이 똑같은데, '찌르다'는 의미에서 파생되어 누군가의 마음을 미혹하거나 화나게함으로 올바른 판단을 하게 하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탄이 같은 단어의 주체로서 쓰여지고 있습니다. 왜 이럴까요? 욥기에서도 보면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사탄이 욥에게 고난을 허락하게 하시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범하도록 직접적으로 역사했다고 보기 보다는 사단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 사단이 틈탈까요? 다윗이 이스라엘의 인구조사를 할 때에는 밧세바 사건 이후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다시 궁으로 돌아왔고, 다윗에게 등돌렸던 백성들이 다시 돌려왔던, 다윗의 왕권이 다시 안정을 찾아갈 무렵이었습니다.
모든 백성의 마음을 도적질한 압살롬에게 백성의 마음이 향했던 것을 알기 때문에 다윗은 편해지고 나서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압살롬에 의해서 쫓겨갔을 때에는 다윗이 수치스러워도 회개하며 갔기 때문에 해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평정이 되고 나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밧세바 사건이 열등감으로 상처가 되어 올라올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의 상처를 잊어버리려고 해도 자신의 죄의 결과로 압살롬이 반역했으니 격동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열등감이 들 때 상처가 비집고 올라와서 격동이 되고, 자신의 군사를 과시하게 됩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는 지나간 상처가 별이 되지만, 통일 왕국의 왕이 되어 부흥일로를 걸어갈 때에는 상처를 덮고 싶습니다. 상처가 또다시 상처가 되고 그러다보면 교만하게 안해도 될 자랑을 하게 됩니다. 세상적인 생각이 들어가는 것이 늘 사탄이 노리는 충동입니다. 열등감이 들어갈 때가 사탄이 가장 노리는 순간입니다. 아마도 다윗의 마음 속에는 백성들이 얼마나 자신에게 돌아왔는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같이 백성들의 마음이 돌아섰던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력과시를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모두가 모를 것 같아도 다윗이 간음, 살인한 것을 암암리에 알았기 때문에 압살롬에게 갔습니다. 믿음이 충만할 때는 괜찮아도 편안해지면 그것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쪽에서 믿음없는 사람들이 무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하시지도 받지도 않으십니다. 시험은 욕심때문에 받는다고 했습니다. 다윗의 이런 마음은 자신이 양을 치던 목동시절부터 자신을 지켜주셨던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고 넘어가게된 것을 보여줍니다. 열등감이 들어오면 격동됩니다. 격동을 감동으로 합리화시키려는 생각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격동,충동을 감동으로 포장하고 싶은 것이 세상적인 생각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적용하기: 여러분은 격동되고 충동된 것을 감동으로 포장하며 합리화한적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상처는 별이 되고 있습니까? 상처가 상처가 되고 있습니까?
3. 인구조사의 실체는 넘버게임입니다.
현대인의 사단의 괴계는 수(number)입니다. 육적, 영적 모두 포함됩니다. 여태까지는 사단의 사주에 따라 이방세력이 방해했는데 다윗 왕국이 확연해지니까 사단도 다윗에게 직접적인 방해를 합니다. 넘버게임에 말리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인구를 조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의 모사, 요압이 말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재촉까지 하며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요압의 올바른 이야기를 듣지 않습니다. 격동되었기 때문에 들리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의 말이라도 들을 때는 들어야 하는데 아무리 성경적인 충고이지만 요압이 다윗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전달되지 않습니다. 사랑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결국 인구조사를 실시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인간의 열심이 하나님의 열심을 앞서서 힘들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수에 약합니다. 서로 비교하면서 점수를 알고 싶어합니다. 숫자를 계수하고 잘하면 잘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우리는 열등감, 우월감으로 하나님을 섬기기가 어렵습니다. 숫자가 그렇게 무섭습니다. 돈, 성적, 학교의 순위도 있으면 우월하고, 없으면 열등해집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다윗의 전쟁은 붙이시면 이기고 진노하시면 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윗이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가다가 130만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적국의 병사가 130만 보다 적다면 기도가 안나옵니다. 그런데 적국의 병사가 200만이라고 하면 두려워서 싸울 생각이 없어집니다. 쓸데없는 비교를 해서 두려움을 자초합니다. 인구조사 자체가 나쁜 것은 물론 아닙니다. 민수기는 그 이름자체가 numbers입니다. 모세가 한 것은 홍해바다를 건너서 살아있는 것이 감사한 숫자였습니다. 그럴 때는 넘버게임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순수하게 한 것인가, 열등감 때문에 과시하고자 한 것인가가 다른 것입니다.
9개월 20일동안 인구조사가 계속되었고 다윗은 변화하지 않아 계속 자랑하고자 했습니다. 사단에게 점령당한 생각일수록 빨리 행하고 싶어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혈기, 욕심이 이에 해당됩니다. 좋은 생각은 빨리 적용해야하지만, 오래 신중하다가 아예 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에 가고싶고 하고싶고 말하고 싶고 하는 일은 말릴까봐 빨리 저지르는 것이 욕심이고 혈기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4장 말씀처럼 어떨 때는 혈기를 부려도 인분을 쇠똥으로 감해주시만 어떤 때는 쇠똥을 인분으로 갚아주실 때도 있다고 합니다.
재촉하고 싶은 것은 참고, 하고싶은 것은 거꾸로 적용하길 바랍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로 했다고 하면서 다윗이 맨 마지막에 세상 복을 자랑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구조사가 잘못입니다.
적용하기: 여러분이 자랑하고 두려워하는 숫자는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리경: 식이장애 있는 것을 목장에서 계속 이야기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끊어질 수 있도록
새롬: 큐티 잘 하도록, 취업 인도를 해주시기를
정은: 휴학한 목적을 잊지 않고 시간 보낼 수 있도록
민정: 한국어 교원 공부 성실히 하고 신실하게 인도함 받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