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65279;
1.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서 변명을 한다
예루살렘에 오르기 전에 바울은 이미 환란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끌려가는 와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기회를 얻어서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천부장, 성난 궁중 앞에서 담대하게 복음에 대해서 자신의 간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가 해야할 말이 있었고 왜 하려고 했겠는가?
이런 위기 가운데 나에게 온 기회 자초지종을 해명하고 그 누명을 벗으려고 하지 않겠는가?
바울은 자기의 목숨을 위해서 변명이 아니라 지금 그 자리에서 구원을 위한 변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부장에게 문법적으로 정중한 헬라말을 하고 있다. 이 말 한마디가 천부장 한 사람의 마음을 옮기는 것을 볼 수 있다.
짐 엘리엇 선교사
선교사님의 아들이 그 곳에 가기 전에 '아버지 인디안들이 공격한다면 아버지는 총으로 스스로 방어할 것인가요?' 하고 묻는다. 그 질문의 의도를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모든 선교사님들이 돌아가시기 전 까지 총을 가지고 갔지만 한번도 사용을 하지 않았다. 아들에게 ' 그렇게 할 수 없다.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지만 그들은 아직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원시족 언어로 ‘나는 당신의 친구입니다’라고 가르쳐준다. 원시인에게 죽을 때가지도 ‘난 당신의 친구입니다’라고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유대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단순히 오명을 벗기 위해서 했더라면 로마 시민권자를 강조하여 살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나중에 하였다. 바울의 관심은 자기의 목숨 보다도 더 중요한 것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고 복음과 구원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더 중요하게 보이는 것이다.
변명은 우리가 아는 뜻과 다르다. 해명이라고 다른 성경에 나오고 있다. 방어 deffence라고 영어 성경에는 나와 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을 향해서 애가 끓는 마음으로 구원을 위한 변명을 하고 있다. 수 많은 성난 군중 앞에서 헬라말을 하는 한 사람 그 사람의 말이 천부장에게 들어왔을 것이다. 이제는 헬라말이 아닌 우리를 위협하는 동일한 유대인이라는 것을 보면서 입이 달물어지는 일이 일어났다. 사람을 바울은 왜 지금 그들 앞에서 말하고 있을까요? 유언과 같은 한 마디가 들어온다. 바울이 어떠한 심정으로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 상황 가운데 담대하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을 격노케 하는 말이었지만 바울에게는 꼭 전해야 하는 말이었다.
부형들아 첫 마디를 떼고 있다. 부형들아 바울에 의해서 죽음을 당한 스데반이 마지막 남기고 간 말 첫 말을 부형들아 라고 한 말과 같은 말이다. 사도 바울은 사명이 분명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묵상을 하면서 빚진 마음과 같은 마음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복음은 값 없이 받았지만 성도는 복음에 다 빚진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절대복음에 나와있다. 바울은 빚진 자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다. 빚이 많은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닌 빚을 갚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한다. 빚이 아무리 많아도 갚기로 해야 하고 복음에 빚진 것은 더욱 그렇다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 복음에 빚을 지고 있는가? 원수에게도 빚진 것을 갚아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나를 예수 믿게 해준 공로자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평생 우리가 갚아야 할 우리의 복음 대상자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생 누가 원수인지도 모르고 누가 내 구원을 위해 애쓴지도 모르고 내가 어떻게 갚아야 할지도 모르는 사는 인생이 큰 문제이다.
내가 죽고 원수의 구원을 위해서 지금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적용) 나는 어떤 방어의 말을 하고 있는지, 평생 빚을 갚아야 하는 사람인지?
2. 바울은 지금 무죄가 아닌 유죄의 변호를 하고 있다
보통 변호를 한다고 하면 변명에는 변호와 해명이 포함되어 있는데 자기를 변호 한다. 바울은 자기의 무죄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율법주의자라고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성난 군중들 앞에서 절대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동일시 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는가? 그들이 하고 있는 잘못 자신이 동일하게 했던 저질렀던 잘못을 동일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자신이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를 죽이고 결박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다. 그것이 지금은 틀렸다고 옳지 않았다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바울이 어떤 위협에도 불구하고 전하는 것은 자신의 과건의 삶이 옳지 않은 것을 반증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죄의 고백을 회개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알게되었다. 그것에 대해서 담대하게 이야기 할 수 있따는 것을 바울은 보여준다. 열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열심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열심이라고 이야기한다. 복음이나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박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도에 대해서 박해했다고 한다. 왜 하필 이 도라고 애기 했는가? 수 많은 유대교에서 오직 유일한 참된 길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강조할 때에 이렇게 사용하였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것을 바울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떠한 열심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어떤 열심도 하나님께 대하여 대적하는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아닌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심에 불과하다고 한다. 여러분은 열심이 많은가? 우리의 스펙과 내 직업, 가정, 재산 등 포기하지 못 하는 안락함 등 때문에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못 하고는 있지 않은가?
내가 가는 그 길이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길이라고 착각하지만 예수님이 가신 그 길이 아닐 때가 많다 내가 원하는 길이 하나님께서 원하는 길이 아닐 수 도 있다. 유대인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지금 무죄에 대해서 변호하는 것도 시원찮은데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고 여러분도 내가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동일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가지고 극악무도한 죄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바울이 이야기 한다. 사실 여러분이 믿는 것은 그 도를 핍박하고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죄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처럼 들린다. 바울이 여러분이 저지른 죄 해결 할 수 없는 죄이지만 내가 죄를 깨달을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을 깨닫게 되는 것을 강조하는 것 처럼 보인다. 나는 여전히 교회에서 예배를 잘 드리고 이루고 하고 싶은 성공도 하고 싶은데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여러분이 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아둥바둥 살아도 열심히 살아도 열심을 부려도 예수 그리스도 없고 보혈이 없다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져버리고 간다면 잘 못된 길 십자가가 없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적용) 하나님을 대적하는 길을 가면서 내 길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변호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생이라는 것을 변호하고 있는가?
3. 바울은 그 인생의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해명하고 있다 (자신의 인생을 구속사로 해석하고 있다)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가던 길을 자신의 의지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망상에 사로 잡혀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오셔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들 교회에서 배운 구속사라는 단어는 신학 대학에서 배운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인류의 역사 속에 예수님께서 오신 이야기라고 배웠다. 문제는 인류 속에 자기만 빼고 생각을 하였다. 거창하게 인류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 가운데 찾아오신 이야기가 구속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류의 역사뿐만 아니라 내 인생 가운데 찾아오신 예수님의 이야기, 기복이 아닌 팔복의 관점으로 보는 것, 세속사가 아닌 그것이 구속사, 구원 받지 못한 영혼에 대한 안타까워 하며 성경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이고 그 사람의 이야기로 듣는 것 그것이 구속사이다. 바로 바울의 구속사가 이러하였다.
예수와 상관없는 인생을 살던 바울이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열심으로 가득 차 있던 바울의 인생가운데 찾아오신 사건 구속사의 사건이었다. 사실 바울은 예수님을 본 적도 없고 직접 박해한 적도 없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님이라는 말이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나게 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말한 그 길이 길이 아니고 나사렛 예수를 통한 그 길이 참된 복음이고 참된 구원이고 길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내 구원을 위해서 붙여주신 사람을 알아보지 못 하고 미워하고 원수처럼 여기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이미 예수님을 핍박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바울의 열심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는가? 여러분은 그 한 사람, 여러분과 그 한사람을 위해서 그 한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나는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데 끊입없이 변명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우리의 열심은 무엇을 위한 어디로 가기 위한 열심인가?
구원을 받지 못한 영혼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살까 그것을 이해하는게 구속사이다. 바울이 지금 그러한 마음으로 변호하고 해명하고 있는 것이다. 왜 저들은 저렇게 할 수 밖에 없는가? 나당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람이었는가? 이것들을 아는 안타까운 복음에 빚진 자들의 마음은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자신의 목숨이 위협당하더라도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그런 심정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복음 전도자의 삶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다.
적용) 여러분은 과연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서 어떻게 수고한 한 사람인지 생각해보자. 나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라.
<기도제목>
신천섭
1. 신결혼
2. 말씀 잘 보길
3. 회사 생활 잘 하도록
4. 직급에 맞는 역할 잘 감당하도록
홍주형
1. 일대일 양육 잘 받을 수 있도록
2. 취업
김진우
1. 허리건강
2. 신교제 가운데 음란 잘 참을 수 있도록
3. 독일어 공부 잘 하도록
이주홍
1. 항상 감사하기
2. 일에 잘 적응하도록
김경배
1. 학교생활 잘 적응하도록
2. 신교제 가운데 잘 참아내도록
3. 말씀 사모하기
한덕찬
1. 말씀 잘 듣도록
2. 매일 기도하도록
3. 아버지 건강 회복 잘 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