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된 바울
사도행전21:27-36
오늘 본문을 읽으며 복음에 체포된 적이 없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우리 인생은 사명을 위해서 왔다가 사명을 위해서 살고, 사명을 위해서 죽으면 되는 것인데
사명을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니 복음에 붙잡힌 것이 어색하고 늘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매이는 것이 싫어서 말씀으로 삶을 해석 받지 못하고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과 사건을
자신이 마음대로 해석하며 세상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꿈꾸는 것입니다
매어있고 묶여서 체포된 바울처럼 살아가는 것이 사명인 것인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펼치는 것이 비전이고 자신의 사명이라고 착각하는 우리의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생각하고 기대에 못 미치면 또다시 우리를 인정해주고 높여주는 세상의 피난처를 찾습니다
잘못된 해석으로 착각하기에 지금 가는 길이 광야로 가는 것이다 사명의 길로 가는 것이다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가요? 우리들 교회의 교인인 것이 행복한가요?
우리는 자동적으로 행복을 떠올리면 감정적으로 너무 좋고, 신나고, 즐겁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 말합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은
마치 행복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신약을 볼 때 언제나 복의 개념은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복의 개념이신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복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순종하면 표적, 능력을 보여주시겠지 생각합니다
사명으로 왔다가 사명으로 살아가며 사명의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묶이고 매이고 체포되어도 그리스도인의 자리에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왜 우리가 사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까요?
오늘 죽는다면 인생 가운데 제일 미련이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에게 미련으로 사명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그것이 우상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명으로 살아가다 오늘 죽는다면 아무런 미련이 없는 인생인데
오늘 죽으면 여전히 남아있는 미련이 우리가 사명으로 살지 못하게 잡고 있는 것입니다
그 세상 가치관이 여전히 우리의 안에 남아있는 한 우리가 사명에 묶이고 매어있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생각하며 죽는 것보다 힘든 것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내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편하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해달라 결과만을 바라기 때문에
복음을 위해서, 사명을 위해서 묶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세속적인 가치관이 너무나 무섭고 얼마나 단단하기에 말씀을 들어도 여전히 깨어지지 않고
문제 해결의 결과와 회복되는 순간만을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모든 순간이 감사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함이 아닐까요?
저번 주 설교 말씀으로 우리의 인생의 전부는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감사한다고 말하지만
문자적인 감사의 고백 뒤에 후회라는 어둠의 감정이 감사를 삼킵니다
온전함으로 회개를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후회가 죽어야 회개가 살아난다고 하셨습니다
사명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것을 바라고 꿈꾸며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고서 우리의 사건과 상황, 환경, 삶의 고난에 묶이고 매여서 사명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디자인하신 것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후회가 죽고 책망이 감사의 고백으로 나올 때 온전한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1 내 생각에 갇혀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 내 바람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와 바울이 같이 있음을 보고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며 외쳤습니다
이방인은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유대인에게는 이것이 바울의 발목을 잡기 좋은 모함이었습니다
마태복음12:1-8을 묵상한다면 혹 바울이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가더라도
모든 율법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시선으로 본다면
율법을 어기는 문제로 판단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구원의 생각이 아니라 내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유대인들과 같은 반응을 할 것입니다
내 생각에 사로잡혀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힐 수 없습니다
내 소망과 내 바람이 가득하다면 하나님의 소망과 하나님의 바람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와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물밑이 드러나는 사건 속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수 있다면
이 사실을 신뢰하고 믿는다면 인생 가운데 다가올 고난과 사건에 두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물밑이 드러나는 사건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사건이 아니라
사명에 매어가게 하시기 위하여 주시는 사건입니다
- 세상에 매어가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욕심과 세상의 미련은 무엇인가요?
- 가득 찬 내 생각을 버리고 내려놓게 하신 사건과 고난은 무엇인가요?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일 생각으로 우리 백성과 우리 율법과 우리가 사는 이 거룩한 곳을
네가 비방했다 말하며 모든 무리를 충동합니다
내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고 말하지만 사람은 다른 사람이
내 가족, 시간, 공간을 침범하고 비방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예수님이 없는 나의 삶은 그저 죄의 자리입니다
예수님 없는 나의 행복은 우상이고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구원이 아닙니다
이렇게 복음은 나의 생각을 침범해옵니다 구속사의 가치관이 나의 세속사의 가치관과 충돌합니다
이러한 충돌은 매주 일어납니다 담임목사님께서 사명에 매어 나아가는 것을
선포하시며 해석해 주심에 충돌이 일어나고 공동체 목자의 처방에 충돌이 일어나
내 마음 가운데 분함이 있고 비방이 피어나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내 생각이 단단하고 딱딱할수록 사명으로 살기가 어렵고 구속사의 가치관으로
사명 감당하며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 목사님의 설교에 일어나는 화는 무엇인가요?
- 목자의 처방에 화가 일어난 적은 없었나요?
2 말씀은 없고 나의 이런 말 저런 말만 있기 때문이다
온 성이 소동하여 온 예루살렘이 요란하다는 소문으로 천부장에게 들어가니
군인들과 백부장을 거느리고 급히 왔습니다
이 당시에 분위기는 질서 없이 산만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부장이 바울을 결박하여 진상을 알기 위해 영내로 데려갑니다
바울이 누구이고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보지만
모든 사람이 이런 말 저런 말로 서로 외치기에 그 소동은 잠잠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사명으로 살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변명이 많다는 것입니다 복
음이 없는 사람은 이렇게 분주함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말씀 없이는 삶 가운데 벌어지는 사건과 진상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소동과 요란만 있고 소문만 무성해 삶이 해석 안 되는 것입니다
온 성이 소동으로 요란한 것처럼 내 삶에 소동이 일어나고 요란하여 마음이 급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친 파도를 잠잠하게도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물밑을 드러나게도 하십니다
인생 가운데 모든 소동과 소란을 잠잠하게 하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말씀에 사로잡힌 바울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그 어떤 변명이 없이 잠잠합니다 그저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릴 뿐입니다
말씀에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은 말씀이 말하게 하시기까지 한마디 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다물게 됩니다
그저 하나님의 처분과 인도하심을 신뢰하기 때문에 요동함이나 분주함, 급함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회개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말 저런 말로 말이 많아지고 변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명으로 소란한 인생을 살아간다면 아직도 말씀으로 매어가는 인생이 아닌 것입니다
성자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죽어주신 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성자 하나님이 나의 마음에 들어온 가장 확실한 정체성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변명하느라 사명에 갇혀 살지 못하고 구원으로 사는 인생을 살지 못한다는 것을 오늘의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말 저런 말로 무너진 사건을 합리화했었지만 세상이 주는 비방에
그저 벙어리가 되어 인정하고 부족함을 고백하기를 바람입니다
- 책망의 말씀을 받을 때 그것이 인정되지 않아 변명하게 되는 나의 이런 말 저런 말이 무엇인가요?
- 내 죄를 드러내는 사건을 주시는 하나님께 회개와 감사의 고백이 나오나요? 여전히 원망과 불평이 나오나요?
3 사랑이 아닌 살기로 살기 때문입니다
구원으로 나아가고 사명으로 매어가는 사람은 사랑이 넘치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누가 봐도 힘든 인생을 살아가지만 여유가 넘쳐 다른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명이 아닌 야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오늘 본문에 무리를 충동하여 바울을 죽이고자 했던 유대인의 감정과 같이 차갑고 살기등등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볼 수 있습니다
사명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태도는 사랑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다니더라도 사명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눈에 살기가 서려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나의 계획에 늦어지고
기도제목에 응답이 늦어지면 불평을 하고 있지 않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구원과 나의 욕심의 사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사명과 야망의 차이는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사명으로, 하나님의 구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맞는가는
우리가 사랑으로 행하는지 살기로 이를 갈고 있는 거지로 자문해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체포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복음에 갇힌 자였습니다
복음을 가지고 사명에 매어서 체포된 바울은 사도행전을 쓰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마음껏 사용하시도록 하나님 손에 매어있는 인생,
사명으로 오늘을 살고 주님을 찬양하며 떠날 수 있는 인생이 되길 바람입니다
- 사랑의 사람인가요? 살기등등한 사람인가요?
- 오늘 죽어도 미련 없이 사명을 위해서 살았음을 감사할 수 있나요?
- 이를 갈게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나요?
- 나눔
(대구에 사는 우리 은호는.. 함께 하다 아쉽지만 집으로..ㅠㅠ)
오늘은 가배두림에서 조인입니다ㅎ
작은 골목을 지나서 문을 열자 색감이 좋은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위기로 신선했습니다
또한 정말 놀랍고 새로운 것은 가배두림에서 여섯 목장이 모여 조인이..ㄷㄷ
(세 개의 팀이 충동하여 소동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충실했습니다ㅎ)
자신이 생각하는 나의 모습을 소개하며 삶의 고난과 기근을 엿볼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들으며 자신의 생각으로 감추어진 각자의 사랑스러움을 엿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었듯이 서로를 위해 눈물 흘릴 수 있기를 바람이고
말씀에 매어, 공동체에 묶여서 사랑이 넘쳐나는 사명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는
하나은, 양아씨네 목장이 되길 바람입니다~
표현은 실력이라고 하셨죠!? 모두 요동하여 오글오글했던 가장 강력한 삼행시는 지금도 귀를? 붉어지게 합니다ㅋㅋㅋ
이렇게 주영이형의 많은 준비와 나은 누나네 목장의 적극적인 참여, 리액션으로 참 즐거웠습니다^^~

- 기도제목
87(6) 하나은
- 새학기, 하나님께 내려놓고 준비할 수 있도록
- 가치관이 흔들리는데 생활 예배로 분별력 가질 수 있도록
88 양주영
- 마지막 학년 개강하는데 우선순위 확실하게 할 수 있도록
- 건강을 위해서
91 전유정
- 개강, 하나님께 의지하고 행복하게 학교생활할 수 있도록
- 생활 예배 온전히 드릴 수 있도록
90 박현우
- 가정 사랑으로 섬길 수 있도록
- 생활 예배 사수할 수 있도록, 공동체에 붙어있을 수 있도록
- 진로, 하나님 뜻 묻고 구할 수 있도록
94 김현주
- 개강, 수강신청 인정할 수 있도록
- 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 우선순위 두고 시간 할애 잘 할 수 있도록
92 이강민
- 양육교사, 말씀 묵상을 통해서 지혜 주시고 잘 깨달을 수 있도록
- 진로,(일과 공부 고민) 하나님 뜻 묻고 구할 수 있도록
96 남궁의정
- 새학기, 유혹 이겨낼 수 있도록 첫 발판 잘 디딜 수 있도록
- 어머니와의 관계 지혜롭게 사랑으로 섬길 수 있도록
95 박진현
- 새학기, 관계 두려움 회피하지 않도록
- 부모님과 친척, 가정을 위해 애통한 마음으로 간구할 수 있도록
- 섬기는 부서에서 관계와 소통 온전한 사랑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95 서준원
- 공부하는데 지혜를 주시고 시간 할애 잘 할 수 있도록
- 진로, 하나님 뜻 묻고 갈 수 있도록
95 김은호
- 개강, 적응 잘 할 수 있도록
- 일본어, 공부하는데 지혜주시고 시간 할애 잘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