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구원
삼하 22:36-51
2015.02.15
김양재 목사님
참석자: 권민정, 강리경, 이정은
1. 큰 구원은 말씀과 구원이 같이 가는 것이다.
36절: 주께서 주의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는 주님이다. 구원은 모든 것의 방패가 될 수 있다. 구원의 방패는 구원때문에 했던 모든 일을 주님께서 책임진다는 의미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온다. 하나님께서 내게 구원의 방패를 주었기에 내게 힘과 능력이 없었지만 모든 일을 구원때문에 생각하고 결정하고 갈등했더니 그것자체가 방패가 되었다. 본질을 위해 비본질을 포기했더니 오히려 사단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었다.
방패는 어떤일을 할 때 앞장을 세울만한 것이나 사람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앞장세울 말은 구원이다.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시므로 우리에게 얻어진 값어이 주어진 선물이다. 진노로 힘을 빼고 하나님으로만 힘을 삼게 되면 하나님만이 구원이시기에 저절로 구원이 방패가 되는 것이 있다. 이 구원을 방패 삼아 지금까지 살아왔다. 구원은 모든 것의 시작, 과정, 마지막이다.
말씀과 구원이 같이 가야 큰 구원이 이루어진다.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셨다고 하셨다.(히브리서 3장) 내가 어떻게 사람을 붙들겠는가? 잠시 미모, 돈이 있어서 붙들 수 있겠으나, 무슨 힘으로 돈과 건강을 붙들겠는가. 구원을 방패삼으면 능력의 말씀으로 돈과 건강에서 구원이 된다.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뿐 아니라 죄를 붙드신다고 하셨다. 말씀을 붙들고 가는 사람은 겸손하고 자기 잘못을 시인한다.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붙든다. 내가 먼저 잘못을 시인하면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높여주신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능력이다.
구원받은 후에는 만물을 붙드는 인생이 되게 하신다. 매일 말씀을 통해서 내 죄를 보고 오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무엇보다 큰 구원은 큐티 하시는 분들의 마음을 붙들게 하셨다. 이혼하려는 사람의 마음을 붙들어서 주님을 영접하게 하신다.
말씀과 구원이 같이 가야한다. 말씀을 보며 큰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 구원을 받았으면 말씀을 계속 보며 나아가야 한다. 또한 큐티의 목적은 내 자신의 치유에 국한 되어서는 안된다. 영혼구원으로 나아가야한다. 마찬가지로 말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구원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말씀은 구원으로 구원은 말씀으로 결론이 나야한다.
적용하기: 말씀따로 구원따로인가 ? 구원 받았으니 말씀은 필요 없다인가? 말씀이 아닌 내 지식, 물질, 감정으로 남편, 아내, 자식의 마음을 붙들려고 애쓰려고 하지는 않는가? 능력의 말씀으로 붙들고 있는가?
2. 큰 구원은 온유함이다.
구원의 방패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니 나를 크게하신 주의 온유함을 경험하게 된다. 모든 복의 첫째는 가난한데서 시작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 경제적으로 가난한자의 복이 크다. 그 다음이 애통한자, 그 다음이 온유한 자라고 한다. 천국을 소유한 자는 이 땅에서 기업을 받는다고 한다. 그렇기에 가난한 것을 보고 애통하지 않은 자를 보고서는 온유하다고 할 수 없다.
온유란 짐승을 길들여서 주인뜻대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그 짐승도 주인뜻대로 길들여지는데, 우리는 짐승만도 못하기 때문에 그 뜻대로 길들여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우리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땅을 기업으로 준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땅을 내 소유로 만들지 않아도 이 세상 땅이 다 내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온유하다는 것이다.
가장 온유한 모세(민수기 10장)가 가나안 땅을 얻고 가야하는데, 바라보고만 가는 모델이 되게 하셨다. 백성들이 모세를 치려고 할 때, 모세가 참았을 때 온유가 지면에서 솟아오른다고 해야 했는데, 모세의 형제들이 비난했을 때 온유가 지면에서 솟아오른다고 했다. 즉, 식구가 힘들게 할 때 가장 큰 온유가 나온다는 것이다. 진짜 온유하기가 힘든 곳이 가정이다. 그러나 내가 믿는자라면 집안 식구일에 대해서 욕을 할 수가 없다. 육적, 정신적 싸움에서 이기기가 어렵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영적 싸움이다. 영적인 싸움을 가장 가까운 식구끼리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이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했다.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모세는 어릴 때부터 에굽에서 살았기에 에굽의 문화가 익숙했고, 부인이 죽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이해해줘야하는데 이해해주지 않았기에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렸었다. 믿는 식구들끼리 모이는 것이 가장 어렵다.
온유는 참는 것이지 나약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무조건 참는다. 그러나 그것은 온유가 아니다. 그것은 연약함이고, 회피를 하는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진리를 부여잡는 사람이다. 진리를 부여잡기 때문에 진리를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한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들은 절대로 약하지 않는다. 온유함은 본래 굽어보심, 낮춤, 낮도움, 가난함 등의 뜻을 갖고 있다.다윗은 자기가 왕이 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초라한 목동으로 사울의 미움을 받으며 동굴에서 연명을 받았고 기약할 수 없는 삶을 살았다. 밧세바 사건만 생각해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왕이 될 수 없다. 다윗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시고 찾아오신 주님의 온유하심이 나를 크게 하셨다고 하는 고백인 것이다. 주님의 가난하심으로 나를 부요케 하고 낮아지심으로 나를 높이신다. 십자가의 하나님의 자기비하로, 낮아짐으로 다윗을 높이셨다. 구원과 말씀으로 온유해가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주님의 온유가 나를 크게 한다고 했다. 화내면 지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화를 내는 것도 온유이다. 온유는 자기 권리를 쓰지 않는 것이다. 하늘 영광을 버리신 주님의 온유가 우리를 살리셨다. 십자가로 처리한 온유를 주셨기에 다윗을 크게 하셨다. 이것이 큰 구원을 온유로 준비하는 것이다.
적용하기: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로 내가 크게 된 경험이 있는가? 낮추고 굽어보고 도와주고 가난함으로 크게 된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
3. 큰 구원은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는 것이다.
우리가 싸워야할 사단의 세력은 아주 절망적인 권세를 가졌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권리는 절대로 용납해서도 타협해서도 안된다. 나를 알아야 상대를 알 수 있다. 상대에 대해서 알았다면 결사각오로 나가야 한다. 적당한 것, 다음으로 미루는 것은 없다. 내 속의 사단은 교양정도로 안 물러간다. 원수를 끝까지 쫓아가서 물리쳐 돌이킨 사람은 구원의 방패와 온유함으로 준비된 사람이 아니다. 다윗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원수를 물리쳤다. 다윗은 연약했으나 하나님께서는 이끌어주시고 넓은 곳으로 인도해주셨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다윗이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인데, 교회를 다니면서도 '능력'이 언급되면 예배는 안드리고 세상자랑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능력으로 띠 띠우사(40절)' 은 어떤 사람이 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doing이 아니라 being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전투의 능력이라는 것은 깨끗함인 것이다. 깨끗함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영원한 쉼터가 되어야 하지만, 세상의 불의를 물리쳐야 하는 군사여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는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 간증이 울려퍼져야 한다. 내게서 원수들로 등을 돌리게 하시고,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셨다는 것은 미워하는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수는 여러가지 형태로 찾아온다. 영적인 싸움을 육적인 싸움으로 생각하는 것. 즉, 어떤 사건이 끝나면 쉬고 싶은게 있다. 그래서 쉽게 넘어진다. 입시도, 시어머니 간병도 그렇다. 육적인 싸움을 영적으로 잘 싸운 사람은 다윗처럼 잘 서있게 된다. 항상 우리가 구해야 하는 것은 쉼이 아니라 계속 서 있는 것이다. 입시를 영적으로 잘 치룬 사람은 붙어도 떨어져도 잘 서있게 되지만, 일 년을 좋은 선생에게 매달린 사람은 붙어도 떨어져도 넘어진다.
적용하기: 큰 일이 지나고 나는 다 내려놓고 쉬고 싶은가? 여전한 방식으로 똑바로 서고 싶은가? 너무 무거운 짐이라고 포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둘러보아도 대답할 자가 없는 것은 내 삶의 결론이다. 각종 사건에서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는 삶으로 산 것이 내 삶의 결론이다. 다윗이 자신의 자리에서 통일 왕국의 왕이 될 때 곳곳에서 굴복했다. 사울과의 싸움이 너무 힘들어서 열방을 무찌르는 것은 힘들지 않았던 것이다. 풍족하지 않은 상황에서 풍족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럴 수 있었다.
남편 한 사람에게 순종하다보니, 만 명 순종하는 것이 더 힘들다. 한 사람을 잘 섬기는 것이 만명을 삼기는 것보다 어렵다. 그렇게 한 사람을 구원하니, 다른 사람을 쉽게 믿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택함받은 자라면 돈과 권세와 가뭄과 어떤 것에서도 견고함이라도 만족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복음을 그들을 떨게 만든다. 내 기도와 순종을 통해 이방인들까지 견고한 자가 자기 성에서 떨며 나온다.
다윗의 구원이 갖는 큰 의미는 내 백성이 다툼에서 건져주셨고, 모든 이방인들을 굴복하게 하셔서 다윗을 으뜸으로 삼으심에 있다. 소극적, 적극적 차원에서의 구원을 얻었다. 가족과의 다툼에서 구원으로 승리하면 열방으로 복종하게 한다고 하셨는데,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원수는 내 자신이고, 내자신의 이기적이고 좀 더 인정받으려는 노예근성이라고 하신다. 우리가 남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이 노예근성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사회에서 노예는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평가할 수 없었다. 노예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주인뿐이기 때문이다. 니체의 주장에 따르면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해할 때 우리를 노예의 지위로 하락시키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종이어야 한다. 주인의식을 갖고 종노릇을 하면 그 종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적용하기: 응답받는 구조속에서 살고 있는가? 힘든 일을 당했을 때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에게는 노예근성이 있는가 주인의식이 있는가?
4. 큰 구원의 목적은 감사다.
think의 목적은 thank이다. 다윗의 결론은 여호와는 살아계신다. 고통은 지나가고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다윗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심했을 것이다. 배반과 죽음을 통해 나의 구원의 반석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증거는 하나님께서 다 보복해주시고, 원수 갚아주시고 나를 높이시고 건지신다. 결론은 우주적 통치이고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아브라함은 결국 원했던 것은 하나님 나라였다는 것이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광야를 건넌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 다윗의 전 일생이 나와있는 것이다. 신앙이란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이다. 나에게 피난처 되시고 반석되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건이 온다. 내가 깨어질 때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려고 그런 것이다. 모든 구원역사의 유일한 근거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외치면서 결론을 맺는 것이다.
큰 구원은 아이도 진노를 경험하면 깨끗해지고 구원의 방패를 통해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도제목:
민정:
-주인의식을 갖고 갖고, 공동체 안에서 내가 먼저 회개하도록
-큐티와 생활예배 일주일 간 잘 지키도록
-영육간에 건강 지켜주시길
희령:
-술을 끊을 수 있도록
-남자친구나 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 게으름에서 벗어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수진:
-금연시도는 계속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무너지고 있으니, 잘 끊어낼 수 있도록
리경:
-개강까지 얼마남지 않은 시간 허비하지 않고 잘 살도록
-매일 아침 큐티, 설교 듣도록
-명절에 집으로 친척들이 올텐데 아무 사고 없이 잘 보낼 수 있도록
정은:
-배우자에 대한 기도하도록
-개강하고 아는 사람 통해 작곡을 배우려고 생각하는데,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학교 수업과 병행하며 할 지 편입할지 잘 결정할 수 있도록
-명절동안 싸움 없이 잘 보낼 수 있고 혈기부리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