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구원"
사무엘하 22:36~51
■ 설교 요약
노래의 말씀으로 하나님에 대한 간증을 한 다윗이 깨끗함을 이루어 벅찬 마음으로 큰 구원을 찬양한다.
큰 구원은?
1. 말씀과 구원이 같이 가는 것이다. (36절 a)
주님은 구원의 방패를 내게 주시며 구원은 모든 것의 방패가 될 수 있다. 구원의 방패란 구원 때문에 한 모든 일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뜻이다. 구원은 인간의 수고와 자격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어떤 부족한 사람일지라도 차별 없이 구원이 된다. 방패는 어떤 일을 할 때 앞장을 세울만한 것이나 사람이라고 정의 된다. 정말 모든 사람에게 앞장 세울 말은 구원이다.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죄인들을 위해 죽으심으로 얻어지는 값 없이 주어진 선물이다. 진노로 힘을 빼고 하나님으로만 힘을 삼게 되면, 하나님만이 구원이시기에 저절로 구원이 방패가 되는 것이 있다. 36절에서는 구원의 방패를 주셨다고 했는데 31절에서는 말씀으로 피하는 자에게 방패라고 하신다. 말씀과 구원이 같이 가야 큰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히1:3,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셨다고 했다. 만물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다. 말씀을 덧입으면 우리도 만물을 구원하고 붙들 수 있다. 구원을 방패 삼으면 능력의 말씀으로 구원이 된다. 말씀을 붙잡고 가는 사람은 항상 겸손하고 자기 잘못을 시인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도 붙들 수 있다. 내가 먼저 잘못을 시인하면 남들이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히신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기 때문에 능력이 있다. 말씀을 보며 큰 구원을 이루어야 하고 구원을 받았으면 계속 말씀을 보며 성화를 이루어가 한다. 또 큐티의 목적은 내 자신의 치유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 구원이듯이 말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말씀의 목적은 구원이 되어야 한다.
[적용 Q.] 말씀 따로 구원 따로인가? 구원 받았으니 말씀은 필요 없다고 하는가? 말씀이 아닌 내 지식과 물질과 감정으로 남편, 자식의 마음을 붙들려 애쓰지는 않는가? 만물을 붙들고, 죄를 정결케 하시는 능력의 말씀인 구원의 방패를 체험하고 있는가?
2. 온유함이다. (36절 b)
구원의 방패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면 나를 크게 하신 주의 온유함을 경험하게 된다. ‘온유’는 짐승을 길들여 주인 뜻대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짐승만도 못하기에 주인 뜻대로 쓰임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온유하려면 내가 짐승만도 못한 것을 날마다 인정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위로를 받는 것이다. 민12:3에 형제인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할 때 모세의 온유가 지면에서 승했다고 써 있다. 즉, 식구가 힘들게 할 때 가장 큰 온유가 나온다는 것이다. 진짜 온유하기가 힘든 곳이 가정이다. 믿는 자라면 집안 식구 일에, 형제 일에, 회개 할 것밖에 더 있겠는가? 상한 심령이 되니 저절로 온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온유는 참는 것이다. 온유는 나약한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가지려고 무조건 참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온유가 아니라 연약함이다. 온유한 사람은 진리를 부여잡는 사람이다. 진리를 부여잡기 때문에 진리를 위해서는 죽음도 사양하지 않는다. 실제로 온유한 사람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줄 아는 사람이 온유한 것이다. 온유함은 본래 굽어보심 도움 낮춤 가난함 등의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온유하심이 아니라면 다윗이 어찌 왕이 될 수 있었겠는가? 지극히 높은 데 계신 하나님이시라면 다윗을 구원하기가 어려우셨을 것이다. 다윗을 위해 자기를 낮추시고 찾아오신 주의 온유하심이 나를 크게 하셨다. 십자가의 하나님이 자기비하로 죽어주심으로 다윗을 크게 하셨다. 하나님은 다윗을 준비시키시기 위해서 이렇게 희생하시고 낮아지시고 굽어보셨다. 구원과 말씀으로 온유해 가게 하시는 주님이시다. 주님이 주신 온유가 나를 크게 하신다. 화내면 지는 것이다. 그러나 올바른 화를 내는 것도 온유함이다. 온유는 자기 권리를 쓰지 않는 것이다. 하늘 영광을 버리신 주님의 온유가 우리를 살리셨다.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를 주셨기 때문에 다윗을 크게 하셨다. 이것이 구원의 방패를 온유함으로 준비시켜주셨다는 뜻이다. 이것이 최고의 준비인 것이다.
[적용 Q]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함으로 내가 크게 된 경험이 있는가? 낮추고 굽어보고 도와주고 가난함으로 크게 된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
3.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는 것이다. (37~46절)
우리가 싸워야 할 사단의 세력은 우리를 멸망에 빠뜨릴 수 있는 절망적인 권세를 가졌다. 결코 용납해서도 타협해서도 안 된다. 자기를 알아야 상대를 알 수 있다. 또 상대에 대해 알았다면 결사각오로 나가야한다. 적당한 것은 없다. 다음으로 미루겠다는 것도 안 된다. 내 속의 사단은 교양 정도 가지고는 안 물러간다. 대적 마귀는 쉬거나 지치거나 하는 것이 없다. 원수를 끝까지 쫓아가서 원수가 망하기 전까지 기필코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구원의 방패와 온유함으로 준비된 사람이다. 다윗은 원수를 완전히 무찌르게 되었다. 주님이 온전히 무찌르게 하셨다는 것이다. 이처럼 당당한 모습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다윗은 강한 원수들의 틈새에서 숨쉬기조차도 힘들던 연약한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이끌어내셔서 발을 넓게 하시고 넓게 트인 대로를 열어주셨다. 전쟁하게 하려고 능력을 주셨는데 우리는 보통 능력을 주셨다고 하면 하면 눈에 보이는 큰일을 생각한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데 ‘능력’ 하면 세상 자랑을 생각한다. '능력으로 띠 띠우사' 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doing이 아니라 being의 문제다) 영적 전투의 능력이란 깨끗함인 것이다. 깨끗함으로 계속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것이 능력이고 그래야 중간에 다른 데로 새서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영혼의 쉼터가 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불의를 물리쳐야 하는 군사이기도 하다. 교회에서는 세상을 이기고 승리한 간증이 울려 퍼져야 한다. 반복되는 죄를 이겼노라고, 죄를 끊었다고 계속 승전가가 울려 퍼져야하는 것이다. 원수들이 저절로 등을 돌리고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셨다는 것은 미워하는 자가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면 원수가 등을 돌리고 패배를 인정한다. 원수는 여러 가지 형태로 찾아온다. 우리는 어떤 사건이 끝나면 쉬고 싶은 것이 있다. 그러다가 넘어진다. 그러나 영적으로 말씀 가지고 잘 싸운 사람은 다윗처럼 서 있게 된다. 항상 우리가 원해야 하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도 쉼이 아니라 똑바로 서 있는 것이다. 이것이 큰 구원이다. 다윗이 노래의 말씀으로 간증을 하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하니 깨끗함으로 나아가게 되고 하나님의 공의와 온전함으로 나아가게 되니 큰 구원이 일어나서 곳곳에서 승전가가 울려 퍼지게 됐다. 결국 이 땅에서 원수로부터 승리가 목적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길고 긴 여정이 필요한 것이다. 이 여정에 오직 하나님이 동행하셨다는 것이 다윗의 찬송이다.
[적용 Q.] 큰 일이 지나고 이제는 다 내려놓고 쉬고 싶은가? 여전한 방식으로 서고 싶은가? 무거운 짐이라고 포기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둘러 보아도 구원할 자가 없는 것은 내 삶의 결론이다. 대답하지 아니하실 기도만 부르짖었기 때문이다. 다윗이 자신의 자리에서 17여 년간의 혼란기를 거쳐 통일 이스라엘을 이루니 곳곳에서 굴복한다. 사울과의 싸움이 너무 힘든 싸움이었기에 그것에 비하면 열방을 무찌르는 것은 도리어 쉬운 일이다. 풍성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 풍성을 보여주니 들은 즉시 순복하는 자들이 나온다. 내 소문은 내가 말하고 다닌다고 해서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들려져서 알게 되는 것이다.
택함 받은 자라면 돈, 권세, 가문 어떤 것의 견고함이라도 만족이 있을 수 없다. 복음은 그들을 떨게 만드는 것이다. 내 기도를 통해 내 순종을 통해 식구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견고한 자기의 성에서 떨며 나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한다.
다윗의 구원이 가지는 큰 의미
1. 내 백성의 다툼에서 건져주심
2. 모든 이방 민족을 굴복하게 하여 다윗을 으뜸으로 삼으심
소극적, 적극적 구원을 모두 이루었다는 것이다. 즉, 가족과의 다툼에서 구원으로 승리하면 열방이 복종한다는 것이다. 제일 무서운 원수는 내 자신이고 내 자신의 이기적이고 남들보다 좀 더 인정 받으려는 노예 근성이다. 우리가 남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노예 근성 때문이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는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평가하지 못했다. 노예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주인뿐이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과 평가에 연연할 때 우리는 자신을 노예의 지위로 하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종이어야 한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종노릇을 하면 그 종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적용 Q.] 나는 응답 받는 구조 속에 살고 있나? 힘든 일을 당했다면 내 어려움을 누가 도와줄 것 같은가? 노예 근성이 있는가 주인 의식이 있는가? 남의 평가에 민감한가 항상 생색내지는 않는가?
4. 큰 구원의 목적은 감사와 찬송이다. (47~51절)
Think의 목적은 Thank이다. 다윗의 결론은 “여호와는 살아계신다.”는 것이다. 수많은 고통을 경험했지만 아무리 힘든 고통이라도 그 고통은 지나가버리고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여호와 밖에 없다. 다윗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보통 사람보다 더 했을 것이다. 사무엘도 죽고 요나단도 죽고 아히도벨도 반역해서 자살하고 요압은 다윗의 충성된 부하로 알려져 있으나 마음이 안 통하는 긴장시키는 자이고. 가장 가까운 자들이 이러니 얼마나 외로웠겠는가? 그러나 그럴수록 나의 바위, 내 구원의 바위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됐다. 생존하시는 하나님의 증거는 나를 위하여
보복(원수 갚아주시고)하시고 내게 복종하게 하시며 원수들에게서 이끌어내시며 대적자 위에 나를 높이시고 강포자에게서 건지시는 이란 것이다. 다윗을 구원하시고 다윗 왕국을 보전하신 목적은 결론이 우주적인 통치이고 하나님 나라 건설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도 나중에 자기가 그렇게 원했던 것이 자식도 땅도 아닌 하나님 나라였음을 고백했다. 다윗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깨우치게 하기 위해 다윗의 전 인생이 사용되고 있다. 다윗은 소소한 것들과 찌질함의 인생을 다 보였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고 가장 믿음의 사람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기도, 봉사, 헌신을 죽도록 했는데 보여지는 것이 없으면 헛 믿었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우리 모두 보상을 바란다. 신앙이란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이다. 다윗이 계속 하나님을 찬양했듯이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 사건이 오는 것이다. 내가 깨어질 때마다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다윗의 업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깨어질 때마다 하나님을 알아갔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모든 구원 역사의 유일한 근거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찬양함으로써 결론을 짓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원하시고 다윗왕국을 보전하신 목적은 흑암과 죄악이라는 적대세력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온 천하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함으로써 영원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시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다윗에게 베푼 큰 구원의 완성판이다. 큰 구원은 아이도 진노를 경험하면 깨끗해지고 구원의 방패를 가지고 원수를 무찌를 수 있다는 것과 감사와 찬송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적용 나눔
Q. 내 지식이나 물질이나 감정으로 사람을 붙들려고 하지는 않는가?
A 자매
굳이 나한테 다가오지 않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감정 소모를 하지 않는다. 다만, 정말 '내 친구다' 싶은 사람에게는 내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는다.
B 자매
감정으로 붙들려고 한다. 대화를 할 때는 눈을 자주 마주치려는 편이다. 친구가 대학 입시 준비하며 자소서 쓸 때도 힘껏 도와줘서 그 친구가 1차에서 합격했다.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 사람이 있으면 너무 신경 쓰이고 내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그 과정에서 에너지 소모가 큰 편이라 많이 눌리곤 한다. 이와 관련해서 목장에서 목 매달고 싶은 몇 가지가 있다.
1. 사람들의 말을 엄청 신경 쓰면서 정작 나도 내가 싫어하는 아빠의 모습을 가지고 있음
2. 인정 욕구가 심해서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잘해줌
3. 교회에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음 (당사자들은 내가 그들을 싫어하는지 모를 것이다.)
C 자매
소외감 느끼는 것 같은 사람들을 모두 챙기려 하는 열심이 있다. 어느 순간 돌아보면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내 얘기보다 남이 원하는대로 하고 있더라. '다음에 얘기하지 뭐' 하며 계속 내 의견 표현하는 것을 미루는데 말씀 때문이 아니라 그냥 불편한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이다.
D 자매
감정으로 사람을 붙드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누구한테나 친절해야 하고 어떤 사람이 나를 나쁘게 보는 게 싫다. 불신 교제 끊어야 하지만 이와 같은 이유로 관심남도 멀리 하지 못하고 평소처럼 대했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이 관심남과 얘기를 하게 됐는데 그 남자가 교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더라. 주변에 독실한 친구가 많다고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 다 이상하게 여길 줄 알았는데 신앙 생활에 대해 관심을 많이 보여줘서 감사했고 계속 하나님 얘기를 하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 기도 제목
"여전한 방식으로 신교제 위해 기도합니다"
정다은(96)
- 입교 받을 수 있기를 (입교 교육 마침)
- 곧 시작 될 학교 생활 중 여러가지 고민들로부터 자유해질 수 있기를
변지영(92)
- 진로 위해 (무엇을 하며 돈 벌어야 할지 모르겠음)
정지선C(96)
- 오늘 목 매단 죄들 합리화 하지 않고 큐티로 회개할 수 있기를
-할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김소연(95)
- 큐티 잘 할 수 있기를
- 합격한 대학에 정이 가지 않아서 고민이 많은데 진로 위해
이혜영(92)
- 노예 근성을 버릴 수 있기를
- 깨끗함을 지킬 수 있기를
- 건강 지켜주시기를
유신혜(91)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크다는 게 느껴지는 신혜.. 이번에는 라오스로 그 사랑을 전하러 갔습니다 :)
- 선교사가 아닌 예배자의 마음으로 라오스 땅을 축복할 수 있기를
- 하나님의 나라 라오스 땅에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를
- 팀원들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선교사님 하시는 일 잘 도와줄 수 있기를
이나래(89)
- 말씀 묵상하며 날마다 더 가까이 하나님께 갈 수 있기를
- 회사 사람들을 대할 때도 구원을 생각할 수 있기를
- 곧 제대하는 동생의 신앙 생활 위해
장연주(87)
- 여행 가는데 잘 누리고 영육간 회복하여 돌아올 수 있기를
- 사소한 것에서부터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할 수 있기를
- 믿지 않는 친척들의 구원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사랑으로 잘 섬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