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깨끗함 사무엘하 22장 21절-35절
오늘 본문에 깨끗함 이란 단어 여러차례 나온다. 깨끗함은 착한 생각 넘어서는 생각, 구별된 언어, 표정 이라 생각된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위해 주신 사건 주시는 이유 하나님의 형상 회복하라는 것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것이다 거룩은 깨끗함이다. 거룩을 향한 푯대는 깨끗함이다. 깨끗함에 대해 생각해 보자
1.공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의 공의에 따라 상주시고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다고 말한다. 다윗은 자신이 의가 없음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말하나? 성경에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은 것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의로 여기셨다고 하였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공평하고 의로운 도를 알려주는 것이다. 나는 비록 실패하고 넘어지지만 하나님의 공평하고 의로운 약속을 믿는 것이다. 사울을 만나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을 알고 육이 무너진 만큼 영이 보이기 시작하며 하나님 나라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공의가 임하여 다윗에게서 공의가 나가게 되었다.
*삶에서 공의로 여겨주신 적용이 있습니까? 공과 사를 구별하십니까?
2.말씀이 필요하다.
깨끗함 위해 말씀 묵상이 절대적이다. 시편1편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성경 제일 중앙에 위치한 말씀이다. 묵상하는 것은 악을 행하는 세상 사람들의 방식을 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에 들어가 슬픔, 고난 들어야 되는 것이다. 죄덩이리 인간이 내가 좋아하는 죄를 버릴 수 있습니까? 다윗처럼 내게 찾아온 고난 많을 때 고난 잘 살아냈기에 우리가 이렇게 살 듯이 우리가 고난 잘 살아내면 주변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되는 것이다. 이때 지침서가 여호와의 도이다. 믿음이란 자기 열심이 아니라 자기 죄를 인식하는 것이다. 구속사는 어디나 공식이 같다. 우리가 깨끗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법도 주셔서 자신의 모습 직면하게 하신다. 죄인들의 특징 죄책감으로 기도 안하고 말씀 안본다. 우리의 딜레마 믿음생활하는 내가 가고 싶은 길로 간다. 말씀을 보니까 그래도 흉내 내고, 최고의 겸손은 하나님께 묻는 것이다.
* 여러분에게 말씀묵상은 어떤 의미인가? 큐티 즐거운가? 형식적인가? 아예 안 하나?
3.깨끗함이란 완전하신 하나님께 시선을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다윗이 자기는 완전한 자라고 선포한다. 진노를 당한 후, 깨끗함 위해 싸워 나간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로 설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세상의 완전함 하나님의 완전함과 다르다.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하심이다.
* 사람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완전주의자입니까? 하나님의 완전함입니까?
4.성벽을 뛰어넘는 승리 가져다 준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하나님을 의로하고 의지하니 높은 성벽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대나무는 씨를 심고 물을 주고 이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고 삼년되면 삼십센치 자라고 사년째 그대로 있다가 오년이 되는 해에 눈에 띄는 성장이 아닌 폭발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어떻게 그런가? 오년간 깊히 얽히고 설킨 뿌리내림으로 인한 것이다. 오년 후 성장시 한시간 동안의 성장은 소나무 삼십년간의 성장에 해당하는 놀라운 성장을 한다. 다윗은 사울가와 얽히고 설킨 뿌리내림이 있어 그것이 자양분이 되어 뛰어넘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눔
지난 주에 이어 이정우 형제의 가게에서 도윤형, 성국, 정우, 영진, 선우, 민, 정모, 대은, 승현 아홉명이 모여 정우형제가 준비해 준 식사를 함께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사 후 길진 않았지만 정우형제의 가게운영에서 최근 생긴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듣게 되었고, 늦게라도 동석한 영진과 성국도 최근 하는 일이 어떤지 나누었습니다. 식사로 많이 나누진 못한 거 같았지만 다른 곳에서 할 수 없는 고난과 수치를 나눌 수 있는 자리임을 알게 해 준 나눔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