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4;휘문2부 노성혜 목장 보고서
날짜: 2015년 02월 8일
참석자 : 노성혜 목자(82) 김슬기(83) 윤정원(83) 윤경주(82)
깨끗함
삼하 22:21-35
★ 주일설교
착한 식당이라고 하는 프로그램 아시죠? 건강한 재료를 이용해서 양심적으로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을 착한식당으로 선정했습니다. 한번 선정되려면 수많은 몰래카메라에 좋은재료를 깨끗함으로 관리하는지에 대해 합격을 해야 합니다. 그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식자재를 함부로 관리하는 식당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정된 곳은 맛집이라기 보다는 관리, 깨끗함, 건강에 좋은 것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식당도 깨끗함으로 하지 않으면 갑자기 들이 닥친 몰래카메라에 덜미가 잡혔습니다. 돈이 목적이면 모든 것이 결국 구멍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구별된 가치관은 식당을 해도 교수를 해도 목사를 해도 너무나 필요한 가치관입니다. 교회에서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서도 구별된 가치관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깨끗함, 깨끗한대로, 깨끗한자, 깨끗하심 등과 같이 깨끗함이 여러차례 나옵니다. 깨끗함은 착한생각을 넘어서는 구별된 가치관, 구별된 언어, 구별된 표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노래의 말씀으로 사울과의 전쟁과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서 나의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기 위해서 수많은 사건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라”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은 깨끗한 것입니다. 결국 노래의 말씀으로 가야할 푯대는 깨끗함입니다. 그래서 오늘 깨끗함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려 합니다.
1.깨끗함이란 공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21절 지난 주일설교 마지막 구절에 보면 진노가 나서 나의 물밑이 드러났고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 했고 넓은 곳으로 사명으로 가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서 사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공의로움이고 내손의 깨끗함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자신에게 의도 없고 깨끗함도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왜 다윗이 내 공의에 따라, 내 손의 깨끗함을 따라 갚으셨다고 했을까요? 하나님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창15:6). 내 의란 완전한 인간의 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이렇게 신뢰하는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이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공평하고 의로운 도를 알려 주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란 자기 죄를 보는 것이지만 자꾸 길로 가는 와중에 나는 비록 실패하고 넘어져도 공평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나는 실패하는데 하나님이 공평하시고 의로우시니깐 “100%옳소이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깨끗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흠도 많고 결점이 많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사울을 죽일 수도 있었으나 그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았습니다. 내 손의 깨끗함은 다윗의 깨끗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깨끗함이 임한 것입니다. 그동안 목동을 하면서 사자도 물리치고 양도 지키면서 그런대로 잘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사울을 만나면서 자기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사울을 만나게 되어 자신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니깐 육이 무너진 만큼 영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윗에게 하나님나라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은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이 의롭게 여기시는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임하면 나에게도 공의가 임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다 괜찮다고 생각하고 믿기만 하면 다 라는 생각을 가진 다윗이었지만 사울이라는 엄청난 시험을 만나고 나니깐 하나님 나라의 깨끗함인 공의가 나에게도 들어오게 되어 공과사가 분별되기 시작하고 무조건 떼 부리는 기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도 지키게 되고 원칙을 위해서 참을 수도 있게 되었고 화평을 이루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구원의 노래를 부르게 되니깐 “예수만 믿으면 다~지!” 라고 생각했다가 그냥 지나칠 일에도 “내가 예수 믿는데,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라고 지나간 일에도 구별된 깨끗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예전에는 하지 않았지만 환란을 겪으면서 주님을 사랑하게 되니깐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시키지 않았는데도 주님 앞에 잘 보이려는 마음이 생겨 자원하는 적용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이런 것을 도리어 나의 공의라고 세워주시고 인정해주시고 도리어 상을 주신다고 합니다. 공의를 자발적으로 이루려고 하는 것은 진노의 경험 이후가 되는 것입니다. 진노의 경험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의 깨끗함이 아니라 말씀의 깨끗함으로 인한 것입니다.
[새가족 모임- 자매] 공의로운 배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
진노를 경험한 후에 주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이제 맞다 vs 틀리다의 이야기를 안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자신에 대해서 깨끗함으로 나가게 됩니다.
25절 저는 말씀을 보면서 늘 갈등을 합니다. 성령 충만은 갈등 충만입니다. 갈등한 적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라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는 것을 늘 생각합니다. 내 분량대로 적용을 못해도 그럼에도 갚아주셔서 깨끗하게 하십니다. 다윗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울 때문에 수없이 이기거나 지거나 피하기도 했습니다. 자기 뜻대로 도망간 블레셋에서 처자식이 사로잡히는 진노를 경험하면서 그때 또 다시 하나님께 묻게 되었습니다. 밧세바 사건도 실패한 사건이지만 혹독한 벌을 통해서 여자문제도 끊게 하시고 이스라엘 왕으로서 깨끗이 가도록 도우십니다. 다윗이 이긴적도 많았지만 진짜 어려움에 처 했을때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이런 사건들 즉, 할 수 없었던 사건들 때문에 다윗은 구별되어져 갔고 깨끗해져 갔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심히 창대하리라(욥 8:7) 등의 성경말씀을 가지고도 반드시 구속사적으로 해석을 해야 합니다. 다윗자신의 의는 너무 빈약하지만 말씀을 보면서 적용을 해 나아가니깐 자꾸 하나님의 의를 생각하게 되고 깨끗함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그 다음 부터는 우리는 끝없이 깨끗해져 가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이라는 것은 나의 어떤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위해 내가 항상 먼저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해야 되는 것이 나의 손에 따라 깨끗함을 따라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Q. 여러분은 삶에서 공의로 여겨주신 적용이 있습니까? 공의의 하나님으로 인해서 공과사를 구별하고 있습니까? 모든 믿음의 결론이 보여지는 복이 아니라 깨끗함 즉, 거룩이란 것에 동의하십니까? 예수 믿으면 잘먹고 잘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거룩함, 구별됨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2. 깨끗함이란 여호와의 도를 지키는 것이다.
공의를 지키려면 말씀이 필요한 것입니다. 22,23,29,30에서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에는 반드시 말씀묵상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의 성경가장 중앙에 이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도를 지킨다는 것은 악을 행하는 악인들의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도 하나님을 떠나갔습니다. 가인의 후손으로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나중에 말씀 묵상하고, 목장에 나중에 가겠다고 합니다. 선남선녀로 풍족하게 살 때는 하나님 앞에 오지 않고 고난이 와야 옵니다. 우리는 악해서 그냥은 말을 안 듣기 때문에 진노를 주십니다. 다윗도 잠시 하나님을 떠나있게 되니 간음과 살인을 하게 되었습니다. 떠나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지만 간음과 살인과 음란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솔로몬도 위대한 성전역사위에 이스라엘 전체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니깐 다 예외가 없습니다.
늘 결론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공동체에 들어가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같이 듣고 슬퍼하고 같이 즐거워하지 않으면 그것은 신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선지자를 통해 끊임없이 죄에서 돌아오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죗 덩어리인 인간이 내가 좋아하는 죄악을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죄라고 인식조차도 못하는데 이 땅의 삶의 방식을 어떻게 버릴 수가 있겠습니까? 스펙과 내 시간, 자이실현을 버리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윗처럼 고난이 깊을 때 그때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서 죄를 깨닫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고난을 다윗이 잘 넘겨 잘 살아내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시대를 넘어 지금의 우리까지 자기 죄를 볼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 고난가운데 잘 살아낼 때 자기의 가족과 나가서 교회와 나라까지 살리게 됩니다. 고난의 환경이란 것이 내 식구, 내 목장, 내 공동체의 사람들이 자기 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좋은 환경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내 하나님을 떠나지 않기 위해 인내하고 절제하고 화평해야 합니다. 그래서 좁은 문,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때 바로 지침서가 여호와의 도 인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기 열심히 아니라 자기 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10년이 넘어도 자기 죄가 인식이 되지 않으니 예배가 사모되지 않는 것입니다. 구속사는 어디나 공식이 같습니다. 내가 깨끗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은 날마다 거룩한 나라의 법도를 주셔서 날마다 나를 비춰보게 하시고 자신과 직면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구속사를 모르는 사람은 죄를 인정하지 않으니깐 당최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기를 원한다는 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나를 하나님나라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이 땅의 로열패밀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천국시민으로서 인정을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23절 나의 하나님을 부르는 다윗은 앉으나 서나 모든 법도를 내 앞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도 사울이 괴롭히고 악신이 들어서 칼과 창을 휘두르니깐 하나님을 내 앞에 모시지 않으면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대적이 공격할 때 마다 그의 규례를 보면 대적보다 악한 나의 탐심의 현주소를 날마다 보게 되니깐 이상한 일이 일어나서 공격할 때 마다 내 자신을 보게 되면서 깨끗하게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수많은 공격에서 말씀을 보니 내 죄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밀을 아는 우리들 교회는 그 비밀을 모르는 사람들을 인도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더 규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나를 살려주는 규례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의 특징은 죄책감으로 인해서 기도를 하지 않고 말씀을 보지 않습니다. 이것을 정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구속사적 큐티이고 말씀묵상입니다. 믿음 생활을 하는 우리들의 딜레마는 끊임없이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길보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묻는 것이 최고의 겸손입니다. 최고의 겸손은 말씀묵상 즉, 큐티입니다.
Q.여러분에게 말씀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믿음의 현주소가 딱 드러날 것입니다. 깨끗함을 위한 최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큐티가 즐겁습니까? 형식적입니까? 아예 보지 않습니까?
3. 깨끗함이란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시선을 맞추는 것이다.
24-26절 다윗이 자신이 완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앞에서 스스로 지켜 죄악을 피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완전한 자라고 선포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다 해주십니다. 그러나 진노를 경험한 후에 죄악에 대해 적극적으로 싸우는 자세로 바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깨끗함으로 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켜 스스로 행하려 하는 자를 굉장히 도우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자로 설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완전주의자 사부님]
[명품인 듯 명품 아닌 명품 같은 목사님의 옷]
국어사전에 나온 완전의 뜻은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음 이라고 되어져 있습니다. 온전하다는 잘못된 것이 없이 바르거나 옳다라고 정의했는데 남편은 자신은 온전하다고 생각했지만 주변의 모든 사람은 힘들어 했습니다. 이 세상의 완전함은 하나님의 완전함과는 아주 다른 것 이었습니다. 내가 완전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함인 것입니다.
Q. 여러분은 사람의 완전함을 추구하는 완전주의자 입니까? 하나님의 완전함을 추구 합니까?
4. 깨끗함은 성벽을 뛰어넘는 승리를 가져다준다.
27-30절 골리앗과의 싸움도 군사력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회적인 이김이었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다윗은 10년이나 지속된 사울과의 싸움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주 깊어졌습니다.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내 하나님을 지키니 무서운 성벽마다 뛰어넘게 되었습니다. 저도 남편의 성벽, 자식의 성벽, 질병의 성벽 등 넘지 못할 것들이 너무 많았지만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의뢰하고 의지하니깐 넘지 못할 것 같은 성벽들을 뛰어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나무의 퀸텀성장] 담양의 대나무 숲을 간적이 있습니다. 대나무는 씨를 뿌려도 보이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3년째까지 되기까지 물도 뿌리고 빛을 비춰주며 정성을 쏟아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합니다. 3년째까지 가서야 30cm의 죽순이 겨우 올라오는데 4년째에 여전히 30cm로 2년간을 더 지낸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키우겠습니까? 그런데 5년째가 되면 폭팔 적인 성장을 한다고 합니다. 퀀텀성장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하늘을 향해서 뻗어 올라가게 됩니다. 5년 동안 보이지 않은 깊은 뿌리 내림이 서로 얽히고설키게 되어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대나무 1시간의 성장속도가 소나무 30년 길이 성장에 해당하다는 것입니다. 대나무들이 자라고 자라서 하늘이 안보일 정도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가의 싸움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다윗의 성장은 얽히고설키는 뿌리내림이 있었습니다. 그 뿌리내림은 어떤 비바람이 불어도 하늘로 하늘로 향하여 성벽을 뛰어넘는 자양분이 된 것입니다. 누구도 제가 이런 목회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지나고 보니 이런 뿌리내림에 기초를 닦도록 해주셨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고 소나무 30년에 해당하는 대나무 1시간의 성장속도를 허락하셨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것이 한국교회에 분명히 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소나무는 소나무만의 역할이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역할이 있을 뿐입니다. 4대를 내려오면서 우리집안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뿌리내림의 사람들이 있고 하늘에 올라가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늘에 올라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 훨씬 무섭고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자기를 지키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깨끗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뭐가 옳고 그른 것은 없습니다.
32-35절까지 하나님은 늘 다윗이 깨끗함으로 무장하고 싸울 수 있는 힘을 친히 공급하십니다. 우리도 매일 말씀 묵상을 통해서 우리를 무장시키는 하나님을 경험 할 수가 있습니다. 오직 말씀을 의지하고 가니깐 곳곳의 성벽이 무너지게 하십니다. 성경은 다윗의 스토리에 참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의 이야기에는 기적의 스토리가 없습니다. 하늘에서 불이내리고 홍해바다가 갈라지거나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이 없습니다. 슬픔, 좌절, 방황, 배신, 범죄, 탄식, 눈물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윗의 이야기에는 하늘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땅의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다윗의 이야기에 감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상속에서의 기적과 일상의 삶에서 드러내야 될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우리가 일상생활을 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기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디에 가서 기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죄를 봐야 합니다. 다윗은 고난가운데 늘 자신의 죄를 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조상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들교회의 일상적인 성도의 나눔이 얼마나 다윗의 스토리의 위대함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가장 평범한 것이 비범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입니다.
[검은봉지의 그녀-알코올 중독 집사님 예화]
깨끗함은 사랑 안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사랑이 없이 혼자 깨끗함을 외치는 삶은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혼을 안 할 수도 있고 안 믿는 사람과는 구별된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할 적용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깨끗하기가 정말 제 힘으로 되기가 힘듭니다. 제가 얌전한 사람이지만 십자가 복음은 어떤 곳에서도 눈치 보지 않고 전했습니다. 눈치 보지 않고 정확한 복음을 전했을 때 그것이 성도를 쫓는 설교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걱정이 안 되는 것은 하나님이 모을 사람을 모와 주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십수년 뒤에 축복의 간증을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초대교회때에 물질의 축복도 주신 것이 교회사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을 쓰는 가치관이 세워지기 전에는 물질을 주지 않으십니다. 이제 내가 무엇인가 절제를 할 것 같아도 다른 곳에 쓸 것을 아시기 때문에 주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당대신앙의 때에는 십자가 지는 삶을 살아야 그 후에 재물을 주십니다. 그래야 그 재물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는 목적을 이룰 수 있습니다. 내가 힘든 사람을 도우려고 하면 거기서 지체가 생깁니다. 제가 늘 환란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자오라고 하고 가고자 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낮추셨습니까? 그러나 도리어 높이셨습니다. 우리들 교회가 앉으나 서나 구원의 노래를 부르고 내 죄가 보여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적기 때문에 비교적 평안하게 가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처럼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갈 능력이 없습니다. 날마다 애통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의 사랑을 거룩을 목적으로 두고 걸어갈 때에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공동체 고백- 남편그늘에서 살고싶던 집사님]
★ 기도제목
노성혜(82) 목자
1. 돈을 사랑하고 돈을 좋아 합니다. 내 유익은 오직 돈인 가치관이 조금이라도 바뀌기 원합니다.
2. 날마다 후회는 하는데 회개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제 힘으로는 무릎의 회개가 안 나옵니다. 성령님 저 불쌍히 여겨주세요.
3. 죄인 중 괴수인 제가 단기선교 영적인 기록을 맡게될지 모르겠습니다.주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4. 회개함으로 새생명 얻는 저와 모두 되게 해주세요.
5. 쇼핑이 인생에 기쁨인데 적당히 하게 해주세요.
김슬기(83)
1. 지혜로운 회사생활
2. 지혜로운 시간관리
3. 건강 챙길 수 있도록
윤정원(83)
1.부모님 구원을 위한 십자가 지는 적용 잘하고 사단이 주는 마음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 주시길
2.건강한 감정표현 잘 할 수 있게
3.외롭고 힘든마음 잘 이겨 낼 수 있게 만져주시길
4.지금 내 마음과 믿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윤경주(82)
1.우리 목자 성혜가 우루무치 아웃리치로 인해 깨끗함을 경험할 수 있도록
2.엄마의 수술날까지 기도로 준비할 수 있도록
3.매일 큐티와 적용으로 깨끗함을 유지 할 수 있도록
4.나를 찌르는 직장과 친구들의 말에도 인내로 견딜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