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바의 회개 이후에 '그 후에야' 하나님은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고 하는데 다윗의 인생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아닌 것이 없었다. 오늘 말씀에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보호자임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인에게 바치는 듯한 그 이상의 사랑고백을 하고 있다. 다윗의 절절한 사랑고백을 본다. 다윗의 이 고백은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로 시작하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시편 18편의 원형이 되었다.
1. 환란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1절) 노래의 말씀으로 아뢰었다는 것은 아주 자세히 고백했다는 뜻이다. 이것이 말씀으로 간증하는 것이고,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그것은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죽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노래의 말씀이다. 도저히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감사와 찬송이 나오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구속사이다.
시편도 아닌 역사서에 50절이나 되도록 노래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찬양한 것은 하나님 없이 한 걸음도 올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다윗이 인생의 말년이어서 지난날을 노래한 것이 아니다. 사울도 다윗도 둘 다 똑같이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런식으로 바라보면 사울과 다윗은 큰 차이가 없어보이는데 결과적으로는 정 반대의 삶을 살게 된다. 그 차이는 다윗의 시에서 나타난다. 다윗은 시가 있는데 사울은 시가 없다. 사울은 사람을 두려워하고, 다윗을 두려워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물론 다윗 역시 자신을 괴롭히는 적에 대해 노골적인 저주와 자신의 기도에 즉시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을 표현하기도 했다. 왕이 된 이후에도 밧세바 사건이 있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 안에서 분노하고, 하나님 안에서 두려워하고, 염려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에게서 조금이라도 떠났다고 느끼면 하나님은 즉시 다윗을 다루셨다. 그리고 다윗은 돌이켰다. 다윗의 성숙하지 못한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다윗을 놓지 않으시고 일생동안 함께 동행해주셨다.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집집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신이 임한 가족들이 하나씩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무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다면 부끄럽게 생각할 일이다. 이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믿으며 인내하고 간다는 것은 성령님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그때그때마다 환란에서 구원하신 그 날이 다윗에게는 너무나 많이 있는 거다.
[QT]여러분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 그날이 있습니까? 특히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날이 있습니까? 이렇게 원수와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대해 노래의 말씀으로 아뢰고 있습니까?
2. 그 가운데 나의 하나님을 찬양했다.
2~3절) 팔레스타인 지방은 모래땅으로 이루어져 지반이 약하기에 반석, 바위 등은 안전한 피난처가 되었다.
다윗이 15광야를 건너가면서 얼마나 절박했겠나? 전쟁 중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 나의 요새, 반석, 나를 건지시는 자, 나의 하나님, 나의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높은 망대, 나의 피난처, 나의 구원자.. 10가지 결코 있을 수 없는 상황을 떠올리면서 그때마다 경험되어진 하나님의 속성을 노래했다.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등 1인칭 어미가 3절까지 11번이나 써져 있다. 하나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만남을 강조하는 것이다. 교리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경험되어진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다윗의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이런 고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인생을 돌이켜볼 때, 다윗은 기가 막힐 정도로 깊은 웅덩이에서 때마다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모래같은 나에게 바위같은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어 주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무엘서를 읽어오면서 다윗이 겪은 광야 생활을 기억할 것이다. 다 기억할 순 없지만 '나의 반석'하면, 마온 황무지에서 십사람들의 밀고로 사울의 군사들에게 포위되었을 때, 그때 블레셋을 일으켜서 사울이 철수를 했다. 또 사울을 피해서 숨었던 장소 중 하나가 들염소 바위에 있었던 엔게디 동굴인데 여기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죽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나하나 다 추억이 있고, 경험이 있고.. 그 15광야가 다윗에게는 너무나 기가 막힌 노래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의 피할 바위, 내 피난처..' 이렇게 날마다 눈을 뜨면 그 말이 저절로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래서 자기가 적들로부터 숨었던 바위, 요새, 망대, 피난처... 절대 절명의 순간에 자신을 보호했던 것들로 하나님을 비유하고 싶은 것이다.
[QT] 여러분은 지나온 인생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표현하고 싶은가? 바쁘신 하나님? 안 돌아보시는 하나님? 나만 미워하시는 하나님? 아니면, 나의 반석이고, 요새고, 피난처이신 나의 하나님으로 표현하고 싶은가? 정답이 없으니까 나눠봐라.
[QT] 여러분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입니까?
3.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기도했다.
4~7절) 오늘 이 다윗의 노래의 말씀은 완전히 구원의 원리와 똑같은 것이다.
하나님을 속속들이 경험하기 위해서 사망의 물결이, 불의의 창수가 나를 두렵게 하는 일들이 지금 오고 갔다는 것이다. 사망의 물결과 불의의 창수는 사실은 나의 불법으로 인해 사망의 강이 도래한 것이다. 불법-사단, 벨리안-은 그리스도와 공존하지 못하는데 항상 내가 죽을 것 같은 때는 불법을 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져나갈 틈이 없이 멸망의 올가미에 다윗이 쌓여있다. 사울이 다윗을 수없이 죽이려 했던 것을 기억해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환란 중에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었다는 것은 내 사정을 자세히 하나님께 고백하면서 나갔더니 하나님이 성전에서 그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이다.
[QT]우리에겐 어떤 사건이 이렇게 사망에 주려있고, 창수가 난 것처럼 두렵게 하는가?
수억의 별들, 우주 속에서 내 모습도 제대로 못 보기에 하나님을 보여주시려고 사망의 물결을 허락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부르짖을 때 보여진다. 이 세상에서 찬양하고, 찬송 받으실 대상은 오직 여호와 밖에 없다는 것을 다윗이 알게 되기까지 하나님이 훈련시켜 가신다. 이 하나님께 다윗이 아뢴다. 이것이 노래의 말씀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가장 진실된 모든 기도는 찬양을 통해 관통되면 그 분위기는 모든 실제적인 회개와 간구와 중보의 배경이 된다. 찬양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나아간다.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것 외에 아무것도 원함이 없게 된다. 이 기도에서 나오는 외침이 바로 '거룩, 거룩, 거룩' 이것이 구속사적인 찬양기도인 것이다. 사무엘하 22장 결론에서 찬양이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21장 리스바의 회개 뒤에 이 노래의 말씀이 나온다. 우리가 사람 간에도 찬양(당신이 최고다)을 해주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사람간에는 찬양이 덕이 될 수 있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기도의 최고 형태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구하는 것이다.
이번 목세에 오신 이인호 목사님의 글이다. 어린 아이가 젖을 찾아 엄마 품에 파고든다.
하지만 젖을 먹는 동안 아이는 배만 채우는 것이 아니다. 엄마와 눈을 맞추고 따뜻하고 친밀한 사랑의 교제를 나눈다.
동물 중에 눈을 맞추고 젖을 먹도록 창조된 존재는 인간 밖에 없다고 한다. 이는 인간이 젖이 아닌 사랑을 먹으며 사랑을 먹으며 사람이 되어 간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기도해서 얻는 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과 눈을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의 얼굴을 우리를 향해 비추시는 것 -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응답이요. 선물이다.
우리에게 애인이 와서 선물을 맨날 줘도 와서 눈을 맞춰줘야한다. 선물만 보내면 그게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눈을 딱 보면 사랑하는지 아닌지 알 수가 있다. 자녀들도 그걸 더 알고, 목장에서도 그걸 다 안다.
그래서 나도 참 소심한 사람이라서 혼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문제가 올 때마다 나는 늘 QT모임을 인도해야 됐기 때문에 늘 말씀을 보게 되었다. 이것이 주님과 눈을 맞추는 시간이 되었다. 그러다보면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I am who I am.'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고통은 지나가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다' 존재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나에게 모임을 인도해야 되는 숙제가 있는 것이 너무나 감사했다. 그것이 인생 최대의 축복인 것이다.
나는 늘 일어나 하나님과 눈을 맞춰야 되는 그 과제가 있다는 것. 그러다보면 진짜 눈을 맞추게 된다. 그래서 말씀대로 행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다.
외부의 적은 블레셋이고, 내부의 적은 사울이었지만 찬송 받으실 하나님께 아뢰니 이 모든 원수를 물리쳐 주셨다.
국어사전에 찬송을 '찬성하여 칭찬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은 무조건 찬성하셔야 된다. ' 옳으시다'고 하면서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구하면서 '당신이 줄거야 아니야? 뭘 주겠어? 당신 수전노 아니야' 하면서 구하면 누가 주겠나?
절대적으로 찬성하여 칭찬하면서 구해야 된다. 이게 찬송이다. '하나님은 100% 옳으십니다.' 찬성하면서 칭찬하면서 구해야 된다.
[QT]원수들을 인하여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찬성하면서 칭찬하면서 기도하나?
언제나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찬성하고, 칭찬하는 여러분 되길 바란다.
4. 진노의 응답을 찬양했다.
8~15절) 그러니까 번개로 파하셔서 혼란스럽게 하신다. 내속이나, 집안이나, 교회나, 공동체가 자꾸 분열이 되고, 생각이 혼란스러운 것은 하나님 뜻이 있으시다. 진노 중에 흩으실 때는 잠잠히 당하면서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환란속에서 기도드릴 때, 그 응답으로서 오늘 진노를 퍼 부으시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구속사적으로 말씀을 보는 훈련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영혼구원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오늘 보니까 반드시 먼저 심판이 있고 나서야 구원이 임한다는 것이 오늘도 여전한 방식의 순서이다. 그러므로 구원 때문에 오는 이 심판을 인내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기도 응답이 원수에게 일어난다고 하니 그 원수가 앞으로 믿게 될 그 사람 일 수 있다.
또 내 속의 원수일 수도 있다. 쉽게 말하면 땅이 진노하는 것은 부도가 나거나, 감옥에 가거나, 아이들이 일을 저지르거나, 암이 걸릴 수도 있고... 이것이 다 땅이 진동하는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기도 응답으로 이게 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QT]나에게 온 사건은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진노의 응답이라고 믿는가?
[QT]여러분 각자에게 온 사건이 구원을 위한 진노의 응답이라고 여러분은 믿으셔야 된다. 믿는가?
이것이 진리중의 진리이다. 왜냐하면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5.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함을 찬양한 것이다.
다윗 한사람을 위하여 하늘과 땅의 기초를 흔드실 뿐 아니라 천지만물을 다 동원해서 지금 달려오신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전쟁도.. 부터 시작이 되는 거지 이렇게 원리로 싸우는 게 아니다. 교양있는 사람은 아무대서나 말하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지만, 뭘 아는 사람은 하나님이 이 세상 천지 만물을 나를 위해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까 다시 말하지만 4, 5 절에서 사정을 아뢰고, 6절에 하나님 귀에 들렸다. 그리고 7절부터 15절까지 원수에게 진노하심과 심판하심으로 응답하시고 나서,
16절) 이렇게 하나님께 꾸지람을 받게 되면 물 밑이 드러나고 땅의 기초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나의 경건주의, 율법주의 밑에 있는 가식과 허영 등의 자기 진짜 모습이, 기초가, 물밑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진노가 오면, 구원이 응답으로 오게 되면, 이렇게 진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17절)누군가를 보내서 나의 빚의 많은 물, 미움의 물, 흙탕물.. 이런데서 나를 건져내셨는데 우리가 받은 구원은 위로부터의 구원이지 해아래서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다고 했다. 위에서부터 내려온 구원이다.
18절)왜 진노를 하시는가? 나보다 힘센 원수, 강한 원수,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다고 한다.
내가 끊지 못하는 강한 원수는 뭔가? 재벌들이 돈이 많아서 끊지 못하는 도박 중독... 여러 가지 중독이 많다.
이건 정말 환경이, 진노가 임하지 않고는 끊을 수 없는 강한 원수들이 집집마다 있다. 돈이 있고, 스펙이 있어서 끊을 수 없는 강한 원수들이 집집마다 있다.
그것을 내가 끊고, 내가 미워하는 사람이 없다면 하나님이 나를 건지신 것인데. 왜냐하면 나보다 힘센 연고를 주께서 아시는 것이다. 나는 양 같아서 아무것도 모르고, 길도 못 찾고, 고집도 쎄고, 두려워서 한번 자빠지면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나보다 힘센 연고로 강한 원수가 옆에 다 포진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나는 너무 양 같아서 아무것도 모른다.
19~20절)그래서 결국은 구원받고,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동원하실 수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사명의 길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형편없는 나를 전적으로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어떤 조건이 있는 게 아니다. 때마다 하나님이 손을 내미신다. 진노로! 기초가 다 드러나게 하심으로 바람위의 날개로 광채로 우레소리로 때마다 방법을 달리해서 당근과 채찍을 사용하신다.
나보다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시는 것이다. 진노를 많이 경험했다. 그럼에도 나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발이 넓어지게 하셨다.
[QT]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천지만물을 동원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는가? 그리고 여러분에게는 무엇을 동원하셨나?
내 인생을 하나님의 일로만 기억하게 되면 내 속의 천한 생각들이 다 사라지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우리의 기억을 굉장히 품위있게 해준다. 그러나 인간에 속한 기억은 지나고 보면 ‘연민, 슬픔, 분노’가 주를 이룬다.
객관화하고, 승화시켜서 아무리 내가 옛날 얘기를 적용해도 모두가 웃고 기뻐하는 노래의 말씀이 되었다.
[QT]여러분이 과거에 대해 날마다 기억하는 것이 상처인지? 감사인지? 생각해봐라. 상처를 기억하는가? 감사를 기억하는가?
내가 기억하는 것이 상처이면 절대로 수치를 드러내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 하나님의 감사라면 수치를 자유하게 드러내게 된다. 그런 것들이 뭔지 모르다가 우리들교회에 와서 훈련 받으면 알게 된다. 자유의지로 이런 것이 습관화가 된다.
기도제목
장승영
1. 진노의 사건이 당연한 신앙 성장통임을 알고 잠잠히 당하며 THINK 하도록.
2. QT로 하나님과 매일 눈맞춤! 하도록.
3. 말씀으로 평강 누리고 가도록.
4. 서미리 건강 회복하고 목장에서 사랑 받고 쉼을 누릴 수 있게.
5. 진로~ 잘난척 하지 말고 기도 시작하도록^^
윤은영
1. 큐티하며THINK 하길
2. 하나님께 온전히 의지하길
3. 나와 가족 영육건강
4. 졸업준비와 새학기준비에 감당할 체력주시길
윤정희
1. 야근의 연속으로 정신도 체력도 지치는 상황. 끝이보이지 않는 업무에서 의미를 찾을수있도록
2. 엄마가 진정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할수있도록. 구속사의 가치관으로 새인생 살도록
3. 직업전환 갈등 중인데 힘들어서가 아니라 말씀으로 분별할 지혜를 주시기를
4. 남자친구의 구원을 위해서
김경진
1. 춘천 약국까지 다니는데 오고 가는 길 말씀 많이 듣고~ 찬송 크게 하고~ 통성기도 하고~ 성령 충만한 시간되도록
그리고 안전 지켜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