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말씀
사무엘하 22:1~20
1월 어느 날 태어난 연주 언니, 소연이, 혜영이를 만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65279;■ 설교 요약
다윗이 절절한 사랑 고백을 하고 있다. 이는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로 시작되는 시편 18:8의 원형이 됐다.
1. 다윗은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찬양했다. (1절)
통일왕국의 통치 초기로 추정된다. 왕이 된 다윗은 그 때까지의 삶을 노래의 말씀으로 자세히 고백했다. 말씀으로 간증하고 기도한 것이다.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사의 노래를 부르고 죽을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생명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찬양이다. 다윗은 하나님 없이 한 걸음도 올 수 없다는 것을 고백했다. 사울도 다윗도 두려움을 느낀 인간이란 것은 똑같았다. 그런데 이들은 정반대의 삶을 살았다. 다윗에게는 시가 있었지만 사울에게는 그 시가 없었다. 다윗도 적에 노골적인 저주와 즉시 응답하시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원망 표현도 했지만, 하나님을 떠나지는 않았다. 하나님 안에서 분노하고 염려했다. 성숙하지 못함과 각종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일생동안 다윗과 동행해주셨다. 사울에게 평생 시달려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움이 아니라면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Q. 사울의 손으로부터 구원 받은 그 날이 있는가? 구원 받은 그 날을 놓고 노래의 말씀으로 아뢰고 있는가?
2. 다윗은 '나의 하나님'을 찬양했다. (2~3절)
팔레인스타인 지방에는 모래가 많아서 반석이 최고의 피난처를 뜻한다. 다윗은 교리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때마다 경험 한 하나님의 속성을 찬양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을 보호한 것들로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다.
Q. 나는 지나 온 인생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표현하고 싶은가?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인가?
3. 다윗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기도했다. (4~7절)
하나님을 속속들이 경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사망의 물결과 불의의 창수가 지나간다. 죽을 것 같은 이유는 죄가 많기 때문이다. 가장 진실된 기도는 찬양을 통해 관통되며 실질적인 회개, 기도, 중보, 간구의 배경이 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기도의 최고 형태이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구하는 것이다. 동물 중에 젖 먹을 때 눈을 맞추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이는 인간이 단순히 젖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도 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눈을 맞추는 것이다. 하나님과 눈을 맞추는 것이 기도다.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니 모든 적을 물리쳐 주셨다. 찬송은 찬양하며 칭찬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칭찬하며 기도해야 한다.
Q. 원수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송하며 칭찬하며 기도하는가?
4. 다윗은 진노의 응답을 찬양했다. (8~15절)
기도했는데 심판의 진노로 응답이 왔다. 나의 기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퍼부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 인생에 하나님이 임해야 어두컴컴한 것과 비교 되는 밝음이 있다. 내 속, 집안, 공동체 등에서 자꾸 혼란이 생기는 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잠잠하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반드시 심판 후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감옥, 부도, 암 등이 내 일상 속에서 땅이 진동하는 사건인데 이는 나와 내 원수 속의 사단을 물리치기 위해 오는 것이다. 구원을 위한 사건이므로 놀라지 말고 인내로 기도하자.
Q. 내 사건이 진노의 응답임을 믿는가?
5. 다윗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함을 찬양했다. (16~20절)
진노의 심판으로 구원이 되면 경건주의와 율법주의 밑에 있는 나의 가식과 허영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보다 힘센 원수가 너무 많은데 내가 끊지 못하는 강한 원수 중에는 도박, 경마, 스펙 좋은 사람 등이 있다. 고난과 환난이 심각한 사람은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사람을 넓은 길로 인도해 줄 수 있는 존재가 공동체이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신 것은 전적으로 나를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다른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다.
Q.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천지만물을 동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가?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무엇을 동원하셨는가?
인간의 기억은 분노, 연민, 슬픔 등이 주를 이루고 섭섭했던 것은 절대 잊지 못한다. 그러한 기억은 수치스러워서 나누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기억하게 되면 그 상처들로부터 자유하게 되어 나눌 수 있게 된다.
Q. 내가 과거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상처인가 감사인가?
■ 적용 나눔
#1. 설교 들으며 와 닿았던 것은?
A 자매
진노로 응답하신다는 것이 와 닿았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는데 엄마가 강압적인 부분이 많으시고 자기 의가 강하시다. 그렇다는 것을 엄마 자신은 모르신다. 언니는 많이 외향적이니 엄마와 언니가 충돌할 때가 많다. 그럴수록 언니는 자꾸 엇나가니 집안이 안정되지가 않고 그 속에서 나는 살아가야 하니 힘들다. 언니 문제로 인해 힘든 엄마가 날 많이 의지하시고 아빠는 일 때문에 일찍 나가셔서 늦게 돌아오시기 때문에 아빠와 의사소통 할 시간이 별로 없다. 아빠께서 말수가 원래 없으신 편이기도 하다. 언니가 엇나가서 하는 행동들이 하나님의 진노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시는 것 같지 않다.
#2. '나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B 자매
모태신앙이다 보니 학교 가는 것처럼 교회에 오는 것은 당연한데 간절함이 사실 없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으로 와 닿은 적이 별로 없다. 재수 후 대학 합격했을 때, 순간 나의 힘이 아니고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긴 했고 주변에서 '하나님이 하셨다' 하니 덩달아 '아, 그런가봐' 했지만, 마음에 뭐가 와 닿지는 않았다. 이번 수련회 때는 정말 열심히 예배 드리려 했고 그렇게 드렸지만, 지난 수련회와 별 다를 바가 없었다. 말씀과 간증을 들을 때 은혜라는 느낌보단 감동이었다. '지금 천국 가도 좋다'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이 잘 이해가 안 간다. 그러면 왜 이 세상에서 그렇게 열심히 사는가?
C 자매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언제 만났느냐는 질문과 비슷한 것 같다. 예전에는 중 2때 방언 받아 '나의 하나님'을 만났다고 했는데 사실 그 때는 하나의 미션을 통과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뜨거운 무언가가 없었다. 오히려 요즘 '나의 하나님'을 만나고 있다. 지체들과 말씀을 나누며 같은 본문인데도 적용과 해석이 서로 다른 것을 보며 나의 삶을 해석해주시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으로 다가온다.
D 자매
고등학교 시절부터 집에 돈이 없어지니 그 때부터 기도하게 됐는데 그 시절도 잠깐이었다. 그러다가 재수 시절에 인간관계로 힘들어지니 붙잡을 것이 없어 하나님을 찾게 됐다. 수시 다 떨어졌을 때, '하나님이 날 힘들게 하려고 작정하셨다'고 얘기하고 다녔지만 그래도 '그게 아니고 뜻이 있을거다'란 생각이 있었다.
E 자매
나를 괴롭히는 존재 같다. 평생 집에 돈이 없었고 내 인생에서 한 번에 뭐가 되는 경우가 하나도 없었다. 재수했을 때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 때의 감정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3. 하나님이 나를 위해 동원하고 계신 것은?
D 자매
내가 겪은 고난들을 원망할 수 없다. 가끔 술도 마시고 항상 홀리한 것은 아니지만 내게 주신 모든 고난들이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는다. 너무 힘들 때는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다, 자살할 용기는 없으니 누가 날 죽여줬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우리들교회에서 나눌 거리가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예전보다 가치관이 바로 섰다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술을 마시고 화를 내셨던 것, 재수 등이 모두 있었어야만 하는 사건인게 깨달아진다.
C 자매
타이틀을 좋아하는 내게 부목자라는 직분을 주셔서 목장에 붙어있을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하다. 늘 정죄하고 일찍 가기 일쑤였는데 부목자로 섬기게 하시니 목장에 한 주도 빠짐없이 나오게 된다. 말씀 보게 하는 우리들 공동체 주신게 정말 감사하고 섬기는 부서가 생기니 더 사모함이 생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동원하심이란 생각이 든다.
B 자매
사실 잘 모르겠다. '우리들 교회만 구원의 길이 아니니까 여기 아니었으면 다른 교회에 다녔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큐티가 숙제처럼 여겨지고 나만의 적용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대학 입학을 앞두고 설렘이나 기대감보다는 아빠와 같은 학교에 간다는 것이 너무나 눌린다. 내 페이스 대로 가고 싶은데 자꾸 아빠가 앞 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니 걱정이 앞선다. 학부생도 몇 안 되기 때문에 아빠가 같은 학교 교수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 같다. 여러모로 마음이 어렵다. 학교에 붙었는데 좋은 것이 아니라 더 힘들어지니 하나님께서 벌 주신 것 같다. 교묘하게 다 받은 것 같으면서 뭔가 좋지 않은 것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A 자매
예비 14번이었던 학교와 예비 2번이었던 학교 중에 14번이었던 학교에 먼저 합격하게 됐다. 더 가고 싶었던 학교에 합격하게 되어 좋고 이것이 하나님의 동원하심이다.
■ 기도 제목
★ 저희를 불쌍히 여겨 신교제와 신결혼을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명주현(96)
- 대학 입학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
-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놓고 기도할 수 있기를
- 컴퓨터 중독에 빠지지 않기를
변지영(92)
- 인턴 생활 중인데 회사에 말하고 수강 신청 제 시간에 잘 할 수 있기를
- 교환학생 가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가 돼서 겨울에 휴학하고 유럽 여행 고민하고 있는데 선택 잘 할 수 있기를
- 진로 문제 위해
김소연(95)
- 묻자와 가로되 하며 학교 잘 결정할 수 있기를
-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마음으로 번역팀 섬길 수 있기를
- 꿈에 대해 기도하며 설계할 수 있기를
- QT 꾸준하게 할 수 있기를
정다은(95)
- 아빠와의 싱가폴 학회 잘 다녀오고 다툼 없을 수 있기를
- 대학 입학 앞두고 미리 눌리거나 걱정하지 않을 수 있기를
- 중국어와 바이올린 배우기 시작했는데 지치지 않을 수 있기를
이나래(89)
- 한 주 동안 말씀에 붙어 살아갈 수 있기를
- 갖추지 못한 것을 묵상하기 보다 주신 것에 감사할 수 있기를
- 동생의 제대 후 신앙 생활을 위해
- 사모함으로 부서 섬길 수 있기를
장연주(87)
- 다른 사람 위해 기도하는 시간 가질 수 있기를
- 취업 준비를 내 열심으로 하지 않을 수 있기를
- 동생이 공동체에 잘 붙어 있을 수 있기를
- 모든 일이나 관계에 대해서 냉소적, 회의적으로 생각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