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압>
나를 위해서 죽어주신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의 후손인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도와주시고 계신다.오늘 본문에서 엄청난 전쟁을 한 여인 때문에 기적같이 진압을 도와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2015년에는 표어가 심히 창대하리라이다. 2014년에는 도로 찾으리라 하셔서 도로 찾았으니 심히 창대해야 겠는데 아직도 진압해야할 일이 너무 많다고 하신다. 집집마다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목장 식구들, 내 식구들 모두 도로 찾아왔는데 또 진압해야할 일이 무엇일까요? 왜 진압해야할 일이 생기는가?
1. 각자 따르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1) 세바를 따르는 무리가 있다
다윗 왕이 귀환을 할 떄에 반란이 일어났다. 주동자인 세바가 온 이스라엘을 다니면서 반역에 동참할 것을 호소 했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반란이 힘을 얻었다. 세바는 악한 사람인데 악한 일에 사람이 따를까? 악한일에 사람이 따르는가? 착한 일에 사람이 따르는가? 악한 일에 사람은 따른다. 사람은 악하기 때문에 악한 것을 좋아한다. 주님이 말씀하신 이 시대의 특징이 악하고 음란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착한 것에 따르지 않는다. 악하고 음란한 것이 있는 시나리오가 있어야지 사람들이 몰리게 되어있다. 악한 것은 재미가 있다. 술도, 마작도, 여자도 재미가 있기 때문에 따르는 무리가 있다. 나쁜 남자가 나쁜 줄 알아도 따르는 여자가 있는 것 모두가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지만 왕국의 제권을 놓고 날마다 편가르기를 하는 악함은 위에 악함과 다를 것이 없다. 이렇게 악한 세력을 따르는 것을 압살롬 때도 보았고 세바때도 보았다. 어떻게 분별을 하겠는가?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아벨과 벳마아를 갈 때 배림이라고 했는데 세바의 고향 사람들과 같이 갔다고 한다. 이 악한 일에 고향사람들 비그리 사람들이 세바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얼마나 진압해야할 일이 있는지 모른다.
천연 요새인 아벨성에 들어간 그들은 세바의 무리들은 몰아가다가 최북단에 머물렀다. 들어갔는데 거기가 수성하기에는 좋지만 수성하려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격을 해야하기 때문에 요압과 함께하는 무리들은 입장에서 보기에는 독 안에 든 쥐인 것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중에 아벨성을 다 부스고자 하였다. 요압에게는 따르는 무리가 있다. 잔인한 요압이 어떻게 나올지 상관 없는 백성들이 떨게 되었다. 반란과 아무 상관 없는 애매한 백성들이 진멸 당할 위기에 있다. 아담 한 사람의 죄가 인류를 파멸에 넣었듯이 말이다. 뜻하지 않게 세바가 아벨성으로 피신함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서 아벨성은 죽게 생겼다. 다윗 입장에서 본다면 모두 내 백성이다. 길이 없는 문제였다. 성을 다 부스고 한 쪽이 죽어야 하는 전쟁이었다. 다윗은 압살롬과의 전쟁도 한 쪽이 죽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지금 세바도 아벨성은 다윗의 백성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각자 따르는 서로 자기 편이 최고라고 하니 서로가 완강하다. 생각해보라 세바와 요압 중에 누가 나은 사람인가? 우리는 늘 누가 옳은지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서 한 쪽편을 들다가 계속 실망할 때가 많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가야 된다. 지금 요압은 예수님의 조상 다윗편에 서 있다. 세바는 반대편에 서 있다. 요압은 다윗의 편에 서 있지만 야망이 많다. 다윗은 압살롬을 알면서도 미리 쳐단하지도 못 했다. 요압도 야망이 가득한데 처단하지 못 했다. 공동체에서 이렇게 옳고 그름으로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회사도 그러면 안 되지만 교회는 더 한다. 믿음의 정도가 다르고 성숙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사건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그래도 때마다 일어나는 사건 속에서 분별하고 갈 수 밖에 없다. 여기서는 분명히 요압이 이겨야 하는 사건이다. 요압은 다윗의 편이고 다윗은 하나님의 편에 속해있다. 요압이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인데 아벨성을 다 죽이겠다고 하니까 이건 요압이 틀린거 아닌가? 이렇게 분별을 하나씩 해 나가야 한다. 오늘 본문에는 세바, 요압, 지혜로운 여인 세명이 나온다. 세바는 반역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나섰고 요압은 세바를 물리쳐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섰고, 지혜로운 여인은 민족을 구하겠다고 나섰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분별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믿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가장 어려운 문제 중에 하나다. 이럴 때 우리는 예수 씨를 보아야 한다. 사명이 있는 사람을 찾기가 너무나 어렵다. 누가 우리를 위해서 구원 투수로 나오겠는가? 누가 도와줄 것인가? 누가 우리를 구할 결정적인 사람인가? 아직 다 세상가치관으로 도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내가 세바인가 요압인가 지혜로운 처방을 가지고 있는 여인을 따라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사건은 날마다 온다. 돈과 권력과 명예가 있는데 아직 안 없어졌다. 끊임없이 악하고 음란한 것이 우리는 너무나 재미있다. 거기를 계속 기웃기웃 거린다. 목장이라는 곳에서 이런 기가막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적용) 우리가 따르는 사람은 야망의 세바인가? 사명을 빙자한 야망의 요압인가? 사명의 지혜로운 여인인가?
2. 말씀으로 설득하는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벨성에는 지도자 방백들이 많이 있었을텐데 잔인한 요압 앞으로 아무도 나서지를 않는다. 인국의 수에 들지 못 하는 여인 하나가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 죽음을 무릅쓰고 나섰다. 그러고는 들을지으다 들으소서 라고 들어달라고 한다. 문제 해결에 잘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요압이 들린 것이 기적이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 들리는 것이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옛부터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아벨성에 와서 물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에는 한 성을 공격하려면 먼저 평화를 선언해야 한다고 평화에 응하면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백성들에게 세바의 반란을 지지하는지 물어야 한다고 한다. 자기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이기 때문에 싸울 의사가 없는데 이 어미같은 큰 성 이 천연 요새를 멸하고자 하냐고 이것은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준 성을 멸망 시켜도 안 되고 멸망 당해도 안 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름 조차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평범하지도 않은 인정받지 못하는 비천한 신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시 군장이었던 요압에게 가서 자기 성을 구하고자 말씀으로 설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스펙좋은 자를 쓰고자 하지 않는다. 쓰시고자 하는 자는 어떤 사람이라도 쓰시는 것이다. 여기서 구속사가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설득하는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듣는 자였다. 무시 받던 여인은 온전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는 말씀처럼 두려움의 문제를 극복했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용기 있게 나간 것이다. 다윗은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견제 세력으로 떠오르는 요압을 제어하지 못 했다. 세바의 반란을 아마사의 주도로 진압하지 못 하였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아마사가 암살되었다. 다윗은 하는 족족 되는 것이 없다. 여인은 대조적으로 세바의 난을 피해가 없도록 진압을 하고자 하였다.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요압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설득하였다. 한번만 들어달라고 다급한 마음으로 외쳤다. 사람들이 듣지 않기 때문에 간청해야 한다. 요압이 잘 들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로 듣게 하신 것이다. 전혀 말을 듣지 않을 것 같은 상사가 어느날 어떤 구원의 의도를 가지고 간절히 요청을 했을 때 들어줄 때가 있는 그런 일이 일어났다.
적용) 여러분은 회개하여 말씀으로 설득할 수 있는 성도인가? 설득을 할 수 있는 중심 잡고 있는 한 사람인가? 이타적으로 지경이 넓어지는 인생을 살고 있는가?
3. 말씀이 들리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요압에게 지혜로운 여인의 말이 들렸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율법에 의거해서 명분 없는 싸움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안 하기로 하였다. 고통의 원인이 되는 죄를 제거하면 시간이 절약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빨리 회복할 수 있다. 내가 죄를 보지 못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지 못 하고 죄 가운데 살면 죄의 고통을 고스란히 당하는 것이다. 여인은 그의 지혜를 가지고 백성에게 나갔다. 요압을 설득하듯이 백성을 설득하는 것은 쉽겟는가? 누가 세바의 머리를 베겠는가? 또 설득하고 또 설득했을 것이다. 정말 구원을 위해서 자존심도 내려 놓고 이익도 내려 놓고 설득을 했다. 여러분들은 올해 목장을 하면서 자존심을 내려 놓고 다 내려 놓고 설득하고 또 설득하고 사람 살리는 진압을 할 목장과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 다윗은 아무 것도 못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이 다윗 왕국을 영원히 등불이 되게 하신다는 약속 때문에 아무 것도 못 하고 있을 때 이런 사람을 보내주신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만 확인한다면 천군 천사를 동원하셔서 도와주신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만 확인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이 든다. 성공하지 못 하는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는데 언젠가는 해봐야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절대 오는 법이 없다. 자기 열심과는 다른 것이다. 거짓 열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쉬는 법이 없고 쉬지 않고 활동하고 힘이 넘치고 항상 열심이 들끓어 오른다. 자신이 열중하는 행위에 대해서 진지하기 때문에 쉴 수가 없다. 그런데 그곳에 평강이 없다. 그리고 그 일을 하지 못 하면 불안해지고 침채된다. 참된 열심은 결단코 겉에 입혀진 열심이 아니다. 외적인 활동이나 사역의 결과가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의 결과 됨됨이의 결과이다. 노력해서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식과 소망 때문에 열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결국 이것이 하나님께 말씀을 듣고 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마침이 된다는 것은 내가 안 믿는 사람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할 적용을 길로 놓고 간다면 집안이 구원되고 민족이 구원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아벨성 여인을 봐도 나의 조그마한 순종 때문에 하나님은 쓰신다. 던져야 할 세바의 머리는 무엇인가? 던지기만 하면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백성들이 사는데 세바의 머리는 사단의 우두머리이다. 사람들은 멋있어 보이는 세바의 머리를 내어주기가 너무 힘들다. 얼마나 설득을 했겠는가? 몸으로 설득을 하고 입에서 나오는 언어로 설득을 하고 내 속에 세바는 죽고 내 속의 요압은 설득을 해야 한다.
적용) 죽어져서 던져야할 세바는 무엇이고 설득해야할 요압은 무엇인가?
형편없는 정부보다 더 나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무 정부 상태이다. 아무리 나쁜 지도자라도 부모라도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나쁜 직장상사라고 해도 내가 그 회사에서 녹을 받고 있는 사실 그것 때문에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낫다. 이 여인이 나라에 대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요압을 설득한 것이다.
조직이 필요하다
진압 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직을 정비하였다. 사도행전에서 사람을 뽑았다. 사도행전에서 부족한 한 사람을 맛디이를 뽑아서 유다 대신에 넣었다. 열 두 제자가 다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전 세계가 선교가 되는 엄청난 일을 성령이 하셨다. 이 것은 성령행전이라고 해야 하는데 사도행전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형평없는 사람을 성령의 힘으로 사도가 되게 하셨기 때문에 항상 우리는 조직에서 일보다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인정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요압을 군대장관에 다시 기용하였다. 다윗의 슬픔이고 비극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요압과 공모를 해서 우레아가 죽었는데 지도자가 악한 일을 행하니까 계속 발목을 잡혀서 가는 모습을 보니까 영적으로 죄가 될만한 일을 제거해야 하고 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된다. 행정조직은 8장의 초기 행정 조직과 동일하다. 조직이 없으면 자원 봉사의 은혜가 충만한데 커지면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은혜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아도람은 감역관은 전쟁으로 노예가 많았기 때문에 추가된 직책이다. 다윗, 솔로몬, 르호보암 같이 감역관을 하다가 그 자리가 부패를 가져와서 비극적으로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서 죽었다. 얼마나 끊임없이 쇄신이 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여기에 행정조직에 서기관이 필요하고 국고를 맞는 장관을 세웠다. 모든 사람들을 골고루 인재를 등용하였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만 썼었다. 8장과 달라진 것은 다윗의 아들들이 대신이었는데 사라졌다. 그래서 야일이 되었다. 다윗의 아들인 암논, 압살롬, 아도냐까지 한결같이 반역을 행하고 간음을 행하였다. 실전을 거쳐가면서 사람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였다. 가족이 경영권을 승계하는 행동을 문제 삼지 않았다. 자유 기업의 구성원은 창업가의 가족 여부를 막론하고 공정하게 기업 활동에 참여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무능한 오너 일가가 요직을 차지하는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지 그의 무능떄문이 아니라 조직 내의 유능한 임직원들의 능력을 사장함으로서 사업 성장에 기회를 박탈하는데 있다. 기업이 가족을 위해서 일 하는 순간 가족과 기업 둘 다 살아 남지 못 할 것이라고 한다. 다윗의 모든 아들이 악을 행해서 아무 자리도 주지 않았지만 후에 그의 아들 솔로몬이 잇는 것은 가족승계라고 보기보다는 약속의 승계 믿음의 승계라고 봐야한다.
적용) 올 해 목장 조직과 사역 조직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순종하고 가시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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