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4;휘문2부 노성혜 목장 보고서
날짜: 2015년 1월 4일
참석자 : 노성혜 목자(82) 윤정원(83) 김슬기(83) 이지은(85) 윤경주 부목자(82)
본문 말씀 : 삼하 20:14-26
제목: 진압
#9873; 주일 설교
정초에 너무나도 유명한 드라마 별에서온 그대를 잠시 보았습니다. 우주의 별 이야기 인줄 알았는데 우리들 교회의 이야기와 닮은 점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위해서 화살을 맞고 죽었습니다. 몇백년이 지난 후에 남자 주인공인 도민준이 여자 주인공인 천송이를 향해서 마치 수호신처럼 나타나서 날마다 진압하는 이야기 였습니다. 참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은데, 예수믿는 것이 지금까지 참 살수 없는 환경에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살아 온 것을 생각하면 예수믿는 것이 참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죽으면 축복이 수천대를 이어서 오는 것이 이런 원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나를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 때문에 그 예수님의 후손인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엄청난 전쟁을 한 여인 때문에 기적같이 진압을 도와 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런 드라마를 보고도 나도 혹시 만세전부터 누군가를 위해 죽어준 것 이 아닐까 착각 할 수도 있는데 믿음의 분량이 달라서입니다. 저는 이런 드라마를 봐도 그 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찾아냈는데 모든 것을 보도고 예수님을 찾아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구속사입니다.
2015년이 밝았습니다. 2015년의 표어는 ‘심히 창대하리라 (욥8:7)’입니다. 너무 듣기만 해도 좋지 않습니까? 2014년에 ‘도로 찾으리라’ 해서 도로 찾았으니 심히 창대해야 할 일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진압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고 하십니다. 그런일이 집집마다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목장식구, 내 식구 모두 도로 찾아 왔는데 무엇을 진압해야 하는 것일까요? 왜 진압해야 하는 일이 생길까요?
1.각자 따르는 무리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① 세바를 따르는 무리들이 있다.
14절 다윗 왕이 왕의 귀환을 할 때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주동자인 세바가 온 이스라엘을 두루 다니면서 반역에 동참할 것을 호소했는데, 따르는 무리가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너무나 많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내부 불화로 세바의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반란의 따르는 자들이 많아서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세바는 악한자인데 왜 악한일에 이렇게 사람이 따를까요? 여러분 악한일과 착한일 중 사람들은 어디에 따를까요? 네 맞습니다. 사람들은 악하기 때문에 악한 일을 따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이시대의 특징이 악하고 음란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착한 것은 드라마와 그 어느 것도 안 됩니다. 그래서 악한 것은 재미가 있습니다. 술도 마작도 여자도 다 재미가 있기 때문에 따르는 무리가 있습니다. 나쁜 남자가 나쁜 것을 알면서도 따르는 여자들이 있는 것은 모두가 서로가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한다는 명분이 있지만 왕국의 재건을 놓고 날마다 편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편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은 날마다 술마시고 여자에 빠지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악한세력을 따르는 것을 우리는 압살롬때와 세바때 모두 보았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분별을 하겠습니까? 그러니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1000억 경매로 나온 교회를 인수를 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거기에 사람이 모일까요? 거기도 따르는 무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단에 대해 악플을 달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교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선교사님이 선교지에 부임하다가 비행기 사고로 추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이 선교사라는 것을 알고 그때부터 악플을 달기 시작했는데 거기에서도 따르는 무리가 있습니다. 따르는 무리가 없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인데 그래서 기독교라고 하기만 하면 핍박합니다. 다른 종교들은 이렇게 핍박 받지 않습니다. 도리어 소수라고 우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요즘에는 동성애도 인정을 받는데 기독교라고 해서 핍박 받습니다. 여러분들이 핍박을 받는 것은 지경이 넓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고 있는데 계속 핍박 받고 있다면 그만큼 지경이 넓어지고 있는 것을 아셨으면 좋겠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아벨-벧-마아가 로 개역개정에는 베림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세바의 고향인 비그리 집안의 사람들이 모여 같이 갔다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악한 일에 고향사람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악한 일에 객관화가 되지 않은 고향사람들이 낀 것입니다. 얼마나 진압해야 하는 일이 많은지 모릅니다.
15절 무리는 최북단으로 떠나가다가 천연요새인 아벨성에 들어갑니다. 거기에 들어 갔는데 그곳은 수성하기에 좋은 곳이 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무리가 수성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 였습니다. 공격을 해야 했어야 했는데 천연요새에 들어 간 것입니다. 요압의 입장에서 보면 독안에 든 쥐가 된 것입니다. 발상의 전환이 중요 합니다. 이것을 어찌 할까 하다가 요압이 아벨성 자체를 부수기를 작정 합니다. 그런데 요압에게도 따르는 무리가 있습니다. 잔인한 요압이 어떻게 나오게 될 것인지 성읍사람들이 떨게 되었습니다. 반란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애매한 백성들이 진멸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가 인류를 파멸에 넣었듯이 뜻하지 않게 세바가 아벨성으로 피신하게 되면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해서 아벨성의 백성들은 죽게 생긴 것입니다. 다윗쪽에서 보면 다 내 백성입니다. 길이 없는 문제 였습니다. 성을 다 부수고 한쪽이 죽어야 되는 상황입니다. 다윗이 압살롬과의 전쟁에서도 한 쪽이 죽어야 하는 살릴수도 죽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각자 따르는 무리들이 서로 자기편이 최고라고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세바와 요압중에 누가 나은 사람 입니까? 우리는 늘 누가 옳은지 분간이 가지 않아 한쪽 편을 들다가 아주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정치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사람은 정말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가야 합니다. 지금 요압은 다윗편에 서 있습니다. 세바는 반대편에 있습니다. 요압은 다윗편에 있지만 야망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런 경우를 일일이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가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알면서도 미리 처단하지 못했습니다. 요압도 야망이 많은데 처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에서 이렇게 두부자르듯이 옳고 그름으로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탁탁 짜르고 가면 좋겠지만 회사도 그러면 안되고 교회는 더더욱 안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성숙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 사건만을 가지고 볼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때마다 일어나는 사건 속에서 분별하고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분명히 요압이 이겨야 되는 싸움입니다. 요압은 다윗편에 속해 있고 다윗은 하나님편에 속했습니다. 그런데 요압이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인데 아벨성의 백성들을 죽이겠다고 하니 요압이 틀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러니 때마다 분별하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세바와 요압과 지혜로운 여인이 등장합니다. 세바는 반역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요압은 그 세바를 물리쳐서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또 지혜로운 여인은 민족을 구하겠다고 아벨성을 구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여러분들은 분별할 수 있습니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는 예수씨를 봐야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겐 선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야망이고 누가 사명인가를 분별해야 하는데 그 사명을 알아내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누가 구원투수 인가? 누가 우리를 도울 결정적인 사람인가?
[정민영 초원지기님의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 하는 것 같은 목장 나눔 인용] 도로 찾아 모두 교회오고 목장에 왔지만 그런데도 세상가치관으로 도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아직 세바인가? 요압인가? 지혜로운 여인을 따라가고 있는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건은 날마다 옵니다. 돈이 있고 권력과 명예가 있는데 어찌 세상가치관이 없겠습니까? 아직 안 없어 졌습니다. 끊임없이 우리는 악하고 음란한 것들이 우리는 너무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기웃거리게 됩니다.
[적용] 여러분이 따르는 각자 사람은 야망의 세바인가? 사명을 빙자한 야망의 요압인가? 사명의 지혜로운 여인인가?
2. 말씀으로 설득하는 그 한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6-19절 아벨성에는 지도자 방백들이 많이 있을 것인데 요압이 워낙 잔인하다보니 아무도 나서질 않습니다. 그런데 인구계수에도 들지 못했던 여인하나가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나섭니다. 그리고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들으소서.’ 라고 하면서 들어달라고 간구합니다. 문제 해결에 잘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요압이 들은 것이 기적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야지 들립니다.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옛적부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아벨성에 와서 물어야 하는 것 아시죠?” 라고 하면서 신명기 20장 10-15절을 이용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에는 한 성을 공격하려면 먼저 평화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평화에 응하면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벨성 전멸에 앞서 세바의 반란을 지지하는 지를 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기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이기 때문에 싸울 의사가 없는데 이런 어미 같은 큰 성 천연요새인 아벨성을 왜 멸하려 하느냐고 그것은 여의 기업을 삼키는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의 기업으로 주신 이 성을 멸망시키셔도 안 되고 멸망당하게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 너무 말을 잘합니다.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는 이 여인은 인정받지도 못하는 비천한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자기성을 구하고자 요압에게 가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스펙으로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쓰시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도 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속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설득한 이 여연은 말씀을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무시받던 사람은 요한일서 4잘 18절에 온전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한 말씀처럼 두려움의 문제를 극복했습니다. 그래서 죽을 수도 있는 이 상황에서 용기 있게 나간 것입니다.
지난 연말 욥기 설교를 다시 이야기 하자면 욥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난을 당하고 나서 욥기 42장 2-4절 욥의 결론은 모든 것을 주께 묻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내 인생의 결론 인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 힘든 고난이 오면 40일 작정 기도, 작정헌금을 하겠다고 하는데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아주 사소해 보이는 내가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듣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 끔찍한 고난 후에 욥이 맨 마지막으로 말씀을 묻고 듣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동방에서 그렇게 의로왔던 욥도 주님에게 묻고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안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욥의 마지막 결론이 너무 평범한 것 같아서 이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을 수 있습니다. 5-6절에서 욥은 완전히 회개로 결론으로 낸 것입니다. 42장까지 욥이 회개가 안 된 것입니다. 회개를 해야지 진압할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가 안 되면 아무 것도 안되는 것입니다. 죄를 뒤집어쓰고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거두어 들이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눈으로 하나님을 뵈었습니다.
저는 어릴적부터 화려한 교회 일에 너무 위대한 것을 보고 들은 것 같았지만 눈으로 주님을 보게 된 것은 걸레질을 하다가 뵈었습니다. 다른사람들이 나에게 나의 죄 때문에 나의 고난을 해석할 때 까지도 나는 내가 정말 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폭풍가운데 욥이 하나님앞에 자신의 말을 거둔 것처럼 저도 저의 말을 거두었습니다. 맹종의 말, 낙심의 말, 의심의 말, 생색의 말을 거두어 들이고 생각할 때마다 폭풍눈물을 흘리면서 회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쓰씨는 이유는 내가 너무 연약하지만 이렇게 조금이라도 회개를 하니깐 회개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고름만 터지면 될 것 같고 나의 회개의 양이 다 찬 것 같지도 않은데도 회개가 정말 안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에겐 아직도 회개의 영이 진행중입니다.
욥이 이랬다면 아벨성의 여인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사람이 죽을각오가 얼마나 있었겠습니까? 저도 회개하고 나서 너무 저의 남편을 위해서 목숨을 내놓고 기도를 하게 됩니다. 주님을 눈으로 뵙고 나니깐 이땅의 좋은 것 싫은 것이 없어지고 내게 있는 것이 숙명밖에 없고 구원밖에 길이 없는데 그래서 생명을 내놓고 기도를 했다는 간증을 여러차례 했습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진압하는 역할을 하려면 이렇게 회개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바와 요압은 회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회개를 했는지 안했는지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누가 야망인지 사명인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알려 주십니다. 한 사람이 순종해서 많은 사람들을 의로 이끌고 한 사람이 불순종해서 많은 사람들을 멸망을 이끈다는 이야기가 로마서 5장 19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 한사람의 묵상이 사소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수백억의 성전보다 더 기초를 잘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욥에게 하나님은 7절에서 갑절이나 더 축복을 주셨습니다. 소유와 자녀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너무나도 미안하셨습니다. 그 시험을 통과한 욥에게 하나님은 할 수 있는 사랑과 관심을 표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렇습니다. 다윗도 악한 세상에서 호호불어가면서 욥도 안타까이 생각하면서 데리고 가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욥만세를 외치고 있는 듯이 욥에게 잘했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생각하면 죽을 생각과 이혼의 생각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지금의 살아있는 저를 보고 기특하다는 생각을 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저도 믿었던 사람이 끝까지 시험을 통과하게 되면 얼마나 격려하는 마음이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 고난을 통해 남녀차별이 없게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딸들에게 기업을 주셨습니다. 아벨성의 여인도 여자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스라엘을 구한 것처럼 하나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남녀차별을 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사람이 어떤 사건도 진압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견제 세력인 요압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세바의 반란을 아마사의 주도로 진압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 것 때문에 아마사가 암살 당했습니다. 다윗은 하는 족족 되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다윗과는 대조적으로 세바의 난에 최소한의 피해가 없도록 진압을 하고자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요압과의 면담을 요청하고 설득했습니다. 다급한 마음으로 요청하고 간청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도 듣지 않기 때문에 간청해야 합니다. 요압이 듣는 것이 기적인데 요압이 잘 들어서가 아니라 그때의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에 듣게 하신 것 같습니다. 전혀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은 상사가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간청을 하고 들어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도 거듭나기 전에는 날마다 세상적인 욕심이 있었지만 피아노를 하나님께 드리고 나서 지혜를 주시고 내가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는지 피력하게 하시어 오늘을 위해 그때 저를 쓰신 것 같습니다. 지금 한 여인이 면담을 요청 한 것처럼 정말 저에게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고 거절당할 수치를 생각하면서 일을 진행하고 기적같이 강사로 활동할 수 있던 것 같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회개하고 말씀으로 설득을 할 수 있는 성도 입니까? 정말 여러분은 말씀으로 중심을 잡고 있는 한 사람 입니까? 이타적으로 지경이 넓어지는 인생을 삽니까? 자기 인생에서 민족을 구하는 이 여인에게 지경이 넓어진 것입니다.
3. 말씀이 들리는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20-22절 요압에게 이 지혜로운 여인의 말이 들렸습니다. 저의 이야기가 들리는 것도 신기한 일입니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것을 듣고 율법에 의거해서 명분 없는 싸움은 해서는 안된다고 요압이 싸움을 그쳤습니다. 고통의 원인이 되는 죄를 제거하면 시간이 절약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빨리 회복할 수 있습니다. 내가 죄를 보지 못하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게 되면 죄의 고통을 고스란히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인은 지혜를 가지고 백성에게 나갔습니다. 요압을 설득하듯이 백성을 설득하는 것은 쉬웠겠습니까? 누가 가서 세바의 머리를 베겠습니까? 그러니깐 또 설득하고 또 설득했을 것입니다. 정말 구원을 위해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이익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올해 목장을 하면서 사람들을 설득해서 살리고 진압하는 목장 안에서 살기를 축원합니다. 다윗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늘 보면 다윗은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다윗왕국을 영원히 등불이 되게 해주겠다던 그 약속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이렇게 보내 주십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인하시면 천군천사를 동원하셔서 도와 주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만 확인하시면 도와 주십니다.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점이 있는데 ‘언젠가는 해 봐야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절대로 오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 열심과는 아주 다른 것입니다. 제 책 로마서 ‘절대순종’에 보면 거짓열심을 가진 사람들은 쉬는 법이 없습니다. 쉬지 않고 활동을 하고 힘이 넘치고 항상 열심히 들끓어 오릅니다. 자신이 열중하는 행위에 대해서 진지하기 때문에 실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속에 평강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불안하고 침체됩니다. 그러나 참 된 열심은 결단코 겉에 입혀진 열심은 아닙니다. 외적인 활동이나 사역의 결과가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의 결과와 됨됨이의 결과입니다. 노력해서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식과 소망 때문에 열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것이 하나님께 묻고 듣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마침이 된다는 것은 안 믿는 사람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할 수 없는 적용을 길로 놓고 가게 되면 집안이 구원되고 민족이 구원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아벨성의 여인과 저를 봐도 너무나 작은 적용으로 가지고 쓰신다는 것을 보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는 빚진 자입니다.
던져야 할 세바의 머리는 무엇입니까? 던지기만 하면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백성들이 삽니다. 세바의 머리는 사단의 우두머리입니다. 사람들은 멋있어 보이는 세바의머리는 내어주는 것이 너무 힘듭니다. 그러니 얼마나 설득을 했겠습니까? 그러니 몸과 입에서 나오는 설득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속의 요압을 설득하고 세바의 머리는 던져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내안의 죽어져서 던져야 할 세바는 무엇이고? 설득해야 될 요압은 무엇입니까?
또 ‘절대순종’에서 w.데이터는 “형편없는 정부보다 더 나쁜 것은 무정부 상태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나쁜 부모라고 있는 것이 없는 것 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쁜 직장 상사라고 해도 없는 것 보다 있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좋은 사람처럼 쫓아다니시지 말아야 합니다. 조국이 있어야 예배도 드릴 수 있습니다. 나라에 대한 마음이 있었기에 이 여인이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시 상태에 있습니다. 올해 특별히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는 적용을했으면 좋겠습니다.
4. 조직이 필요하다.
23절 진압 후 전쟁을 막기 위해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사도행전에서 부족한 한 사람을 제비 뽑아서 맛디아를 유다대신 넣었습니다. 다 열두제자들이 훌륭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전세계에 전도가 되는 이런 일을 성령님이 하셨습니다. 그러니깐 이것이 ‘성령행전’이 되어야 마땅한데 그렇지 아니하고 ‘사도행전’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말 형편없는 사람을 성령의 힘으로 사도가 되개 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조직에서 일보다 사람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인정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요압을 이제 군대 장관에 다시 기용했습니다. 다윗의 슬픔이고 비극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욥압과 공모해서 우리아는 죽었는데 지도자가 악한일을 하나 행하게 되니 발목을 잡혀서 가는 모습을 봅니다. 너무나도 우리는 영적으로 죄가 될 만한 일을 제거하며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4-26절 행정조직은 사무엘하 8장의 초기의 행정조직과 거의 동일 합니다. 조직이 없으면 자원봉사의 은혜가 충만한데, 조직이 커지면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참 은혜가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아도람이 감역관으로 전쟁으로 인해 노예가 많이 생겼기 때문에 추가된 직책입니다. 감역관의 자리가 부패하게 되면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얼마나 끊임없이 쇄신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에 행정조직에 서기관이 필요하고 국고를 맡는 장관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골고루 인재를 등용했습니다. 사울은 베냐민 지파를 썼습니다. 그런데 8장하고 달라진 점이 다윗의 아들들이 대신이었는데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야일이 되었습니다. 다윗의 아들들이 한결같이 반역을 행하고 간음을 행했습니다. 실전을 거쳐가면서 사람들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피터드러커는 가족이 경제 상속권을 행하는 행동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습니다. 자유기업의 구성원은 창업가의 가족을 막론하고 공정하게 기업활동에 참여할 권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무능한 오너 일가가 요직을 차지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단지 그의 무능 때문이 아니고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현상이 조직내 유능한 임직원의 능력을 사장함으로서 사업성장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입니다. 피터드러커는 기업이 가족을 위해서 일하는 순간 가족과 기업이 둘 다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아들이 모두 악을 행해서 아무자리도 주지 않았지만 솔로몬이 뒤를 잇는 것은 가족승계를 위한 것 보다는 약속의 승계 믿음의 승계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적용] 목장 조직과 사역 조직에 대해서 하나님의 일이라고 순종하고 가시면 어떠실 까요?
사랑이 생기면 돕겠다고 하지 마시고 미움이 없어지면 용서하겠다고 하지 마시고 그냥 먹이고 마시세요. 개편되시는 목장에서 이것을 실천하시면 됩니다.
#9873; 목장 풍경
새롭게 목자의 직분을 받게 된 노성혜 목자의 첫 목장모임이 까페 쉐누에서 한 곳에 모여 나눔을 하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출애굽 간증과 오늘 말씀중에 #65279;적용하고 나누고 싶은 것을 한 가지씩 자유롭게 나누게 되었습니다. 첫 나눔이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눠준 목원들과 은혜로 이끌어 가시는 목자님 덕분에 더 깊은 나눔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청년부 수련회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앞으로가 더 더욱 기대되는 우리 노성혜 목자의 목장이 말씀 떡을 먹고 나누는 목장이 되길 바랍니다.
#9873; 기도 제목
#65279;
노성혜 목자님(82)
-트라우마 회복해 주세요.
-기쁨이 회복되기 원합니다.
-금요일 아웃리치 엠티 통해 팀원들과 즐거운 시간 갖기 원합니다.
-결혼 주님께서 인도해 주시길 원합니다.
김슬기(83)
-직장 내 질서에 순종할 수 있도록
-기쁨이 회복 될 수 있도록
윤정원(83)
-부모님 구원
-내 안의 욕심, 인정중독, 핸드폰 게임 진압 잘하기
-수련회 가는 것 엄마의 반대 없도록
-직장에서 중심 잘 잡고 분별 잘하기
-매일 큐티 할 수 있도록
이지은(85)
-갑상선 빨리 나아서 약 끊을 수 있도록
윤경주(82)
-나의 죽은 회개가 살아날 수 있도록
-내속의 음란, 교만, 인정중독, 술의 세바의 머리를 진압할 수 있도록
-수련회에서 뜨겁게 하나님 만날 수 있도록
-올 한 해 예수그리스도를 위해 갇힌자로 살 수 있도록
-부목자로서 섬기는 동안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목장에서 믿음의 교제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과 내 수준에 딱! 맞는 곳으로 이사 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