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4;휘문3부 김지헌 목장 보고서 날짜: 2014년 12월 28일
참석자 : 김지헌 목자(80) 이혜림(81) 이슬기(83) 주의율(83) 윤경주(82)
본문 말씀 : 삼하 19:40-20:13
제목: 반란
#9873;목장 풍경
김지헌 목자의 첫 목장이 4개월 간 함께 했던 일들을 추억하며 말씀과 기도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강남역에서 맛있는 훠궈와 따뜻한 차 한잔과 마무리 아이스크림까지 맛있게 먹었습니다. 평소에 늘 가던 곳과 늘 보던 사람들이었지만 오늘따라 왜 이리 섭섭하고 아쉬운지 모릅니다. 2014년을 마무리하면서 각자가 도로 찾게 된 것들이 많았고 잃어버린 것도 있었지만 모두 하나님과 조금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박소연 부목자님의 신결혼 예배가 목장의 마무리가 되어 더 뜻 깊었던 목장이었습니다. 새로 만나게 될 또다른 지체들과의 더 뜨거운 출발을 위해 응원해주는 뜨거운 목장~ 김지헌 목장의 마무리 모임이었습니다. 지헌언니, 소연언니, 혜림언니, 슬기, 의율이 모두들 뿅 ! ♥

#9873;주일 설교
2014년 첫 설교가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시는 분이 계십니까? 설교 제목이 무엇이었을까요? ‘반드시 도로 찾으리라’였습니다. 올해 안에 많이 찾으셨을 것 같습니다. 구원도 남편도 아내도 자식도 물질도 찾으셨을 것 같습니다. 찾으신 분들은 말씀이 이루어 졌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신 분들은 잃어버린 것 때문에 자기자신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언제나 찾는 사람들은 찾는 일만 하고 있습니다. 2014년 마지막 설교의 제목이 ‘반란’입니다. 2015년 첫 주일부터 반란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을 찾기 위해 온 눈으로 감찰하셔서 이 자리에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자살하려고 고속도로에서 ‘그럼에도 살아냅시다’ 구호를 보고 이제 우리들 교회에 오셔서 살아나신 분이 있습니다. 부부목장에도 잘 가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찾으신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욥의 고난은 큐티인이 끝나는 12월 31일에 끝나겠지만 우리들의 욥기는 아마 계속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도 계속고난이 오다가 송구영신예배의 큐티인 본문 제목이 ‘갑절의 축복’입니다. 다윗왕이 귀환한다고 해서 대로가 뚫린 것이 아닙니다. 왕의 귀환을 하는데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끊임없이 문제가운데 있었지만은 똑같은 일을 당하는 우리에게는 롤모델이 되어주기 때문에 문제 많은 다윗은 인류 최대의 빛이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여러분들 지금문제가 많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상처가 많으면 여러분들은 별이 됩니다. 어쩜 이렇게 다윗은 이런저런 문제를 다 겪고 갔을까? 너무나 위로가 되고 은혜가 됩니다. 우리의 환란은 환경이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환경은 변함이 없는데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지 못하는 것이 환란 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사람은 환란에 대해서 해석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오늘 반란이 왜 왔는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1. 지역감정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40-43절 유다백성은 다윗을 전폭적으로지지 했지만 이스라엘의 백성은 절반만 지지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는 다윗을 배척하였더니 지금은 왕을 도둑질 해갔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지난 12절에 다윗이 가장 힘들 때 골육을 언급하며 추대 해주기를 말했었는데 이 사람들이 그것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오해 살 만 하다고 이전에도 언급했었습니다. 유다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옳은 이야기를 해도 부드럽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불을 내도록 이야기를 해서 이스라엘에 반감을 사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우리가 선물 받은 것이 있는냐? 라고 하는 것은 베냐민에게 너희는 사울에게 얻어먹지 않았느냐?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라고 하는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런 싸움을 합니다. 압살롬의 반역은 사울의 잔당들에게 권력을 되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과 다윗이 모두 유다지파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유다지파가 모든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틈에 베냐민 지파가 사울가가 다시 한 번 재개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열두지파는 생긴이래 단 한번도 편안하게 지낸 적이 없습니다. 각 지파마다 서로의 자치권을 상당할 정도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열두지파가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사사기 시대부터 분열을 거듭해서 날마다 분란가운데 있는 열두지파를 정치적으로 통합한 것이 초대왕 사울인 것입니다. 그러니 사울가문의 긍지는 굉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지파의 왕이 되고도 7년 6개월을 기다려서 통일왕국의 왕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왕이 되었는데 지금 또 다시 이렇게 북쪽, 남쪽 하면서 네고향, 내고향 하면서 우리는 친구라고 하면서 매일 싸웁니다. 그러니 다윗이 귀환을 한다고 하니깐 서로 다윗이 내편이라고 우겨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당에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도 나가서는 기득권을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교단이 갈라지고 집집마다 갈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신사참배를 두고 서로 전통장자권을 주장합니다. 낮아져서 이땅에 오신 예수님께 드려야 하는 영광을 혼자만 차지 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깐 함께 하는 것이 안됩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함께 기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도 좋고 예수님도 좋은데 공동체는 싫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내가 최고여야 하고 누구 밑에 들어가는 것을 도저히 용납이 안 됩니다. 모든 것의 뒤에 돈이 있습니다. 교단도 교회도 집안도 재산이 없으면 안 싸웁니다. 재산이 있으면 피터지게 싸웁니다. 개척때부터 피땀흘려 쌓아놓은 교회에 다른 목사가 부임을 해 오면 싸움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는 그러면 언제 해결이 될까요?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는 언제 하나가 될까요? 언제 하나가 되어야 하냐면 망해서 돈이 하나도 없어지면 갑자기 사이가 좋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끊임없이 싸우다가 BC 930년에 갈라졌고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BC 586년에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둘 다 포로생활 열심히 하다가 돌아오니깐 다 망해서 그때 하나가 되었다고 이사야 11장에 나와 있습니다. 열두지파가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여러 나라를 동원해서 하나가 되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이 하나가 안 되면 여러 나라를 동원 합니다. 그래서 형제끼리도 싸우다가 같이 망하게 되면 둘이 하나가 되기 쉽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어야 서로의 싸움을 그치고 진짜 싸워야할 싸움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사야 11장 15절에 보면 둘이 하나가 되어 진짜 적과 싸우니깐 대로를 만들고 큰 길을 만드시고 가라는 것을 본다고 했습니다. 집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할 사람이 안 되니 대로가 안 열립니다. 그렇게 하나가 되어야 남은 자를 돌아오게 하셨다고 합니다. 내 인생의 주어이니 하나님을 찾지 못하면 내가 속해야 할 진정한 우리 공동체를 찾지 못합니다. 진짜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이 되지 않습니다. 서로 공부 잘하고 교회 잘 다녀도 절대로 우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느 곳에 의지 않게 하지 않게 되면 잠시도 자신을 주체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교회를 다닌다고 해도 학연과 지연에 혈연과 권력에 끌려다니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망해야 하나가 된다고 했습니다. 폭풍이 와야 말씀이 들린다고 했습니다.
[적용] 아무리 예배의 은혜를 받아도 은혜의 자리에서 내려오면 여러분은 무엇을 합니까? 여전히 자녀가 우상 입니까? 돈이 우상입니까? 깊이 좀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대로를 보이지 않습니다. 할 일을 보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속지 않으십니다. 지연과 학연과 혈연 중에 어디에 그렇게 끌려 다니십니까? 나의 연말 모임은 누구와의 모임이 계획되어져 있습니까?
[큐티인의 간증- 모범생에서 붙박이 백수가 된 아들우상이던 집사님의 간증]
다윗이 왕의 귀환을 하고 있는데 다들 다윗을 환영하기 보다는 누가 더 주도권을 가질 것인가? 이 생각만을 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너무나 외롭습니다. 이럴 때 지난 주일설교의 바르실래가 다윗을 따라가지 아니한 것은 그렇게 순수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저에게도 하나님 자체가 좋고 말씀 자체가 좋아서 이해타산을 하나도 계산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은 이제 압살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서 그렇게 자신을 저주했던 사람까지 용서하면서 요단강을 딱 건넜는데 반란이 기다리고 있으니깐 머리가 하얘지면서 진도를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20장 1절 ‘마침’은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안에서 하나가 되질 못하니깐 너무도 쉽게 전혀 지도자 감이 아닌자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로 분파를 주장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반란의 기회를 만들어 준 것입니다. 부부가 하나가 되질 않으면 너무나 말도 안 되는 남자하고 여자하고 바람을 피우게 됩니다. 서로가 마음이 상해 있으면 둘을 붙여줄 반역자가 딱 등장합니다. 세바의 반란의 변은 이스라엘의 마음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너 다윗에게 붙여봤자 돌아올 몫이 하나도 없다’ ‘너 그 결혼 해봤자 돌아올 몫이 하나도 없다’ 결혼에 대한 정면 도전을 하게 합니다. 결혼을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바람피우고 사업망한다고 헤어지는 것이 결혼이 아닙니다. 다들 옳고 그름으로 생각해서 헤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유익에 대해서 예민하기 때문에 돈을 조금만 벌면 헤어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혼전에 잘 골라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 전에 잘 골라야지 결혼 후에는 선택이 없습니다. 그러니깐 세바는 갑자기 이스라엘의 유익을 대변하는자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이혼하려고 할 때 꼭 대변자가 생깁니다. 갑자기 이새의 아들이라고 비하를 합니다. 다윗이 우리를 배반했던 유다지파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절 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입니다. 다윗 따르기를 그치는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입있는 자들은 모두 세바의 말을 따릅니다. 얼마나 세바가 맞는 이야기를 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래도 이때에 유다사람들이 그래도 다윗편을 들면서 귀환하는데 따르고 있습니다. 다수가 문제가 아니라 소수여도 다윗편을 따르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지키는 줄을 믿습니다. 이사람들은 몇 만명들과 비교가 안되는 용사들입니다. 언제나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결정적일 때는 딱 일어나서 다윗을 돕습니다.
[적용] 나의 열심과 요구가 내가 속한 공동체의 분쟁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 합니까? 목장개편을 앞두고 반드시 이타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직분을 가지고 속상해 하지도 교만하지도 맙시다.
2. 반란에 대한 다윗의 작전입니다.
1) 모두가 수치를 기억하도록 했습니다.
3절 다윗은 유다백성들과 반쪽자리 환궁을 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한 일이 예배드린 일도 아니고 이상한 일을 합니다. 후궁을 가둡니다. 후궁에 대해서 3번이나 언급됩니다. 다윗이 도망갈 때 10명의 후궁을 지키라고 두고 떠났었습니다. 후궁은 그당시 관행에 따라서 정치적인 임무를 띄고 뽑은 것 같습니다. 아내하고 첩하고는 다른 여자입니다. 자신의 호위대 인 것 같습니다. 다른나라 왕들과 정치를 할 때 절세 미인의 기쁨조가 필요한 것입니다. 두 번째 언급되는 것이 압살롬이 자신의 정욕을 자랑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백주대낮에 동침을 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언급된 것은 다윗이 돌아와서 후궁을 가두는 장면입니다. 분명히 정치적이고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압살롬의 반역을 겪으며 다윗은 인생무상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런데 압살롬의 사건을 겪고 보니 기쁨조가 쓸데 없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나라를 빼앗은 것이 아니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돌아 온 것입니다. 완전히 달라진 다윗입니다. 전쟁에서 져도 이겨도 좋은 것이 없어 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후궁에 대해서 같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왕들은 이런 후궁을 가차없이 죽였습니다. 왜 살려두겠습니까? 후궁들은 애매하게 일들을 당했지만 자신의 아들과 동침한 후궁들과 관계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당시 후궁이 다른사람들에 의해 더럽혀 졌다면 죽이는 것이 관례 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생각한 것이 자신의 옆에 두고 늘 자신의 연약함과 자신의 범죄를 기억하게 하는 방침을 택했다고 봅니다. 정말 다윗은 자신의 죄를 처절하게 바라보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이 범한 후궁을 죽는날까지 옆에두고 모두가 보게하고 알게하고 둔 것입니다. 인간적인 사람들은 죄가 부끄러워서 자신이 생각나지 않게 하려고 후궁을 죽였을 것입니다. 수치를 덮기에만 급급한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그렇게 덮고 또다시 죄를 짓고 즐기는 것입니다. 초대왕 사울은 예배는 열심히 드렸지만 늘 선지자의 말을 경홀하게 여기고 자기가 당하는 수치만 부끄러워서 아들과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죄가 안보입니다. 다윗은 이 모든 수치를 안다고 해고 부끄러워하면서 자신은 가기를 선택했다고 봅니다.
진짜 큐티란 주님 앞에 내 부끄러운 문제를 내 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복 있는 사람’ 79page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부끄러움의 문제와 상관이 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믿음으로서 이미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다면 어떤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지금 어둠에서도 이미 햇빛을 느끼고 있는 것과 같으며 밤이 지나서 아침이 오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부끄러운 사연이 있을 때 주님으로 인해 부수고 주님으로 인해 다시 세우면 다음에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잠시의 부끄러움 때문에 숨기고 다시 세우지 않으면 작은 사건에서도 영원히 무너질 수가 있다. 내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에 부끄러움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능력이다.’ 그래서 다윗이 이렇게 적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후궁을 별실에 가두고 먹는 것을 주었다는 것은 그녀들을 보호하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다시는 다윗의 성적노리개가 되는 것에서 이제는 해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세상나라의 왕처럼 살지 않겠다는 것을 공표한 것입니다. 이것은 ‘ 나는 징계받은 왕이다. 압살롬의 고통으로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전의 예전의 다윗왕이 아니다.’ 라고 공표한 것입니다. 후궁들 입장에서 보면 너무 비참해 보입니다. 생과부 신세가 된 것입니다. 여성에 대한 비하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후로도 마음껏 기도 하면서 순결하게 지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녀공동체의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은 그것보다는 성적인 도구로 이용하는 것이 끝이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을 했습니다. 백성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던간에 다윗은 적용을 했습니다. 왜 이것이 적용이냐 하면 그당시 여자는 파리목숨도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마음대로 죽이고 살리고 했던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압살롬이 범했던 후궁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데도 그걸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수치를 드러냈다고 생각됩니다. 큐티란 것이 이 구절이 왜 여기에 들어갔을까? 라고 질문해 보는 것입니다. 지금 전쟁을 해야하는데 왜 이 이야기가 들어갔지? 생각을 해보시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다윗의 큰 약점은 여자문제 였습니다. 다윗은 자신 때문에 압살롬이 살인을 하고 반역을 했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앞서 여자를 끊는 적용을 1차적으로 했다고 봅니다. 다윗이 절세미인들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는 것이 드디어 다윗의 여성편력이 끝났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다윗에게 끊임없이 따라다닌 여자중독이 이렇게 끝났다고 봅니다. 후궁들을 생과부로 만든 후에 다른 여자의 이야기가 일절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봐서 여자문제가 끝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기에 우리 인간은 악하고 음란하기 때문에 늘 전쟁 전에 악하고 음란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나의 세상적인 욕망을 끊어내는 적용을 먼저 해야 되는 것입니다. 속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전쟁과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이 적용을 기뻐하셔서 결국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다고 봅니다. 이것은 거룩의 적용입니다. 거룩은 다 왔다가 물러가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모든 사단의 세력이 모두 왔다가 물러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전혀 이길 수 없는 다윗이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은 모두 이기는 것 같아도 하나님을 예비하지 않고 인간의 방법으로 하면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올바른 가치관을 갖지 않으면 승리 할 수 없습니다. 전쟁은 하나님나라의 전쟁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인간은 절대로 자신의 힘으로 죄와 욕망과 중독을 끊을 수 없습니다. 중독은 행위의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반응하는 것이 반응하는 모든 것이 중독입니다. 그래서 알코올, 여자 무슨 중독들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잘못 되었다고 해도 전혀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리에 앉아 있게 되면 끊임없이 염려와 비판이 들리게 됩니다. 가치관이 올바르지 않으면 돈이 있으면 죄밖에 지을 것이 없고 중독으로 가는데 다 씁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먼저 행 해야 할 것은 거룩의 적용입니다. 한 가지라도 회개하면서 적용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적용] 내가 보여야 할 수치는 무엇 입니까? 끊어야할 중독이 무엇입니까?
2) 반대편 적장을 기용했습니다.
4-6절 전쟁을 해야 하니깐 아마사에게 유다사람들을 소집하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오질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아마사가 어제까지 원수의 군장이었는데 사람들을 모으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런 역량이 못되는 아마사입니다. 압살롬과의 전쟁은 개인의 원한과 불평이었지만 세바의 난은 나라간의 지파간의 충돌이었기 때문에 삼일을 기다리지 못하고 아마사에게 군사를 모으라고 지시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다윗은 압살롬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를 임명해서 온 이스라엘의 하나됨을 환호 안에서 돌아오게 된것입니다. 하지만 돌아오는데 세바의 난이 일어 났습니다. 다윗은 전체적으로 아마사를 군장을 삼았어도 세바는 이름의 뜻이 불량배, 사단을 물리치는데 아마사를 놔두고 요압을 보냈어야 했습니다. 세바의 난에는 세바를 통솔할 수 있는 요압을 보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요압이 너무 미워서 아비생게 가라고 한 것입니다. 요압을 싫어하는 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요압이 억한 심정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아마사를 다윗이 임명한 것 때문에 아마사가 죽게 된 것입니다. 다윗이라고 해서 늘 좋은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도 압살롬을 죽인 요압에게 감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때마다 시마다 인생은 늘 결정과 선택이 있습니다. 구원 때문에 결정을 해야 합니다. 스캇펙은 “결정에 따르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할 용의를 가진 사람이 가장결정을 잘 하는 사람이다.”라고 했습니다.내가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기로 결정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쉽게 말하면 상황에 따라서 부모를 모시거나 형제를 도와야 하는 것인데 내가 손해 보게 될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욕심이 많은 사람이 제일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반면 믿음이 없으면 제일 미련한 사람이 결정을 잘 내립니다. 믿음이 아니면 우리가 무엇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게 됩니다. 결정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마사를 군장삼은 것은 그때로서는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봅니다. 그래야지 유다의 통일왕국의 왕으로 귀환을 하는 결정적인 포인트가 아마사를 군장삼은 것이기에 최선의 결정이었지만 오늘만은 틀린 적용이었다고 봅니다. 비루한 세바의 난이 벌어진 곳에는 아마사를 넣으면 안되는 것이라는 겁니다. 어제까지 원수 였는데 우리편에게 칼질을 하게 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는 요압을 보냈어야 했던 것입니다.
7-10절 이 싸움이 지파간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다윗이 육백명의 군사를 뒤늦게 보냅니다. 너무나 다정한 모습으로 요압이 다가가서 아마사를 속입니다. 주님은 사단을 가리켜 처음부터 살인한자, 거짓의 아비라고 칭하셨습니다.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한결같이 달콤하고 선량하며 아주 사람들을 현혹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사단이 작정을 하면 살아남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으면 사단이 먹잇감으로 정한 이상 그 유혹에 살아남을 자가 없습니다. 요압의 감춰진 칼날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는 사단의 일꾼이면서 자신이 의의 일꾼이라고 가장하는 것이 큰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곳곳에서 나는 의의 일꾼이라고 합니다. 요압을 기용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요압을 쫓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아마사도 압살롬을 따랐던 자이기 때문에 형벌을 받아야 마땅하지 만은 이렇게 요압에게 죽은 것이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천국에 가지 않았을까 생각 됩니다.
11-13절 전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마사의 시체가 큰길에서 굴러 다녔습니다. 다윗이 요압을 견제하고자 했던 것도 실패를 했고 베냐민 사람인 시므이와 시바를 다용서 했는데 도리어 베냐민 지파에서 반역이 일어 났습니다. 아마사를 군장으로 임명한 것도 실패 한 것처럼 보입니다. 전체 군장으로 임명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세바의 반역에서는 요압을 보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치우친 것이고 실수의 연속인 것입니다. 다윗과 밧세바와의 범죄를 이렇게 끝도 없이 책임을 물으십니다. 결국 왕권은 회복이 되었습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을 지켜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다윗이 한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그 마음을 보시고 후궁을 끊어내고 그리고 자기는 아마사를 데려와서 원수를 사랑하려 했던 점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적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매번 바보같은 일을 하는데 그래도 주님 때문에 한 적용 때문에 우리가 동으로 갈 것을 서로 갔어도 동으로 가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내가 그래도 원칙적으로 적용을 하려고 하니깐 하나님이 도와 주십니다.
[적용]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오는 사단의 유혹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우리주위에는 자신의 상황에서 분해서 십자가를 지려는 것 보다는 복수하려는 요압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다윗 옆에 보니 일평생 변하지 않는 압살롬과 요압이 있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으로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반란이 무엇이냐? 각자의 수준에서 인생이 날마다 반란을 합니다. 주님을 그래서 만나게 되고 또 반란을 해서 더 깊이 만나게 됩니다.
왕의 귀환을 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지역감정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하나님이 주어가 되는 인생을 못 넘어서 아무리 예배 은혜를 받아도 나가기만 하면 여전히 좋은 것이 있고 자녀우상, 돈우상이 있습니까? 지연, 학연, 혈연을 넘어 설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사명을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작전은 수치를 모두에게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편 적장을 기용해서 다 실패 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반란을 막아주셨습니다. 내 모습이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9873;기도제목
김지헌 목자(80)
1.2014년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2.질서에 순종할 수 있도록
3.엄마가게 팔릴 수 있도록
4.사랑이 많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5.건강과 체력 키울 수 있도록
6.가족구원과 신교제
7.청소년부 수련회와 청년부 수련회 기도로 준비 할 수 있도록
박소연 (81)
1.합력하여 선을 이뤄주신 하나님께 너무 감사, 결혼예배 감사
2.믿음의 가정, 기도하는 가정되고 부부목장 새롭게 잘 참여 할 수 있도록
3.신행동안 서로 잘 이해하고 배려 할 수 있도록
4.체력이 강건해 지도록
5.부모님들 마음 잘 헤아릴 수 있도록
6.고마운 사람들 잘 보답하고 전할 수 있도록
이혜림(81)
1.죄에대한 애통함이 생기도록
2.직장 잘 출근해서 업무에 집중하도록
3.목장이 바뀌는 것을 아쉬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목장을 기대하도록
4.2014년도 마무리 잘하고 새해 잘 맞이 하도록
이슬기(83)
1.한해 마무리 잘하고
2.말씀으로 시작하는 매일이 될 수 있게
3.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늘 먼저 구할 수 있도록
4.가족과의 관계 지혜롭게 해결하길
5.폭풍속으로 들어가도록
주의율(83)
1.2014년 마무리와 2015년 ‘심히 창대하리라’ 내 말씀으로 받기
2.온 가족의 구원화
3.말씀으로 매일 나를 비추기
4.현실의 문제들을 회피하지 않고 폭풍속으로 들어가기
윤경주 (82)
1.2015년 ‘심히 창대하리라’의 말씀으로 준비 할 수 있도록
2.인간관계에서 지역감정, 편가르기 하지 않도록
3.나의 열심을 내려 놓을 수 있도록
4.교회 잘 섬길 수 있는 새로운 거처 마련 할 수 있도록
5.위장장애 나을 수 있도록
6.매일 큐티와 회개 놓지 않도록
7.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뜻을 알아가는 자녀 될 수 있도록
8.매일 거룩한 적용 할 수 있도록
9.2015년엔 성경일독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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