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사무엘하 19:9~39 제목: 왕의 귀환
내용: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른다.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을 당해본 사람은 그보다 더 괴로운 상처는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다윗도 비록 전쟁에서 이겼지만 가장 사랑하는 아들과 공동체에서 거절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거절당할 때 어떻게 반응 하냐에 따라서 회복의 여부가 결정된다.
다윗은 다윗의 반역으로 쫓겨났지만 다시 돌아간다.
1.다시 세워야할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다윗 가문은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에 무너졌어도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모두가 마음이 상해 있어서 그냥 돌아가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내가 왕이 되겠다고 바로 가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왕의 태도가 아니다. 넘어진 지체를 일으킬 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다윗을 보게 된다. 다윗은 스스로 예루살렘 환궁을 추진하지 않고 유다 장군들과 아마사에게 가서 추진하도록 했다. 자신의 왕위를 찾는 것 보다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로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신의 명예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먼저 도모하는 것이다.
-공동체의 유익과 나의 명예 중에서 무엇을 중요시 여기는가?
형제 골육을 외치던 다윗은 또 다른 조카인 아마사를 군장으로 임명하고자 한다. 압살롬을 죽인 요압을 견제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비리를 알고 있는 요압을 두려워했을 것이다.
-여러분은 이렇게 무서운 요압이 있습니까?
아마사를 기용한 일로 유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기울게 되었다. 이것은 다윗의 대단한 정치력이었다.
다윗이 무너져가는 이스라엘을 도우려면 아무것도 없을 때 자신의 지파가 앞장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사울은 멀쩡한 다윗을 하나님 나라의 원수로 지정하고, 베냐민 지파를 모아두고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너무 힘들 때 자신의 지파에게 일어나 달라고 한 것과, 자기가 왕이면서 자기 자리 때문에 지역감정을 부추긴 것은 다르다.
요압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중에 아마사를 죽인다. 리더는 언제나 선택을 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제나 이해하지 못하는 무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기도하며 갈 수 밖에 없다. 다윗은 이 때, 이것이 최선의 결정이었다.
2.돌아가려할 때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1)기회주의자 시므이 시바가 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했는데, 베냐민지파 천명을 데리고 영접하러 나왔고, 시바도 종과 아들과 같이 나왔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다윗의 보복이 두려워 아부를 한 것이다.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다.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다윗에게는 고맙다.
시므이는 저주할 때는 하나님을 빙자하더니 선처를 구할 때는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진짜 회개가 아니다. 기회주의로 영리한 듯 보이지만 바람의 나는 겨와 같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말씀을 듣고, 어려서부터 사울을 용서했기 때문에 이런 시므이도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말씀 안에서 용서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정신과의사 양찬순박사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책감이나 자기합리화, 수치심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설령 거짓인줄 알게 되더라도 상대방이 사과하면 굳이 파 해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서로가 용서하고 받아들이려면 관계 속에서 실패하고, 속이고 속았던 일, 마음에 앙금으로 남아있던 일들까지 모두 받아들일 수 있어야한다. 그러나 악의적인 인간의 거짓말은 아니다. 결국 시므이도 처형이 되었다. 처형은 하나님이 하시니 나는 용서만 하면 된다. 상대방이 내 마음 같을 것이라고 결혼하면 반드시 상처를 받는다. 인간관계는 내 마음 같은 사람은 없다. 내가 만나는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데서 시작해야한다.
다윗은 많은 배반을 당해왔다. 요압, 시바, 시므이, 압살롬, 아히도벨, 미갈, 시글락 백성, 나발, 그일라 사람들, 사울, 이방 나라들,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배반했다. 하지만 다윗은 배반하는 자들과 공존하는 것에 익숙했다. 이것이 훈련이다. 대적하는 자들과 같이 사는 법을 배워야한다.
-인생을 살며 시므이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가?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해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는 않는가?
-배반을 몇 번 당해봤는가? 그 때마다 내치는가? 하나님이 정리하실 때까지 같이 살아야한다.
2)진정으로 사랑하고 가슴아파하는 사람이 있다.
다윗은 시바의 모함으로 므비보셋에 대해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윗은 시므이는 용서하고, 므비보셋을 박대한 것처럼 보인다. 인간적으로 보면 공정하지 못한 지도자이다. 그러나 다윗이 이상하게 결정을 했을까? 시바는 다윗이 맨발 벗고 기드론 시냇가를 울며 떠날 때, 정치적인 생명을 압살롬이 아니라 다윗에게 걸었던 사람이다. 중요한 그날 밤에 요긴한 음식을 공개했고, 그것으로 부하들을 살릴 수 있었다. 시바 때문에 살아났다. 잘못된 돈이라도 부하들이 살아났기에 무조건 배신자로 생각하지 않고 용서했다. 여기서 시바가 의롭다고 하기 보다는 다윗왕의 의로움 때문에 재산의 반을 받게 된 것이다. 므비보셋은 시바에게 땅을 다 주어도 좋다고 한다. 이것이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고, 다윗 왕 자체가 상급인 것이다.
내가 돌아갈 때 이런 기회주의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충신 므비보셋도 있다.
이것은 다윗이 자기 죄를 철저하게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 무슨일이 일어나면 행복하겠는가?
세상의 행복은 돈과 권력과 명예에 있지만 다윗은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을 자신의 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는 죄의 기준이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이기에 조금 잘난 사람에게는 열등감을 느끼고, 못난 사람에게는 잘난 척을 한다. 진리란 그 환경이 되면 누구라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항상 그 환경에서 그 사람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자기 죄를 모르는 사람은 주어진 행복도 선택하지 못한다.
싸움이 없는 것이 회복이 아니라 관계의 회복이 화평이다. 성화는 원함과 행함의 차이가 점점 좁혀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리더십의 핵심은 아버지와의 관계이다.
-므비보셋같은 사랑하는 지체가 있는가?
3)공기 같은 자가 있다.
바르실래는 길르앗 거부고, 나이가 80이다. 압살롬에게 도망갈 때 먹을 것을 공개했던 사람이기에 다윗이 같이 가자고 하는데, 나는 생명의 날이 얼마 안 남았고, 나이가 80세라서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하지 못하고, 음식의 맛도 모르고, 남녀의 소리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왕과 함께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지금 이 현재가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죽음을 기억하면 현재가 풍요로워진다. 인생의 길에는 상처도 있고, 슬픔도, 배신도, 욕망도, 좌절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시간에 의해 다 치유가 된다. 근데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인간은 성장한다.
바르실래는 특별히 왕을 따라가지 않아도 인간의 왕궁의 가지 않아도 이미 하나님의 왕궁에 살고 있으며, 순간순간이 무의미하지 않고, 자기 은사와 나이를 깨닫고 그곳에서 잘 죽겠다고 한다. 너무 멋진 인생이다. 자기 주제를 아는 사람은 누구든지 별처럼 비추이는 인생이 될 것이다.
나는 부모의 묘 곁에서 죽고 싶고, 아들 김함을 데려가 달라고 한다. 일생을 자신의 부를 잘 베풀면서 생색을 내지 않는 자가 진실로 주님께서 이름을 내어주는 사람이다.
요나단과 바르실래는 일생에 다윗이 의지하고 싶었던 사람인데, 자신은 가지 않고 다윗에게 자식을 맡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조상 다윗에게 자식을 맡겼으니 얼마나 축복인가?
하나님이 다윗을 다시 세우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압살롬보다 의로워서일까? 이스라엘은 언약의 나라이기 때문에 외모나 힘에 의해서 왕이 세워지면 안 되기에 오직 언약의 말씀으로 세워져야 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윗에게 부정적인 면이 많이 있는데, 이런 모습을 통해서 다윗보다 더 완전한 왕이 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우상이 되어서는 안 됨.
예수님은 로마 정부를 뒤엎고 오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힘에 의해 고난당하고, 죽임당하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성도는 세상의 힘으로 살 길을 찾는 자가 아니고, 세상의 힘에 의해 고난당해도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자이다. 이것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힘들어도, 무너져도, 어리석어도 돌아가야 한다. 다윗도 돌아갔다. 돕는 사람도 있고, 속는 사람, 속이는 사람도 있지만 주님은 나로 인해서 승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나눔>
2주 연속 쪼인. 오늘은 손유진 목장과 함께 영화 호빗을 보았습니다.
예배도 평소보다 늦게 끝나고, 영화도 워낙 길어서 짧게 나누지 못해서 아쉬웠고, 기도제목도 나누지 못했습니다.ㅠㅠ